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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왜 빨간 옷만 입으셨습니까?”

새누리당 참패 원인으로 꼽히는 박근혜 대통령 5대 패착

박혁진 기자 ㅣ phj@sisapress.com | 승인 2016.04.20(Wed) 16:43:42 | 13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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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대통령의 뜻대로 당이 움직여줘서 공천이 매끄럽게 진행됐으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텐데,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의원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청와대 정무 라인 사정에 밝은 정치권 인사의 말이다. 선거 후 청와대 내부 분위기는 반반(半半)이다. 청와대 자성론을 이야기하는 인사들이 있는 반면, 오히려 ‘옥새 파동’으로 기억되는 지도부의 매끄럽지 못한 공천이 원인이라고 분석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총선 다음 날(4월14일) 청와대의 유감 표명 내지 사과가 바로 나오지 않은 것도 후자의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대통령에게 대놓고 ‘자성론’을 꺼낼 수 있는 인사가 없는 것이 현재 청와대 분위기다. 민심과는 한참 동떨어진 인식이다. 대다수 언론에서 이번 선거를 ‘박근혜 대통령의 패배’, 이 한마디로 정리하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총선을 몇 개월 앞두고 했던 발언과 이를 반영한 청와대 물밑 움직임이 선거에 역풍을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정치권에선 이번 총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박 대통령이 여러 패착(敗着)을 뒀다고보고 있다. 패착은 바둑에서 바둑돌을 잘못 놓는 바람에 그 판을 지게 된 나쁜 수다. 한마디로 박 대통령의 패착이 새누리당 총선 참패의 한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5대 패착을 조목조목 짚어봤다.

패착1
“투표 날까지 빨간 옷만…”-총선 개입 의혹

4월13일 오전 9시 박근혜 대통령은 빨간색 코트를 입고 서울 청운동 제1투표소에서 투표했다. 박 대통령이 입은 옷의 색깔을 보고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렸을까. 대통령의 빨간 옷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계속된 선거 개입 의혹의 ‘화룡점정’이었다. 박 대통령은 2월25일 대전, 3월16일 부산, 4월8일 충북 청주와 전북 전주 방문 때도 모두 빨간색 옷을 입었다. 박 대통령이 선거 당일 빨간 옷을 입었을 때 이런 지적이 나올 줄 몰랐을까. 당연히 알았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빨간 옷을 입은 것은 위기감과 자신감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청와대 역시 이번 선거에서 핵심 지지층이 투표하려 하지 않는다는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대통령이 나서서 와해된 지지층을 결집하고 그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 같은 행동은 ‘노골적 선거 개입’이란 논란만 불러일으켰고, 오히려 보수층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으로 표심을 바꾸는 역효과를 낳았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야당이 공격할 줄 알면서도 입은 것은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지지층을 향한 메시지였다”며 “결과적으론 (기대했던) 효과를 보지 못했고 논란만 키웠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월8일 충북 청주시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전국 창조경제개혁센터 고용본부장들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패착2
“새로운 국회 탄생해야”-국회심판론


“국회가 기득권 집단의 대리인이 되고 있다. 국민의 열망은 실망과 분노로 되돌아올 것이다.”(2015년 12월8일 청와대국무회의)

“국회의 비협조로 노동 개혁이 좌초되면 역사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2015년 12월23일 핵심개혁과제 성과 점검회의)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라면 국민의 간절한 부름에 지금이라도 동참하라.”(2016년 2월2일 국무회의)

“우리가 당면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기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선 민생 안정과 경제 활성화에 매진하는 새로운 국회가 탄생해야만 한다.”(2016년 4월12일 국무회의)

박 대통령은 20대 총선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부터 국회를 향해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시각에는 국회가 심판받아야 할 대상이었다. 물론 이런 ‘민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이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은 ‘대립’보다는 ‘소통’이었다. 대통령이 소통하려 해도 국회가 말을 듣지 않을 때 판단은 국민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회를 심판하려고 하자 국민이 등을 돌렸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찍었다는 한 40대 남성의 말에 이런 메시지가 잘 녹아들어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이 아무개씨는 “박 대통령이 국회 심판을 얘기할 때마다 군사정권 시절 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랐다”며 “대한민국 국회가 그 정도 수준이라는 것은 상수(常數)였는데 대통령이 돼서야 새삼스럽게 알게 된 것처럼 말하는 것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말했던 국민통합이라는 말을 스스로가실천하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패착3
“진실한 사람이 나쁜 얘기냐”-진박 마케팅


