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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15년 악몽 드라마 ‘드들강 살인 사건’ 끝나지 않았다

피의자 여전히 범행 부인…피해자 가족은 풍비박산

정락인 객원기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06(Fri) 15:00:02 | 14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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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다. 일명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은 우리나라 범죄 수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성년인 여고생 성폭행-장기미제 사건 분류-과학수사 발전-DNA 일치 용의자 확보-검경 재수사-검찰 불기소-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전면 재수사-피의자 기소 등의 과정을 거쳤다.

 

피의자는 미꾸라지보다 더 수사망을 잘 빠져나갔고, 주도면밀했다. 검찰은 피의자의 DNA까지 확보해 놓고 논리적 모순에 빠져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가 우여곡절 끝에 기소했다. 그 사이 피해자 가족은 악몽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가정은 완전히 파괴됐고 풍비박산됐다. 비록 범인이 기소돼 재판에 회부됐으나 이 사건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 시사저널 박은숙·pixabay


한 달 만에 미궁으로 빠진 사건

 

광주광역시 남구에 거주하던 박수연양(사망 당시 18세)은 발랄한 여고 2학년이었다. 지난 2001년 2월4일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박양은 외출하듯이 집을 나섰다. 누군가와 한참 동안 인터넷 채팅을 하고 난 후였다. 상대방이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그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박양은 오전 3시30분쯤 집 근처 PC방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다.

 

목격자 A군(17)에 따르면, 박양은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성 2명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 박양은 집에서 16km나 떨어진 전남 나주 남평읍의 드들강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한겨울인데도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시신은 마치 버려진 마네킹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어머니 최아무개씨(59)는 아침에 일어나 보니 큰딸이 보이지 않았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는 첫날이다. “얘가 어디 갔을까?” 하고 한참을 찾았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나주에서 여자 시체가 발견됐다는 TV 뉴스가 나왔다. 최씨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남편이 “빨리 한 번 가봐”라고 하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택시를 타고 나주로 달려갔다. 그런데 ‘설마’ 했던 딸이 그곳에서 시신으로 누워 있었다.

 

경찰은 박양의 시신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부검을 의뢰했다. 박양의 목에는 졸린 흔적이 있었으나 사망원인은 ‘익사’로 특정됐다. 사망 추정시간은 해가 뜨기 전인 오전 7시쯤이었다. 박양의 몸에는 여러 가지 단서가 있었다. 허벅지에 여러 개의 상처가 있었고, 오른쪽 사타구니에서는 멍 자국도 보였다. 속옷을 벗기지 못하게 하려다가 생긴 상처로 보였다. 박양의 질에서는 정액이 발견됐다.

 

박양의 시신에서는 사망원인을 유추할 수 있는 몇 가지 특이점이 있었다. 박양은 사망 당시 생리 중인 것이 확인됐다. 그런데 정액과 생리혈이 섞이지 않았다. 법의학자들은 이것을 박양이 성폭행당한 후 곧바로 살해됐다는 유력한 증거라고 제시했다.

 

또 하나는 얼굴에 빨간 ‘안면 울혈’이 생겼다. 얼굴에 피가 몰려 생긴 현상으로 사망할 때까지 목이 졸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범인은 박양을 성폭행한 후 물속에 얼굴을 넣은 상태에서 목을 눌러 살해한 것이 된다. 당시 기술 부족으로 시신에서 지문을 채취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박양의 소지품을 확보하기 위해 사건 현장과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옷가지 등 소지품은 발견할 수 없었다. 박양의 휴대전화는 사건 하루 전날 분실된 상태였다. 박양의 시신을 살펴본 어머니는 딸이 손에 끼고 있던 실반지가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마지막 목격자인 A군을 불러 조사를 했으나 박양과 함께 있던 남성들의 얼굴을 기억해 내지는 못했다. 박양이 사귀던 남자친구가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운전을 하지 못해 배제됐다. 광주에 사는 박양이 연고가 없는 나주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범인은 승용차를 이용해 이동했을 가능성이 컸다.

 

故 박수연양의 생전 모습 © 故 박수연양 가족 제공


15년 만에 드러난 범인의 실체

 

경찰은 박양의 거주지 주변 우범자와 동종 전과자 등 용의선상에 있던 200여 명의 머리카락을 뽑아 DNA를 대조했지만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경찰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한 달 이상 수사했지만 도무지 범인의 윤곽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박양 사건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 미제(未濟)로 남았다.

 

그 사이 박양의 가족들은 악몽과도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갑작스러운 딸의 죽음과 미궁에 빠진 사건. 가족들의 평범했던 삶도 완전히 파괴됐다. 유독 큰딸을 예뻐했던 박양의 아버지는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삶을 비관하며 술로 세월을 보냈다.

 

밤에는 매일 “수연이가 오라고 하는 꿈을 꾼다”며 괴로워했다. 그러다 결국 사건 발생 8년째가 되던 해인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딸의 곁으로 간 것이다. 어머니 최씨는 그렇게 딸과 남편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망자들의 한은 고스란히 살아 있는 가족들의 한으로 남았다. 어머니 최씨는 “우리처럼 힘없고 빽 없는 사람은 계속 이렇게 당하고 살아야 하는가 생각했다. 못난 엄마라서 부족한 엄마라서 수연이한테 너무 미안하고 또 부끄럽다”고 한탄했다.

