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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수령 김정은, 아버지와 같은 듯 달랐다

국제사회에 본격 데뷔한 김정은 위원장 스타일…행동과 패션의 정치학

오종탁 기자 ㅣ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7(Fri) 17: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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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어렵사리 평양냉면을 가져왔는데 대통령님께서 좀 편한 마음으로 멀리서 온, 아 멀다고 말하면 안되갔구나."(일동 웃음) 

 

가히 '제2의 데뷔'라 할 만하다. 2018 남북정상회담에서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얘기다. 2010년 9월28일 북한 차기 지도자로서 공개석상에 처음 등장했던 김 위원장이 이번처럼 국제사회에 본인 스타일을 맘껏 드러낸 적은 없었다. 잠깐잠깐씩 북한 방송에 비치는 김 위원장 모습에 맹인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 분석이 쏟아질 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김 위원장이 대화 국면에 완연히 녹아든 만큼 앞으로도 그의 '민낯'을 쉽게, 자주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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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과 허심탄회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김 위원장의 스타일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파격'과 '허심탄회'다. 예상을 뛰어 넘은 적극적인 모습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나타났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남쪽으로 오려는 김 위원장에게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위원장은 남측으로 넘어온 뒤 "그럼 지금 (북측으로) 넘어가 볼까요"라며 문 대통령 손을 잡아끌었다. 두 정상이 손 잡고 MDL을 넘는 장면은 이번 회담의 주제 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진으로 남았다. 남북 정상이 폭 50㎝, 높이 5㎝의 콘크리트 시설물로 된 분단의 선을 함께 넘나드는 퍼포먼스가 성사되자 지켜보던 남북한 수행원들 사이에서는 저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화기애애함은 본격적인 회담 전까지 계속됐다. 화동으로부터 꽃을 받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 김 위원장은 화동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다감함을 보였다. 이어 김 위원장은 남측 수행원들과 밝게 웃으며 인사하고, 일일이 손 내밀어 북측 수행원들을 문 대통령에게 소개했다. 팔자로 성큼성큼, 팔을 휘휘 저으며 걷는 모습은 자신감을 반영했다. 문 대통령의 '방남 초청' 발언에 흔쾌히 화답한 대목에서도 김 위원장의 대담성이 엿보였다. 문 대통령이 이날 전통의장대 행사가 약식으로 치러졌다면서 "청와대에 오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하자, 김 위원장은 "초청해주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은 나이가 30살 이상 많은 문 대통령에 대한 정중함도 잃지 않았다. 이는 정상회담 직전 모두발언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대통령님'으로 칭하며 손윗사람 대하듯 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평화와 번영, 북남 관계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출발선에서 신호탄을 쏜다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강조해온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그대로 언급한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 위원장이 회담 준비를 많이 했고, 문 대통령을 존중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다"고 평가했다.

 


인민복, 뿔테 안경…패션의 정치학


앞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남북정상회담에 김 위원장이 어떤 옷을 입고 나올지도 큰 관심사였다. '정상 국가'임을 강조한 최근 행보를 감안할 때 서양식 정장을 입으리라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오전 김 위원장은 줄무늬가 있는 검은색 인민복을 입고 등장했다. 족히 10여명은 되어 보이는 근접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아가며 수행원단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걸어 내려왔다. 잠시 후 뒤따르던 공식 수행원단이 다른 통로를 이용하고자 비켜섰고, 김 위원장 혼자 판문점 MDL 쪽으로 다가왔다.

 

인민복은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의 상징이다. 양복 대신 인민복을 선택한 것은 북한 내부를 다독이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북한에서도 생중계는 아니지만 녹화방송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시청한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격변기 속 북한 지도층과 주민들이 동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의 파격적인 대외 개방 행보와 달리 북한 내부에서는 반(反) 사회주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내부 개혁에 대해선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며 부분적,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갈색 뿔테 안경을 착용했다.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 때는 인민복을 입고 안경은 쓰지 않았다. 또 문 대통령과 회담장에서 마주앉자마자 검은색 파일을 열었다. 북·미 정상으로 이어지는 릴레이 회담 국면에서 진중함과 준비성을 어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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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정일과 '같은 듯 다른 듯'


김 위원장의 모습에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2011년 홀로서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김 국방위원장 혹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외모, 제스처를 따라해왔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 환영 행사에서 김 위원장이 자연스레 상황을 주도하는 장면이 지난 1, 2차 남북정상회담 때의 김 국방위원장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이 많았다.

 

김 위원장은 이날 판문점 평화의집 방명록에 "새로운 력사(역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역사)의 출발점에서"라고 썼다. 메시지에 함축된 의미 못지않게 20~30도 기울여진 김 위원장의 독특한 필체가 눈길을 끌었다.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올려 쓰는 김 주석의 이른바 '태양서체'를 연상시킨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도 지난 2월 문 대통령을 예방해 청와대 방명록에 태양서체를 연상시키는 필체를 남겼다. 
 
김 위원장은 간간이 젊은이 특유의 설익음과 발랄함도 내비쳤다. 우리 군의 의장 행사 때 김 위원장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군악대의 연주가 이어지는 동안 무표정으로 레드카펫을 걸었다. 의장대 사열을 기다리면서는 거수경례를 하는 문 대통령 옆에서 굳은 표정으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회담장에 들어서서는 이내 긴장을 풀었다. 평양냉면과 관련한 회담 모두발언이 압권이었다. 김 위원장은 "오기 전에 만찬 음식으로 얘기를 많이 하던데 평양에서 어렵사리 평양냉면을 가져왔다"면서 "대통령님이 좀 편한 마음으로, 평양냉면, 멀리서 온, 아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겠)구나, 좀 맛있게 드시면 좋겠다"며 웃었다. 농담할 때는 수줍은 듯 시선을 어디로 둘지 몰라 했다. 주변 수행원, 취재진은 물론 TV를 시청하는 전세계 시청자들이 웃음 지은 부분이다. 주요 회담의 모두발언이 다양한 함의를 담아 미리 구체적으로 짜이는 것을 고려하면 이런 화법은 다소 이례적이다. 이어진 문 대통령 모두발언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는 느낌이어서 더 대조됐다.

 

김 위원장을 수행한 동생 김여정 제1부부장도 냉철함 뒤의 풋풋함을 숨기지 못했다. 김 부부장은 문 대통령이 환담장에서 "(평창동계올림픽 때 특사로 방남해) 남쪽에서 아주 스타가 됐다"고 추켜세우자 얼굴이 빨개진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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