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의 경영권 싸움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된다
  • 임수택 편집위원 (.)
  • 승인 2015.12.24 19:00
  • 호수 1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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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오쓰카 가구’ 경영권 빼앗긴 창업자 ‘다쿠미 오쓰카’ 설립하고 “회사 되찾겠다”

2015년 한 해, 한국에서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신격호 총괄회장과 두 아들 사이에 펼쳐진 경영권 다툼이 화제였다면, 일본에서도 기업의 경영권을 놓고 부녀간 분쟁이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았던 한 기업이 화제에 올랐다. 일본 가구의 명가 ‘오쓰카(大塚) 가구’의 창업자인 오쓰카 가쓰히사(大塚勝久·71) 전 회장과 장녀 오쓰카 구미코(大塚久美子·47)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아버지와 딸 사이에 펼쳐진 진흙탕 싸움이 연초부터 시작돼 연말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쓰카 가구는 2001년 12월 기준으로 영업이익이 75억 엔에 이를 정도로 일본의 대표적 가구기업으로 한때 각광받았으나, 이후 경영이 악화되면서 영업적자가 발생했다. 가쓰히사 회장과 이사회는 경영의 변화를 시도하는 차원에서 딸 구미코를 사장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가쓰히사는 자신의 독특한 마케팅 방식이나 경영 전략이 장녀에 의해 바뀌자 2014년 7월 이사회를 열어 딸을 해임시키고 자신이 다시 사장으로 복귀했다. 이에 딸은 일방적인 이사회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했다. 결국 지난 3월27일 주주총회에서 대주주인 브란데스 인베스트먼트 등 금융계 주주들은 창업자인 가쓰히사 대신에 딸 구미코의 손을 들어주었다. 구미코가 금융권 주주들을 움직여 다시 사장으로 복귀하고 아버지를 해임시킨 것이다. 이번에는 가쓰히사가 주총의 결정에 승복할 수 없다며 경영권 회복을 위한 투쟁을 선언했다.

오쓰카 가구의 경영권을 놓고 딸과 다툼을 벌이고 있는 창업자 오쓰카 가쓰히사 전 회장. 4월17일 일본 도쿄 신주쿠 쇼룸 개설식에서 오쓰카 구미코 오쓰카 가구 사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AP 연합

부녀간 다툼이 가족 전체 싸움으로 확대

아버지 가쓰히사 전 회장은 장녀 구미코가 이사로 있는 가족의 자산관리회사 ‘기쿄기획’에 15억 엔의 사채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하며 제2 라운드 진흙탕 싸움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소송전에 구미코의 어머니까지 법정에 출두하면서, 그동안 부녀간 싸움으로 전개되던 분쟁은 가족 전체의 싸움으로 확대되었다. 아버지·어머니·장남 대(對) 장녀·차남·차녀·삼녀의 3 대 4 구도로, 가족이 완전히 둘로 갈라진 것이다. 지난 3월 주총 때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며 딸을 몰아세우던 구미코의 어머니는 지난 10월19일 도쿄지방법원 법정에서 “애들이 아버지를 아버지로서 취급하지 않는다. 집에서도 그랬다”고 상기된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남편이 출입할 만한 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감시했다”고 장녀 구미코를 비난했다. 구미코의 어머니는 또 “여러 차례 가족끼리 만나서 해결하고자 연락을 취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연기하고, 연락해도 답장도 없었다”며, 장녀가 문제 해결에 대한 기본적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법정에서 모녀는 서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며, 딸은 아버지를 원고라 불렀다. 현재 경영권을 쥔 장녀 구미코 사장은 아버지의 법정 투쟁과 관계없이 독자적인 경영의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부녀간의 싸움으로 나빠진 여론과 고객들의 마음을 돌리고 2016년에 ‘새로운 오쓰카’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전국 모든 점포의 전 제품 약 34만점을 대상으로 50% 특별 세일을 11월17일부터 12월20일까지 실시하고 있다. 일단은 3월 주총에서 경영권을 맡은 이래 현재 매출이 양호한 편이다. 2015년도 6월 결산 실적이 이전의 1억 엔 적자에서 3억 엔 흑자로 돌아섰다. 부녀간의 싸움으로 인한 물의에 대해 고객에게 사과하는 차원에서 지난 4~5월에 걸쳐 실시한 대형 세일의 결과, 매출이 278억 엔에서 301억 엔으로 늘어났다.

일단 오쓰카 가구의 경영권은 딸 구미코에게 기울어진 분위기이다. 그러나 아버지 가쓰히사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은 채 제2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7월1일 도쿄도(東京都) 미나토(港)구에 자본금 3000만 엔의 ‘다쿠미 오쓰카’라는 새 회사를 설립했다. 다쿠미(巧み)는 ‘장인(匠人)’이라는 말이다. 장인정신이 살아 있는 창업자 자신만이 오쓰카 가구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가쓰히사 자신이 사장을 맡고, 자신을 지지해온 부인과 장남이 이사를 맡았다. 설립 목적은 가구·미술공예품·조명기구 등의 도·소매업으로, ‘제2의 오쓰카 가구’를 지향하고 있다. 딸이 차지한 오쓰카 가구를 반드시 이기겠다는, 그래서 다시 차지하겠다는 각오가 느껴진다.

아버지는 고급, 딸은 중·저가 브랜드 추구

또 한 가지의 변화는 가쓰히사 전 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주식의 매각이다. 가쓰히사는 오쓰카 가구의 주식 18.04%를 가지고 있는 대주주다. 95만주를 매각해 13.14%로 줄었지만, 제1주주 지위에는 변함이 없다. 이 자금은 새로운 회사 ‘다쿠미 오쓰카’의 운영을 위해 사용될 계획이다. 딸과 다시 한 번 일전을 벌이기 위한 군자금의 성격이다. 부녀의 회사 운영 및 마케팅 전략은 아주 다르다. 아버지 가쓰히사는 고급 브랜드화를 추구하고 모든 점포에 회원제를 도입해 매장에 오는 고객들과의 일대일 서비스 방식을 추구해왔다. 이 전략으로 오쓰카 가구에 대한 고객들의 충성도가 높아졌고 매장을 다시 찾는 고객들이 늘어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딸 구미코는 이 회원제가 경영 악화의 원인이었으며, 중·저가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미코 사장은 일단 주총에 의해 경영권을 차지했지만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다. 무엇보다 부녀간의 진흙탕 싸움으로 실추된 브랜드 이미지를 회복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단기간에 이익을 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주총에서 대주주인 금융계 주주들이 구미코의 손을 들어준 데는 단기간에 기업 가치를 올려 투자금을 환수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최근 일본인의 소비 성향도 관건이다. 고가 제품이라도 마음에 들면 가격에 관계없이 구입하는 경향과 일정한 정도의 품질에 싼 가격 제품을 선호하는 두 가지의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중·저가를 지향하는 구미코의 전략은 최근의 소비 패턴과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 박리다매를 추구하는 이케아 가구나 니토리 가구와 같은 저가 제품들과 경쟁해 살아남아야 한다. 이렇듯 구미코 사장이 극복해야 할 경영환경과 시장환경이 결코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역시 가장 곤혹스러운 부분은 부녀간·가족간의 법적 싸움,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새로 만든 ‘다쿠미 오쓰카’ 회사 제품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점이다. 진흙탕 싸움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로보고 있을, 가장 무서운 고객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을지가 역시 최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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