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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언론상-장려상] 관행과 규정 사이의 아찔한 줄타기

軍 ‘전역모’ 선물 관행 갈수록 고액화로 개인 부담 커져…“제도 아닌 의식 전환 필요”

이지성(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이학준(명지대 법학과)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12.02(Fri) 13:32:24 | 14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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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전역한 A씨는 전역하던 날 황당한 일을 겪었다. 연대본부에 근무하고 있는 인사과장이 A씨의 전역모(轉役帽)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A씨의 전역모는 분대원들이 돈을 모아 만들어준 것으로 분대원들의 이름이 ‘오버로크’돼 있었고, 앞면은 화려한 배지로 장식돼 있었다. 인사과장은 “제발 이런 것 좀 만들지 말라”는 훈계를 덧붙이며 A씨가 소속돼 있는 대대에 연락을 취했다. 결국 A씨의 전역모를 만들어준 후임들은 징계를 받아 외출·외박·휴가가 박탈됐다.

 

전역모 선물은 군대 내에서 오랫동안 유지된 관행이다. 전역을 앞둔 선임 병사에게 후임 병사들이 돈을 모아 전역모를 사서 선물한다. 구체적인 방식은 부대마다 제각각이다. 상병·병장만 돈을 모아 사는 경우도 있고 ‘맞후임’(전역자 바로 아래 후임)이 사는 경우도 있다. 분대원 전체가 돈을 모아 사기도 한다. 하지만 전역모 선물은 규정상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행위다.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금전거출’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는 병사들의 금전거출을 금지하고 있다. 군대 조직 특성상 선임 병사 주도로 금전거출이 이뤄지면 후임 병사들은 돈이 없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 때문에 원하지 않더라도 금전거출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A씨의 후임들이 징계를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율적인 의사에 따른 것이라도 엄연히 부대 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규정에도 불구하고 전역모를 만들어주는 문화는 여전히 암암리에 존재한다. 함께 고생했던 선임과 추억을 되새기는 의미에서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다.

 

전역을 앞둔 선임 병사에게 후임 병사들이 전역모를 선물하는 관행은 규정상 엄격히 금지된 행위다. 11월23일 서울 용산구의 한 군장점에 전역모가 진열돼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갈수록 고액화되고 있는 전역모

 

용산역 부근의 한 군장점(軍裝店·군용품을 파는 가게)은 기본 전역모를 1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역모를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전역모 전면을 병과·봉황·날개 등의 배지로 장식할 경우 4만원이 훌쩍 넘었다. 게다가 전역자의 소속부대·기수·이름과 더불어 분대원들의 계급과 성명을 모두 새겨 넣을 경우 가격은 7만원까지 뛴다. 오버로크한 자수가 한 자당 500원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태극기 마크, 소속부대 마크, 레인저 마크 등 다양한 마크까지 새길 경우 가격은 10만원까지 올라간다. 군장점 주인은 “10만원이 넘는 전역모를 제작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책 《군대심리학》의 저자 여인택 작가는 갈수록 고액화되는 전역모에 대해 “다른 사람과 차별화하려는 현대사회 젊은 세대들의 심리가 반영돼 점점 화려하고 비싼 전역모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 SNS에 자신의 화려한 전역모를 자랑하는 심리도 이와 비슷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들보다 더욱 화려하고 비싼 전역모를 받는 것이 군 생활을 잘 보낸 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증표가 됐다.

 

최근 고액화되는 전역모 때문에 몇몇 병사들은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월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부모님께 용돈을 받는 병사에게 부담스러운 금액이 될 수 있다. 보통 육군 보병 기준 분대원 수가 10명이라고 가정하면 막내 병사는 9번의 전역모 금액을 부담해야 한다. 물론 이등병의 돈은 받지 않는 등 나름의 배려가 있지만, 계급이 높을수록 돈을 더 내야 한다. 결국 앞선 통계처럼 대부분의 병사들이 군대 내에서 돈 문제로 고충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금전거출 방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제는 ‘강제성’이다. 철저히 계급과 상명하복의 논리가 지배하는 군대 내에서 후임 병사의 자율성은 지극히 제한적이기 마련이다. 올해 4월 입대해서 강원도 양구 인근의 육군부대에서 복무 중인 이아무개씨는 “일병이 되자마자 선임의 전역모 선물을 위한 돈을 내게 됐다. 그 선임과는 지낸 시간도 적을뿐더러 별로 친하지 않아 내고 싶지 않았지만 분위기상 거부할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금전거출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내고 싶은 사람만 내라”고 말하더라도 ‘짬’(군대에서 서열을 표현하는 은어)이 낮은 병사들은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분위기에 편승할 수밖에 없다. 또한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자신들도 전역모를 받아야 할 차례가 오기 때문에 관행에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금전거출을 통한 전역모 선물 관행에 대해 국방부 홈페이지에 문의한 결과 “금전거출은 형법 제342조(강요), 군인복무기본법 제26조(사적 제재 및 직권남용의 금지) 등의 법률을 위반한 행위이므로 군인징계령 제13조(징계 등의 양정)에 따라 처벌(통상 근신~휴가제한)하고 있다는 것을 부대별 지휘관 정신교육 및 군법교육에서 강조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국방부는 또 “군은 강요, 금전거출 등과 같은 부조리가 병영 저변의 오랜 적폐라고 인식하고, 이를 척결하기 위해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으며, 인권·군법교육 등을 통해 상호 존중하고 배려하는 병영문화를 조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 병영정책과에 근무하는 관계자도 전화인터뷰에서 “전역하는 병사에게 전역모를 선물하는 것은 당장 없어져야 할 악습”이라며 “강력하게 단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헌병대가 전역모 및 군 피복을 파는 군장점을 감찰해 적발활동을 하고 있다”며 “아직도 금전거출로 전역모를 선물하는 부대가 존재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취재진이 몇몇 육군 부대의 현역 군인들과 인터뷰한 결과, 여전히 전역모를 선물하고 있었다. 양구 인근의 부대에서 복무 중인 최아무개씨는 “얼마 전 마음의 편지(부대 내 불만 사항을 적는 수단)에 전역모를 위한 금전거출에 대한 불만이 등장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후 대대 차원에서 적발 시 엄격히 징계 조치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암암리에 병사들은 전역모를 만들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용산역 인근의 군장점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 가게는 여전히 많은 병사들의 전역모를 제작하고 있었다.

