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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런’하고 싶다면 끊임없이 학습하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대처하는 해답은 ‘학습 민첩성’

김회권 기자 ㅣ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1.07(Thu) 16:43:12 | 13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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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4월 어느 날 열린 대통령배 고교야구 1회전. 경북고의 선발투수는 1회부터 흔들리며 위기를 맞았다. 한 번 지면 바로 탈락인 토너먼트인지라 감독은 곧장 투수를 교체했다. 등번호 1번의 키 179㎝ 고교 3학년. 큰 키에 선이 가느다란 이 좌완 에이스는 진흥고를 상대로 8.1이닝 동안 5안타 1실점만을 허용하며 인상적인 투구를 펼쳤다. 이 선수는 같은 해 삼성 라이온즈에 투수로 입단했지만 이내 타자로 역할을 바꾼다. 그리고 40세가 된 지금까지도 선수생활을 계속하면서 역대 최초 KBO리그 통산 400홈런을 기록하는 등 큰 족적을 남긴다. 이승엽 선수의 얘기다.

1995년 프로에 데뷔한 이승엽은 처음엔 리딩히터에 가까운 타격 폼을 지녔었다. 짧게 잡은 방망이, 배트 스피드로 컨택에 집중하는 똑딱이형 타격 자세였다. 1997년 장타형 타자로 변신할 것을 결심하고 배트를 길게 잡았지만 몸집이 작은 단점을 커버하려면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들고나온 것이 모든 힘을 극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외다리 타법이었다. 그리고 그해 불과 22세의 나이에 홈런왕을 차지했다.

성장과 도태 사이의 차이, ‘학습 민첩성’

성공한 외다리 타법으로 홈런왕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2002년 새 시즌을 앞두고 갑자기 타격 폼 수정을 선언했다. 2001년 39홈런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올렸지만 타율이 0.279였던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1990년대보다 투수들의 변화구가 날카로워지고 제구력이 향상된 것도 이유였다. 그래서 이승엽은 외다리 타법을 접어둔 채 대신 오픈스탠스에서 두 다리를 땅에 붙여둔 타격 자세로 바꿨다. 2002~03년 다시 3할대로 복귀했고 2003년에는 56홈런 신기록을 세우며 국민 거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국내에서 이룰 것을 다 이룬 다음 2004년 이승엽은 일본으로 진출했다. 56홈런을 치던 때와 똑같은 타격 폼으로 2004 시즌을 맞았지만 일본 투수들은 직구의 볼끝이 좋았고 세로로 떨어지는 포크볼, 체인지업을 가지고 있어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2005년에 접어들면서 이승엽은 큰 변화를 시도했다. 몸을 엄청나게 불렸다. 배트도 턱밑까지 내려 변화구 대처 능력을 향상시켰다. 타격 기술 변화에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힘까지 덧붙이자 1년 전에 넘어가지 않던 공들이 담장 밖으로 향했다. 2005~07년은 일본 무대에서 이승엽의 전성기였다.

선수생활을 오래할수록 좌절의 순간을 더 많이 겪게 된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갈 때 느껴지는 벽, 아마추어에서 프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때 받는 무자비함,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진출한 후 깨닫게 되는 상위 리그의 위압감 등이 그렇다. 이전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수준의 투쟁을 강요받을 때, 누군가는 성장하고 누군가는 도태된다. 그런 점에서 이승엽은 흥미롭다. 투수에서 타자로 변신했고, 매번 야구환경이 변할 때마다 자신의 폼을 연구하고 수정해가며 적응해 결과를 남겼다. 계속 성장하는 선수와 도태되는 선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여기서 ‘학습 민첩성’(Learning Agility)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다른 쪽으로 이유 돌리고 노력 잘 안 해”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일단 조직의 구성이 변했다. 젊은 층이 줄어들고 저성장 탓에 새로 뽑는 인원도 예전만 못하다. 그랬더니 조직이 늙어간다. 조직 내 40~50대 구성원 비중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반대로 일터는 젊고 빠르고 역동적으로 변한다. 하루하루 빠르게 변하는 사회(fast-paced society)가 압박감을 준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새로운 기기에 적응해야 되고 트렌드도 과거와 비교했을 때 변화하는 속도가 엄청 빠르다. 그런 탓에 직장인들의 위기감은 점점 커진다.

나이가 들면 그것대로 고민일 것이다. 아마 누구나 한 번쯤 내 나이에, 혹은 내가 나이를 먹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스스로 묻고 심각해진 경험은 있을 터. 예를 들어 과거형 위계질서 속에 중심이 됐던 40대의 경험은 가치가 높았지만 지식 진화의 속도가 가속화될수록 그 영향력은 줄어들고 오히려 낡은, 혹은 버려야 할 유산처럼 취급받게 된다. 반대로 아래에서는 최신 지식을 가진 젊은 사원들이 치고 올라온다. 그러다 보니 발맞춰 뭔가를 배워야 할 것 같고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버겁다.

이미 이런 분위기는 우리네 현실이기도 하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의 얘기다. “나이로 쌓인 노하우에 대한 대접은 예전과 비교하면 줄어들었다. 단순히 나이가 많은 게 미덕이 아니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이나 트렌드를 갖고 결과로 내놓을 수 있는 역량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데 과거에는 그런 식의 숙련 인력이 경력으로 쌓였지만 이제는 주니어 레벨에서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업무 영역별로 다르긴 하지만 ‘숙련도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하나의 기술에만 익숙한 사람에게 고연봉을 지급하는 게 점점 부담스러운 상황이 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요즘 기업들은 학습 민첩성이 뛰어난 사람을 원한다. 기술이나 트렌드는 변화도 빠르지만 예측도 안 된다. 어떤 기술이나 트렌드가 나올지 알 수가 없으니 그런 걸 빨리 알아서 습득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우리도 예측하지 못한다. 대신 빨리 쫓아가자”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을 뽑거나 중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이런 수요가 가장 강한 쪽은 마케팅 부서다. 마케팅 조직은 이미 젊어지고 있고 50세가 넘어서 마케팅 팀장이 되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다.