 

영원한 미제로 남을 뻔했던 이 사건은 과학수사가 발전하면서 점점 수면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2012년 9월 검찰은 장기미제 성폭행 사건 해결을 위한 검경 간 DNA-DB 교차 검색작업을 벌였다.

 

국과수에 보관 중인 장기미제 사건 피해자의 질에서 나온 정액 DNA와 교도소에 수감 중인 피의자의 DNA를 대조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박양의 몸에서 나온 DNA와 일치하는 사람이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2003년 7월 광주 동구에서 전당포 주인 등 2명을 유인해 잔혹하게 살해한 김아무개씨(39)였다.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김씨가 살해해 야산에 암매장한 시신 2구도 알몸 상태로 발견됐다. 박양 사건과 살해 수법이 비슷했다. 박양이 살해될 당시 김씨는 전과 8범이었다.

 

경찰은 DNA 일치 사실을 숨기고 교도소에 있는 김씨를 면담한 결과, 평소 드들강을 자주 갔다 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본격 재수사에 나서자 김씨와 박양의 연결고리가 속속 드러났다. 사건 당시 김씨는 박양의 집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그가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주소지가 전남 장성의 형 집으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가 박양이 다니던 오락실에도 자주 드나들었다는 것도 확인됐다. 김씨는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경찰수사가 개시되는 시점에 개 12마리를 훔쳐 절도죄로 수감된다. 교도소를 은신처로 삼기 위해 의도적으로 절도에 나섰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김씨는 순순히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박양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했다. 경찰은 박양의 몸에서 나온 DNA 등을 핵심 증거로 해서 김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공은 검찰로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검찰은 변호사까지 선임한 김씨의 논리에 말려들었다.

 

김씨는 처음에는 박양을 모른다고 했다가 “(박양과) 성관계는 사실인데 죽이지는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그리고 “내가 관계한 수많은 여자들 중 한 명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성관계는 했으나 죽이지는 않았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김씨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나와 성관계 후 다른 사람에게 살해됐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김씨 주장에 대한 확실한 반박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던 검찰은 고민이 깊어졌다. 결국 검찰은 2014년 10월 김씨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기소를 포기한 것이다. 다 잡았던 고기를 놓아준 셈이 됐다.

 

검찰의 불기소 방침은 박양의 가족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가족들은 “불기소 처분을 도저히 이해 못하겠다”며 반발했다. ‘성관계는 있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는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인 검사에 대해 “딸과 남편을 두 번 죽였다”며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전남 장성군 동화면에서 전당포 주인 등 2명을 살해 암매장한 뒤 1억여원의 현금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 김아무개씨가 2003년 2월14일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 법정 최고형 ‘사형’ 구형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은 이렇게 영원히 묻히는 듯했다. 시간은 흘러 공소시효가 완성되는 시점이 다가왔다. 그런데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났다.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한 일명 ‘태완이법’이 시행되면서 검경은 2016년 2월 검경합동 수사체계를 구축해 전면 재수사에 들어갔다. ‘태완이법’ 첫 적용 사례다.

 

검경은 김씨의 과거 동료 수감자 350명을 모두 조사했다. 이 중 동료 재소자 B씨로부터 유력한 증언을 확보했다. 김씨가 자신의 혐의에 대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강진을 찾아 사진을 찍었고, 또 재판에 대비해 사전 연습까지 한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B씨는 “김씨가 나한테 접근해서 이번 사건으로 조사받는 것을 털어놨다”며 “김씨가 여고생과 성관계를 가졌는데 생리 중이어서 성기에 피가 묻어나왔다는 말을 했고, 성관계 중 아프다고 거부하자 제압하고 성관계를 가졌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김씨가 수감 중인 교도소 사물함을 뒤져 알리바이 조작용으로 추정되는 사진 등도 찾아냈다.

 

김씨는 교도소 안에서 ‘가석방 시나리오’를 세워놓고 있었다. 각종 자격증을 취득해 모범수 흉내를 내면서 호시탐탐 교도소 담장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씨가 드들강 살인 사건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검찰은 사건 발생 15년6개월 만인 2016년 8월5일 김씨를 강간 살인죄로 기소했다. 이날은 숨진 박양의 생일이다. 어머니는 “딸의 생일날 큰 선물을 받았다”며 기뻐했다. 12월26일 광주지법 제11형사부에서는 피의자 김씨에 대한 결심 공판이 열렸다. 강간 살인죄로 기소된 김씨에게 검찰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재판정에 있던 박양 가족들은 눈물을 흘렸다. 특히 박양의 어머니의 감회는 남달랐다. 드디어 큰딸 살인범에 대한 법적 처벌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망자의 한이 풀린 것은 아니다. 피의자가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재판 결과는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박양의 어머니는 길고 길었던 악몽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비명에 간 딸과 그 딸을 그리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남편의 영혼이 편히 잠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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