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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와 ‘엔터테이너’ 조합의 불편한 현실

정준모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ㅣ . | 승인 2016.04.21(Thu) 19:29:10 | 13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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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하면서 새로운 직종이 떠오르고, 또 한편에서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직업들이 사라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이 향후 예술의 영역까지 넘볼 것이라고 하지만, 굳이 인공지능 시대까지 갈 것도 없이 이미 ‘아트테이너(ARTainer)’들이 화가나 또 다른 예술 장르들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아니, 이미 넘어서고 있다.

이런 현상은 융·복합이 강조되고 장르 간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생겨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연예인들이 특히 활발하게 미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은 원래 미술 전공자가 많은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세상이 만능 엔터테이너를 원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일이 미술 분야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특히 미술이 예술적으로 직접적이고 계량적인 평가 기준이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아도르노가 자신의 <미학이론>을 시작하면서 “예술에 관한 한 이제는 아무것도 자명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라고 한 말처럼, 남성용 소변기가 예술이 되고 가짜 가루비누 상자가 작품이 되는 것처럼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의 경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 연예인이 그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연합뉴스

‘아트’와 ‘엔터테이너’를 조합한 ‘아트테이너’의 원조 격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조영남을 비롯해서, 수묵화에 능하다는 심은하, 추상적인 회화를 선보인 바 있는 김혜수, 배우 조재현의 드로잉이나 유준상의 판화, 구혜선의 도로잉과 조각, 가수 나얼의 일러스트풍의 드로잉, 자신의 음악과 병행하는 가수 솔비의 퍼포먼스나 드로잉 작업들, 탤런트 이혜영, 개그맨 임혁필 등의 그림이 있다. 또 디지털카메라가 일반화되면서 사진을 찍는 엔터테이너도 많은데, 가수 빽가와 탤런트 조민기, 개그맨 이병진·정종철이 여기에 속한다. 외국에서는 영화배우 유덕화의 서예 솜씨가 빼어났다고 알려졌으며, 영화배우로 고인이 된 앤서니 퀸도 그림에 일가견이 있었다.

이들이 본업 외에 또 다른 장르에서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대다수 아트테이너의 경우, 그림을 취미생활로 시작했거나 심리치료 등의 과정에서 미술을 접하게 된 경우가 많다. 아무튼 이들의 취미활동을 세상은 흥미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세상의 모든 것이 오락 프로그램화하고 예능화해가는 시대에 이들의 취미활동이 새로운 예술로 진화하는 것이다.

새로운 직업으로 떠오른 ‘아트테이너’

이들 작업의 예술적 완성도와 미학적 가치, 그리고 조형성 등은 차치하고, 오직 인기 배우·가수라는 점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고, 동료 연예인들이 전시장을 찾아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올리고, 이것이 다시 확대 재생산되면서 관심을 끌어내는 현상은 그리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물론 이들도 진정으로 예술로서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이름이 알려진 그들을 그냥 두지는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는 아티스트가 되려 하지만, 세상은 이미 그들을 아트테이너로 부른다. 

‘누구나’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아무나’ 그것을 할 수는 없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작품이라고 세상에 내놓을 때에는 작가로서의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 한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들의 작업이 예술로서 인정을 받으려면, 최소한 그 사회가 인정하고 묵시적으로 합의된 예술의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 따라서 설익은 작업이 유명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에 나오는 것도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들의 은밀한 사생활이나 다름없는 취미활동의 성과물이, 연예인을 향한 대중의 관음증(觀淫症) 때문에 의도치 않게 세상에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작품에 열광한다. 엔터테이너로서의 유명세는 작품성이나 예술성에 대한 평가도 이루어지기 전에 이른바 ‘완판’이라는 실적을 올리기도 한다. 여기에 미술에 대한 평가 기준이 모호해지고 스스로 예술에 대해 판단하고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결정장애·판단장애자가 많아지면서 예술을 판단하는 유일한 가치가 ‘값’이 되었다. 그 결과, 비싸게 팔린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면서 이들 아트테이너들의 그림값 또한 높아만 간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그림보다는 이름을 보고 사는 일부 미술 소비자의 안목과 수준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명 화가의 그림을 사는 것은 경제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그만한 가치를 지불할 만큼 예술적 공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체품으로 구입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문화와 예술이라는 말은 사회 지도층이나 지식층이라고 하는 사람들, 돈푼깨나 있는 사람들이 액세서리처럼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그들의 문화예술적 식견은 그리 수준 높은 것이 아니라 허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이들을 전시장이나 공연장에 끌어들이려 고육지책이지만 이벤트, 행사 홍보를 위해 아트테이너, 즉 연예인 화가들을 ‘홍보대사’ 등등의 이름을 붙여 동원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예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시스템을 빌려 아트테이너를 양성하겠다는 기업도 생겨났다.

경남 창원시 창동예술촌 ‘Stars come 창동(스타 컴 창동) 전’에서 관람객들이 개그맨 임혁필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 연합뉴스


충실하고 성실한 독자로서의 삶이 더 창조적

미술 동네가 불황이거나 홍보가 필요할 때 이들 아트테이너를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장기적으로는 아트테이너 당사자에게도 마이너스지만, 미술계 또한 미술을 희화화(戱畵化)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미술에 대한 가치 평가 또는 의미 부여가 우선되는 ‘감상’보다는 ‘호기심’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사실 아트테이너들의 전시를 찾는 관객들의 경우, 개별 작품이나 작가의 작업세계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연예인에 대한 호기심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 예술성보다는 시장성이 미술품 가격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연예인 프리미엄’이 붙는 아트테이너의 그림이 높은 가격에 잘 팔린다는 이유로 일부 화랑이 이들 전시를 열어 당장의 경영난을 이겨내려 하지만,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작품활동이 계속될 것인가, 또 그들의 작품이 처음 가격에 상응하는 가치로 되팔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책임은 전시를 개최한 화랑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또 하나의 연예 마케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세상이 다변화하고 획일적인 개념의 예술로부터 파생된 새로운 영역의 예술들이 명멸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지금까지 작가라는 개념이 생산자를 지칭하는 의미에서 사용되었다면, 요즘은 독자들 즉 문화소비자의 주체성에 더 비중을 두면서 작가의 역할보다는 관객·독자의 역할을 중시한다. ‘작가의 죽음’을 통해 자연스럽게 독자·관객의 역할을 중시했던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1915~1980)는 작가를 죽임으로써, 이것이 문학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동등한, 또는 작가의 텍스트를 각기 자기 식으로 읽어내는 ‘독자의 탄생’이라고 설파(說破)했다. 그로 인해 문학과 예술이 더욱 발전하고 풍요로워지고 다양해진다고 주장했다.

사실 디지털 시대에 인터넷소설과 웹툰, 그리고 웹드라마까지 만들어지고, 공동 창작이나 협업 또는 댓글 달기처럼 릴레이식 창작이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지는 지금, 누구를 어디까지 작가 또는 화가로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심각한 고민거리다. 사실 오늘날 같은 디지털 시대에 문화의 생산자는 ‘프로’보다는 ‘아마추어’다. “나도 예술가”라면서 스스로 참여하고 창작하고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이어나간다. 마치 하이데거가 말했던 회전문처럼, 끊임없이 전복되는 이상한 순환논리처럼 디지털 시대에는 아마추어가 예술 창작의 주인이 되었다. 이렇게 성급한 작가로서의 아트테이너보다는 충실하고 성실한 독자로서의 삶이 더 창조적이라는 점에서 아티스트와 엔터테이너의 지금의 조합은 그저 불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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