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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울린 비정규직 보호법

비정규직 확대 20년…정부 대책 효과 못 거둬

이민우 기자 ㅣ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7.02.16(Thu) 11:41:08 | 14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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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종영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할 수 없는 대표적인 것이 있다. 이 드라마는 대부분 반듯한 직장을 가졌거나 가게를 운영하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배경으로 한다. 김성균은 LG전자의 전신인 금성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고, 반지하에 사는 성동일은 은행 직원이다. 동룡의 아버지 류재명은 쌍문고 학생주임 교사, 어머니는 7년째 보험왕을 차지한 능력 있는 ‘워킹맘’이다. 최택의 아버지 최무성은 금은방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다.

 

드라마 자체가 중산층 이상의 가구를 설정한 것이 아니다. 당시에는 경비원, 청소노동자도 직접 채용하는 시대였다. ‘비정규직’이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사내하청,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등은 ‘비공식적’으로 존재했지만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직장에 들어가면 평생 일하다 퇴직하는 것이 일반적인 구조였다. 정리해고나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조차 상상할 수 없는 시대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맞고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 연합뉴스


IMF 때부터 강요된 비정규직 확산

 

비정규직 확산의 조짐을 보인 것은 김영삼 정부 때였다. 김영삼 정부는 1996년 4월 신노사관계 구상을 발표하면서 정리해고 합법화, 파견근로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내놓는다. 같은 해 12월25일 밤, 신한국당(현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서울 시내의 호텔에 집결했다. 다음 날 새벽 관광버스 여러 대에 나눠 타고 국회에 몰래 들어간 뒤 7분 만에 11건의 노동관련법을 처리했다. ‘평생직장’으로부터 해고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은 노동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수만 명의 노동자가 연일 공장을 멈추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민사회 각계각층도 거세게 반발하면서 반대 여론이 80%까지 치솟았다. 결국 김영삼 정부는 1997년 1월 노동법 시행을 2년 유예한 뒤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기면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1997년 외환보유액이 바닥나면서 나라가 부도날 위기에 처했다. 마지못해 정부는 IMF로부터 돈을 빌리기로 했다. 당시 IMF는 돈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강요했다. 사실상 신탁통치에 가까운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법제화는 조용히 이뤄졌다. 노동계의 반발이 시작된 시점은 2000년부터다. 파견법에 명시된 ‘2년 이상 고용 시 정규직으로 간주한다’는 조항 때문에 파견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계약 해지를 당했다.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자들을 시작으로 방송사 비정규직 노조, 길병원 제니엘 노동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2001년 한국통신계약직노조와 전국건설운송노조도 만들어졌다.

 

이들은 정규직 노동자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대다수의 정규직 노동자 혹은 그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철저히 외면했다.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겼다. 캐리어 사내하청 노조의 충돌 사태가 노노(勞勞) 갈등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내하청 노조는 공장을 점거하는 등 강하게 저항했지만 회사 관리자, 정규직 조합원들에 의해 끌려 나왔다. 당시 캐리어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몰아내고 일터를 지키자” “회사를 살리자”며 사내하청 노조와 갈등을 빚었다.

 

급기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2003년 10월 서울 종묘공원에서 열린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근로복지공단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이용석씨는 “비정규직 철폐하라”고 외치며 온몸에 불을 붙여 죽음을 택했다. 2004년 2월에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였던 박일수씨가 “나의 한 몸 불태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이, 착취당하는 구조가 개선되길 바란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박씨의 죽음을 놓고 투쟁 방침을 결정하는 과정에선 현대중공업 노조가 금속산업연맹(현 금속노조)에서 제명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 시사저널 우태윤

 

© 연합뉴스

 

© 연합뉴스


‘비정규직 보호법’이 되레 비정규직 울렸다

 

정부는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양산되면서 차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자 급하게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는 2004년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불리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마련했다. 핵심 내용은 계약직 노동자나 파견 노동자가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내용이었다. 이 법은 노동계에서 파견근로를 확대시키고 차별 해소에 실효성이 없다고 반발하면서 국회에서 두 해를 넘겼다. 노무현 정부 4년 차인 2006년 여야는 직접고용 의무화 시점을 3년에서 2년으로 줄이는 수준에서 합의를 이뤘다. 당시 민주노동당에선 ‘동일노동 동일임금’ ‘사용사유 제한’ 등을 명문화하자고 주장했지만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과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반대로 관철되지 못했다.

 

이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2006년 대형마트인 홈에버는 비정규직 직원을 대량으로 해고했다.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 1100명 가운데 350명에 대해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정규직 직원이 급격히 늘 것을 우려해 법 시행 전에 직원을 정리하려다가 ‘마트 아줌마들의 점거 농성’으로 상징되는 역풍을 맡게 된다. 이 사건은 영화 《카트》와 드라마 《송곳》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홈에버를 운영하던 이랜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법 시행 후 대다수의 기업들은 ‘2년 후 정규직 전환’ 대신 ‘2년 내 해고’를 택했다. 기업들은 아예 정규직·비정규직 직종을 나누거나,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등의 방법으로 정규직화를 피했다. 법을 피하기 위해 몇 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쪼개기 계약’까지 등장했다. 파견 등 간접고용을 할 수 없는 제조업체는 사내하청 근로자 수를 늘렸다. 완성차 공장에서 왼쪽 바퀴를 조립하는 정규직과 오른쪽 바퀴를 조립하는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배 가까이 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당선 이후 국정과제에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고용 전환을 강화·정착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노동개혁’이라며 내놓은 대책은 예상을 빗나갔다.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의 파견을 뿌리산업까지 확대하기로 한 내용이다. 근로자가 원하면 기간제 계약 기간을 4년까지 연장할 수 있는 내용의 기간제법도 발의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결국 사회적 반발 여론에 부딪혀 입법은 무산됐다.

 

비정규직 보호법도, 정부의 대책도 비정규직의 설움을 달래지 못했다.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 이전인 2006년 545만 명이던 비정규직 규모는 644만 명으로 확대됐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상대 임금은 2004년 65%에서 2016년 53.5%로 감소했다. 중소기업 가운데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사업주에게 임금상승분의 70%를 1년간 지원하는 대책을 내놨지만, 신청자 2363명 가운데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340명에 불과했다.

 

© 연합뉴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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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대선 정국에서 대책 ‘봇물’

 

10년 넘게 심화된 비정규직 문제는 최근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20대 총선에서 야권이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모두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 해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당장 국회부터 청소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기 시작했다. 용역업체 소속에서 국회사무처 소속 무기계약직으로 신분을 전환했다. 임금은 크게 오르지 않았지만 65세까지 고용보장이 이뤄지게 되자 국회 청소노동자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정하고 정부와 지자체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점차적으로 정규직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동일기업 내에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 반드시 실현될 수 있도록 강제해 불공정한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보수로 분류되는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 또한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는 사유를 제한하는 방법과 비정규직 총량을 규제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필요하다며 차별 시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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