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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상 반영하는 리메이크 곡들

[박종현의 싱송로드] 저기에서 여기로 옮겨지는 노래들…한반도와 ‘리메이크’의 시공간學

박종현 월드뮤직센터 수석연구원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11.29(Wed) 19:00:00 | 1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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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1995),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1997), 그룹 쥬얼리의 《원 모어 타임》(2008), 박정현의 《미안해》(2012), 오렌지캬라멜의 《까탈레나》(2014). 전혀 다른 장르의 전통들에 기반한 이 다섯 노래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한반도 밖에서 생산된 음악의 특정 요소들을 음악가들이 한반도로 옮겨와 재창작했다는 점이다. 각기 미국·소련(러시아)·스웨덴·멕시코·파키스탄이라는 다른 공간들로부터 멜로디 및 화성 진행의 전체, 혹은 일부를 가져와 그것을 이 땅에서 새로 편곡하고, 거기에 한국어로 된 새 가사를 얹은 예들이다.

 

 

소련 곡을 ‘한국 록’으로 변신시킨 YB밴드의 《혈액형》

 

물론 그 방식은 조금씩, 제각기 다르다.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와 《백만송이 장미》가 원곡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가사를 덧씌운 사례라면, 《원 모어 타임》과 《미안해》는 원곡이 가진 화자(話者)의 상황과 내러티브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한국어 작사가 이루어졌다. 그런 점에서 후자의 경우는 이른바 ‘번안(飜案)’이라는 개념에 보다 가깝다.

 

반면 광의(廣義)의 ‘대중음악’에 속한 멜로디 및 진행, 악기 편성 등을 전체적으로 가져온 다른 노래들과는 달리, 《까탈레나》는 타지(파키스탄 펀잡 지방)의 민요 선율을 이른바 ‘훅(hook)’으로 차용하는 부분적 활용의 방식을 취한다. 이번 글에서는 이처럼 특정한 소리 덩어리들을 한반도라는 새로운 장(場) 속에 위치시키는 몇몇 음악적 행위를 살펴보는 순서를 가져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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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거기 얹은 노래, 악보와 악기들은 여기에서 저기로 흐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가만히 내버려둔다고 자연히 흐르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들을 흐르게 하는 사람들, 즉 음악가들이 있으며, 그 흐름을 촉진하거나 통제하는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조건들이 있다. 이 연재의 제목을 빌려 표현하자면, 음악가들은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새로운 ‘싱송로드’를 터 가는 존재들인 것이다. 리바이벌·번역·번안·리메이크·커버 등 다양한 방식과 표현들로 지칭되어 온 이러한 행위들을 살피고 쫓아가보는 것은, 따라서 음악가들과 그 음악이 속한 시공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살피는 지극히 사회과학적인 작업이 된다.

 

이렇게 소리들이 새로운 맥락의 경계를 넘나들게 하는 음악가들의 모습은,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논해 온,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문학작품을 옮겨냄으로써 새로운 의도와 의미를 펼쳐내는 주체적 번역자의 상(像)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특정한 음악이 향유되던 장의 맥락으로부터 하나의 텍스트가 떨어져 나온 뒤 새로운 장으로 삽입되는 이러한 현상을 인류학의 어떤 모델들에서는 ‘탈(脫)맥락화’ 및 ‘재(再)맥락화’와 같은 다소 어려운 용어들을 통해 설명하기도 한다.

 

 

영미권 히트곡들이 번안되다가 일본 히트곡들도 가세

 

이러한 ‘소리의 재맥락화’를 보여주는 한 사례로 YB밴드가 1999년 발표한 《혈액형》이라는 노래를 살펴볼 수 있다. 이 노래의 원곡은 본디 레닌그라드 출신의 소련 록스타 빅토르 최(Viktor Choi)가 이끌던 밴드 키노(Kino)의 노래다. 앞서 언급한 노래들과는 달리, 원곡의 가사까지도 상대적으로 충실하게 한국어로 옮긴 일종의 ‘번역’곡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노래를 ‘한국 록 다시 부르기’라는 제목의 음반 아래 위치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역만리, ‘적국’에서 발표된 고려인 로커의 곡을 냉전 후 한반도 남쪽에서 ‘한국 록’이라는 새로운 개념적 장 속에 위치 짓는 의도적 행위는 평가를 떠나 그 자체로 흥미롭고 또 학문적 관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준다. YB밴드의 프런트맨인 윤도현은 노래 말미에 내레이션을 첨가함으로써 이 노래를 부르는 여기, 자신들의 해석을 덧붙이고, 이를 통해 이 노래를 자신들의 새 버전으로 만들어낸다.

 

“빅토르의 노래가 들린다

싸늘한 그의 무덤 앞에 더 많은 빅토르가 모여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다”

 

이러한 재맥락화는 때론 시대의 사회적 조건을 직·간접적으로 반영한다. 단적으로, 키노의 노래가 과연 냉전 시기에 한국 대중음악의 장에서 번역·발표될 수 있었을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키노의 음악은 소련 내에서조차 1980년대 중후반까지 발표되지 못했다. 해방 후 미군의 주둔과 AFKN 방송의 개국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친숙해진 소위 ‘영미권’의 히트곡들은 한국 땅에서 종종 번안되어 왔다.

 

예를 들면 맨 앞에서 언급한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의 원곡자는 밥 딜런(Bob Dylan)이며, 양병집에 의해 개작되었다. 《위 셸 오버컴(We Shall Overcome)》과 같은 미국의 유명한 저항가요 역시 한국어로 번안되어 널리 불리기도 했다. 캐나다 출신 고든 라이트풋(Gordon Lightfoot)의 동명 원곡을 옮겨온 김두수의 《새벽비》(2002)는 직역이 아닌 번안이라는 과정이 원곡의 정서를 투명하게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독립적인 노래로 만들어낼 수 있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한편,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일본의 히트곡들이 한국의 메이저 시장에 수입되어 불려지는 일이 잦아졌다. 엠씨 더 맥스의 《잠시만 안녕》(2002), 포지션의 《I Love You》(2003), 박효신의 《눈의 꽃》(2005) 등이 있다. 이는 그 전까지 ‘공식’의 영역에서 철저히 통제·소외되어 온 ‘일본문화 개방’ 정책이 없었다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음악 산업의 글로벌화가 공고해진 현재는 언어를 바꿔 부르는 번역·번안보다는(특히 영어나 일어의 경우) 원곡의 언어 그대로를 가지고 음악가들이 연행·발표하는 경우가 더 잦다. 이와 같이 다양한 양상의 ‘리메이크’들을 살피는 일은 그것들이 등장한 시대상을 둘러보는 일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해, 일견 사소해 보이는 음악 행위의 어떤 경향성들은 사회과학자들, 그리고 음악학자들에게 관찰의 단초이자 통로가 될 수 있다. 또 이러한 작품들은 청자(靑瓷)들에게 원곡과 비교해 보며 듣는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숨겨진, 혹은 잊고 있던 리메이크 곡들을 찾아 들어보는 탐험을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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