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궁상’으로 포장된 ‘국민 밉상’ 또 받아줘야 하나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8.18 14:02
  • 호수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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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빚은 연예인 컴백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신정환이 돌아온다. 수차례 복귀설이 나올 때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빙수 가게를 운영하면서 살 생각이라며 복귀엔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지난 4월, 국내 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뒤이어 부인의 임신 소식과 함께 신정환이 팬카페에 복귀 심경을 올렸다. ‘태어날 아이에게 넘어져서 못 일어나버린 아빠가 아닌 다시 일어나 성실하게 열심히 살았던 아빠로 기억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열심히 살았던 아빠로 기억되고 싶은 신정환의 마음이 시청자가 그를 봐줘야 할 이유가 되느냐는 것이다. “방송 말고도 열심히 사는 길은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수 신정환이 2011년 4월 상습도박 혐의로 서울 서초동 서울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사진= 뉴스뱅크이미지

 

신정환에게 대중이 유독 차가운 이유

 

부정적인 여론 속에서 결국 복귀작이 발표됐다. Mnet에서 9월에 시작되는 《눈물의 꼬꼬쇼》로 이미 촬영이 시작됐다. 부산의 한 휴대폰 매장 오픈식 행사에서 두 사람이 공연하는 장면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알려졌다. 한여름 불볕에 초라하게 거리공연을 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불쌍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 금의환향보다 훨씬 대중의 동정표를 많이 얻을 것이란 전략적 판단으로 보인다. 이에 많은 연예인들이 신정환의 복귀를 응원했다. 하지만 대중은 신정환을 응원해 주는 동료 연예인들에게까지 악플을 퍼부을 정도로 적대적인 반응이다. 신정환은 엔터테이너다. 대중을 즐겁게 해 주겠다며 돌아오는 것인데, 이렇게 대중이 불편해한다면 복귀에 의미가 있느냐란 지적이 나온다.

 

도박을 이유로 자숙한 연예인들은 많다. 그중에서도 유독 신정환에 대한 여론이 안 좋은 건 ‘국민정서법’ 때문이다. 그는 2005년 서울 압구정동 카지노 바에서 불법 바카라 게임을 하다 구속됐다. ‘아는 선배를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경찰이 들이닥쳤다’며 도박 가담 사실을 부인하다가 나중에 시인해 비난을 샀지만, 3개월 후 복귀했다.

 

그 후 절정의 예능감으로 ‘악마의 재능’이라 불리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시청자의 사랑이 대단했는데 2010년 9월부터 방송 녹화에 불참하기 시작했다. 도박 의혹이 제기되자 소속사는 과로가 원인이라고 했다. 그 후 원정 도박 억류설이 보도되자 신정환이 ‘관광 목적으로 세부(필리핀)를 방문했으나 병에 걸려 병원에 있었다’며 뎅기열 입원 사진을 공개했다. 네티즌 수사대가 사진 조작설을 제기했고 그다음은 신정환의 거짓말이 밝혀지는 과정이었다. 이때 그는 또다시 악수(惡手)를 둔다. 귀국이 아니라 잠적을 선택한 것이다. 마카오를 거쳐 네팔로 갔고, 10월 중에 귀국한다더니 이마저도 어기고 인도로 가버렸다. 그리고 해를 넘겨 2011년 1월에야 귀국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국민에게 낱낱이 전해졌다는 점이다. 계속 변명하고 말을 바꾸는 등 대중을 속이고, 아예 귀국할 의사도 없는 것처럼 한국을 경시하는 모습이 국민적 분노를 촉발했다. 신정환의 귀국 모습을 9시 뉴스가 보도할 정도로 공분이 컸다. 애초부터 별로 사랑받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상황이 또 달랐겠지만,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바로 배신감이다. 그래서 징역 8개월이 선고된 정도의 사건으로 7년 가까이 자숙하고도 아직까지 용서를 못 받는 것이다. 바로 그런 신정환이 돌아온다고 하니 연예인 복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수근·이상민 © 사진=연합뉴스·뉴시스

 

시청자 불편감 무시하는 방송 생태계

 

신정환의 케이블 채널 복귀는 이미 예측된 것이었다. 케이블 채널이 활성화되고 종편까지 가세하자 예능 MC 품귀 현상이 나타났다.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예능 프로그램의 한 부분을 채울 수만 있다면 도덕적인 문제 정도는 ‘묻지마’로 여기는 분위기가 점점 커졌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는 게 예능인을 구하는 제작진의 요즘 심정이다.

 

그래서 이상민이 돌아올 수 있었다. 이상민은 사실 대중이 대단히 기피하던 비호감 연예인이었다. 사업 실패 후 불미스러운 일들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Mnet이 과감히 그를 《음악의 신》에 캐스팅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처음엔 불편한 반응이었지만 그가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에 대중이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여론이 호전되자 지상파도 이상민을 출연시켰고 완전한 호감 연예인으로 거듭났다. 한때 그가 비호감이었다는 것을 이젠 기억조차 못할 정도다.

 

도박으로 자숙하던 이수근도 tvN 《SNL 코리아》 게스트로 복귀했다. 바로 이어 KBS N Sports 《죽방전설》에 출연할 때까지만 해도 여론이 부정적이었지만 tvN 《신서유기》로 반전되고, JTBC 《아는형님》을 통해 완전한 호감 연예인으로 거듭났다. 이런 전례가 있기 때문에 신정환도 케이블 채널이나 종편을 통해 돌아올 것으로 예측됐다.

