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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의 생생토크] “마흔 살 넘어서까지 열심히 달려온 나 자신에게 고맙다”

올 시즌 마치고 은퇴 의사 밝힌 NC의 ‘큰형님’ 이호준 선수 “철없던 시절 사고 많이 쳤던 경험, 지금 후배들 대할 때 도움 돼”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1.30(Mon) 13:00:40 | 14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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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6일 경남 창원 마산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 구단 신년회. 이날 이호준은 많은 기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박수칠 때 떠나고 싶었다”면서 “2017 시즌을 마치고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호준은 2016 시즌 후 FA(자유계약) 자격을 취득했지만 권리 행사를 하지 않고 구단과 연봉 7억5000만원에 1년 계약을 맺은 바 있다.

 

1994년 광주일고 졸업 후 해태 타이거즈에 오른손 투수로 입단했던 이호준은 1년 만에 타자로 전향했고, 2000년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된 이후 2007 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으로 SK와 4년 34억원의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거액의 FA 계약을 이끌었지만 2008년부터 2년 동안은 암흑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무릎 부상 등으로 몸값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팬들의 비난과 원성을 한 몸에 받았고, 2012 시즌을 마치고 두 번째 FA 권리를 행사하면서 신생팀 NC 다이노스로 이적하게 된다. 그리고 이호준은 NC에서 제대로 일어섰다. 2013 시즌부터 4년 연속 20홈런을 때렸고, 지난해 타율 0.298 21홈런 87타점으로 타선의 중심축을 형성했다.

 

1월19일 오후 마산구장에서 이호준을 만났다. 인터뷰를 위해 구장 내 접견실에서 기자와 마주 앉은 이호준은 홍보팀 관계자가 커피 운운하자, “난 라테야, 촌놈이라 아메리카노 못 먹는다”고 크게 말하고선 웃는다. 언제 봐도 유쾌하고 호탕한 성격으로 상대를 참 편하게 해 주는 사람이다.

 

© 이영미 제공


구단 신년회에서 은퇴를 공식화한 이후 주위의 반응이 어떤가.

 

“휴대폰 배터리가 금세 소모될 정도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나타냈다. 먼저 걱정부터 하시더라. 앞으로 뭐 먹고 살 거냐고. 격려도 많이 받았다. 뭘 해도 먹고살 놈이라면서. 지인들은 아쉬움을 크게 나타냈다. 아무래도 가까운 사람들이다 보니 더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이런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만큼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걸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아, 그리고 이건 다시 한 번 분명히 하고 싶다. 지금 당장 은퇴하는 게 아니라 올 시즌을 뛴 다음 은퇴한다.”

 

 

은퇴를 결심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들었다.

 

“2012년 SK에 있을 때 내 입에서 처음으로 은퇴 얘기가 나왔다. 당시 시즌이 시작됐음에도 계속 경기에 나가지 못했다. 정확한 이유를 모르는 상황이었다. 아, 내가 이 팀에 더 이상 필요한 존재가 아닌가 보다 싶어서 이만수 감독님을 찾아갔다. 감독님한테 ‘더 추해지기 전에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감독님이 깜짝 놀라시더니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좀 더 생각해 봐라’라고 대답하시더라. 일단 날 달래려 하신 듯했다. 재미있는 건 그다음 날 시즌 개막 후 처음으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타순도 8번 지명타자였다. 상대팀이 삼성이었는데 내가 타석에 서니까 포수가 놀라더라. ‘형, 8번이에요?’하면서. 그날은 세 차례 볼넷으로 나갔고, 이튿날 차우찬을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때려냈다(4월27일). 정규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붙박이 4번 지명타자로 출장했고, 그해 타율을 딱 3할 기록하고 생애 두 번째 FA를 맞이해 NC 다이노스로 오게 된 것이다.”

