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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

친구 만난다며 나갔다가 하루 만에 시신으로 발견‘복수할 거야’ 일기장에 자신 따돌린 친구들 원망

서종한 프로파일러 (사이몬프레이저대학 정신건강법 ㅣ . | 승인 2016.02.18(Thu) 17:05:52 | 13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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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30일 추운 겨울 아침, 고등학교 1학년이던 미영이는 친구 진희를 만난다며 집을 나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미영의 아버지는 그날 밤에 속초경찰서를 찾아가 미귀가자 신고를 했다. 다음 날 해가 다 밝아서야 인근 몽돌 해안가에서 낚시를 하던 낚시꾼이 바다에 떠 있던 미영의 시신을 발견하고 지구대로 신고했다.

검시관과 과학수사 요원이 범죄와의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 시신을 감식했다. 사망자는 키 155㎝에 몸무게는 40㎏ 정도의 아담한 체격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입었던 노란색 외투와 검은색 타이즈, 하늘색 치마는 외관상 그대로였다. 속옷이 벗겨지거나 음부에 이상한 흔적이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왼손에는 가죽 시계를, 왼쪽 새끼손가락에는 커플링처럼 보이는 은색 반지를 끼고 있었다. 여느 여학생들처럼 귀에는 반짝이는 금색 꽃무늬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 일러스트 임성구

소지품은 없어진 것 없이 그대로였다. 전체적으로 특이한 외상도 눈에 띄지 않았다. 머리와 어깨 부분에 타박상이 있었지만 심하게 긁히거나 피가 날 정도의 찰과상은 보이지 않았다. 성폭행의 흔적이나 누군가의 위계(僞計)에 의한 상처나 방어흔은 시신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부검 결과 사인은 질식사로 밝혀졌다. 높지 않은 곳에서 뛰어내린 후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고 물속에서 호흡을 하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으로 판단됐다.

미영이는 부모님과 자주 찾던 바닷가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버스가 다니지 않아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갔다. CCTV에 미영이가 뛰어내리는 장면이 잡혔다. 미영이는 한참 동안 먼 바다를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는 바다를 향해 화가 난 듯 소리를 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영이의 모습은 펜스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심리부검으로 사망 종류와 원인 찾아내

청소년 자살 사건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심리부검을 진행한다. 청소년 자살의 원인은 우울증 등 정신과적 문제, 성적 비관이나 입시 실패, 이성 문제, 동성애 등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와 관련돼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친(양)부모나 주변인의 성적(性的) 학대,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 사이버상에서의 괴롭힘, 폭력 서클에 의한 학대 등으로 자살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사망의 종류를 정확하게 밝히는 데 심리부검이 중요한 분석 기법이 되고 있다.

필자는 부검과 과학수사 감식이 끝난 후 형사 수사와는 별도로 심리적 원인에 초점을 두고 미영이의 죽음을 조사했다. 미영이의 사망이 자살인지 아닌지, 만약 자살이라면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외부의 위계적인 요인이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그 시작점은 미영이가 뛰어내린 현장에서 출발해 점차 먼 과거로 회귀한다. 심리부검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부검 결과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사망자에게 자살에 이를 만한 충분한 의도, 즉 ‘자살 의지가 있었느냐’ 하는 부분을 검증한다. 그리고 만일 자살이라면 사망자가 죽을 때 느낄 수 있는 고통을 견딜 만큼 심리적 내성치(耐性値)와 생존 본능을 거스르는 충동성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안내 역할을 한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자살과 타살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데 주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심리부검에는 크게 종단적인 방법과 횡단적인 방법이 함께 이루어진다. 종단적인 방법은 사망자가 죽기 직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살과 직접적으로 연관 있는 원인과 촉발 사건 등을 찾아보는 셈이다. 횡단적인 방법은 좀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사망 이전에 사망자에게 일어났던 다양한 생애 사건들로 무엇이 있는지 일대기를 따라 자살 경로를 탐색하는 방식이다.

미영이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영이는 죽기 직전에 아주 친하게 지내온 10년 지기 친구 진희와 심한 다툼을 했다. 당시 진희는 미영이에게 남은 마지막 친구였다. 그날 누군가가 미영이가 진희의 남자친구를 꼬신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고, 진희는 순간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진희는 미영이를 만난 그날 뺨을 때리며 욕설을 퍼부었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말을 하고 헤어졌다.

미영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부터 사교적이지 못해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오랜 친구 진희 말고는 같은 반 친구가 없었다. 직설적인 말투와 방어적인 태도 때문에 농담으로 한 말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충동적으로 화를 냈다. 특히 피부나 외모와 관련된 농담에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였다. 같은 반 친구들과 심하게 말싸움을 하는 경우도 잦았다. 그런 미영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반 친구 몇 명이 미영이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미영이가 없는 곳에서는 여지없이 험담을 했고, “여러 남자와 사귄다” 혹은 “술집을 다니고 있다” 등 좋지 않은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 반 친구들 모두가 가입해 있는 온라인 카페에 수시로 올렸다. 미영이는 점차 친구들로부터 심한 따돌림을 받기 시작했다. 반 친구 중 아무도 미영이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다. 공공의 적이 되어 1년여를 벙어리와 귀머거리인 채로 학교생활을 했던 것이다.

