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 아래’보다 ‘저녁이 있는 삶’이 낫지 않을까”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6.01.20 21:53
  • 호수 137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지개떡 건축>으로 아파트의 대안 제시한 황두진 건축가

삶의 질은 ‘아름다운 풍경’보다 출퇴근 시간에서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2013년 서울연구원은 ‘대중교통 서비스 개선을 위한 서울시 출근통행의 질 평가’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출근 거리가 짧을수록 대중교통 행복지수가 높았다. 단거리(5㎞ 미만) 통근자의 행복지수가 73.9로 가장 높았고, 중거리(5~25㎞)는 71.6, 장거리(25㎞ 이상)는 70.1이었다. 출퇴근 시간 때문에 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밝힌 직장인도 많았다.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며 문화센터나 공원을 짓는다. 그것들이 직장인에게 얼마나 환영받겠나. 집에 가서 쉴 시간도 없는데. 어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든 하루에 출퇴근 시간이 30분에서 1시간까지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시간이 넘어갔을 때, 10년을 더하면 거의 학위 하나 딸 수 있는 시간을 길에서 보내는 셈이다.”

ⓒ 메디치미디어

이런 현실을 직시한 건축가 황두진씨가 <무지개떡 건축>을 펴내며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 도시에 해법이 될 만한 중요한 개념인 ‘밀도’ ‘복합’ 등을 앞세우며 시민들에게 정작 필요한 건축에 대해 설명한다.

“똑같은 떡을 여러 층으로 쌓아놓은 시루떡. 우리 주변에 있는 절대 다수의 건물이 이 부류에 들어간다.”

서울 건물들의 평균 층수는 2.5층에 불과해 밀도가 낮다. ‘시루떡 건축’이라도 밀도가 높았다면 전세 난민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무조건 고밀도로 모여 살게만 한 ‘시루떡 건축’이 문제”

“무조건 고밀도로 모여 살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밀도에도 질과 양의 문제가 있다. 단일 용도의 시루떡 건물들로 구성된, 즉 도시 기능들이 건물별, 혹은 지역 지구별로 나뉘어 있는 단순 고밀도 도시는 이런 문제에 대한 효과가 상대적으로 작다. 고밀도가 본격적으로 친환경적 요인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복합이라는 또 다른 개념과 결합해야 한다. 그래서 도시 기능들이 서로 섞이고 연결되었을 때, 특히 주거가 도시 한복판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높으면 높을수록, 비로소 질적으로 우수한 고밀도가 형성된다.”

황씨가 제안하는 건축은 5층 높이에, 층층의 기능이 달라 ‘무지개떡’을 닮았다. 1층에 상가, 그 위에는 주거공간이나 사무실, 옥상에는 마당을 얹은 수직의 마을이다. 지하실도 도시의 밀도에 기여한다. 이런 건축이 늘어나면, 도심 거주자가 늘어나 동네가 살아날 것이라고.

그런데 ‘시루떡’이라 해도 역사가 꽤 오래된 아파트, 변신을 거듭하면서 최고가 경신을 계속해온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많은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황씨는 그 아파트들이 군부대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하나의 건축 유형, 건축적 생각 측면에서 보면 한국 아파트는 197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에 훨씬 개념적으로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단지 내에 수영장이 있는 아파트도 있었다. ‘상가아파트’들도 꽤 많이 있었다. 낙원상가도 주거층으로 올라가면 가운데 엄청나게 큰 중정(中庭)이 딱 있고 벽면에 큰 부조가 있고, 아주 멋있다. 지금은 그런 걸 아무도 하지 않는다. 왜 그렇게 됐을까. 자기 집 안에서는 지금 형태가 최고이기 때문이다. 개별 유닛 안에서 아파트 환경의 질은 아주 높다. 그건 부인할 수 없다. 편리하고, 햇볕 잘 들고, 경치도 좋다. 그런데 그걸 모았을 때의 형태라는 것이 군대 병영과 뭐가 다른가. 사회적 가치가 없는 것이 아파트의 가장 큰 비극이다.”

그래서 황씨는 ‘아파트 단지’라는 개념을 완전히 해체하기도 한다. 물리적으로는 담장을 걷어내서 주변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게 해 주변 지역도 숨통이 트이게 한다는 식이다. 그리고 단지 내 통로를 모두 법적으로 보행자 도로화하면 아파트의 각 동 사이사이로 지금보다 많은 사람이 오갈 것이라는 얘기다.

“공공성 품은 건축은 도시를 살려”

“신축의 경우 통로가 아닌 도로로 인정받으면 도로 사선(斜線) 제한 때문에 인근 동의 높이에 영향을 줬는데, 이제 도로 사선 제한이 폐지되었으므로 앞으로는 이런 상상이 꽤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그 자리에는 상점·카페 등 일반적인 상업시설뿐 아니라 유치원·탁아소·도서관·세탁장·관리사무소 등 공공시설들이 들어갈 수 있다.”

아파트 1층에 상가가 들어서면 거리가 활기를 띤다는 설명이다. 무지개떡 건축에서는 저층 상가 위에 집이나 사무실이 여러 층 올라간다. 옥탑방은 가장 가치가 높은 옥상 마당으로 변신할 수 있다. 잉여 공간인 옥상에서 인근 산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여유를 누리기도 하고 이웃들과 소통할 수도 있는 것이다.

동네 건축가를 자임하는 황씨는 과거와 달리 눈이 오면 골목에서 눈을 함께 치울 이웃이 줄어든 것을 지켜보면서 미래의 마을은 어떤 것일까를 상상해왔다. 그는 “건축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공공성을 품은 건축은 도시를 살린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