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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위안부’, 그 생존의 기억》 #마지막회. “우린 태어난 이 나라에서 버려졌다”

무산된 기지촌 여성 특별법…국가가 책임지도록 법 뒷받침돼야

조유빈 기자 ㅣ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9.13(Tue) 06:00:38 | 14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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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세 내고 기름을 못 넣고 사는 언니들도 여러 명이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런 분들 많아요. 그리고 알뜰하게 모아서 전세 거리라도 있는 사람들은 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돼서…병원비나 다른 지원이 전혀 없어서 사실 아파도 병원비 때문에 못 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병원 간다고 전세보증금을 뺄 수도 없는 거고…몸이 다들 병덩어리라 병원비도 모자라요.”

 기지촌 여성들의 건강은 중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성병에 걸리지 않은 기지촌 여성들의 신체’였다. 미군에게 병이 옮아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오로지 성병만 단속했다. 그렇게 기지촌 여성들은 누구나 보장받아야 할 건강권도, 보건권도,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도 없었다. 기지촌 여성들은 자신들이 ‘병덩어리’가 됐다고, 그래서 삶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마치 그 병들이 몸에 남아 이후의 삶까지 갉아먹고 있는 것처럼.

 

 

2015년 1월30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한국 내 기지촌 미군위안부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 2차 변론기일 기자회견’에서 기지촌여성인권연대, 새움터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3년 말, ‘기지촌 성매매 피해여성 진상규명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기지촌 여성들의 심각한 주거 문제와 생계 위협, 심리적 박탈감 등을 해소하기 위해, 또 그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실태를 전면 조사하고 경제적인 지원을 하기 위해 법률을 마련하자는 내용이었다. 기지촌 여성들은 “우리를 위한 법안을 만들어 주시려 이렇게 마음을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국가의 사과’였다. 상징적인 의미로라도 사과를 받고, 보상을 받기를 원했다. 이듬해 7월, 김광진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주한미군기지촌 성매매 피해 진상규명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 제2조 3호는 다음과 같다.

 

제2조(정의) 

 

3. ‘피해자’란 기지촌여성 중에서 다음 각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인권 피해를 입은 사람을 말한다

 

가. 위계, 위력,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방법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사람

(중략)

라.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당한 사람

마. 국가기관이 시행한 성병검진 및 치료과정에서 감금, 폭행 등 인권피해를 입은 사람

법안은 기지촌에서 성매매에 종사한 여성을 ‘기지촌 여성’이라 정의했고, 그중 인권 피해를 입은 여성을 ‘피해자’라 규정했다. 그러나 기지촌 여성 중 누가 ‘피해자’가 아닐 수 있을까. 그들이 ‘미군위안부’가 된 것은 위계(僞計)·위력(威力)·인신매매의 결과물이었다. 또 미군을 위한 성병 검진을 받으면서 감금과 폭행이라는 아픔을 보태 겪어야 했다. 

 

법안은 피해자와 그 자녀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에 관한 사항을 정했다. 지원을 심의하고 결정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기지촌여성지원위원회를 두자고 했다. 기지촌인권피해자보상심의위원회를 두고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보상 여부를 논의하는 것도 포함됐다. 치료가 필요한 기지촌 여성에게 의료 지원을 하고, 성매매 후유증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운 이들에게 생활 지원을 하자고 했다. 기지촌 여성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사업과, 그들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로 인해 문제가 생길 경우 무료 법률 지원을 하자는 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법안은 사라졌다. 안건으로 상정되지도 않았다. 경기도에 조례 제정 제안을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이뤄진 것은 경기도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실태조사였다. 이마저도 평택대 학생들과 햇살사회복지회 실무자들의 손으로 이뤄졌다. 이들이 직접 경기도 평택의 송탄과 안정리, 의정부·동두천·파주 지역의 기지촌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에 나선 것이다. 기지촌 여성들은 “뼈에 사무치게 감사하다”고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겠냐고, 눈물이 나려 했다고, 우리를 버리지 않는 분들이 있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는 전국적으로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들어주지 않았다. 

 

경기도의 실태 조사 결과, 낙태·자살시도·약물·성폭행 등의 경험은 기지촌 여성들에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미군과의 삶이 결혼 목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에 건너간 사람들의 80% 이상이 이혼을 당한 뒤 기지촌으로 다시 돌아왔다. 남아 있는 사람들도 갈 곳이 없었다. 잃어버린 ‘순결’ 때문에 자포자기한 여성도 있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저학력·고령·만성질환인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뿐이었다. 가장 크게 닥친 문제는 ‘주거’였다. 창문도 없는 ‘쪽방’에서 더위를 버티고, 난방을 할 수 없는 겨울을 보내며 추위에 시달렸다. 땅값이 오르면서 쪽방도 위협받기 시작했다. 가족과 국가에 의해 버려져 웅크리고 살던 기지촌 여성들의 유일한 보금자리. 그 작은 공간도 사라지게 생겼다. 

 

 

기지촌 여성 인권단체인 햇살사회복지회 우순덕 대표는 국가가 기지촌 여성들을 외면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나라는 할머니들을 ‘애국자’라고 불렀어요. 한 국회의원은 노후에 9평 아파트를 지어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없어요. 주한미군 이전비용이 15조원이 잡혀 있고 해마다 늘어나는데, 할머니들을 위한 예산은 단 1원도 없어요. 마치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시기만 바라는 것 같아요.”

주한미군과 기지촌 여성 문제를 다룬 저서 《동맹 속의 섹스》에 따르면, 기지촌 여성들은 지역경제의 25%를 담당했다. 김기조 전 외교안보연구원 명예교수도 “1년에 100불을 벌기가 어려웠던 시절에 기지촌에서는 한 달에 100불 이상을 벌었다”고 했다. 기지촌 여성들이 고생한 대가로 벌어들인 외화가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됐지만 그곳에서 협박을 당하며 돈을 벌어야 했던 기지촌 여성들에게는 아무 보상도, 애타게 바라는 ‘살 만한 노후’도 없다.

 

 

홀트아동복지회에서 해외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 ⓒ연합뉴스


 

미군기지촌 여성 상담·지원 단체인 두레방의 유영님 대표는 “법이 만들어지는 것은 국가가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책임지고 사죄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얘기다. 전체적인 전수 조사를 해 기지촌 여성들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해야만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낫게 해 줄 수 있다. “지금까지 이들을 버렸던 국가가 이제는 그 역할을 해 줘야 한다”고 유 대표는 말했다. 

 

“기지촌 여성들의 명예 회복도 중요해요. 기지촌 여성들은 가족들과 관계도 많이 얽혀 있습니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찍힌 낙인이 해소되는 역할, 그 역할은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저질렀지만 인정하지 않은 불법. 이를 인정받기 위해 기지촌 여성 122명은 2014년 6월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재판은 2년째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손해배상 청구소송 9차 변론에서도 기지촌 여성들은 국가가 직접 기지촌을 형성하고 발전을 주도했다고 일관되게 말했다. 우리는 태어난 이 나라에서 버려졌다고, 국가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이다. 

 

 

■참고문헌

김현선, 김정자.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 새움터 기획. 한울아카데미, 2013

김현선, 신영숙. 《미군 위안부 역사 자료집》 새움터. 2014 / 캐서린 H.S. 문. 《동맹 속의 섹스》 삼인, 2002

박정미. 《발전과 섹스: 한국 정부의 성매매 관광정책, 1955-1988년》 한국사회학 48.1 (2014)

김환균, 정길화 외. 《우리들의 현대 침묵사》 해냄출판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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