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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사냥까지 나선 ‘道를 아십니까?’

서울 강남 등에서 조직적으로 외국인에게 접근해 노골적 금품 요구하는 현장 포착

손구민 인턴기자 ㅣ koominsohn@gmail.com | 승인 2017.07.30(Sun) 13:00:00 | 14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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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미국인 테일러(가명)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국에 온 이튿날, 길에서 갑자기 어떤 남자와 여자가 접근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한국문화 교육자라고 소개하며 한국 전통문화에 대해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테일러는 그들이 앳돼 보이고 또 아주 친절해 별 의심 없이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한 허름한 가정집이었다. 셋은 한복으로 갈아입고 방으로 들어가 양초 하나를 켜놓고 제사를 지냈다. 제사가 끝난 후 남자와 여자는 “앞으로 100일 동안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전통”이라며 100개의 양초를 사는 데 필요한 돈을 요구했다.

 

이처럼 최근 특정 집단 모집책들이 외국인을 상대로 돈을 요구하는 행각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의 ‘도를 아십니까?’와 비슷한 수법이다. 다만 그 대상만 내국인에서 외국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시사저널은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외국인을 모집하는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외국인이 밀집한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사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7월12일 오후 4시쯤 강남역 5번 출구 근처에서 외국인 릴리(가명)는 두 남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끝난 후, 기자는 그 근처 식당에서 근무하고 있는 릴리와 따로 접촉할 수 있었다. 그는 “오늘 밤 10시, 성수역 2번 출구에서 (두 남녀와) 만나기로 했다. 한국문화와 한글에 대해 알려주는 행사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릴리는 그날 밤 약속된 장소에서 모집책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성수동 인근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오전 릴리는 기자에게 전날 밤의 일에 대해 “앞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20분을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리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한국문화 교육의 현장이 아닌 것 같아 몰래 건물을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의 언급을 꺼렸다. 불쾌한 일에 엮이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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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책들 조직적으로 지시받고 움직여”

 

페이스북 내 외국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피해 사례들이 회자되고 있다. ‘HBC/Itaewon Information Board’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이러한 모집책들을 만난 외국인의 경험담이 수두룩하다. 댓글을 다는 외국인들도 모두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며, 이들이 말을 걸어오면 아예 무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외국인 피해자들 모두 기자에게 불쾌했던 심정을 토로했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모집책들의 영어회화 수준은 높은 편이다. 테일러와 릴리에게 접근한 사람들도 모두 영어를 잘했다고 한다. 다만 테일러는 “모집책에게 질문을 던지면 그가 잘 알아듣지 못한 표정이었다”고 전했다. 모집책이 주어진 스크립트 내에서만 영어를 구사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특정 집단들이 기존의 ‘도를 아십니까?’ 수법에서 한 단계 진화해 이제는 영어 스크립트까지 짜가며 외국인을 모집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영어를 강의하고 있는 피트 데일리 교수는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상황에 대해 연구해 왔다. 그는 이 모집책들이 특정 종교단체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종교단체들은 주로 강남·홍대·건대입구 등 사람들이 많이 밀집한 곳에서 활동한다”며 “접근 수법은 조직적인 교육을 통해 전수된다. 모집책들은 사람들을 모집해 제사를 지내주고 ‘제사비’를 받으라는 지시를 받고 움직인다”고 말했다. 또한 데일리 교수는 영어를 구사하는 모집책들이 주로 대학생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모집책들이 소속 단체로부터 학교를 자퇴하길 요구받기도 하며 모든 시간을 그 단체를 위해 사용하게 된다”고 했다.

 

데일리 교수는 이 종교단체들이 외국인을 포섭하려는 이유가 돈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종교단체가 “외국인을 개종시키려는 목적도 갖고 있다”며 “개종되지 않더라도 외국인들이 종교단체의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영상자료로 만들어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단체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프로파간다를 하는 것이다. 데일리 교수는 “개종된 외국인은 반대로 한국인을 포섭하는 모집책이 된다”고 설명했다.

 

 

외국인들에 ‘코리아 이미지 먹칠’ 우려

 

국내 체류 외국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현상은 대한민국 이미지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나 정작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를 단속할 수 있는 근거나 적용할 수 있는 혐의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취재 중에 만난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모집책이 말하는 ‘문화행사’라는 말의 범위가 넓어 외국인을 데리고 오는 것 자체를 사기죄나 다른 범죄라고 보기 애매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제사를 지내주는 것도 일종의 문화행사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제사를 지내준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고 하기엔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돈을 강압적으로 요구했는지를 수사해 강요죄 등 범죄 구성요건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 단체들은 돈을 내라고 강요하거나 갈취하지는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돈 내기를 거부하면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이것을 공갈 또는 강요라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요구하는 돈 역시 10만원 정도 선이어서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다소 애매하다. 이런 경우 피해자는 신고 대신 진정서를 내는 것이 더 좋다고 서초경찰서 측은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찰은 이러한 문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모집책이 밀집한 지역을 관할하는 강남경찰서는 접수된 관련 사건이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경찰 입장에서는 사건이 없으니 이런 현상에 대한 근절 대책을 마련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사정 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외국인 피해자들만 늘고 있는 상황이다. SNS에서 경험담을 공유한 외국인 리차드(가명)는 모집책들이 계속 돈을 요구하는 것을 거절하면 “이들이 해코지할 것 같아 두려웠다”고 말했다. 다행히 리차드는 무사히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 익숙지 않아 얼떨결에 그들을 따라간 외국인들로서는 무서운 경험을 한 게 사실이다. 데일리 교수는 “지금으로서는 본인이 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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