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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특사도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

정치적 계산으로 권한 남용해서는 안 돼…사법 심사 강화해 엄격히 제한할 필요 있어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05(Fri) 09:21:36 | 13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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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27살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소설 《가난한 사람들》로 평단의 촉망을 받던 그는 페트라셰프스키 서클에 참여하며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했다. 젊은이들의 혁명적 분위기를 철권통치로 억압한 차르는 젊은 작가를 사형장으로 끌고 갔다. 그러나 그는 사형집행 바로 직전 차르의 사면을 받고 극적으로 살아났다. 사형수의 경험은 도스토옙스키에게 평생 잊지 못할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그는 심한 도박 중독증에 시달렸다. 다른 한편 황당하게도 차르는 사형집행 직전 사면령으로 목숨을 살려주는 ‘깜짝쇼’를 즐겼다고 한다.

 

왕의 특권인 사면권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과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의 기록에도 사면이 존재했다. 신라 문무왕 때 삼국통일 기념 대사령이 있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현대적 의미의 사면권은 16세기 영국의 헨리 8세에 의해 실시됐다. 그 후 사면권은 서로 으르렁대는 국왕과 의회 사이의 상호 견제 수단으로 제도화됐다. 영국의 전통을 계승한 미국 헌법은 “대통령은 합중국에 대한 범죄에 대해 탄핵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형의 집행정지 또는 사면을 명하는 권한이 있다”고 사면권을 규정했다. 헌법을 제정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통령 사면권을 예외적인 경우와 전시에 국가를 방어하는 용도로 제한했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권력 분립의 원칙을 토대로 입헌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사면권 남용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오늘날도 대통령의 사면권에 대해 권력자의 개인적인 동기나 정치적 계산으로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실제로 법치국가에서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형법과 사면 제도의 공존은 모순적이다. 헌법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지만 대통령의 사면은 사법 판결을 뒤엎는 행위를 인정한다. 사면권은 절대군주가 처벌 권한을 가지는 동시에 은사(恩赦) 행위를 베푸는 시절의 낡은 유물이지만, 사면권은 아직도 많은 국가의 헌법에 명시된 ‘살아 있는 화석’이다.

 

2015년 8·15 특사 후 운전면허시험장이 응시자들로 붐비고 있다.


한국의 사면권 남용

 

한국 헌법 79조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규정한다. 1948년 건국 대사면이 이래 100번이 넘는 사면이 단행됐다. 민주화 이후 정치적 박해로 인한 부당한 판결을 바로잡는 사면도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국민화합이나 국가이익을 명분으로 비리를 저지른 대통령 측근 봐주기 사면이나 정계·재계의 권력형 비리의 사면도 남발했다. 부정부패·정경유착·선거부정으로 구속된 고위층 인사들 가운데 범죄 규모가 클수록, 범죄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사면 가능성이 컸다.

 

다른 한편 대통령은 사소한 생계형 범죄로 범법자가 된 사람들에 대한 사면을 단행하기도 한다. 소위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행정 법령 위반’에 대한 사면이 그렇다. 도로교통법상의 벌점과 음주운전으로 인한 운전면허 정지 등 행정처분의 면제 조치가 대표적이다. 국민에게 사면을 베푸는 대통령의 은전(恩典)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면권 남용은 법을 지키는 사람일수록 손해를 본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법치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역대 정부는 여러 차례 교통법규 위반자에 대한 사면을 실시했다. 그런데 이러한 사면을 기대하는 심리 때문에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화합형 사면의 범주에 포함되는 교통법규 위반자 가운데 약 75%가 생계형 운전자가 아니라 비사업용 운전자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인기영합주의라는 비판도 있다.

 

 

사면권의 민주적 통제

 

사면권보다 민주주의가 중요하다. 민주주의가 강조하는 ‘법의 지배’는 자의적 전제 권력을 막기 위한 원칙이다. 법치주의란 법으로 사람을 지배한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사법부의 판결을 무효로 만드는 사면권은 법치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다.

 

현대적 민주국가에서는 권력 분립의 원칙을 중시한다. 프랑스 판사 출신의 정치사상가 몽테스키외가 삼권 분립을 제시한 이래 이는 현대 국가의 원칙이 됐다. 그런데 사법권을 제한하는 사면 제도는 민주주의 원칙을 침해할 수 있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입법권과 사법권의 내용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수준에서 행사돼야 한다. 이를 위해 사면권은 국민의 대표 기관에 의해 법률로서 적절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사면권의 민주적 통제는 한국 헌법 11조의 평등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중요하다. 부당한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국민의 기본권이 수호돼야 한다. 사면권의 남용으로 국민들에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민주주의의 원칙 자체가 무너진다. 고위층 권력형 비리사범, 재벌의 부정부패, 경제사범의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사면이 더 많은 현실은 헌법이 명시한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법치주의와 권력 분립의 원칙에 대한 예외로 제한돼야 한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특권을 부여했지만, 입법부와 사법부를 초월해 사면권이 남용되지 않아야 한다. 사면권이 필요한 경우에도 국민이 인정할 수 있는 원칙과 상식에 따라 실행돼야 한다.

 

1969년 독일은 헌법재판소가 사면의 위헌성을 심판해 철저한 감시와 통제 아래 사면이 이뤄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지난 60년 동안 단 4번의 사면만 이뤄졌다. 재판부의 수형자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통해 사면을 결정하기 때문에 재판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 프랑스는 아예 부정부패 공직자와 선거법 위반 사범은 제외한다. 미국의 사면 제도는 의무적 최저 형량 제도를 도입해 5년 이상 경과해야 청원 자격이 부여된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남용되는 한국에서는 사면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대통령 사면권에 대한 사법 심사를 강화해 헌정질서 파괴범, 경제질서 파괴범, 성폭행범 등에 대해서는 엄격히 제한하는 규정을 법률로 정할 수 있다. 사면심사위원회는 법무부 장관 소속에서 독립시켜 국회 등 다양한 사회 구성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또한 사면권 남용과 오용을 막기 위한 사면권 취소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대중인기 영합주의 정책인 교통법규 위반자 사면을 막기 위해서 ‘삼진 아웃제’ 규정과 같이 사면권의 통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헌법에 보장돼 있다. 이는 사법부와 입법부의 한계와 갈등을 해결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한도 법치주의와 권력 분립의 원칙 아래에 있어야 한다. 사면권 남용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는 우려가 커진다면 국가의 정당성은 유지될 수 없다. 대통령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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