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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시론] 일상으로 들어온 페미니즘

남인숙 작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12.08(Fri) 16:03:47 | 1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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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대학에서 강의를 들을 때만 해도 페미니즘은 평범한 학생들에게 실제 삶과는 거리가 먼 ‘-이즘’ 중 하나였다. 당시 몇 개의 페미니즘 강의를 듣고 적당한 학점을 받고 난 필자에게 남은 것은 ‘여자도 남자에게 의존하지 말고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라는 의지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도 페미니즘 논의의 발전이 이 정도에 그치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필자의 의식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인 자아의 독립만으로도 평등한 삶에 어렵지 않게 편입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시대가 그만큼은 진보했을 거리고 어림짐작했다. 그러나 이후 오랜 시간 많은 삶의 문제들에 부딪혔고, 나중에야 그 문제의 상당수는 남성으로 태어났으면 겪지 않았을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각이 달라졌다.

 

그 사이 인터넷 공간에서 여러 담론의 장이 형성되면서 페미니즘은 일상으로 영역을 넓히게 되었다. 이론과 학문이 아닌, 실제 삶의 가치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이 변화의 과정에서 수많은 충돌이 있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얼마 전에는 한 연예인의 인터넷상 발언이 파문을 일으켜 꽤나 어수선한 모양이다. 필자는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 그 남성 연예인의 글 자체보다는 그에 대한 여러 종류의 반응에 흥미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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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주체가 되는 상황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은 이전에는 ‘여자가 감히…’라고 시작되는 발화로 의견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제는 같은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보다 세련되고 진보적으로 느껴지는 표현으로 논지를 펴고 있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즘과 양성평등에 대한 지지를 전제한 후 그것에 대한 정의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이 세계가 이미 양성평등을 넘어 여성상위인 시대로 접어든 것으로 느껴지고,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발버둥쳐도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변화의 과제로 느껴지는 것이다. 여하튼 남성 대비 여성의 임금, 가사분담률, 남성에 의한 여성 범죄 등의 수치로 계량화된 각종 지표에 의하면 한국은 양성평등에 있어 갈 길이 먼 사회인 것은 맞다.

 

4차 산업혁명으로 많은 변화가 일어날 미래 사회에서는 양성평등이 이루어지는 쪽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득이 될 것이다. 다만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면에서 우선적으로 평등이 이루어질 것을 주장하는 각 입장들에 대한 합의가 앞으로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양성의 ‘다름’에 따른 형평을 정립하는 데도 수많은 진통이 따를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페미니즘은 쉴 새 없이 진보와 퇴보를 반복하는 골치 아픈 가치다. 유엔 미래보고서에서는 남녀 임금이 같아지는 시점을 투명망토가 상용화되는 시기와 비슷하게 보고 있고, 미래학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양성평등이 이루어지는 시기를 200년 후쯤으로 예상한다. 어차피 단기간에 합의가 이루어지고 끝을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이런 복잡한 충돌들을 불필요한 사회적 낭비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일단 양성평등이 지향점이라는 것에 언어적 합의를 이룬 것만으로도 몇 수 앞의 평화로운 합의가 기대된다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일까?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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