 

이호준은 2013 시즌부터 4년 연속 20홈런을 때렸다. © NC 다이노스 제공


이미 2012년 은퇴를 결심했다고 해도 꼭 올 시즌을 마치고 은퇴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 충분히 더 뛸 수 있는 체력과 실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데 말이다.

 

“시즌 앞두고 먼저 선언하듯이 은퇴를 발표한 건 멋있게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즌 성적에 상관없이 결심을 굳히고 시즌을 치르는 게 성적에 따라 은퇴를 결심하는 것보다 좀 더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마흔 넘어서 하는 은퇴인데 야구에 대한 고마움, 사람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고 싶었다. 그게 야구에 대한 예의라고 봤다.”

 

 

김경문 감독이 올 시즌을 앞두고 NC를 젊고 빠른 팀으로 변화시키겠다고 선언했다. 혹시 그 부분이 은퇴를 결심하는 데 영향을 미친 건가.

 

“두 가지를 놓고 고민했었다. 감독님의 구상이 그렇다면 내가 (이 자리를) 붙잡고 있을 경우 모든 사람들이 불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난 더 이상 젊지도, 빠르지도 않은 선수이다. 내가 물러난다면 그 자리를 채울 훌륭한 후배들이 많다. 충분히 자기 몫을 해 줄 친구들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자리에 욕심내지 말고 깨끗이 물러나는 게 맞다. 또 하나는 감독님께서 2~3년 전부터 멋지게 은퇴하길 바라셨다. 자주 하셨던 말씀이 ‘네가 잘하고 힘 있을 때, 그럴 때 은퇴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달리 들으면 내게 은퇴를 권유하셨다고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난 오히려 인생의 선배가 전하는 조언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이 먹은 내가 이 팀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사실이, 그걸 깨닫는 상황이 서글픈 적도 있지만, 성적 때문에, 야구를 못해서 물러나는 게 아닌 터라 어렵지 않게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마흔 살 넘어서까지 열심히 달려온 나 자신에게 고맙기도 하고, 모든 환경을 만들어준 구단에 더 고마울 따름이다.”

 

 

올해로 프로 24년 차를 맞이한다. 통산 기록을 살펴보면 2000안타에 169개가 모자라고, 330개 홈런을 달성했기 때문에 장종훈이 보유한 340홈런에 10개 차이로 따라붙었다. 올 시즌 11홈런만 추가하면 역대 우타자 최다 홈런의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1000득점 달성에도 70득점이 모자란 상태이다. 이 모든 건 올해 또는 내년까지 뛰면 이룰 수 있는 기록들이다. 평생 만들어 놓은 기록들이라 ‘점’을 찍고 그만두고 싶었을 텐데.

 

“잘하면 홈런과 득점은 올 시즌에 달성할 수 있는 기록들이고, 2000안타 달성이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렇게 숫자에 연연하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라고 왜 그 기록들이 욕심나지 않겠나. 모든 건 때가 있기 마련이고, 올 시즌이 그때라고 본다. 올 시즌 멋진 활약으로 시즌 마칠 즈음엔 팬들이 ‘조금만 더 해 달라’고 아쉬워할 정도의 성적을 내고 싶다. 내가 늘 꿈꿔왔던 장면이 있다. 골든글러브나 한국시리즈에서 MVP에 오른 다음 수상 소감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그동안 NC 구단과 김경문 감독님, 코칭스태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사실 2012 시즌을 마치고 두 번째 FA 기회가 찾아왔을 때 고민이 많았다. FA를 선언해야 하는지, 아니면 SK에 잔류해서 재계약해야 하는지를 놓고 생각을 거듭하다가 불안한 마음으로 FA를 선언했는데 가장 먼저 NC에서 연락을 해 왔다. 당시 김경문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내게 해 주셨던 말씀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우리 팀에는 호준이 네가 꼭 필요하다’고, ‘너랑 함께하고 싶다’고 하셨던 말씀을. 이미 은퇴를 결심했던 내게 ‘팀에 필요한 선수’라며 손을 내밀어주신 부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호준은 올 시즌을 마치고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 NC 다이노스 제공


사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여러 선수들이 은퇴를 발표했다. 그중 가장 안타깝게 들렸던 은퇴 소식은 누구였나.

