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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독재자, 아버지 그늘 벗어나 홀로 선다

북한 전문가 10인 정밀 분석한 김정은式 통치술

이승욱·유지만 기자·이예원 인턴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1.27(Wed) 17:19:42 | 13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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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3대 권력 세습자 김정은 체제가 5년째를 맞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대중 앞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10년 9월28일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였다. 당시 당 대표자회 행사장에 나타난 김 위원장은 바짝 깎아 올린 머리 모양에 듬직한 풍채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외모는 마치 조부인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듯했다. 하지만 갓 20대 중반을 넘어선 앳된 흔적을모두 지울 수는 없었다. 공식 행사에 처음 등장한 탓인지 그 역시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북한 최고 권력자인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유로움과는 달리 김정은의 첫 등장은 그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본격적인 등장은 2012년 12월이었다. 김 위원장의 아버지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김 위원장이 권력의 중심으로 자리 이동을 했다. 어린 김정은의 등장에 전 세계의 불안감은 커졌다. 북한 체제의 붕괴를 예견하는 섣부른 진단도 나왔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는 여전히 건재하다. 지난 1월6일 중국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추가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맞섰을 정도다.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과 군부 실권자들을 연이어 제거하는 등 피비린내 나는 공포 정치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집권 5년째를 맞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통치 스타일을 북한 전문가 10인에게 들어봤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 체제가 여전히 불안해 보이지만, 비교적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자유시장경제체제 도입 등 경제정책 분야에서의 성과도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6자회담 무산과 연이은 핵실험 강행 등으로 인한 대중·대미 등 대외 정책은 낙제점 수준이라는 평가와 함께 김 위원장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꼽았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4년 김일성·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정은 체제 평가: 체제 안정화 성과 보여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김정은이 3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도 집권 5년 차를 맞고 있다는 건 비교적 안정적인 지도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김정은 체제는 상당히 젊은 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짧은 시기에 권력체제를 구축한 것”이라면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체제 유지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시대는 기본적으로 3대 세습의 유일 체제라는 시스템에 의해 권력을 장악한 것”이라면서 “하지만 앞으로는 유일 체제라는 시스템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만들어가야 하는 시기”라고 분석했다.

반면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김정은이 북한 권력을 모두 장악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점은 핵실험을 보면 알 수 있다”면서 “오는 5월 36년 만에 열리는 7차 당 대회는 김정은 체제의 완성을 의미한다. 경제정책을 우선 정책으로 내놓을 공산이 큰데 핵실험을 한 것은 그만큼 권력 안정화가 된 게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권력 안정화는 겉으로 보이는 것일 뿐 김정은을 조종하는 배후 세력이 있을 수 있다”면서 “장성택 이후 처형당한 사람들을 보면 김정은에 도전한 사람이 아닌 신진 세력인데 이들이 숙청된 것을 보면 누군가 김정은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2014년 평양체육관에서 전(前) 미국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과 대화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경제정책: 장마당 활성화 등 실용주의 노선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은 상당히 실용주의적 리더십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북한 주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시장 활성화였는데 집권 이후 장마당의 규제를 대폭 풀어줬다”고 말했다. 정 실장에 따르면, 김정은은 과거 장마당 활동을 할 수 있는 상인을 여성의 경우 나이 50세로 제한하던 것을 아예 전면 허용하는 쪽으로 전환했다.또 장마당 개장 시간도 집권 초기 오후 4시간 정도였지만 지금은 8시간으로 늘렸다. 이를 통해 장마당의 규모도 확대되고 장마당의 품목도 다양해졌다고 한다.

