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00억대 기부금 늑장 집행했다가 경고 받은 적십자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7.07.19 13:11
  • 호수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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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특별감사서 기관주의 및 개선 조치, 호봉 올려 급여 등 과다 지급하기도

 

대한적십자사(적십자)가 지난해 200억원 가까운 기부금을 늑장 집행했다가 보건복지부로부터 특별감사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적십자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및 ‘대한적십자사 회비 및 성금의 모금 및 집행 및 운영지침’에 따라 기부금을 모집할 수 있다. 이 돈은 국내외 재난 상황이나 저소득층 구호를 위해 사용된다.

 

2014년까지만 해도 기부금 모집액이 꾸준히 증가했다. 2012년 162억1400만원에서 2013년 204억원, 2014년 265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5년 들어 기부금은 263억7500만원으로 상승 추세가 꺾였다. 2016년에는 기부금이 186억4000만원(10월말 기준)을 기록하며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래서일까. 적십자는 지난해 10월까지 모금한 186억4000만원의 기부금 중 119억5500만원만 집행했다. 집행률은 64.1%에 불과했다. 적십자의 기부금 집행률은 2013년(73.9%)을 제외하고 8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1년 전인 2015년에는 92.2%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기부금 부실 집행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대한적십자사 본사 건물 © 시사저널 이종현·박정훈

 

태풍 ‘차바’ 피해 입은 울산지사 집행률 38%

 

특히 경남지사와 전북지사, 울산지사의 경우 집행률이 각각 24.9%와 35.4%, 38%에 불과했다. 지난해 9월 경주에서 진도 5.8의 지진이 발생해 한반도 전체가 불안에 휩싸였다. 10월에는 태풍 차바(CHABA)의 영향으로 부산과 울산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울산지사의 기부금 집행실적은 전국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복지부는 올 초 기부금을 늑장 집행한 적십자에 대해 기관주의와 함께 개선 조치를 내렸다. 복지부는 감사보고서에서 “행정자치부는 지난해 10월 태풍 차바의 피해를 입은 울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며 “적십자 울산지사는 울산 북구와 울주군 등이 사업 대상지역이고, 관련 기부금까지 받았음에도 10월말까지 집행 실적이 38%에 그쳤다. 일부 지사의 경우 감사일(12월말) 현재까지도 장비 구입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적십자 측은 “감사 시점의 문제다. 연말까지 집행률을 80%대까지 올렸다”고 밝혔다. 적십자의 한 관계자는 “복지부 감사 당시 10월까지 통계만 있어 집행률이 모두 반영되지 않았다. 연말까지 기부금 모집액은 196억800만원이었고, 집행액은 157억4700만원으로 실제 집행률은 80.3%에 이른다”며 “지자체의 물품 지원으로 중복 투자를 막기 위해 대체 물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실제 집행이 지연됐다. 적십자는 한국가이드스타에서도 별 5개를 받았을 정도로 기부금을 투명하게 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가이드스타는 현재 ‘책무성 및 투명성’과 ‘재무안전성 및 효율성’ 등으로 나눠 공익법인을 평가하고 있다. 9024개 등록법인 중 가장 많은 기부금을 받은 곳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5227억7000만원이었다. 뒤를 이어 월드비전(1967억4500만원), 유니세프한국위원회(1331억900만원), 굿네이버스 인터내셔날(1229억7300만원), 어린이재단(1228억5500만원), 한국컴패션(720억9200만원),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512억3300만원) 등의 순이었다. 이들 법인 중 두 개 평가 분야에서 모두 별 5개를 받은 곳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 한국컴패션, 세이브더칠드런코리아, 굿네이버스 등이다. 적십자 역시 별 5개를 받았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불과 두 달여 만에 40억원 가까운 돈을 집행하면서 집행률을 16% 가까이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특히 경남지사와 전북지사, 울산지사의 경우 집행률이 각각 24.9%와 35.4%, 38%에서 두 달 만에 96.7%와 78.3%, 77.2%로 높아졌다. 숫자를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기부금을 집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십자 안팎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적십자의 한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적십자 회비나 기부금이 매년 감소하고 있다. 각 지사별로 모금액이 목표를 밑돌아 추가 모금에 나설 정도”라며 “당연히 내는 줄로만 알았던 적십자 회비가 이제는 내지 않아도 되는 선택적 납부 성금으로 인식이 바뀐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터져 걱정”이라고 말했다.

 

1월18일 서울 성동구 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지사에서 한 시민이 ‘2017 특별 모금 방송’ 녹화 중 기부금을 넣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적십자 “연말까지 기부금 집행률 80% 맞춰”

 

적십자의 도덕적 해이는 이뿐만이 아니다. 적십자는 지난해 말 감사 과정에서 징계를 받은 직원들의 호봉을 높여 급여를 과다 지급하고, 비상근이 원칙인 지사 회장을 상근 처리해 유류비 등을 지원하다 기관경고를 받았다. 적십자 정관에 따르면, 지사 임원은 회장 1명, 부회장 4명 이내, 재정감독 1명, 고문 1명 등이다. 이들은 비상근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활동비 외에 별도로 보수를 지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십자는 15개 지사 회장에게 활동비와 거마비로 150만원을 일괄 지급했다. 강원지사의 경우 회장에게 유류비 지원과 함께 운전기사까지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적십자는 해외 출장에 필요한 여비 1600만원을 과다 지급했다가 적발돼 회수하기도 했다.

 

적십자 교육원과 서울적십자병원의 경우 징계 처분을 받은 직원 3명의 호봉을 조정하는 식으로 수백만원을 과다 지급하다가 복지부 감사에 적발되기도 했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징계 처분을 받은 직원의 경우 6개월의 승진 제한 기한을 둬야 한다”며 “적십자가 이 규정을 어겼기 때문에 관련 직원에 대해 주의 조치를 내리고 과다 지급된 보수를 모두 회수하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 

이와 관련해 적십자 측은 “​재난 성금이나 취약계층 지원금 등 목적 기부금은 대상자 및 대상 지역의 사정에 따라 지역별, 시기별로 나뉘어 집행된다”​며 “​​3개 지사의 기부금 집행율이 11월~12웕 급증한 것은 계절적 요인과 사업 종료 후 대금결제 등의 사유가 발생해다. 징계 처분을 받은 직원에게 보수를 잘못 지급한 것 역시 단순한 업무 실수로 담당자에 대한 징계와 과다 지급된 보수의 회수를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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