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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일 수 있다

편도선염 등 경증 피해자 160만명 추정…“정부가 피해 규모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민우 기자 ㅣ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5.11(Wed) 16:11:21 | 13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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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에 사는 박성수(35)씨는 최근 가습기 살균제 파동을 보면 아직도 한숨이 나온다. 박씨는 자신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11년 초 편도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몇 해 전부터 겨울철만 되면 목이 붓고 열이 나는 증상이 반복돼 수술을 택했다. 당시 의사는 ‘급성 편도염’이라고 진단했다. “남들보다 편도에 염증이 자주 생겨서 차라리 제거해주는 것이 낫다”며 편도 절제술을 권유했다. 계속되는 병원 생활 탓에 갓 들어가 인턴으로 있던 회사도 나와야 했다.

박씨는 수술 전까지 몇 해 동안 편도염을 앓게 된 것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20㎡(6평) 남짓한 원룸에 살던 그는 겨울철만 되면 가습기를 사용했다. 여기에 ‘안전하다’고 믿었던 가습기 살균제를 넣었다. 특히 피톤치드 향을 좋아했다. 가습기를 켜놓고 외출했다 오면 산뜻한 향이 방 안 가득 퍼져 있어 방향제 역할도 한다고 믿었다. 목이 아파지면 ‘가습기에 세균이 있어서 그런가’ 생각하며 살균제 사용량을 늘리기도 했다.

박씨는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중단했다. 산모와 영유아들이 잇따라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가습기 자체를 쓰지 않았다. 그러자 겨울철마다 반복되던 목의 통증도 사라졌다. 그가 스스로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라고 믿는 이유다.

가습기 살균제 경증 피해자 160만명 추산

최근 가습기 살균제 파동은 2011년 임산부 4명이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사망하면서 벌어졌다. 정부가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조사한 결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530명으로 이 가운데 143명이 사망했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 결과에서는 피해자가 1500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에서 피해자는 어디까지나 산모들의 사망 원인이었던 폐섬유화 증상 등 폐질환을 보인 환자를 말한다.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 논란에서 급성 기관지염, 급성 편도염 등 경증 환자들은 배제돼 왔다.

하지만 이 같은 경증 피해자들까지 합산할 경우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16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지난해 12월 서울대 보건대학원과 함께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던 응답자 5명 중 1명은 ‘호흡기 질환 등 건강상 피해가 있었다’고 대답했다. 민관합동 폐손상조사위원회가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 수를 약 800만명으로 추산한 점을 감안하면 피해자 규모는 160만명 수준으로 나타난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증상이 수년 뒤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자신이 피해자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피해 규모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결과는 통계 분석 자료로도 증명된다. 시사저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비 통계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가습기 살균제가 대중적으로 사용됐던 2008~10년 사이에 호흡기 질환은 크게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2009년 급성 편도염으로 외래진료를 받은 국민은 무려 938만명에 달했다. 지난해 650만명보다 289만명(44%)이나 많은 환자가 급성 편도염을 앓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가습기 살균제가 판매 중지된 이후 급성 편도염 환자는 해마다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급성 기관지염이나 비염 등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급성 편도염의 원인을 가습기 살균제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연관성을 따져볼만한 대목이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최초 시판된 이후 2001년 옥시를 시작으로 2004년 홈플러스, 2006년 롯데마트가 관련 제품을 출시했다. 이후 대중적 인기를 끌다가 2011년 임산부가 연이어 사망하자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판매를 중단시켰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독성 물질에 의한 피해 여부를 가리는 가장 확실한 과학적 방법은 실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역학조사뿐”이라며 “피해자에 대한 의학적·생리학적 검사 결과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면 가습기 살균제와의 인과관계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서 피해자들의 공통적 특징을 찾아내는 노력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폐질환’ 집착한 정부, 업체에 ‘면죄부’

정부는 지난 2014년부터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접수받은 뒤 폐 손상을 기준으로 피해자를 1~4등급으로 나눴다. 1등급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이 ‘거의 확실’한 피해자를 의미한다. 2등급은 ‘가능성 높음’, 3등급은 ‘가능성 낮음’, 4등급은 ‘가능성 거의 없음’을 각각 의미한다. 사실상 3~4등급 피해자들은 공식적으로 가습기 살균제와의 연관성이 부인된 상태다.

정부는 이를 기초로 1~2등급 피해자에게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원하고 있다. 5월2일 최초로 공식 사과에 나선 옥시레킷벤키저도 피해 보상 계획을 밝히면서 대상자를 정부 피해조사 1~2등급 피해자로 한정했다. 기존에 출연한 100억원으로 ‘그 외 피해자’를 지원하겠다고 덧붙였을 뿐이다. 반면 3~4등급 피해자는 정부 지원에서 제외됐다. 제조업체의 피해보상 또한 불투명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 문제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가습기 살균제가 폐에만 영향을 끼쳤다는 가정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살균제에 포함된 화학물질은 가습기를 통해 미세한 입자로 만들어져 흡입을 통해 폐까지 들어간 뒤 염증을 일으켰다. 호흡기 전반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족 모임 측은 폐 이외 장기와 호흡기, 피부, 안과 질환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이를 외면했다.

물질과 질병 사이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정부의 보수적인 접근이 기타 질환 피해자들을 외면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폐질환 사망자가 발생하자 폐섬유화 증상을 공통 질병으로 삼았고, 이 질병이 가습기 살균제와 연관성이 있는지 여부를 밝혀내는 데 집중했다는 의미다. 결국 중증 폐질환자 이외 피해자를 밝힐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가습기 살균제가 기타 질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을 연구한 임종한 인하대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물질이 폐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며 “간·신장 등에 손상을 주는 사례가 다수 확인됐고, 임신부를 통해 태아에게 전달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서울아산병원이 2013년 작성한 연구논문 자료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내 독성물질을 이용한 동물실험 결과, 생체 염증상태 유도, 체중감소, 빈맥 및 동맥경화 포함 심혈관 이상, 지방간, 지질지표 이상, 면역계 이상 등 다른 질병이 유발됐다.

정부가 다른 질병과의 연관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외면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가습기 살분제 피해 추가 조사연구’ 보고서에는 “가습기 살균제의 특정 성분이 폐 및 폐 이외 기관에 치명적인 독성이 있다고 확인했다”고 적혀 있었다. 심 의원은 “이 보고서가 2011~12년 작성됐기 때문에 지원 절차를 마련할 당시 이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타울라시드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이사가 5월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가습기 살균제 관련 입장발표 기자회견 중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뒤늦게 조사 나선다지만…

정부는 5월1일 뒤늦게 가습기 살균제 조사위원회를 열어 비염·기관지염 등 경증 피해와 폐 이외의 건강 피해 가능성에 대한 인과관계 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질병과 다른 요인으로 인한 질병 간의 특이성 규명을 위한 역학조사도 추진하기로 했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조사위원회 산하에 분야별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습기 살균제 폐 이외 질환 검토 소위원회’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계획이 발표되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를 접수받는 시민단체에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 인정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자료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사용 전후의 질병은 비교할 수 있다.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을 증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5~10년 전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한 영수증이나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 용기 등을 챙겨놓은 경우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이 거세지자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폐뿐 아니라 다른 신체 부위 손상을 입은 경우에도 보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가습기 살균제 피해보상 특별법에 담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은 청문회등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정부의 대응 과정의 문제점, 재발 방지책을 집중적으로 따질 계획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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