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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우리가 먼저왔거든요?"

‘야놀자’ 등 모텔 전문 사이트에후기가 하루에 수십 건씩,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모텔의 사회학

김회권 기자 ㅣ khg@sisapress.com | 승인 2015.12.23(Wed) 18:03:00 | 13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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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풀 욕조에 그랜드 피아노, 복층형까지. 모텔은 지금 휴식과 놀이를 즐기는 종합엔터테인먼트 시설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 야놀자 제공

이제 이곳은 곧 대란을 맞을 것이다. ‘방을 구한 자’와 ‘방을 구하지 못한 자’ 사이에는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구하지 못한 자는 아쉬움에 땅을 칠 것이고 여자친구는 그런 남자친구를 타박하거나 위로할 것이다. 평소보다 2배가 훌쩍 넘는 10만원 중반대로 숙박 가격이 치솟아도 여러분들이 구할 방은 없다. 좀 더 럭셔리한 방들은 30만원을 호가하겠지만 그래도 동이 날 예정이다. 한 편의점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1년 중 콘돔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날이 12월25일이란다. 아마도 크리스마스이브를 막 넘긴 자정부터가 피크일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조사 결과를 보고 누리꾼들은 이렇게 말했다. “역시 예수는 사랑이다.”

서울 신림동에 위치한 A모텔의 실장에게 2014년 크리스마스이브 때는 어땠는지 슬쩍 물었다. “숙박은 일주일 전에 예약이 다 끝났고, 이미 저녁 6시쯤부터 대실이 풀로 돌았어요. 미리 예약 안 하시면 올해도 방 못 구해요.” 38개의 모텔방이 핑핑 돌았다는 얘기다. 미리 예약하라는 그의 친절한 조언대로 이미 모텔업계는 크리스마스 예약 전쟁에 돌입했다.

모텔 로비에서 빈방 기다리는 커플들 북적

집 놔두고 밖에서 자는 사람이 참 많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왜 굳이 연말에 모텔 예약에 목을 매느냐고 비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단 밤을 보내기 위해서만 이곳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대낮의 잠깐 휴식, 혹은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공간으로 지금 모텔은 소비된다.

원래 모텔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남녀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밀실이다. 외부의 침해가 없는 밀실문화가 성행하는 우리 분위기와 맞물려 모텔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다만 둘만의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여기에 들어가는 과정이 문제였다. 누군가와 마주칠까 봐 조마조마해야 하는게 정상인 곳이었다. 엘리베이터라도 타고 있으면 문이 열릴 때 누가 서 있을까 염려해야 했던 장소다. 한 번쯤 가봤어도 가봤다고 말 못하고 너무 잘 알면 이상한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마치 격납고처럼 육중한 문이 열리는 무인텔, 특히 승용차를 몰고 그대로 들어갈 수 있는 드라이빙텔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런데 이토록 미심쩍은 장소가 이제는 음지가 아니라 양지에서 빛을 발한다. 12월15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B모텔의 프런트에서 본 모습은 실제로 그랬다.

오후 5시를 막 넘긴 시간이었지만 로비에 앉아 있는 20대로 보이는 세 커플은 마치 ‘맛집’ 음식점에서 테이블이 나기를 기다리듯 모두들 빈방이 나기를 기다린다. 로비에 놓인 과자나 사탕을 먹고 음료도 마시며 자연스레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부끄러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20분 정도 흐르자 뒷정리가 끝난 객실이 하나 비었다. 세 커플 중 먼저 한 커플이 밀실로 들어설 차례다. 서비스 마인드가 가득한 종업원이 카운터에서 “다음 손님?”을 외치며 두리번거리자 한 남성이 자기 차례인 양 다가갔다. 그런데 뒤쪽 소파에 앉아 있던 다른 커플의 여성이 종종걸음으로 재빨리 카운터로 다가가며 이렇게 말했다. “저기요, 우리가 먼저 왔거든요?”

