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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서비스의 거인’ 한국에서도 통할까

첫째도 콘텐츠, 둘째도 콘텐츠…국내 진출 한 달 지난 ‘넷플릭스’가 던진 메시지

김회권 기자 ㅣ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3.03(Thu) 18:38:20 | 13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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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두길 잘했다.” 플레이스테이션4를 말함이다. 지지난해에 이 콘솔 게임기가 생겼을 때, 두어 달은 열심히 가지고 놀았더랬다. 그리고는 곧 심드렁해졌다. 검은색 게임기 위에는 하얗게 먼지가 앉았다. 나름 트렌디하게 생긴 이 물건은 이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가구처럼 거실 TV 아래 방치돼 있었다. 선을 한번 뽑아버린 후 TV와 연결조차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기자의 아내는 게임기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하지도 않을 거면 중고나라에 팔아버리겠다”며 매번 협박을 일삼았다.

 

이런 애물단지를 약 1년 만에 거실 TV와 연결했다. 게임 때문이 아니었다. ‘넷플릭스(Netflix)’의 힘이었다. 삼성 스마트TV만 놓고 보면 UHD 모델에는 2014년, HD 모델에는 2015년 이후부터 넷플릭스 앱이 탑재됐다. TV가 이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 탓에 플레이스테이션을 이용하기로 했다.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에 접속해 ‘넷플릭스 앱’을 다운로드하면 스트리밍으로 미드(미국 드라마)도 영화도 TV로 볼 수 있었다. 이제 스마트폰으로 보며 침침한 눈을 비빌 필요도 없었고, 아이패드로 보며 아픈 팔을 부여잡을 일도 없어졌다. 플레이스테이션4의 은혜로 소파에 누워 75인치 TV에서 풀HD 시청이 가능해져서다.

 

케이블 선을 자른다는 ‘코드 커팅(cord-cutting)’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의미 있는 미디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 dpa연합

로그인을 하고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마르코폴로 시즌1>을 클릭하니 방금 전 아이패드에서 보다가 멈춘 지점부터 다시 재생을 시작했다. 어떤 디바이스든 사용자의 이전 기록을 저장해놓는 게 넷플릭스다. 시즌1 10편을 만드는 데 9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이다.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투입해 만들었다. 스케일이 이 정도로 크다. 다운로드한 파일을 돌리는 게 아니라 스트리밍으로 재생하는데도 75인치 화면에서 선명하게 HD 화질로 보인다. 등장인물의 머리카락 한 올, 그들의 땀구멍까지 보일 정도로 선명하다.

 

대형 TV의 HD 화질로 보는 스트리밍 기술


넷플릭스가 대단하다는 건 익히 들어왔던 일이다. 그래서 넷플릭스의 서비스를 먼저 시작한 일본에서는 ‘동영상 서비스의 거인’이라고 불렀다. 2015년 미국 내에서 주가가 급성장한 ‘FANG’ 그룹이 있었는데, 여기서 N이 넷플릭스다. 지난 한 해 동안 주가가 140%나 올랐다. 시가총액만 약 50조원에 달한다. 나머지 FAG는 페이스북과 아마존, 구글의 머리글자다. 어깨를 나란히 한 기업들의 이름만 봐도 넷플릭스의 위상이 느껴진다.

 

1월6일 ‘국제가전박람회(CES) 2016’에 등장한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 CEO(최고경영자)가 전 세계에 공격적으로 진출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한국도 서비스 대상국이 됐고, 다음 날 새벽부터 넷플릭스 한국판은 서비스를 개시했다. 관심은 그 영향력에 쏠렸다. 2007년 동영상 스트리밍 사업을 시작한 넷플릭스는 현재 190여 국가에서 유료 가입자 7000만명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거인이 한국에 상륙해 영상산업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초기 반응은 이랬다. “생각보다 볼 게 없는데?” 한국판에는 작품 수가 적다. 넷플릭스는 국가별로 볼 수 있는 콘텐츠 수가 다르다. 2월26일을 기준으로 미국에서는 4508개의 영화, 1121개의 TV 시리즈를 볼 수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636개의 영화와 502개의 TV 시리즈만 볼 수 있다. “아마 자막 작업을 하느라 업로드가 늦은 것 아닐까요”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이 끝나면 올라오겠죠”라는 넷플릭스 유저들의 예상과는 달리, 실제 국내에서의 적은 작품 수는 판권과 연결돼 있다. 넷플릭스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2013년 그들이 자체 제작한 <하우스 오브 카드>다. 데이빗 핀처라는 거장이 연출을 맡고 케빈 스페이시가 주연을 맡은 이 정치 드라마는 그해 ‘드라마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에미상 9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감독·촬영·캐스팅에서 3관왕이 됐다. 초반에 이 드라마는 한국에서 볼 수 없었다. 이미 지난해 9월 상륙한 일본에서도 초반에 등장하지 않았다. 당시 전 세계에서 방영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서였다.