진희관 인제대 교수는 “북한은 지금 장마당이 늘어나고 상거래도 활성화되고 있다”면서 “김정은의 가치는 통제에 있기보다는 인민생활 향상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오는 5월 열리는 7차 당 대회도 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정책에서 기본적으로 김일성 시절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해나가는 통치 방식이 엿보인다”면서 “집단주의적 경쟁을 부추겨서 지금까지 활성화하지 못했던 공장이나 조직을 재가동하는 식으로 집단적 경쟁을 통해 생산을 유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김정은식 경제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근본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한 정도는 아니지만 먹는 문제가 조금 나아지고 경제활력이 조금 생겨난 것은 맞다”면서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 단계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영종 중앙일보 기자는 “경제 부문에서 김정은은 일단 진단은 하는 것 같은데, 처방은 하지 못하는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스위스 조기 유학 시절부터 봐왔던 서방 선진국의 기반과 북한 체제의 현재 수준 간에 눈높이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부 정치 : 숙청 정치, 권력 장악력 키워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이 2015년 해군부대 산하 함선 수리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정은 집권 후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 처형 등 숙청 정치가 이어지면서 공포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전문가들은 숙청 정치가 과도기적인 차원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희관 인제대 교수는 “공포 정치나 숙청 정치를 이야기하는 이가 많지만 실제 그것이 존재하는지는 의문”이라면서 “실제 주석단이나 최고인민위원회 등 파워엘리트의 변동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군부의 경우에도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 등의 평균 임기가 1년을 넘는다”면서 “다만 분석을 토대로 보면 군부를 통치하는 수단으로 인사권을 적절히 활용하는 수준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김정은식 공포 정치는 레닌과 스탈린 시대부터 김일성, 김정일을 이어 현재까지 내려온 것”이라면서 “하지만 김정은 집권 후 처형된 당 간부들은 김정일 시대보다 적다는 통계가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 발표 자료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후 3년 동안 처형된 핵심 간부는 70명 정도다. 이는 과거 김정일 집권 시대에 비하면 3.5%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정 실장은 지적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3대 세습 체제의 정당성이 취약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공포 정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북한 내부에서 권력 약화 징후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지만 단기적으로만 본다면 김정은 체제의 권력은 상당히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북한 내부적으로 보면 장성택 숙청 시점에 이미 김정은의 권력 체제는 안착됐다고 봐야 한다”면서 “북한 체제의 갑작스러운 변동이 있을 수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이영종 중앙일보 기자는 “김정은이 집권초기부터 자기의 후견인을 숙청하고 고모부까지 사형시키고, 현영철 등 군부에도 겁을 줬다”면서 “공포 정치라는 게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지속되면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권력 안정을 해칠 수 있는 공포 정치는 차츰 수위를 조절할 것”이라면서 “그 예로 숙청됐다고 알려진 최룡해가 다시 권력 주변으로 돌아온 것을 들 수 있다”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김정일 사후 김정은 시대가 개막했지만 지난 4년간은 그 정비의 과정이었다”면서 “주로 권력 상층부 중심으로 권력에 도전하거나 태만한 사람들을 숙청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자기 시대에 맞는 권력 엘리트층으로 정비를 가속화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교정책 : 핵실험으로 헝클어진 대외 관계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식 통치 분야 중 가장 낙제점을 받아야 할 부문으로 외교정책을 꼽았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4차 핵실험은 외부에서 제재와 압력으로 일관하니까 관계 향상이 힘들 것이라는 판단 아래 강경책으로 선회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일단 추가 제재 결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북한이 평화협정을 원해도 당분간 긴장 국면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4차 핵실험은 대외 관계를 중국에 의존하는 기존 상황에서 다변화를 꾀하려는 시도는 했지만 결국 국제사회와의 화해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결과”라면서 “김정은이 판단했을 때 대외 관계 개선보다는 국내 정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말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4차 핵실험으로 중국과는 갈등을 빚고 있지만 김정은으로서는 핵 보유 이후에 시간의 문제이지 자연스럽게 관계 개선을 이룰 수 있다고 봤을 것”이라면서 “외교 관계 성과는 적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외교적인 측면은 다 막혀 있는 상태로 전통적으로 중시했던 북·중 관계 자체가 돌파구를 만들고도 핵 때문에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은 양상”이라면서 “대미 관계 등 외교의 출구가 보이지 않다 보니 핵실험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김정은의 가장 큰 숙제는 중국과 다시 만나는 것”이라면서 “그런데 2013년 2월 핵실험 당시는 중국의 시진핑 정권이 출범하기 한 달 전이었고 이로 인해 시진핑 주석에게 상당히 안 좋은 인상을 남겨 북·중 관계가 꼬였다”고 말했다.

박승준 인천대 초빙교수는 “경제가 개방적으로 상당히 빨리 진행되고 있지만 핵이 문제”라면서 “핵과 경제를 병행하는 이른바 병진 노선에는 자기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핵을 가지고 있으면 대외관계가 악화돼 경제 개방이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외교적으로 김정은은 낙제점을 면하기 어려운 형편”이라면서 “집권 기간 4년 동안 어느 국가와도 제대로 된 정상회담을 한 적이 없고 러시아도, 중국도 방문하지 않았다”면서 “김정은이 다른 분야보다 취약한 것은 외교 분야”라고 평가했다.


북한 전문가 10인 명단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박승준 인천대 초빙교수,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같은 듯 다른’ 북한의 3代 권력자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통치 스타일이 조부인 김일성, 부친인 김정일과 일정 부분 닮았지만 차이점이 더 많다고 분석했다. 이는 김정은이 스위스 등 유럽에서 조기 유학을 했다는 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오는 5월 예정인 7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김정은 고유의 통치 스타일이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진희관 인제대 교수는 “김정은이 미국 농구선수 로드먼을 초청하고 모란봉악단 공연 때 미국을 상징하는 월트디즈니의 음악을 공연하는 것은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놀라운 광경”이라면서 “최근 평양 거리에 파스타나 피자 음식점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등은 과거 그의 유럽 유학 시절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일 시대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김정일은 핵개발이나 로켓 개발 현장을 일일이 챙기지 않았지만 통치 기반이 아직 약한 탓이지 몰라도 그만큼 현장을 보려고 노력하는 부분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장 배경이 다르다고 해서 김정은의 통치 스타일이 선대(先代)들과 달리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영종 중앙일보 기자는 “김정은이 어린 시절부터 서방 문물을 접하면서 학습한 것과 김정은의 통치 행보와는 거리가 멀다”면서 “북한 체제는 한 개인의 퍼스낼리티로 통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과거 체제의 유산과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 독재 통치 등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런 구조에서 김정은이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이 어린 지도자라는 평가를 넘어서려면 조부인 김일성의 카리스마를 차용할 필요가 있었다”면서 “집권 5년 차로 접어드는 지금부터는 김정은의 홀로서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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