 

“LG 이병규 형과 두산 홍성흔이었다. 병규 형은 나보다 1년 선배이고, 성흔이는 1년 후배이다. 모두 KBO리그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들 아니었나. 고참 선수들은 단 한 번, 그 단 한 차례 성적이 떨어지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른 팀 선수들이라 내가 뭐라고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한 번 더 기회를 줬더라면, 그래서 스스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줬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는 그들은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면 자신의 역할을 소화하고 멋지게 야구장을 떠났을 것이다. KBO리그를 위해 헌신을 다한 선후배들이기에 나로선 그들이 좀 더 화려하고 멋있게 떠나길 바랐다.”

 

 

좀 다른 질문을 해 보겠다. 해태 타이거즈 시절 ‘사고뭉치’로 유명했다. 하도 도망을 잘 가서 별명이 ‘빠삐용’ 아니었나.

 

“그때 얘기를 다 하려면 3박4일로도 부족하다(웃음). 참으로 철딱서니 없는 사람이었다. 야구하기 싫다고 대책 없이 도망만 다녔으니까. 아마 경기 중 5회 클리닝 타임 때 도망간 놈은 나밖에 없을 거다(웃음). 아버지가 경찰공무원이셨는데 광주에 아는 지인들을 동원해서 내가 도망가는 길을 차단해 놓은 적도 있었다. 지금은 kt에 계시는 조찬관 매니저가 2군에 계셨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셨다. 나 잡겠다고.”

 

 

신인 시절이었을 텐데, 도대체 왜 그렇게 도망 다녔나. 야구하기 싫었으면 그냥 그만두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그만두려 했다. 아버지가 날 붙잡아 놓고 눈물을 흘리시며 정신 차리라고 애원하시는데 나도 눈물 흘리며 야구 못하겠다고 애원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아버지 손잡고 구단 사무실을 방문했다. 야구 그만두려고. 아버지도 더 이상 나를 설득하지 못하셨고, 팀에 좋지 않은 영향만 미칠 바엔 하루빨리 그만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셨다. 당시 해태 1군에는 선동열·이대진·이강철 등 쟁쟁한 선배들로 가득했다. 투수로 해태에 입단했기 때문에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광주일고에서 공 좀 던진다고 생각했던 내가 패전처리로만 기용되니까 좌절감만 곱씹게 됐다. 그걸 이겨내지 못하고 밤거리를 헤매고 다닌 덕분에 맞기도 많이 맞았다. 구단에 붙잡혀 갔을 때마다. 다시 앞의 얘기로 돌아가서, 구단에 야구 그만두겠다고 찾아갔다가 김일권 코치를 만났고, 김 코치가 날 전담해서 ‘사람’을 만들어 놨다. 그 과정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하여튼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내가 야구에 전념할 수 있게끔 해 놓으신 거다. 그때는 그분이 정말 미웠는데, 지금은 내게 은인과 같은 존재이다.”

 

 

당시 2군 감독이 김성근 감독 아니었나. 김 감독도 가만두진 않으셨을 텐데.

 

“굳이 김성근 감독님이 나서지 않아도 코칭스태프나 매니저 쪽에서 날 가만두지 않았다. 그래도 김성근 감독님은 내게 용돈으로 10만원을 건네시면서 맛있는 것 사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머리 비우고 다시 야구장 나오라고 날 챙겨주셨다. 철없던 시절, 사고를 많이 쳤던 경험이 지금 후배들을 대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 일탈을 꿈꾸는 후배가 있을 경우 내 경험을 얘기하면서 설득하면 쉽게 마음을 돌린다.”