 

올해 6월 전역한 장교 출신의 C씨는 “상급부대의 지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단속이 쉽지 않다. 병사들이 휴가를 나가서 군장점에서 주문하고 전역자가 전역하는 날 찾아가는 방식의 경우 사전에 누군가 이를 고발하지 않는 이상 처벌이 어렵다. 징계 처리를 하더라도 돈을 모아 선물한 병사들이 받게 된다”고 전했다. 과거 군기교육대 교관으로 근무했던 B씨는 이런 관행에 대해 “금전거출의 방식은 부적절한 방법이다. 그런데도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이런 식의 악습은 대물림의 방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며 “‘나 때는 돈을 냈는데 내가 못 받아서는 안 된다’는 식의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전역모 선물 관행이 뿌리 깊은 탓에 전역모 전문 인터넷쇼핑몰까지 생겨나고 있다. © 군스토리 캡쳐


제도만으로 관행이 없어지진 않는다

 

부대에서 금지하고 있음에도 전역모 문화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국방부와 군 장병들의 인식 차이에 기인한다. 다수의 예비역들은 이런 문화가 나쁠 게 없다는 의견이다. 2년 전 전역한 정아무개씨는 “군대에 있을 당시에도 이걸 부조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우리 부대에는 전혀 강요하는 분위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예비역 류아무개씨도 “21개월간 군대에서 고생했는데 이 정도 선물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비역들 대부분의 생각은 비슷했다. 강제성이 없다면 괜찮다는 생각과 일종의 ‘보상심리’로 인해 전역모 선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군 장병들의 갈등요인을 분석한 한국국방연구원의 보고서는 특정 악습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에 대해 ‘지휘관이 장기적인 교육을 통해 군 장병의 의식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외형적 제도 보완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즉, 국방부가 전역모 문화를 뿌리 뽑아야 할 악습으로 규정했지만 전역모 관행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군 장병들을 설득하지 않고 규정에만 의거해 단속하는 1차원적인 접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인식 전환과 공감대 형성에서 출발해야
이지성(왼쪽), 이학준 © 시사저널 임준선


옛날부터 ‘책거리’라는 문화가 있었다. 서당에서 책을 한 권 뗄 때 훈장님의 노고에 감사드리는 의미로 학동들이 소박한 음식과 술을 훈장님에게 대접하는 문화다. 이런 문화는 시간이 흘러 ‘촌지’라는 형태로 변질됐다. 최근에는 ‘김영란법’이 통과돼 제자가 교수님에게 커피 한 잔 대접하는 일조차 금지됐다. 법으로 인해 우리가 그동안 관행이라 여겼던 것들이 사라져야 할 악습으로 규정됐다.

대한민국의 20대 젊은 남성들이 복무 중인 군대에서 전역모를 선물하는 관행 역시 정(情) 문화와 악습 사이에서 아찔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땀에 찌든 기존 전투모 대신 분대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깨끗한 전역모 하나 마련해 전역을 앞둔 선임 병사에게 이별의 선물을 하는 것이 전역모 문화다. 전역자는 동고동락하며 함께 웃기도 울기도 했던 추억을 전역모 하나에 담아 사회로 ‘원대복귀’ 한다. 하지만 전역모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분대원들 간의 금전거출 문제는 악용의 여지가 있다.

취재를 진행할 무렵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이로 인해 그동안 당연시 여겨졌던 관행을 뿌리 뽑을 수 있을지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하지만 전역모 사례처럼 관행의 변화는 제도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전환과 사회 구성원의 공감대 형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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