 

방송사도 자신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여론이 나쁘더라도 일단 카메라 앞에 세우면 잠잠해진다고 말이다. 하지만 신정환은 단순한 도박 사건이 아닌 국민적 공분을 살 정도의 사태였다. 이상민이 자기 빚을 다 갚아나가는 것처럼 잘못을 책임져서 과거를 용서받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청자들이 내보이는 불편감을 방송사가 너무 가볍게 여긴다는 지적이다. 시청자를 즐겁게 해 준다는 예능인데, 사실은 방송사의 편의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논란을 오히려 즐기는 분위기가 나타나는 것도 문제다. 《슈퍼스타K》 《쇼 미 더 머니》 《프로듀스 101》 같은 프로그램들이 논란과 함께 떴기 때문에, 대중의 비난을 노이즈 마케팅 정도로 여긴다. 종편 초기에 신정아씨가 MC로 캐스팅됐던 것도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었다. 이런 상황에선 케이블 채널이나 종편을 통해 누구든 돌아올 수 있다.

 

신인을 키우는 것도 방송사의 중요한 일이다. 그 일을 하지 않고 기존 인지도를 손쉽게 빼먹으려고만 하니 스타의 복귀가 점점 쉬워진다. 그저 ‘안전’하게만 가려고 하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시청자의 불쾌지수를 높이는 오락방송이 탄생할 수 있다. 그래도 시청률이 오를까. 

 

 

남자 연예인 군 입대로 이미지 세탁

 

디스패치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물의를 일으킨 스타급 연예인들의 평균 자숙기간을 산출한 적이 있었다. 음주 및 교통사고의 자숙기간이 평균 6.6개월로 가장 짧았다. 뒤이어 학력 위조 7.4개월, 도박 12개월, 폭행 13개월, 마약 20개월 순이었다.

 

도박보다 음주운전의 자숙기간이 더 짧은 것이 이채롭다. 도박은 자신을 망치는 것이지만 음주운전은 남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에겐 음주운전이 훨씬 친숙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음주운전의 자숙기간이 더 짧은 것이다. 이것만 봐도 연예인의 자숙기간은 그야말로 대중의 정서법에 달렸다는 걸 알 수 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조사한 것에선 음주 및 교통사고의 자숙기간이 4.5개월로 줄었다. 하지만 똑같은 음주운전이라도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며 변명했다고 알려진 김상혁은 10여 년간 공백기를 겪었다. 사실 김상혁은 음주운전으로 입건될 정도의 혈중알코올농도도 아니었다. 그래서 정식으로 음주 입건된 건 아니라는 취지로 음주운전이 아니라고 한 것이었는데, 사람들이 구차한 변명으로 받아들여 정서법의 철퇴를 맞았다. 노홍철처럼 대중의 신뢰가 두터웠던 사람이 음주운전을 해도 배신감 때문에 자숙기간이 늘어난다. 이창명은 음주운전을 바로 인정했으면 1년이 넘은 지금쯤 벌써 복귀했을지도 모르지만, 전면 부정했고 대중이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현재 복귀시기가 가늠되지 않는다.

 

물의를 빚은 후 입대한 배우 주지훈(왼쪽)과 가수 강인 © 사진=연합뉴스

2010년부터 2015년까지의 조사에선 마약류 투약도 14.5개월로 줄었다. 하지만 이것은 프로포폴, 졸피뎀 등 신종마약류 사건이 평균을 깎아먹은 결과일 뿐 전통적 마약에 대해선 여전히 시선이 차갑다. 그래도 신동엽, 싸이처럼 남자는 일정 기간만 자숙하면 대중이 과거를 잊어준다. 반면에 여자는 자숙기간도 훨씬 길고 그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닌다.

 

 위 조사에는 없는 항목이지만 가장 자숙기간이 긴 것은 성범죄와 병역 문제다. 강요형 성범죄의 경우는 전자발찌를 찬 고영욱처럼 복귀시기를 가늠하기조차 어렵고 합의형 성매매도 지상파 TV 복귀가 매우 어렵다. 병역은 싸이, 송승헌, 장혁처럼 재입대를 하지 않는 한 용서받기 어렵다.

 

디스패치 조사에서 직종별 분류로 보면 아이돌의 복귀가 평균 5.8개월로 가장 빨랐다. 개그맨은 8.5개월, 연기자는 9.4개월, 일반 가수는 13개월로 나왔다. 아이돌은 열성 팬덤이 두텁기 때문에 일반적인 여론이 안 좋아도 쉽게 돌파한다. 해외 팬미팅 등으로 우회 복귀하기도 한다. 개그맨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기 때문에 예능 패널 등으로 조용히 돌아올 수 있다.

 

남자에겐 군대가 이미지 세탁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강인, 주지훈 등이 물의를 빚은 후 입대해 전역과 함께 복귀했다. 여자에겐 군대와 같은 기회가 없는데, 대신 홍상수 감독 작품에 출연한 성현아처럼 작가주의 저예산영화를 복귀 기회로 활용하기도 한다. 최근엔 남자인 엄태웅도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저예산영화를 통해 복귀했다.

 

우리 사회가 점점 서구처럼 자유분방해지고 다양한 채널의 스타 캐스팅 경쟁이 격화되면서 연예인의 자숙기간은 점점 짧아질 것이다. 하지만 사회정의를 향한 요구와 화려한 스타에 대한 견제심리가 커지기 때문에 특히 대중 정서를 심하게 자극한 몇몇 시범 케이스의 복귀는 여전히 힘들 것이다. 신정환이 그런 경우다. 대마초는 합법화 논란과 함께 사회적 반감이 줄어들 수 있다. 다만 음주운전은 사회 여론이 부정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자숙기간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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