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前 총장, 가족 이익 위해 ‘유엔’ 이용했다”
  • 구민주 기자·남상훈 세계일보 기자 (mjooo@sisapress.com)
  • 승인 2017.01.23 11:01
  • 호수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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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전문 기자, 본지에 제보…“반 총장 시절, 족벌주의 시대” 비판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의 링에 오르자마자 검증 펀치가 날아들고 있다. 반 전 총장과 그의 형제들을 둘러싼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외교관에서 정치인으로 전직(轉職)한 신참이 감내해야 할 신고식인 셈이다. 묵직한 펀치에 연타를 당한 반 전 총장이 정치적 맷집을 가늠하는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다. 반 전 총장 측이 검증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설 연휴까지 지지율을 끌어올릴 골든타임을 놓쳐 지지율이 급락할 수 있다는 ‘2월 위기설’도 제기된다.

 

본지는 2016년 12월24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23만 달러를 줬다”고 보도했다. 파문은 컸다. 그러자 반 전 총장은 1월12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박연차씨가 나에게 금품을 전달했다는데 내 이름이 거기에 왜 등장했는지 알 수 없다”고 부인했다. 반 전 총장은 본지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지만, 형사 고소는 하지 않았다. 이에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낀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월17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하자 반 총장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발언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반 전 총장의 사위, 유엔에서 빠르게 승진”

 

‘반기문 23만 달러 수수 의혹’ 보도가 나간 지 사흘 후인 12월27일, 미국에서 본지에 이메일이 날아왔다. 발신인은 뉴욕 유엔본부에 10년 이상 출입한 미국의 유엔 전문매체 ‘이너 시티 프레스(Inner City Press·ICP)’의 매튜 러셀 리(Matthew Russell Lee) 기자였다. 매튜는 “반 전 총장은 그의 가족 이익을 위해 유엔을 이용했다(Ban absolutely used the UN to benefit his family)”면서 수년간 취재해 온 반 전 총장의 친인척이 얽힌 각종 비리 의혹을 알려왔다. 그는 “반 전 총장이 한국 대선 출마를 결심한 지금, 모든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아 메일을 보낸다”고 덧붙였다.

 

매튜가 가장 먼저 의혹을 제기한 대상은 반 전 총장의 둘째 동생 반기호씨였다. 반기호씨가 미얀마에서 보성파워텍과 KD파워라는 두 회사를 운영하면서 ‘유엔 대표단(UN Delegation)’ 신분으로 사업을 진행해 왔다는 것이다. 매튜가 이에 대해 유엔 측에 질문을 하자, 그 직후 반기호씨 의혹을 증명할 인터넷상의 자료 중 일부가 갑자기 삭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매튜는 “유엔이 반기호씨의 사업을 사실상 도운 셈이며,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감추려 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 현지에서 뇌물죄로 기소된 반 전 총장의 조카 반주현씨의 경우, 그가 근무하고 있는 부동산 중개업체 ‘콜리어스 인터내셔널’이 유엔본부 건물의 임대주(landlord)라고도 밝혔다. 유엔이 반씨가 속한 회사에 임대료를 지급했다는 것이다. 메튜는 또 반 전 총장의 둘째 딸과 2006년 결혼한 인도인 사위 싯다르트 채터지 유엔 케냐 상주조정관에 대한 의혹도 제기했다. 매튜에 따르면, 싯다르트는 반 전 총장 임기 동안 유엔 내에서 비정상적일 만큼 빠르게 승진했으며, 과거 스리랑카 내전 당시 전쟁범죄에 가담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매튜는 이 모든 의혹이 불거진 반 총장 시절을 ‘족벌주의 시대(Era of nepotism)’라고 표현했다.

 

미국 유엔 전문매체 ‘이너 시티 프레스’의 매튜 러셀 리 기자 © 매튜 제공

매튜는 반 전 총장이 임기 중 보인 언론 통제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반 전 총장을 ‘반(反)언론주의적(anti-press)’이라고 표현하며,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시절과 비교해 반 총장 취임 후 유엔 내 취재와 소통이 엄격히 제한됐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총장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사의 경우 철저하게 배척했다고도 강조했다. 실제 매튜가 속한 ICP 역시 경비요원에 의해 하루아침에 유엔 사무실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는 “반 전 총장은 자신을 칭찬하는 데만 언론을 이용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매튜는 최근 일부 국내 언론과 접촉하며 반 전 총장을 둘러싼 이 같은 의혹들을 폭로하고 있다. 동시에 ICP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미국 현지에 반 전 총장의 귀국 후 행보를 꾸준히 알리고 있다.