미영이의 일기장에는 ‘친구들은 내가 없으면 나에 대해 수군거린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난 늘 혼자였으니깐, 왜 나를 괴롭히는 걸까? 왜 나에게 상처를 주는 걸까? 못된 인간들, 복수하고 말 거야!’라고 적혀 있었다.

일기장에 죽음 관련 단어 수차례 등장

심리부검은 흔히 사망자가 주변에 남긴 것들, 그와 알고 지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에 대한 정보,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사망자를 알고 지내온 가까운 사람의 신뢰성 있는 이야기 등을 통해 사망자가 죽음과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고 또 어떤 관심을 보였는지를 찾아낸다. 더 나아가, 자살과 관련지을 수 있는 직간접적 단서, 이런 위험 요인들이 상호 작용해 필요충분하게 삶의 경로가 죽음의 문턱에 이를 만한 수준인지 꼼꼼하게 판단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자살 의도(suicide intention)와 사망 방식의 치명성(lethality) 간 적절성을 살펴봐야 한다.

미영이의 경우 직접적인 촉발 사건은 진희와의 결별이었다. 물론 그 전에 지속적인 따돌림이 있었지만 진희와의 절교가 방아쇠 역할을 한 셈이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그녀에 대한 모욕적인 댓글과 소문이 올라오는 상황이었고, 진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도 자신을 비방하는 댓글을 읽었다.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는 친구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진희로부터 버림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미영이에게는 존재의 이유를 완전히 상실하는 것과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자살에 대한 친근성(근접성)이 있었느냐의 문제다.

미영이는 어렸을 때부터 지녀온 아토피성 피부염증 때문에 오랜 기간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이런 이유로 누군가가 피부나 외모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면 신경이 곤두섰다. 가려움증이 심할 때면 집중력을 잃고 우울증을 보여 정신과 치료를 받고 한동안 약물을 복용했다. 고등학교 진학 후부터는 아토피와 편집증이 더 심해졌다. 그런 자신이 싫었고 친구도 미웠다. 정신과 전문의는 미영이의 상태에 대해 “만성적으로 신경성 두통(고통의 무감각화)을 보여왔고 악몽, 수면장애, 신체적 혹은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갇혀진 무기력감이 늘 뒤따랐다”고 전한다. 

왕따 문제를 다룬 영화 <우아한 거짓말>의 한 장면.


한 소녀의 죽음, 뭘 말하고 있나

자신에 대한 효능감에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학업 성적이 떨어졌을 뿐 아니라 좋아했던 조각도 그만뒀다. 가려움증과 우울증 때문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조각을 좋아했던 자신을 위해 뒷바라지한 부모님에게 실망을 안겨드린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함께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짐이 된다고 의식했다. 가족에게조차 자신을 멀리 두고 혼자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미영이가 남겨놓은 한 권의 빨간색 일기장에는 이미 죽음과 관련된 단어들이 수차례 등장했다. 자기 자신을 ‘죽어도 싸다’는 등으로 비하하는 단어들, ‘죽어도 현희와 진선이를 용서하지 않을 거다’ 같은 반 친구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신을 위해 희생한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하나같이 절망과 암울한 미래를 나타내는 무망감(無望感)을 표현한 내용들이다. 마지막으로 치명성과 관련 있는 자살 시도력을 살펴보면, 이전에 아토피가 심해지자 죽기 위해 자신이 사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문을 잠그고 내려오지 않은 일도 있었다.

미영이가 맞닥뜨린 현실이 과연 그녀만의 것인가. 결코 아니다. 미영이 또래들이 자살을 하게 되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친구와의 갑작스러운 단절, 이것에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상실감 그리고 처절한 고독에서 마지막 남은 세상의 끈을 놓은 것이다. 이미 더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이 늘 가슴을 눌러왔다. 더 이상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라는 내면의 외침이 자신을 사선(死線)으로 내몰았다. 이런 생각들은 나이 어린 청소년일수록 굉장히 파국적이면서도 지속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세계에 파고들고, 끝내는 마지막 남은 작은 희망과 삶의 의미마저 잠식해버린다.

그래서 일단 자살을 결심하게 되면 성인의 경우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청소년들에게서만 보이는 공통적인 자살 메커니즘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고리점을 찾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빨리 끊어줘야 한다. 왜냐하면 청소년 자살은 성인의 그것과는 달라서 자살을 잇는 연결점을 찾아 빠르게 개입하면 10명 중 8명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는다. 소중하고 귀한 생명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가슴 저리는 현실이 더 이상 지속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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