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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과학적 근거 찾았다”

한의학 이론의 바탕 <상한론>의 오역본 바로잡은 한의학 박사 노영범 원장

노진섭 기자 ㅣ no@sisapress.com | 승인 2016.03.03(Thu) 18:16:54 | 13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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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무개씨(45·여)는 사춘기 딸과 고3 수험생 아들을 키우면서 스트레스와 불면증에 시달렸다.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약을 처방받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어느 날 몸에 열기가 오르면서 동시에 떨렸다. 호흡이 힘들고 어지러운 증상도 나타났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날엔 두드러기도 생겼다. 집 근처 한의원에서는 자율신경 실조증이라고 했다. 자율신경(교감·부교감 신경)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두 달 동안 한약을 먹었지만 증세는 사라지지 않았다. ‘노영범부천한의원’의 노영범 원장에 따르면, 이 환자는 우울증에 공황장애가 겹친 상태다. 이 환자는 노 원장의 처방을 받은 지 2개월 만에 두드러기가 사라지고 불안함과 우울함도 상당 부분 완화됐다.

 

 

“진료 때 맥 짚지 않고 환자와 대화를 나눈다”


노 원장의 진단과 처방 근거는 <상한론(傷寒論)>에 있다. <상한론>은 고대 중국의 의학이론서로 한의학의 바탕을 이룬다. 후한 시대(AD 200년) 장중경(張仲景) 등 의술인들이 저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의 증상에 따라 특정 음식과 약초를 배합한 약을 처방한 일종의 임상기록이다. “이 책은 단편적인 치료 메모가 아니라 증상마다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동안 관찰한 기록이다. 증상을 크게 6가지 패턴으로 묶었는데 그 안에는 398개 항목에 따라 217개 처방이 있다. 실제로 환자를 치료하다 보니 외과적 질병을 제외한 내과적 질병은 <상한론>이 기록해놓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은 여러 의료기기에 의존하다 보니 기계가 포착하지 못한 병은 의사도 알지 못한다. 환자는 아프다는데 병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는 이유다. 의료기기가 없었던 그 옛날에는 사람과 증세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그리고 그 증상의 원인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그것을 기록한 책이 <상한론>이다.”

 

ⓒ 시사저널 고성준

1065년 송나라 시대에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상한론>을 비롯한 모든 책이 활자본으로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상한론>에 기록된 고대 문자를 잘못 번역해 원본의 내용을 그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게 노 원장의 주장이다. 오역된 <상한론>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전쟁을 겪는 동안 <상한론> 원본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약 900년이 흐른 1930년대 일본에서 <상한론 강평본(康平本)>이 발견됐다. 원서를 수기로 옮긴 것으로 원본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책이다. 약 10년 전 이 <상한론 강평본>을 접한 노 원장은 그때까지 자신이 공부해온 <상한론>(송나라 시대 인쇄본)과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고대 중국어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상한론>을 제대로 번역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노영범 원장은 3년 전 김경일 상명대 중국어문학과 교수를 찾았다. 김 교수는 1999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낸 저자로 고대 중국어 전문가로 통한다. “약 2000년 전 고대 중국인이 사용한 한자의 의미는 지금과 달랐다. 우연히 김경일 교수가 쓴 <갑골문 이야기>라는 책을 접했다. 김 교수는 국내 최초의 갑골학 박사로 갑골문자 해석의 최고 권위자다. 고대 문자로 쓰인 <상한론> 원본을 해석할 전문가로 그만 한 사람이 없다.”