 

본지의 ‘23만 달러’ 보도가 팩트(사실)임을 뒷받침하는 보도도 잇따랐다. 최근에는 ‘박연차 리스트’에 반 전 총장이 포함돼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겨레신문은 1월18일자에서 전·현직 검찰 관계자 증언을 통해 “박연차 회장이 돈을 건넨 인사들을 정리해 2009년 대검 중수부에 제출한 ‘박연차 리스트’에 반기문 전 총장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팩트(사실)”라고 보도했다. 검찰 관계자들은 또 “박 전 회장의 여비서 이현○씨가 회장의 일정과 동선, 지시사항 등을 정리해 놓은 다이어리에도 2005년 무렵 반 전 총장의 이름이 두 번 적혀 있는 것을 확인했었다”고 말했다. 2005년이면 반 전 총장이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다.

 

반 전 총장의 첫째 동생과 조카도 불미스러운 의혹에 휘말렸다. 반 전 총장의 첫째 동생 반기상씨와 조카 반주현씨가 미국 연방검찰에 뇌물공여, 사기, 돈세탁 등 모두 12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2013년 한 중동국가 관리에게 경남기업의 베트남 소재 ‘랜드마크72’ 빌딩 매입에 국부펀드를 끌어들여 달라며 50만 달러를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반주현씨는 미국 현지에서 체포됐지만, 반기상씨는 아직 검거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 총장 임기 중 유엔 출입 언론 통제 의혹도

 

그런데 반 전 총장은 동생 기상씨 부자의 사기극이 전개되고 있는 중에도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만났다고 JTBC가 보도했다. ‘성완종 다이어리’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은 2013년 8월27일 오전 9시15분, 롯데호텔에서 성완종 전 회장과 단둘이 만난 기록이 남아 있다. 독대 하루 전날인 26일엔 충청포럼 행사에 참석했다. 당시는 경남기업이 랜드마크72 매각에 사운을 걸었을 때로 반기상씨 부자가 이를 주도하던 때다.

 

반 전 총장은 1월12일 귀국길에 취재진과 만나 동생 반기상씨와 조카 반주현씨의 뇌물 관련 기소 건에 대해 “깜짝 놀랐다. 가까운 가족이 연루된 것에 당황스럽고 민망스럽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송구하다”고 밝혔다. 이어 조카·동생 기소에 대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며 “장성한 조카여서 사업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었고, 만나지도 않았다”고 일축했다.

 

이 같은 반 전 총장 자신과 가족들이 연루된 강펀치뿐 아니라 아픈 잽(Jab)들도 있다. 반 전 총장의 신천지 연루설, 동성애 옹호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기독교 신자가 많고 유교 문화 뿌리가 깊은 우리 사회에선 민감한 사안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전 카이스트를 방문한 1월19일,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방문에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반 전 총장 동생들 의혹도 아킬레스건

 

CBS 노컷뉴스는 최근 사이비 신천지가 제작한 영상 홍보물에 반 전 총장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과 관련해 신천지 연루 의혹을 제기했다. 반 전 총장 측은 신천지 동영상 논란에 대해 “지난해 3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여성평화의 날 행사에 참석한 IWPG(신천지 관련 단체) 김남희 대표와 우연히 사진을 찍은 것일 뿐, 아는 사이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반 전 총장은 동성애 인권 보호를 주장해 기독교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그는 2015년 뉴욕에서 열린 집회에서 성소수자 인권 지지 연설로 박수를 받았다. 그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소수자 핍박에 대해 “성소수자의 인권이 학대당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인권이 깎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의 45년 지기 임덕규 전 의원은 반 전 총장이 자신과의 통화에서 “‘유엔 입장에선 만민이 평등하다는 그런 개념이지 동성애를 지지하고 찬양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고 적극 해명했다”고 밝혔다.

 

야당은 반 전 총장의 각종 의혹에 대해 직접 해명을 압박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반 전 총장은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해당 언론사(시사저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서 당시 대검 중수부에 제출된 박연차 리스트를 공개해 국민 앞에 진위 여부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과 동생을 둘러싼 의혹은 반 전 총장을 위협하는 아킬레스건이다. 대선행보 지속이냐, 중도 포기냐를 좌우할 결정타가 될 수 있어서다. 그래서인지 칼날 검증대에 선 반 전 총장은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실무근” “모른다”는 말로 얼버무려 검증을 피하려는 모습은 사각의 링에서 상대편의 펀치를 피해 도망 다니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순실로 인해 제3자 뇌물죄 혐의로 국회에서 탄핵된 터라, 반 전 총장과 형제들의 의혹에 국민이 넌더리를 낼 법하다. 야권의 한 인사는 “유력한 대선 주자라면 응당 국민 앞에 진위 여부를 밝히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며 “도덕성과 자질 검증의 벽을 넘어야 비로소 대선후보 자격도 갖출 수 있다. 반 전 총장이 ‘23만 달러 수수 의혹’에 떳떳하면 시사저널을 형사 고소해서 스스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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