학습 민첩성의 중요도가 커지다 보니 사내 문화도 변화의 대상이다. 인적 자원 관리 컨설팅 전문 업체인 ‘머서코리아’의 구병철 팀장의 얘기다. “학습 민첩성이 주목받으면서 조직 내 집단지성 시스템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집단지성이란 건 데이터베이스도 중요하지만, ‘커넥트 앤 콜라보레이션’(연대와 협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 정책이 중요해졌다. 최근 짓는 오피스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든다. 잘나간다는 혁신 기업들의 내부를 보면 다 그런 식이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접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신기술을 다루는 포럼이나 컨퍼런스의 인기는 높은 편이다. 2015년 11월24일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SW마에스트로 100+ 컨퍼런스에 집중하는 참가자들의 모습. ⓒ 연합뉴스

‘혁신-실천-반성-위험’의 네 가지 행동

그런데 변화보다 더딘 현실은 꽤나 더딘 듯하다. 또 다른 인사 컨설팅 관계자는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기업 내부에서 인터뷰를 해보면 40대 중반 이상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하는 분위기다. 이들은 그동안 안정적으로 업무를 해온 계층이다. 이러이러해서 전문성 평가를 강화하겠다고 하면 ‘회사 내에서 누가 나를 평가할 수 있는가’ ‘직무 전문성 평가를 한다고 하는데 회사의 사업 전략은 명확한 것인가’ 하는 식으로 다른 쪽으로 이유를 돌린다. 노력을 잘 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회사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교육하고 장려하려고 하지만 구성원들은 시큰둥하니 결국 내리는 결론은 이렇게 된다. “교육 효과가 높지 않으니 사람을 뽑자.” 그래서 시도되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 학습 효과가 뛰어난 외부인을 데리고 와 리더로 앉히는 것이다. 문화 자체를 파괴해버리는 시도다. “그런 사례가 있느냐”고 물으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조직문화가 가장 보수적이라는 언론에서도 있지 않나. 이석우 카카오 전 대표가 중앙일보에 간 게 체질을 바꿔버리겠다는 대표적인 사례 아니겠나.”(구병철 팀장)

변화가 빨라지고 그래서 학습하지 못해 문제라면, 결국 해답도 학습이다. 학습 민첩성은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그 평가법을 알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기사가 단서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평가 도구로는 컬럼비아 교육대학과 CCL(Center for Creative Leadership)이 협력해 개발한 학습 민첩성 평가 인벤토리(Learning Agility Assessment Inventory)가 있다.

컬럼비아 교육대학 연구팀은 학습 민첩성이 있는 개인들을 ‘기존과 관련이 없는 새로운 기술·아이디어·관점들을 지속적으로 배우고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학습 민첩성을 기르는 데 긍정적인 네 가지 행동으로는 ‘혁신’ ‘실천’ ‘반성’ ‘위험’을, 장애 요소로는 ‘방어’를 제시했다.

‘혁신’은 현재의 상식에 의문을 품고 새롭고 독특한 방법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실천’의 단계에서는 낯선 도전과 극복 과정에서 냉정함을 익히며 적응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반성’을 통해 학습 민첩성이 뛰어난 사람을 보며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더 나은 방향으로 처리하게 된다. ‘위험’은 학습 민첩성이 좋은 사람들이 가지는 중요한 요소로, 새로운 영역을 시도하면서 생기는 리스크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방어적인 경향은 학습 민첩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리하면 새로운 걸 찾고 움직이며 반성하고 도전적으로 리스크를 떠안으며 학습하는 것이 빠르게 변하는 이 혼란한 시대에서 살아남는 법인 셈이다.

“자만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승자 될 수 있다”

학습 민첩성의 중요도가 높아질수록 지속적으로 전문성을 확보하거나 새로운 공부에 도전해보는 게 중요해진다. 하지만 대부분 ‘내 나이에는 이미 늦었다’라고 판단하고 있지 않을까. 이런 체념자들을 위한 자료가 있다. 2006년 시사주간지 타임은 하나의 연구 결과를 보도했는데 그 내용이 흥미롭다. ‘인간의 지식 업무 능력은 45세를 지나 60세까지 발전한다.’

또 다른 적은 ‘자만’이다. 박지원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지적은 그래서 새겨들을 만하다. “중년의 나이에 경계해야 할 적은 바로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자만이다. 이 함정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세상의 변화와 새로움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일깨운 이들이 최후의 승자들이다.”

다시 이승엽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2012년 일본에서 돌아와 국내에 복귀했지만, 2013년 최악의 성적으로 은퇴 압박까지 받는 상황에 놓였다. 그래서 그는 또다시 새로운 변화를 꾀했다. 방망이를 뒤로 눕히면서 타격 포인트를 최대한 뒤에 놓는 형태로 자세를 바꿨다. 힘을 덜 들이는 대신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출 수 있도록 유연하게 타격 자세를 변화시켰고, 그게 적중했다. 진화하는 현대 스포츠에서 끊임없이 학습하며 롱런하는 길을 보여준 그는 지금 이름값이 아닌 실력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좌절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극복하며 의도적으로 자신을 도전적인 상황으로 내몰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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