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같은 사람
  • 김재태 편집위원 (jaitai@sisapress.com)
  • 승인 2016.03.24 20:57
  • 호수 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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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시골 농부 같은 인상을 풍기는 한 노신사가 유엔 총회 연설대 앞에 섰습니다. 그는 세계 각국 대표들 앞에서 인류를 향해 이런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인생은 기적이고, 우리가 살아 있는 것도 기적이며, 삶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연설의 주인공인 호세 무히카, 그 자신의 일생도 따지고 보면 바로 그런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도시 게릴라 운동을 벌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났던 인물입니다. 오랜 수감 생활 후에 대선에 나서 2010년 우루과이 대통령에 올랐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호사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이름 앞에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박한 대통령이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급여의 87%를 기부하며, 대통령궁을 노숙자에게 내어주고 자신의 농장에 기거하며 텃밭을 직접 가꾸는 그의 모습은 천생 농부였습니다. 그를 만나 인터뷰했던 영국 가디언 기자가 “평범한 옷과 낡은 신발을 신고 현관에서 나오는 모습이, 꼭 성가신 이웃 주민을 꾸짖으러 은신처에서 나오는 늙은 호빗 ‘빌보 배긴스’ 같았다”고 묘사한 것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입니다.

 

스스로 절제의 삶을 살며 국가에 봉사한 무히카 대통령 덕에, 축구를 잘하는 국민 정도로만 인식돼왔던 우루과이 사람들의 어깨가 덩달아 올라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퇴임 당시 그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이 당선 때(52%)보다 오히려 13%포인트나 높아졌다는 뉴스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또 한 사람의 대통령이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의 미국 워싱턴 유니온 기차역. 전쟁터로 나가는 젊은이들로 북적이던 이곳에서 한 노인이 따뜻한 코코아차를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그를 알아보고 “루스벨트 대통령이 아니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은 “허허, 날 알아보겠는가? 코코아는 마실 만한가”라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노인이 바로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입니다.

 

이 두 대통령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키워드는 ‘따뜻한 마음’입니다. 불우한 처지에 있는 국민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언행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자신에게 밉보인 사람을 혼내주고, 자기편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해 온갖 정략을 짜내기에 바쁜 대통령과는 전혀 다른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이런 대통령을 가진 나라의 국민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겨질지 마냥 부럽기만 합니다.

 

4월13일을 앞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각 당의 총선 공천 작업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금배지를 노리는 많은 사람이 기꺼이 그 이전투구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유권자들의 생각은 또 다를 수 있습니다. 자신이 타인을 배려하고 아낄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기 바랄 따름입니다.

 


안도현 시인의 ‘연탄’ 연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삶이란 나 아닌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사람을 따뜻하게 해줄 연탄 같은 정치인이 애타게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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