 

2016년 8월8일 이호준 선수협회장이 승부조작 방지 및 조사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야구선수 이호준이 재평가를 받은 시기가 NC에서 보낸 시간들이다. 더그아웃에서는 경험 많은 베테랑으로, 라커룸에서는 유머와 익살 가득한 ‘형님’ 모습으로 팀의 중심을 잡지 않았나.

 

“야구 좀 한다고 건방 떨기 시작할 무렵 SK에서 김기태 감독님(현 KIA 타이거즈 감독)과 2년간 룸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감독님을 보며 배운 게 정말 많다. 선배들이 감독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밤마다 우리 방에 모여서 팀을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눴고, 후배들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난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와, 이 양반들이 모여서 술만 마시는 게 아니라 이런 진중한 대화도 나누는구나’ 하고. 그 모습이 뇌리에 깊숙이 박혔고, 그런 부분이 왕고참이 된 내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SK에서 2007 시즌 마치고 4년 34억원에 FA 계약을 맺은 후 이듬해부터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그로 인해 ‘로또준’이라 불리며 시련을 겪었는데.

 

“워낙 성적이 좋지 않아서 욕먹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정도가 심했다. 내가 도둑질해서 돈 번 것도 아니고, 아픈 걸 참아가면서 여기까지 온 건데, 그걸 이해해 주지 않고 ‘먹튀’라고 욕하니까 사람이 점점 작아지더라. 식당에 가서 밥 먹을 때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면 마치 나를 욕하는 것 같았고, 누가 손가락질하면 그 대상이 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팬들이 사인이나 사진을 같이 찍자고 요청해 오면 도망 다니기 바빴다. 하루는 딸아이가 학교 갔다 와선 내게 ‘아빠, 최정 삼촌이 유명해? 아니면 아빠가 더 유명해?’라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보단 최정 삼촌이 더 유명하다’고. 순간 딸아이가 대성통곡하면서 우는 게 아닌가. 이미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너희 아빠는 한물갔다고, 최정이 야구를 더 잘한다’는 얘길 듣고 속상해서 집에 왔다가 내게 직접 물어본 건데, 아빠가 자기 입으로 최정이 더 유명하다고 했으니…. 딸아이 우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적어도 우리 애들한테는 자랑스러운 아빠가 돼야겠다면서 말이다.”

 

 

1976년생 동갑내기 이승엽도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공교롭게 두 선수가 같은 시기에 은퇴를 하는데, 사전에 이승엽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나.

 

“지난해 12월 하와이로 가족여행 겸 훈련을 갔을 때 거기서 이승엽을 만났었다. 승엽이랑 은퇴와 관련된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이미 승엽이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밝힌 터라 내게 실질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었다. 덕분에 나도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됐다. 요즘 기사들을 보면 나랑 승엽이를 비교해서 올리는데, 솔직히 나랑 승엽이는 비교 대상 자체가 안 된다. 승엽이는 나보다 몇 수는 더 위에 있는, 내가 존경하는 대상인데 어떻게 둘을 비교할 수 있겠나. 그런 기사들을 볼 때마다 창피하고 부끄럽다. 그런 기사들의 댓글은 일부러 피했다. 욕밖에 없을 것 같아서(웃음).”

 

 

‘야구는 양준혁처럼,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말이 유행이 됐다. 자랑스럽지 않았나.

 

“처음에는 좋지 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각을 바꾸니까 꽤 멋진 표현이더라. 감사할 따름이다. NC에서 받은 큰 선물들 중 하나이다. 나보단 아내가 더 좋아하는 글귀이다. 은퇴 이후도 멋지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호준은 아직 은퇴 후 어떤 일을 할지 계획을 세우지 못했지만 시즌을 치르면서 진중하게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호준은 소문난 입담으로 이미 방송 해설위원 영입 대상 0순위로 꼽힌다. 해외 연수, 코치, 해설위원 등 다양한 직업군이 이호준을 기다리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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