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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페이퍼’發 역외탈세 리스트에 벌벌 떠는 재계

역대급 조세회피 혐의자 명단 공개 임박…국세청 다음 타깃은 어디?

송응철 기자 · 유재철 시사비즈 기자 ㅣ sec@sisapress.com | 승인 2016.04.13(Wed) 16:55:21 | 13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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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외탈세 혐의자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재계 역시 크게 흔들리고 있다. 파나마 소재의 조세회피 전문 법률사무소 ‘모색 폰세카’의 자료가 대량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자료는 모두 1150만건으로, 2.6테라바이트(TB)에 달한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이 자료를 입수해 지난 4월4일 공개하고, 각국 회원사들과 나눠 분석하고 있다. ‘파나마 페이퍼’로 명명된 이번 프로젝트에는 영국 BBC, 프랑스 르몽드 등 전 세계 100여 개 언론사가 참여하고 있다. 한국에선 ‘뉴스타파’가 프로젝트를 맡았다. 뉴스타파는 전체 자료 중 ‘Korea’로 검색되는 파일이 1만5000여 건에 달하며, 이 가운데 한국 주소를 기재한 195명의 한국인 이름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한국이 아닌 해외 주소를 기재했을 경우를 감안하면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노재헌 연관 페이퍼 컴퍼니 7개 추가 발견”

뉴스타파는 명단에 오른 이들 중, 4월4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씨를 가장 처음으로 공개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인인 노소영 나비 관장의 동생이기도 한 노씨는 2012년 5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3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 ‘One Asia International’과 ‘GCI Asia’ ‘Luxes International’ 등이다. 노씨는 이들 회사의 이사이자 실소유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노씨는 ‘GCI Asia’를 또 다른 페이퍼 컴퍼니인 ‘Luxes International’의 주주로 해놓는 등 지배구조를 복잡하게 설계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노씨는 해당 페이퍼 컴퍼니 설립 1년 후인 2013년 5월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One Asia International’과 ‘GCI Asia’의 경우 첸 카이(Chen Kai)라는 중국인에게 이사직과 주식을 양도했고, ‘Luxes International’은 김정환이라는 사람에게 넘겼다. 노씨가 회사를 설립하고 이사직에서 사퇴한 시기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와 조세피난처 자금 은닉 문제가 부각되던 때와 각각 맞물려 있었다.

이에 대해 노씨는 대리인을 통해 “첸 카이와 스탠퍼드 동문으로 미국에서 알게 된 사이고, SK와의 관계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업이 잘 안 돼 설립 회사가 쓸모없어진 이후 중국에서 투자 일을 하는 첸 카이에게 혹시 필요할 수도 있어넘겨준 것뿐”이라며 “첸 카이도 이 회사를 실제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계좌도 개설하지 않았다. 당연히 자금이 입출금된 사실도 없다”고 해명했다.

뉴스타파는 역외탈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들 중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재헌씨를 가장 먼저 공개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노씨의 해명에 대한 뉴스타파의 반박이 이어졌다. 4월8일 뉴스타파는 ‘노재헌씨가 연관된 페이퍼 컴퍼니 7곳을 추가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이 가운데 일부는 법인의 주식이 노씨가 운영하는 인크로스 계열사로 흘러들어간 정황도 포착됐다. 이를 두고 뉴스타파는 어떤 계좌나 자산을 비밀리에 인크로스 측에 넘기기 위한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뿐만이 아니다. 국내 유력 대기업인 포스코도 이날 명단에 새로 등장했다. 2011년 영국에 설립된 유령회사 2곳을 786억원에 인수했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문제의 법인은 ‘Santos CMI’와 ‘EPC Equities’다.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은 2011년 이 두 회사의 지주사 격인 파나마 소재 S&K홀딩으로부터 각각 50%(563억원), 20%(224억원)의 지분을 인수했다. 또 2014년에는 남은 지분 30% 중 10%(약 90억원)의 지분을 추가로 인수했다. 포스코는 두 법인의 지분 인수 배경으로 ‘남미 진출 교두보 마련’을 들었다. 또 ‘Santos CMI’가 남미 등에서 2010년 2억 달러 가까운 매출을 올린 우량 기업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문제의 회사들은 영국 국세청에 세금관련 신고를 하면서 영업 실적이 전혀 없는 회사라는 내용의 서류를 제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현재 국세청은 보도 내용들에 대한 사실확인에 나선 상태다. 국세청은 현재 해외 과세 당국과 공조해 관련 내용을 파악 중이며 탈세 혐의가 드러날 경우 세무조사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당국도 가세했다. 금감원은 언론에 보도된 불법 외환 거래 혐의자들의 구체적인 혐의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은 외국환거래법상 신고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검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국세청 “이미 자체적인 내사 진행하고 있다”

