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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주머니’로 전락한 ‘여성정치발전기금’

중앙선관위 ‘5개 정당 여성정치발전기금 지출 내역’ 자료 입수… 평균 75% 인건비로 운용

구민주 기자 ㅣ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4(Fri) 11:22:26 | 15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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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정치발전기금’이 이름값을 못 하고 있다. 각 정당마다 많게는 매달 1억원 이상씩 해당 명목으로 지출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조직 내 여성 직원 인건비로 나가고 있다. 진정한 여성정치발전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비용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다. 여성의 정치 참여가 과거에 비해 활발해졌음에도 여성정치 발전을 위한 정치권의 고민과 의지가 늘 부족하다는 인식이 지속되는 이유 중 하나다.

 

여성정치발전기금은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와 여성 인재 육성을 위해 2004년 정치자금법에 추가됐다. 정치자금법 제28조에 따르면, 국가가 지급하는 정당보조금의 10% 이상을 여성정치발전을 위해 쓰도록 돼 있다. 해마다 각 정당엔 적게는 수십억원, 많게는 수백억원의 정당보조금이 지급된다. 의석수가 가장 많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기준 국가(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각각 126억원의 정당보조금을 받았다. 각 정당은 이 중 10% 이상을 여성정치발전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사용했다는 회계내역을 분기마다 선관위에 제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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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받은 5개 정당(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최근 여성정치발전기금 지출내역에 따르면, 적게는 60%, 많게는 99% 이상을 여성 직원 급여로 사용해 왔다.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정의당은 최근 1년(2017년 6월~2018년 6월),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은 창당 직후 5개월(2018년 2~6월)간의 여성정치발전기금 지출내역을 확인한 결과다. 

 

최근 1년 동안 민주당은 약 14억원을 여성정치발전기금 명목으로 사용했다. 이 가운데 명절 상여금을 포함해 여성국 당직자 급여로 지출된 금액은 9억2000만원으로 전체 65.3%에 달한다. 자유한국당의 경우 같은 기간 민주당과 비슷한 13억5400만원 정도를 여성정치발전기금으로 사용했다. 이 가운데 13억4700만원, 무려 전체 99.4%가량이 모조리 ‘여성본부사무처 급여’라는 이름으로 빠져나갔다. 게다가 자유한국당 조직도에 여성본부라는 기구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시·도당에 근무하는 여성 당직자들을 일컫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의 급여 지급 외엔 여성의원총회 및 토론회 현수막과 자료집 제작 등으로 남은 기금이 사용됐다.

 

 

민주당 65%·한국당 99% 직원 급여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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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창당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최근 5개월 동안 각각 4억9000만원, 6900만원을 여성정치발전기금으로 사용했다고 선관위에 신고했다. 그 가운데 바른미래당은 3억8000만원(76.8%), 민주평화당은 4800만원(70.4%)을 여성위 업무 당직자와 시·도당 여성 직원 급여로 활용했다. 정의당은 그나마 5개 정당 중 인건비 비중이 낮았다. 최근 1년 정의당이 사용한 여성정치발전기금 2억3000만원 중 급여로 1억8000만원, 즉 60%가 사용됐다. 차이는 있지만 5개 정당 모두 기금의 절반을 훌쩍 넘는 비중을 인건비에 쏟아 붓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여성 직원의 인건비로 기금을 사용하는 것 또한 큰 틀에선 여성정치발전을 위한다는 취지에 맞는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야권의 한 여성 당직자에 따르면, 해당 기금에서 인건비를 받는 여성 직원들의 업무 가운데 여성정치발전과 무관한 일반사무가 대부분이며 여성 관련 업무는 부가적으로 소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여성 직원이 스스로 정치인으로 성장하거나 여성 정치인을 육성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급여 등 인건비 외에 나머지 지출내역을 살펴봐도 여성정치발전을 위한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당 여성위원회 운영비나 간담회, 세미나, 여성의 날 행사 등 일회성에 그치는 프로그램에 남은 기금이 사용되고 있다. 민주당의 경우, 그나마 지난해 각 권역을 돌며 한 차례씩 여성 당원들에게 ‘정치아카데미’라는 이름의 교육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각 당마다 수차례에 걸쳐 깊이 있게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찾긴 힘들었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경우, 2018년 상반기 여성정치발전기금 회계내역에서 직원 급여를 제외한 대부분이 전국여성대회 등 당내 행사에 사용한 의자 대여비, 현수막 제작비, 빔프로젝트 사용료 등 부수적인 지출이었다. 

 

여성계는 이처럼 인건비를 제외하더라도 여성정치발전기금이 단발성 행사 중심으로 소진되는 데 대해, 기금의 의의에 대한 정당 내 인식 부족을 지적한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부대표는 “당 지도부부터 예결산 담당하는 이들까지 기금을 제대로 활용하고자 하는 고민이 없으며 오히려 이 기금이 여성들에게 불공평한 특혜를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여성에게만 돈이 가면 되지 않느냐는 인식 탓에 지금까진 여성이 일부 포함된 행사라면 여성국이나 여성위 주최 행사가 아니라도 기금에서 지출하는 방식도 보여왔다”고 비판했다. 내용 불문하고 매달 정당보조금 중 10% 이상 사용했다고 보고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여성정치발전 프로그램 안 보여

 

2004년 법 제정 후 여성정치발전기금이 줄곧 허투루 쓰였다는 문제가 되풀이돼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행법상 정당보조금의 10% 이상을 사용하라는 조항만 있을 뿐 어디에 어떻게 쓰라는 자세한 규정은 마련돼 있지 않다. 선관위도 이 10% 규정만 지키면, 인건비만으로 기금의 전부를 사용해도 당을 제재할 명분이 없다. 게다가 2008년 선관위에서 여성정치발전기금을 인건비로 사용해도 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역사도 있다. 이 때문에 기금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노골적으로 각 당의 월급 주머니로 활용됐다.

 

상황이 반복되자 일부 여성단체에선 여성정치발전기금 항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법제화해 인건비로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자칫 각 당 여성 직원들에 대한 처우가 악화되는 또 다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부대표는 “무조건 인건비로 사용하지 말라고 해 버리면 정당 내부 사정을 고려했을 때 당장 여성 직원의 인건비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당 내 사정에 따라 일정 부분까지만 직원 인건비로 사용될 수 있도록 지금보단 좀 더 구체적인 규정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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