 

‘원본 콘텐츠’ 강조하는 넷플릭스만의 전략


치밀한 그들만의 시장 판단도 한몫한다. 넷플릭스에는 넷플릭스만의 비용 구조가 있는 법이다. 조영신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서비스를 할 경우 개별 국가의 유통 작품 수가 같아야 될 것 같지만 넷플릭스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비싼 글로벌 판권을 지불해서 전 세계적으로 그만큼 가입자를 모으지 못한다면 손해다. 그쪽에서는 그런 계산을 한다”고 설명했다.

 

긍정적인 ‘한 달’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지금 넷플릭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미드를 좋아하는 얼리어답터 축에 드는 사람들이다. 국내 가입자 대다수가 케이블과 유선, IPTV 등 유료방송을 이용하는 상황에서 넷플릭스가 추가로 내놓는 콘텐츠에 “예스”라고 하며 기꺼이 돈을 낼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첫 평가가 중요했다. 김옥태 방송통신대 교수(미디어영상학과)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첫 입소문이 중요했다. 먼저 접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급속도로 퍼질 수 있는데 지금의 20~30대들은 이미 유료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세대다. 넷플릭스는 콘텐츠에 대한 자생력이 있고, 국내에서도 유료 콘텐츠에 익숙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고 내다봤다.

 

초반에 나온 반응인 “볼 게 없는데?”라는 평가가 살짝 바뀌었을 때가 한 달이 갓 지난 2월 중순부터다. 작품의 수가 확 늘어났다. 돈값 한다는 평가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경험도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직 TV에서 제대로 스트리밍 동영상을 즐겨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는 휴대용 디바이스에 한정돼 있다. 반면 넷플릭스는 풀스크린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이 다른 서비스와 비교해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중요해진다.”(조영신 수석연구원)

 

긍정적인 평가와 대비되는 부정적인 지점은 콘텐츠의 국적이다. 넷플릭스의 속은 대부분 해외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다. 미드와 해외 영화 중심이다. “한국 사람은 지상파와 케이블 등 국내 콘텐츠 소비자가 주류다. 그래서 대중성은 좀 힘들 수 있다. 만약 넷플릭스가 다른 VOD 서비스랑 붙어서 지상파 콘텐츠도 함께 볼 수 있었다면 시너지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상파 등의 콘텐츠 사업자나 통신사 등과 협상도 잘 안 됐다. 게다가 지상파와 CJ E&M 등은 자기 것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홍종윤 서울대 ICT사회정책연구센터 선임연구원)


 


“올 상반기 지나야 국내 영향력 판가름 날 것”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는 한 달의 평가를 뒤로 물리더라도 거인이 등장하면서 콘텐츠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넷플릭스가 2014년 결산보고서에서 ‘원본 콘텐츠의 효율성이 가지는 장점’에 관해 강조한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필두로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투입해 내놓은 원본 콘텐츠는 브랜드를 향상시켰고 회원을 획득하는 데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주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의 평가 기준에서 보면 오리지널 콘텐츠는 유명 스튜디오에서 공급받은 라이선스 콘텐츠보다 비용이 저렴했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는 콘텐츠의 효율성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시청 시간당 비용’을 적용한다. 가입자의 1시간 시청을 위해 들어간 비용을 평가하는데, 오히려 원본 콘텐츠 쪽이 더 좋은 효과를 보였다는 게 그들의 결론이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중시 전략은 다른 나라에서도 뿌리내린다. 그들은 한 국가에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지역화 전략을 택한다. 반대로 넷플릭스와 손잡은 콘텐츠 제작사는 세계화를 꿈꾼다.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일본에서 넷플릭스는 후지 TV와 손을 잡고 드라마를 제작했다. 파트너가 된 후지TV는 “우리도 세계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일본의 콘텐츠를 보고 선순환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송국과 손을 잡고 독점 프로그램을 만드는,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홍종윤 선임연구원은 “그렇게 만들 수는 있지만 한국 시장만 가지고는 투자의 매력이 없을 수 있다. 중국과 엮으면 또 모르지만, 중국은 시장이 폐쇄적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만들어진 국내 콘텐츠를 넷플릭스에 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여기에는 넷플릭스의 판단이 중요하다. “넷플릭스에 대한 판타지가 있는 것 같다. 넷플릭스는 수요·공급 곡선과 고객들의 유지 효과를 보고 콘텐츠를 구매한다. 그러다 보니 국내 콘텐츠의 구매 단가가 낮을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에 실으면 전 세계로 전달될 수 있으니 엄청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식의 딜은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 콘텐츠를 사왔을 때 가입자를 얼마나 끌어올 수 있을까가 핵심이다. 극히 일부의 사람만 이용하는 콘텐츠라면 굳이 계약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조영신 수석연구원) 넷플릭스와 지상파 3사의 콘텐츠 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배경이다.

 

가입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난 넷플릭스가 태풍인지 미풍인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자료가 많이 부족하다. 조영신 수석연구원은 “실제 초기 가입자 규모가 얼마인지, 계속 가입을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인지 나온 데이터가 없다. 상반기가 지나야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내다봤다. 조용하지만 그래도 파문은 인다. 넷플릭스의 성공도 실패도 결국은 ‘콘텐츠’에 달렸다. 콘텐츠의 중요성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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