다만 국세청과 금감원은 아직까진 해당 리스트를 입수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스타파 관계자는 4월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국세청과 금감원이 역외탈세 혐의자 명단을 요구한 적이 없다”며 “관계 기관의 요구가 접수될 경우 ICIJ와 상의해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미 자체적으로 역외탈세자들에 대한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향후 뉴스타파가 명단을 공개할 경우 관할 지방국세청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뉴스타파는 4·13총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역외탈세 혐의자 명단을 선거가 끝난 후 발표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따라서 재계 안팎에선 총선 이후 역외탈세와 관련된 대대적인 세무조사가 단행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미 세간에서는 벌써부터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재계 주요 인사들의 명부가 정보지 형태로 떠돌아다니고 있다. 여기엔 대기업 오너가와 전·현직 임원 등 40여 명의 실명이 포함돼 있다.

특히 이 가운데는 2013년 뉴스타파가 공개한 바 있는 역외탈세 혐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과 겹치는 경우도 일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대기업 오너일가 중에선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조욱래 DSDL 회장과 그의 장남 현강씨,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 이영학씨, 이수영 OCI그룹 회장 등이 있다. 또 최고경영자(CEO) 중에는 조용민 전 한진해운 대표, 조민호 전 SK증권 대표, 이덕규 전대우인터내셔널 이사, 유춘식 전 대우폴란드차 사장, 황용득 한화갤러리아 대표 등이 포함됐다.

이번 일로 재계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자칫 다음 타깃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국세청이 그동안 역외탈세와 관련해 칼을 갈아왔다는 점에서 재계의 걱정은 더욱 크다. 국세청은 역외탈세 조사 역량 강화를 위해 2009년 역외탈세 추적 전담센터를 출범시킨 데 이어, 국제탈세정보 교환센터(JITSIC)에 가입하기도 했다. 또한·미 동시 범칙조사 약정(SCIP) 체결,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도 등도 도입했다. 여기에 관세청과 역외탈세 및 외환 거래 관련 국·관세 탈루 등 혐의 정보를 공유키로 하기도 했다. 그 결과, 국세청은 지난해 역외 탈세자에 대한 집중 조사에서 괄목할 만한 결실을 냈다. 세금 및 가산세 등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1조2861억원을 추징한 것이다. 2012년(8258억원)과 비교해 3년 만에 추징액이 50% 이상 늘어난 셈이다.

 

뉴스타파는 4월8일 포스코의 영국 유령회사 매입 의혹을 추가로 제기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재계에 미칠 영향 생각보다 안 클 것” 의견도

국세청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운 한국인 명단을 자체적으로 파악해 분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익명을 요구한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역외탈세자)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밝힐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가 명단을 공개하면 후폭풍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의혹을 제기한 이상 국세청이 강 건너 불구경을 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역외탈세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고 탈세액이 5억원 이상인 경우, 조세포탈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포탈 세액의 3배 이하 벌금을 물게 된다. 경우에 따라선 검찰에 고발되고 재판에 회부될 수도 있다. 조세포탈 등에 대한 범칙행위 공소시효는 7년이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명단 발표가 재계에 미칠 영향이 생각보다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파나마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에는 국내 세무 당국의 과세권이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안창남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교수는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하기 위해선 해당 국가의 조세정보 제공 협조를 받아야 한다”며 “조세피난처는 해외 기업 등에 세금 편의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발생한 자금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조세회피 폭로 단초 된 모색 폰세카는?
세계 4위 조세회피 전문 법률사무소

‘모색 폰세카’는 파나마 내 최대이자, 세계 4위의 조세회피 전문 법률사무소다. 공동 창업자인 유르겐 모색과 라몬 폰섹카의 이름을 따서 1986년 설립됐다. 이 회사는 파나마 수도 파나마시티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세계 42개국에 사무소가 있다.

모색 폰세카가 본격적으로 조세회피 업무를 벌인 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사무소를 개소하면서다. ICIJ가 폭로한 문건에 따르면, 모색 폰세카의 고객사 중 절반이 넘는 11만 3000개 기업이 버진아일랜드에서 돈세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색 폰세카는 이후 태평양 뉴질랜드령 니우에 섬에도 돈세탁을 위한 사무소를 개설했다. ICIJ에 따르면, 이 회사가 2001년까지 니우에 섬에서 유령회사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니우에 섬의 연간 예산 가운데 80%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를 통해 파나마 최고의 재벌 반열에 올랐다.

모색 폰세카는 현재 조세회피와 관련된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카를로스 소사 모색 폰세카 대변인은 “지난 40여 년간 어떤 범죄행위도 저지른 적이 없다”며 “우리의 모든 업무는 국제법과 현지 법률을 철저히 준수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들에 대한 자료 유출은 분명한 범죄행위이며 파나마에 대한 공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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