‘입소문’ 무한 대실 모텔 앞에 줄 선 남자들

로비에서 만난 당당한 20대 여성처럼 이제 모텔은 여성들에게 꽤 친화적인 장소가 됐다. 그렇다고 해도 모텔은 여성들이 여전히 조심스러워하는 곳이기도 하다. 조심스럽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모텔 선택권은 여성이 가진다. 이안나 부산대 여성연구소 전임연구원이 2012년에 발표한 ‘모텔 이야기: 신자유주의시대 대학생들의 모텔 활용과 성적 실천의 의미 변화’라는 논문은 12명의 대학생들과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연구 참가자들 중에는 흔히들 짐작하듯 술에 만취해서 갑작스럽게 아무 모텔이나 들어간 경우는 없었다. 연인 중 한 명이 모텔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오랜 기간에 걸쳐 밝히고, 여러 차례거부당하는 과정을 거쳐 상대방의 동의를 얻었을 때만 모텔을 찾는다. 여전히 남학생 쪽에서 먼저 제안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학생들도 상대가 그런 제안을 할 것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상대가 아무리 원해도 실제 결정은 여성인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런데 당당함보다 부끄러움이 앞서던 과거에도 매번 모텔은 여성의 선택을 기다렸다. 모텔의 모양새 변화는 철저하게 여성의 취향을 따른다. 시대가 바뀌어도 꼿꼿이 서 있는 국도변의 오래된 러브호텔은 마치 중세 유럽의 궁전과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돔이 얹어져 있고 기둥이 있다. 마치 바로크식 건물과 같은 모양새가 건물의 외벽을 뒤덮고 있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의 모습을 한 러브호텔은 여성을 위해서 그런 모양으로 꾸며졌다. 왜 그럴까. 양상현 순천향대 교수(건축학)는 과거에 대중의 문화적 감성과 결부해 이를 설명했다. “대중의 문화적 감성은 신데렐라·백설공주 등으로 대표되는 동화적 이미지들에 의해 어릴 적부터 훈련되어 유럽의 성(城)들을 환상과 신비가 가득 차 있는 낭만적 공간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의 모텔은 모던하게 진화했다. 선택권을 가진 여성의 취향이 바뀌면서 바로크 양식의 궁전은 좀 더 날렵하고 심플한 현대식 건물로 탈바꿈했다. 부티크 모텔의 등장이다. 객실 안은 별 5개짜리 호텔보다 더 좋은 시설로 채워졌다. 인터넷과 게임을 할 수 있는 컴퓨터 두 대가 나란히 배치된 곳도 부지기수고, 대형 평면TV와 무료로 제공되는 영화를 리모컨 하나로 즐길 수 있다. ‘레드’ ‘블루’ ‘화이트’ 등 색깔이나 ‘교실’ ‘병원’ ‘오피스’ 등 장소를 테마로 삼는 객실도 있다. 최첨단 시설과 새로운 인테리어로 무장한 모텔이 늘었다는 건, 그만큼 이 시장이 치열하다는 것을 뜻한다. 젊은 이용자가 많기에 그들의 취향에 맞추려고 애쓰는 게 최근의 모텔이다.

운영 시스템도 진화하고 있다. 20대는 숙박보다 대실을 주로 이용한다. 괜찮은 시설의 모텔일 경우 대실에 드는 비용은 3만원이 넘지 않는다. ‘야놀자’와 같은 모텔 숙박 사이트는 회원에게할인을 제공하고 대실 시간도 연장해준다.

4시간이 표준 시간이었던 대실도 이제는 진화해 무한 대실 서비스가 생겼다. 보통 오전 9시에서 저녁 7시까지 머무를 수 있는데, 대실 가격과도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29세 직장인인 김 아무개씨는 올해 여름, 역삼동의 한 모텔 앞에서 토요일 아침부터 줄을 서봤다. “보통 무한 대실은 주중에만 하는데 거긴 주말에도 해요. 8시쯤 도착했는데 이미 꽤 많은 남자가 줄을 서 있더라고요. 거긴 늦으면 방이 없어요. 저도 도착하고서는 남자들의 행렬에 황당했죠.”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여기저기서 시간과 돈을 쓰느니 이게 안락하고 싸게 먹혀서다. “여름에는 에어컨 빵빵 틀어놓고 데굴거릴 수 있으니 모텔만 한 곳이 없죠.”

하나의 모텔 앞에 줄을 서 있는 젊은 남자들의 행렬. 이것은 PC와 스마트폰 등 새로운 디바이스가 안겨준 ‘버즈’(온라인 입소문)의 결과였다. 누군가가 입을 모아 모텔에 대해 품평회를 하기 시작하면서 모텔은 그늘에서 양지로 나오게 됐다. ‘야놀자’나 ‘여기 어때’와 같은 모텔 전문 사이트에는 후기(後記)가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온다. 좀 이름이 알려진 모텔에는 세 자릿수 이상의 후기가 붙는다. 별점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앞선 김 아무개씨는 “별점이 4개 아래인 것은 거들떠도 안 본다”고 말했다. 바이럴 마케팅의 핵심인 후기와 점수 매기기는 모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텔 자주 안 찾는 연인, ‘사랑 식은 증거’”

이런 모텔에 대한 젊은이들의 사랑은 좀처럼 식지 않을 것 같다. 엄청나게 강력하다. 젊은 청춘 커플에게 모텔은 사랑의 정도를 측정하는 하나의 척도가 됐다. 이안나 연구원은 논문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대학생들은 연인과 모텔을 찾는 빈도 수가 확연히 떨어지게 되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헤어질 때임을 직감한다고 한다. 예전처럼 모텔을 자주 찾지 않는 사실 그 자체를 ‘사랑이 식은 증거’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정도를 재려는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돼왔다. 이땅의 모든 것을 올스톱시킨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마저도 피끓는 청춘들을 꺾을 수 없었다. 이길원 모텔사랑 대표가 내렸던 메르스 때 모텔 불황기의 진단이다. “메르스로 숙박업소들이 크게 어려움을 겪을 때도 젊은 층을 주 고객으로 하는 곳은 여전히 매출을 유지했다. 약간의 매출감소는 있었지만, 유커(중국인 관광객)를 주 고객으로 맞이한 비즈니스 호텔과는 달리 관광숙박업의 침체를 이겨냈다.” 왜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방을 구할 수 없는지 이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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