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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통 환경호르몬 리스트 없다

건강 유해성 증명되지 않아…미국·일본 등 제각각 관리

박태균 고려대 생명과학부 연구교수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8.09(Tue) 09:06:41 | 13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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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큰 충격파를 던졌던 SBS의 《환경호르몬의 습격》에선 “플라스틱 밀폐용기에 담아 얼린 밥을 전자레인지에 몇 분간 데운 뒤 밥을 꺼내 시험한 결과 환경호르몬 물질의 하나인 DEHP가 검출됐다”는 내용이 방송됐다. DEHP는 플라스틱 제품을 유연하게 하기 위한 가소제로, 환경호르몬 물질이다. 

 

담당 PD는 밀폐용기 제조 과정에서 다른 물질이 들어갔거나 용기 속의 밥 또는 밥이 되기 전의 쌀이 환경호르몬에 오염됐을 가능성 등이 있지만 DEHP 검출의 명백한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실험에 쓰인 플라스틱 그릇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고 단정 짓기 힘들고, 따라서 이 실험만으로 플라스틱 그릇을 사용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이다.

 

방송에서 밀폐용기에 대한 용출(溶出)시험을 생략한 채 밥만 꺼내 DEHP 검출 여부를 실험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병무 성균관대 약대 교수(독성학)는 “플라스틱 밀폐용기의 유·무해 여부는 용출실험을 거쳐야 판정할 수 있다”며 “용출실험 결과 DEHP 용출량이 허용기준을 넘지 않는다면 안전한 그릇”이라고 강조했다.

 

그린피스는 2015년 5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서도 화학물질이 검출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심해나 산 정상 등에서 샘플을 채취했다. 사진은 그린피스의 한 연구자가 이탈리아의 필라토 호수 근처에서 눈을 채집하는 모습


유해물질 허용기준 미만은 안전

 

용출실험과 용출기준이란 무엇일까? 플라스틱 그릇에 환경호르몬 등 유해물질이 ‘들어 있다’(함유)는 것과 유해물질이 ‘녹아서 음식으로 흘러들어온다’(용출)는 것은 완전히 개념이 다르다. 플라스틱 그릇 등 용기·포장 재료엔 잠재적으로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용기·포장재의 유해물질이 식품으로 빠져나와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일을 막기 위해 허용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환경호르몬·중금속 등 유해물질이 검출되더라도 허용기준 미만이면 판매를 허용하고, 허용기준 이상이면 판금 조치를 내리기 위해서다. 유해물질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허용기준보다 양이 적다면 소비자의 건강에 해를 미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국내에서 랩·접시·밀폐용기 등 식품용 용기·포장 재료에 함유된 납·카드뮴·단량체(monomer) 등에 대한 안전성은 재질기준과 용출기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재질기준은 중금속·환경호르몬 등 특정 물질이 용기·포장에 잔류할 수 있는 허용기준이다. 용출기준은 용기·포장의 중금속 등이 식품이나 식품 모사용매(food simulant)로 이행(移行)되는 것을 전제로 한 허용기준을 나타낸다.

식품 용기·포장 재료로 사용하려면 재질기준과 용출기준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한 가지라도 기준을 초과하면 시판 부적합 판정을 받는다. A라는 그릇 재료 자체에 유해물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검사하는 것이 재질실험이다. B라는 플라스틱 그릇에 존재하는 비스페놀A·DEHP 등 환경호르몬과 중금속 등 유해물질이 그릇에 든 식품에 어느 정도 빠져나오는지를 밝히기 위한 검사가 용출실험이다. 용출실험은 고열·강산 등 다양한 가혹 조건에서 이뤄진다. 