박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대구·경북(TK)에 대거 친박 인사들을 내려보냈다. 곽상도 청와대 전 민정수석,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 정종섭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 박근혜 정부 관료 출신 인사들이 대거 TK 선거에 나섰다. 그러면서 ‘진박(진실한 친박) 마케팅’ ‘진박 감별사’라는 말까지 돌았다. 이들은 ‘진박만이 진실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점령군처럼 행세했다. 함께 모여 인증샷찍기도 했다. 친박 핵심인 최경환 후보는 한 연설에서 “진실한 사람이라는 것이 나쁜 얘기냐”고 반박했다. 이런 진박 마케팅이 논란을 빚자 선거 막판 무릎까지 꿇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러한 논란은 연령층으론 50~60대 중·장년층, 지역적으론 수도권과 부산·경남(PK)에 역풍을 불러왔다. 특히 “TK에서 일었던 진박 논란이 PK에서 더불어민주당 바람이 분 원인을 제공했다”는 한 정치권 인사의 분석은 귀 기울일 만하다. TK 출신인 더민주 관계자의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TK와 PK는 정치적으로 라이벌 관계였다.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핍박받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권 출범 이후 TK 이외 지역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 보니 가장 반발이 심했던 것은 의외로 PK였다. 거기다 이 지역 맹주라고 할 수 있는 김무성 대표가 TK 출신 인사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것처럼 비쳐 PK 입장에선 차라리 이 지역에 오래 공을 들인 문재인 전 대표 사람들을 찍은 것이다.”

4월6일 최경환 후보를 비롯한 대구 지역 새누리당 총선 후보자들이 대구 달성구 두류공원에서 사죄의 의미로 시민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 뉴시스

패착4
유승민 ‘죽이기’와 윤상현 ‘살리기’


총선 두세 달 전부터 새누리당 내부에선 “유승민에게 공천을 주지 않을 경우 과반 의석은 힘들다”는 말이 파다했다. 당직자들이나 보좌관, 출입기자들 모두 우려했던 부분이다. 새누리당을 출입하는 한 종합편성 채널 기자는 “유승민 의원 공천 배제 후 있을 후폭풍에 대해선 당이나 청와대에서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의원 공천 배제가 인간적으로 아주 가혹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 후 폭풍은 더욱 거셌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는 유 의원의 ‘컷오프’를 정해놓고도 후보 등록 전날까지 스스로 탈당하기만을 기다렸다. “알아서 나가라” “자진 사퇴기다린다”는 식의 말만 언론을 통해 흘렸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다른 유승민계 의원은 잘라내더라도 유 의원에게는 공천을 줘야 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공관위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유권자들은 유 의원의 공천에 대해 결국 청와대가 허락을 해주지 않아 시간을 끌었다고 판단했고, 이 과정에서 등을 돌린 사람이 적지 않았다. 반면 새누리당은 막말 파문으로 공천을 받지 못한 윤상현 의원의 지역구(인천 남구 을)에 조직도 경력도 없는 정치 신인을 공천함으로써 사실상 윤 의원 구하기에 나섰다. 두 정치인의 행보가 완전히 엇갈리는 과정을 통해 ‘박심(朴心)’이 드러나면서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층 중 상당수가 등을 돌린 셈이다.

패착5
“북풍 일으키려다 역풍 맞았다”-북풍 의혹


20대 총선을 일주일 앞두고 북한 관련 이슈들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중국 내 북한식당 종업원들과 북한군 고위 인사의 망명소식이 그것이었다. 이보다 2주 전인 3월24일에는 ‘전군 경계태세’를 지시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줬다. 하지만 정작 관련 부처에선 정확한 ‘팩트’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기자들의 지적이 쏟아졌다. 4월14일 국방부 대변인의 브리핑에서 이런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시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총선 전 불거진 북한군 대좌의 망명에 대해 국방부 대변인에게 물었다. 다음은 기자회견 내용 중 일부다.

기자 : 북한군 대좌가 언제 탈출했습니까?
대변인 : 구체적 내용은 확인해드릴 수 없습니다.
기자 : 확인을 못하시는 겁니까? 모르시는 겁니까?
대변인 : 정확히 확인된 정보를 갖고 있는 건 없습니다.
기자 : 모르면서 브리핑을 했습니까?
대변인 : 넘어왔다는 사실, 대좌라는 사실만 확인해 드린 겁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대변인은 정확한 일시도 확인해주지 않은 채 모르쇠로만 일관했다. 기자들의 공식 질문에 확인해줄 만한 내용도 없으면서 정부는 선거 전 이런 사실을 언론에 흘렸다. 하지만 선거 전 북한 이슈를 통해 보수층 표심을 모으려는 정부와 집권 여당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번 선거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돼 20대 국회에 입성하게 된 김종대 정의당 당선인은 “총선 후보 등록날(3월24일) 전군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하는 대통령이 어디 있느냐”며 “이런 지시가 나온 후 (3월26일) 엉뚱하게 수험생에게 정부종합청사를 털리는 바람에 더 우습게 됐다”고 말했다. 김 당선인은 “정부와 여당이 북풍(北風)이 아니라 역풍을 맞게 됐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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