 

김 교수의 도움으로 <상한론>을 번역해보니 예상했던 대로 송나라 시대의 활자본은 원본을 오역한 부분이 많았다. 책 제목의 해석부터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상한(傷寒)은 송나라 시대에 ‘추위에 상하다’로 번역했고, 그 후 1000년 동안 그렇게 고착됐다. 추위에 몸이 상하는 것이므로 감기나 전염병에 대한 책으로 오해했다. 이번에 <상한론> 고대 문자를 번역해보니 상(傷)은 사람 인(人)과 또 하나의 사람 인(人)의 짧은 변형 꼴, 그리고 양지를 의미하는 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의 고대 문자는 태양이 제단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그린 것이고 빛 또는 볕이라는 의미다. 저자 장중경이 병세를 뜻하는 여러 글자 중에 이 글자를 택한 이유는 인체의 체온을 유지하는 따뜻한 기운, 즉 체온과 관계된 증상을 말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상한이란 체온을 유지하는 따뜻한 기운의 불균형으로 인해 외부 환경 중 차가운 기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증세를 총괄하는 의미다.”

 

한마디로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면역기능을 높이는 방법을 담은 책이라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상한론> 내용과 다른 점을 발견한 노 원장은 자신의 치료법에도 변화를 줬다. 단순히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증상이 발생한 원인을 찾는 쪽으로 바꿨다. “한의대에서 <상한론>을 공부할 때 진맥을 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원본에 따르면 맥을 본다는 것은 관찰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나는 진료할 때 맥을 짚지 않는다. 대신 한 시간 동안 환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기운을 살핀다. 기운이 지나치거나 가라앉은 이유를 찾는 것이다. 한번은 어깨가 아파서 온 환자의 일과를 살펴보니 그는 대형 할인점에서 캐시어로 일했는데, 금전등록기가 뒤편에 있어서 팔을 뒤로 계속 움직이는 동작을 반복해서 어깨에 통증이 생긴 것이었다. 맥현(脈弦), 즉 활을 쏘는 동작에서 병이 온 것이어서 그에 맞는 탕을 처방해서 완치했다.”

 

 

“고치기 힘든 신경정신과 질환 치료에 집중”


그의 전문 분야는 공황장애·우울증·정신분열증·틱장애 등 신경정신과 질환이다. “약 300건의 공황장애를 재발 없이 완치했고 관련 논문도 발표했다. 다른 질환도 거의 완치에 가깝게 된다. 예컨대 공황장애라는 말은 고대 중국에 없었을 뿐이지 증세는 있었다. 갑자기 명치가 막혀 소화가 안 되거나, 기운이 우울하고 숨이 막히거나, 앉으나 서나 어지럽고 긴장된다. 이런 증상은 <상한론>에 분돈(奔豚)이라고 기록돼 있다. 직역하면 ‘미쳐서 날뛰는 돼지’라는 뜻이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공황장애 환자의 증상과 유사하다. 섬어(?語)라는 말도 있다.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나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는 환청이다. 많은 현대인이 고통을 받는 조현병(調絃病·정신분열증) 증상인 환청·망상과 증세가 유사하다. 이런 경우 <상한론>의 처방대로 하면 공황장애와 조현병 증상이 치유되는 사례가 많다.”

 

한의학의 취약점은 과학적 근거다. 오랜 기간 임상 경험은 있지만 의학적으로 어떤 기전(機轉)으로 환자의 병을 고치는지가 모호하다는 게 서양의학이 보는 한의학의 모습이다. “<상한론>에 기록된 처방은 향미(香味) 치료다. 당시 음식이나 약초를 잘 배합해서 처방한 것인데 나의 30년 임상 경험으로는 그 처방 음식이나 약초의 향미가 뇌에 영향을 주어 몸이 회복되는 게 아닌가 한다.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었지만 <상한론>이 발견된 만큼 과학적 입증이 가능하다고 본다. <상한론> 연구를 위해 한의사들이 모인 ‘대한상한금궤의학회’ 차원에서 한의학의 과학적 근거를 증명해 보일 계획이다.”

 

노영범 원장은 누구? 


1958년 경남 진해 출생. 1985년 원광대 한의학과 졸업. 1986년 노영범부천한의원 개원. 1992년 원광대 한의과대학원 방제학 박사. 2002년 ‘올해의 한의사’(보건복지부 장관상). 2006년 대한상한금궤의학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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