 

환경호르몬은 우리가 생활하는 일상 도처에 존재한다. 세상 어디에나 있는 ‘유비퀴터스’(ubiquitous)한 존재다. 플라스틱 그릇이나 전자레인지는 물론 음식·가정용품·포장재·농약 등을 통해 우리 몸으로 들어올 수 있다. 자동차배기가스·담배연기·쓰레기소각장에서도 환경호르몬이 배출된다. 입은 물론 호흡기를 통해서도 체내에 유입된다. 현재 환경호르몬으론 벤조피렌·다이옥신·비스페놀·DDT 등 유기염소계 농약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엔 파라벤도 주목받고 있다. 파라벤은 그동안 가격이 싸고 안전한 물질로 간주돼 왔다. 알려진 독성은 알레르기 반응 정도였다. 화장품·의약품·식품 등에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등록된 1만3000여 품목에 함유돼 있다. 파라벤도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과 유사한 작용을 하는 것이 동물실험에서 검증됐다. 특히 유방암 환자의 조직에서 파라벤의 농도가 현저히 높았다.

 

어떤 물질이 환경호르몬인지 여부는 여러 단계의 시험을 통해 판정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2년 5단계 시험법을 제시했다. 자료 검토와 시험관·동물시험 등 1〜4단계 시험에서 ‘환경호르몬 성질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면 5단계 시험은 하지 않는다. 1〜4단계 시험에서 ‘환경호르몬 성질이 의심’되면 5단계 시험이 이뤄진다. 5단계 시험도 동물시험이긴 마찬가지다. 해당 물질이 다음 세대까지 포함해 내분비계에 어떤 부작용을 일으키는지 종합평가가 실시된다.

 

 

세계보건기구, 환경호르몬 리스트 작성 예정

 

엄밀하게 말해서 전 세계적으로 일치된 환경호르몬(내분비계 장애물질) 리스트는 없다. 환경호르몬 후보물질 선정은 WWF(세계야생생물보호기금), EPA(미국 환경보호청), 일본 후생노동성 등 여러 기관에서 이뤄졌다. 리스트에 포함된 물질도 대부분 내분비계 장애가 우려되는 물질일 뿐 내분비계 장애가 명확하게 증명되진 않았다. 민간단체인 WWF는 67종의 물질을 내분비계 장애물질로 분류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160여 종의 물질을 내분비계 장애물질로 선정했다. 미국의 EPA가 내분비계 장애물질의 목록 작업을 시도한 적이 있으나, 현재 주(state)마다 다양하게 관리되고 있는 상태다.

 

아직 특정 물질의 내분비계 영향에 대한 국제적 합의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특정 물질(내분비계 장애 추정물질)을 대상으로 규제를 실시한 국가는 없다. 내분비계 장애 추정물질의 유해성 실험을 해 봐야 하는데, 국제사회에서 인정한 시험법이 마련돼 있지 않아서다. 유럽연합(EU)이 올해 안으로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현재는 참고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각 국가마다 사전 예방적 차원의 규제는 존재한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환경호르몬 리스트를 작성하려는 움직임을 재개했다. 아직 목록의 형태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환경부는 1999년 이후 환경 중 내분비계 장애물질 모니터링과 위해성 평가를 지속적으로 실시해 왔다. 현재 국내 내분비계 장애물질은 세계야생기금 목록에 근거해 모두 67종이 선정됐다.

 

국내에서 사용되지 않는 물질 16종을 제외한 51종 중 42종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의해 사용이 금지되거나 취급이 제한되고 있다. 그 근거인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2015년 1월1일부터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과 ‘화학물질관리법’으로 바뀜에 따라 환경호르몬을 관리하는 근거법령도 새로운 두 법으로 이전됐다. 이 법에 따라 현재 펜타노닐류, 비스페놀A,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 디부틸벤질프탈레이트(DBBP) 등 4종의 물질이 관찰물질로 지정돼 제조량·수입량·용도 등을 신고하도록 관리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모든 플라스틱 재질의 완구와 어린이용 제품에 DEHP·DBP·BBP 등 3종을 사용하는 것을 전면 금지했다. 환경호르몬 의심물질인 페닐파라벤도 화장품을 만드는 데 쓸 수 없으며, 이들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을 국내에 들여올 수도 없다. 2014년에 EU는 5가지 종류의 파라벤(이소프로필파라벤·이소부틸파라벤·페닐파라벤·벤질파라벤·펜틸파라벤)이 들어간 화장품을 수입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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