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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허락된 오르가슴은 '떨림' 딱 그 수준까지

<남과 여> <캐롤>의 베드신이 단순 볼거리가 아닌 이유

허남웅 | 영화 평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10(Thu) 20:25:28 | 1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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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육체로 정점을 찍는다. 그래서 섹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언어다. 관객 입장에서 연인의 섹스를 묘사한 베드신은 화끈한 볼거리겠지만, 장면을 연출하는 감독이나 배우에게는 해당 영화와 관련한 중요한 메시지다. 그와 같은 메시지가 관객에게 닿을 경우 정사(情事) 장면은 예술로 승화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포르노로 전락한다. 그래서 베드신을 묘사하는 건 그만큼 힘들다. 좋은 멜로영화가 늘 정사 장면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미가 선명한 섹스 묘사는 평범한 멜로영화도 인상적인 경지로 끌어올린다. 한국 영화 <남과 여>와 미국 영화 <캐롤>이 그 같은 경우로, 이들 작품의 베드신을 살피는 건 곧 영화의 메시지를 헤아리는 중요한 관람법이다.

 

남자(공유)가 있다. 여자(전도연)가 있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첫 만남에서 몸을 튼다. 속을 맞춘 사이지만 이름까지는 모른다. 남자와 여자 모두 마음으로 호감을 느끼는 것 같은데 이름을 밝힐까 말까 머뭇거린다.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남과 여> ⓒ (주)쇼박스영화

 


‘절정’으로 치닫지 못해 ‘떨림’에만 만족

 

이곳은 사방이 온통 눈으로 뒤덮인 핀란드다. 남자와 여자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이곳에서 진흙처럼 검게 젖은 심신을 숨기려 피신 중이다. 하얀 눈 아래 덮이려는 남자와 여자의 비밀은 무엇일까. 이들은 한국에서 꽤 잘나간다. 남자는 건축가요, 여자는 패션디자이너다. 각자 결혼을 해 아이까지 가진 이들은 전혀 부족할 게 없어 보인다. 여자의 선배 왈, “너 잘살잖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여자의 아들은 자폐 증세를 가지고 있고 의사인 남편은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 남자의 사정 역시 나아 보이지 않는다. 조울증 아내를 돌보랴, 그 때문에 불안 증세를 보이는 아이를 달래랴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다. 하도 뒷얘기가 많은 한국에서 사회적 시선도 신경 써야 하니 핀란드는 좋은 피신처였을 테다. 그곳에서 만난 쓸쓸한 ‘남과 여’라니. 보는 눈도 없겠다, 감상적인 풍경까지 더해지니 이들의 몸과 마음은 속절없이 녹아내린다.

 

문제는 처음 속을 통한 그 이후다.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도 따로 가정이 있는 탓에 진심을 드러내기가 두렵다. 첫 만남부터 섹스를 나누지 않았느냐고? 그들에게 허락된 오르가슴은 마음속에 파문이 이는 ‘떨림’ 딱 그 수준까지다. 남자의 손이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어도, 여자의 손이 남자의 아랫도리를 향해도 영화는 이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하기보다 서로를 향한 숨소리를 크게 키우는 쪽으로 묘사를 가져간다. 화끈한 장면을 원하는 관객에게는 ‘이게 뭐야!’ 실망스럽겠지만, 이 영화의 정사 장면은 애무 단계까지만 자세하게 묘사된다.

 

그게 핵심이다. 이 영화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만족하면 성립하지 않는 이야기다. 감정에 이끌려 사회적인 약속을 깬다는 건 절대 쉽지 않다. 그만큼 사회의 벽은 높다. 사회적인 금기를 넘어선 예도 있지만, <남과 여>의 주인공들처럼 머뭇거린 사랑도 많다.

 

떨림을 죄책감으로, 그리움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 여자는 먼저 호텔에 도착해 방문을 살짝 열어놓지만 남자는 그 앞에서 서성이다 가족이 눈에 밟혀 사회적인 운명에 굴복하고야 만다. 여자의 이름이 ‘기홍’이란 사실을 간직한 채 떠나는 뒷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뿐 여자는 그런 남자를 원망하는 대신 역시나 ‘상만’이란 이름을 기억하며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다. 절정으로 치닫지 못한 채 떨림으로만 만족해야 하는 이들의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섹스. <남과 여>는 슬픈 속사정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캐롤>에서 캐롤(위 사진)과 테레즈의 사랑은 경직된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포착된다. ⓒ CGV아트하우스

 


여자와 여자의 철창 속 사랑

 

캐롤(케이트 블란쳇)과 테레즈(루니 마라)도 서로를 만나는 게 매사 조심스럽다. 1950년대 미국에서 여자와 여자가 사랑한다는 건 따가운 시선의 감옥에 갇힌다는 걸 의미했다. 게다가 캐롤과 테레즈는 홀몸(?)이 아니다. 캐롤은 별거 중인 남편과의 사이에 사랑하는 딸이 있고 매력적인 외모의 테레즈에게는 함께 살자며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있다.

 

남자의 존재는 이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철창이다. 캐롤과 테레즈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철창’ 사이의 좁은 공간을 비집고 나와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추운 동부의 뉴욕에서 따뜻한 서부 LA로의 밀월여행을 감행한다. 캐롤과 테레즈에게는 서로가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 셈이다. 안 그래도, 백화점 장난감 코너의 일개 점원으로 무미건조한 삶을 살던 자신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준 캐롤(Carol)은 테레즈에게 크리스마스 ‘캐럴(Carol)’ 같은 존재다.

 

하지만 캐럴은 크리스마스 때만 부르는 노래라는 점에서 제한적이다. 테레즈는 처음으로 찾아온 사랑에 모든 걸 내던질 준비가 되어 있지만 캐롤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딸 때문에, 그리고 이를 이용해 법적으로 캐롤의 모든 걸 뺏으려 드는 남편 때문에 온전히 사랑에만 집중하기 어렵다. 테레즈에게 접근한 건 캐롤이었지만, 잠자리에서 먼저 자신의 모든 걸 벗어던지는 이는 테레즈다.

이 광경을 문가에서 바라보는 캐롤의 옆에는 거친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가 박제된 듯 액자에 갇혀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비추는 캐롤과 테레즈의 섹스는 제한적이다. 서로를 탐하는 손길, 애무, 몸이 하나가 되는 순간조차 조심스럽고 이를 비추는 촬영 역시 이들 곁에 동참한다기보다는 거리를 둔 채 창살 틈 사이로 슬금슬금 엿보는 듯 경직된 카메라 움직임을 선보인다.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섹스이면서 또한, 액자에 갇힌 사랑이다.

 

아니나 다를까. 단 한 번의 섹스 이후에 캐롤은 테레즈에게 안녕을 고하고 다시 추운 뉴욕으로 향한다. ‘사랑이냐, 가정이냐, 이것이 문제로다’에서 후자를 선택한 캐롤은 그래도 미련을 거두지 못한다. 그 미련을 용기로 바꿔주는 건 시간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찾아온 새해. 시간은 서서히 모든 걸 바꿔놓기 마련이다. 액자를 두른 주변의 시선을 무시하기로 한 캐롤과 그런 용기에 감동한 테레즈는 다시금 관계를 이어간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누게 될 섹스는 더욱 과감해지지 않을까. 여러 면에서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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