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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은 안경 쓰고 뉴스 진행하면 안 되나요?

안경 쓰고 뉴스 진행한 임현주 아나운서 화제…방송가의 왜곡된 여성관에 돌을 던지다

하재근 문화 평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9(Sun) 10:00:00 | 1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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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2일, MBC 임현주 아나운서가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아침뉴스 《뉴스투데이》를 진행하며 안경을 썼기 때문이다. 화제는 며칠간이나 이어졌다. 지난 주말에는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임현주 아나운서를 화제의 인물로 선정해 인터뷰를 하기에 이르렀다. 안경 착용 하나로 임 아나운서가 입사 이후 처음으로 인터뷰어가 아닌 인터뷰이로 TV에 나온 것이다.

 

임현주 아나운서는 “6시 아침뉴스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새벽 2시30분에 일어나야 한다”며 “뉴스 준비 시간도 부족한데 메이크업 시간이 오래 걸리고 눈도 피곤해 늘 안경을 끼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안경을 끼지 않으면 속눈썹을 붙이고 렌즈를 껴야 하는데 그것이 눈을 매우 피로하게 만든다. 게다가 눈 화장에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건강에 나쁘고 일도 효율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날마다 인공눈물을 넣어가며 렌즈 끼고 방송해 왔다. 그러다 결단을 내린 것이다.

 

임 아나운서는 “오랜 시간 고민하다 용기를 낸 결과”라며 “여자 앵커들도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할 수 있단 걸 보여주고 싶었다. 신선하든 낯설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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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쓰고 뉴스 진행도 할 수 없었던 나라

 

뉴스를 진행하는 여성 아나운서의 안경 사건(?)이 방송가에 충격인 것은 놀랍게도,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파업 당시 유애리 아나운서가 안경 쓰고 뉴스를 진행한 적이 있지만, 파업으로 인한 대체라는 특수 상황이었다. 종편에선 JTBC 강지영 아나운서가 《5시 정치부 회의》에 안경 끼고 등장한 적이 있지만, 뉴스 전체의 앵커가 아닌 한 코너의 진행이었다. 그러니까, 임현주 아나운서가 사실상 처음으로 안경 쓰고 방송 뉴스 앵커 역할을 한 것이다.

 

그동안 사례가 없었다는 것은 강력한 금기가 있었다는 뜻이다. 안경은 가장 보편적으로 착용하는 도구 중 하나다. 금기가 아니고선 안경 착용자가 없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금기는 분명히 있었는데, 그것이 명문화되거나 드러내놓고 강요되는 형태는 아니었다. 암묵적으로 알게 모르게 통용됐는데 임현주 아나운서가 그 금기를 깬 것이다.

 

“늘 의문은 들었다. 남자 앵커들은 안경을 끼는 게 자유로운데, 그럼 여자도 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임현주 아나운서가 했다는 말이다. 여성 진행자만 안경을 쓰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는 것이다. 부동의 언론인 영향력 1위인 손석희 앵커만 해도 JTBC 《뉴스룸》을 안경 쓰고 진행하는 중이고, 《뉴스룸》 주말 진행자인 김필규 앵커도 안경을 쓴다. 이렇게 남성 진행자들은 안경 착용이 자유롭고 아무런 화제도 되지 않는다. 반면에 여성 뉴스 진행자는 안경 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여성 아나운서들이 교양 프로그램 진행자로 나섰을 때도 안경은 역시 쓰지 않았다. 《뉴스룸》에서도 주중, 주말 여성 진행자 모두 안경을 쓰지 않는다. 너무나 이상한 풍경이 우리 방송가에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안경은 외모와 관련이 깊다. 안경 쓴 여성은 예쁘지 않은 것과 연결된다. 드라마에서 안 예쁜 여주인공이 예쁜 여성으로 변신하는 설정일 때 안 예쁜 상태를 보여주는 소품으로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안경이다. 안경을 벗으면 비로소 미인으로 완성된다. 안경은 외모를 예쁘게 꾸미는 성의와도 연결된다. 안경을 쓴 모습은 외모를 열심히 꾸미지 않고 대충 민낯을 가린 것으로 인식된다. 임현주 아나운서도 ‘안경=성의 부족 혹은 민낯용’의 느낌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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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 외모지상주의 필수 소품 ‘안경’

 

이렇게 안경에 ‘예쁘지 않음’ 또는 ‘예쁘게 꾸미지 않음’이라는 뜻이 있고, 여성에게 안경이 금기였다는 것은, 여성에게만 강력한 외모지상주의가 작동했다는 의미다. 여성은 안 예쁘면 안 되고, 예쁘게 꾸미지 않아도 안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예쁘게 보이며, 성의껏 꾸몄음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안경 벗고 렌즈 낀 얼굴이었다. 이로 인해 눈 건강을 해칠 지경이 돼도 여성에게 부과되는 외모지상주의는 강고했다.

 

여성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외모지상주의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옷차림도 그렇다. 남성 뉴스 진행자의 의상에선 보통 신뢰성이 가장 강조된다. 그래서 짙은 색깔의 정장일 때가 많다. 반면에 여성 진행자는 화사한 색감인 경우가 흔하다. 여성 진행자에겐 신뢰성보다 화사한 화면 장식 기능이 더 강하게 부과되는 것이다. 임현주 아나운서도 이 부분을 의식하고 최근엔 덜 화사한 옷을 입으려 노력한다고 한다.

 

남녀 진행자의 나이 차이에서도 방송계의 여성관이 드러난다. 신뢰성과 전문성의 느낌이 있는 중년 남성과, 화사한 젊은 여성이 짝을 지어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성은 연차가 쌓이면 더 큰 존재감으로 자리를 지키지만, 여성은 더 젊은 여성으로 대체된다. 그래서 여성 진행자의 교체주기가 짧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꽃을 가는 것과 비슷한 구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날씨를 전하는 기상캐스터도 과거엔 기상 전문가인 중년 남성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진행했었다. 최근엔 주로 젊은 여성들이 진행하는데, 몸매를 강조하는 의상을 입을 때가 많아 과거 남성 기상캐스터가 전문성을 내세웠던 것과 대비된다. 방송계에서 여성 기상캐스터를 이런 식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대중이 여성 기상캐스터의 전문성을 무시할 때가 있어 자괴감을 호소한다.

 

안경은 지성과도 연결된다. 안경 쓴 사람은 지적이고, 공부를 많이 했고, 날카로운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것은 방송에서 남성과 연결되는 특질이다. 방송계가 여성에겐 순종적이고, 귀엽고, 섹시하며, 외모만 예쁜 존재이길 요구하기 때문에 안경이 여성 진행자에게 금기가 된 것이다.

 

임현주 아나운서의 안경이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준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임 아나운서에겐 많은 사람들의 지지가 쏟아졌다. 한편으론 ‘우리나라가 여성 아나운서의 안경 착용에 이렇게 깜짝 놀랄 정도 수준밖에 안 됐단 말인가’라는 자탄도 나왔다. 임현주 아나운서의 결단이 방송계 여성관 대전환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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