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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국.일본의 위기 탈출 작전

미국·영국·일본 ‘밀레니엄 버그 방어 전략’ 입체 취재/벌써 사고 속출… 점검·예방·사후 대책 부심

ㅣ 승인 1999.01.28(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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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버그’로 잘 알려진 Y2K 문제는 올해 내내 지구촌을 뒤흔들 것이다. 미국의 소프트웨어 전문 연구 회사 ‘켑제미니 아메리카’가 최근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선진 30개국의 컴퓨터 소프트웨어만도 7천억개에 이른다. 이 모든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Y2K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세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99년 초반부터 전세계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99년을 전망한 간행물에서 올해 6월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회사의 주식은 폭락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밀레니엄 버그와 관련해서 나오는 시나리오들은 암울한 것 투성이다. 이 시나리오들은 세기말의 불안한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할 것이고 사회와 금융 시장에 나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일반인 또한 Y2K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다. 많은 사람은 2000년에 위험을 무릅쓰고 비행기를 타는 대신, 99년에 미리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다녀올 것이다. 기업체도 몇주 동안 공급자가 물품 배달에 차질을 빚을 것에 대비해 물건을 미리 사서 쌓아 놓을 것이다.

컴퓨터 왕국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보자. 현재 미국은 연방 정부와 주 정부는 물론이고 각종 공공기관, 병원, 심지어 슈퍼마켓까지 ‘Y2K’공포에 떨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온 미국은 이미 99년 예산에 34억 달러를 배정했다. 중앙 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는 99년 말에 국민 수천만명이 Y2K 문제를 우려해 현금자동인출기로 몰릴 것이라고 내다보고 현금 5백억 달러를 추가로 발행해 풀기로 결정했다.

전세계에서 최고 6천억 달러 소요 예상

미국 정부 부처 가운데 Y2K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은 국방부이다. 미국 국방부는 이 문제와 관련한 정부 예산 34억 달러 가운데 무려 22억5천만 달러를 배정받았다. 국방부의 컴퓨터 시스템이 잘못되면 미사일 발사에서부터 봉급 지급까지 뒤죽박죽이 된다. 이 때문에 미국 국방부는 98년부터 전체 컴퓨터 시스템을 부랴부랴 손보기 시작해 현재 절반 정도를 고쳤다. 미국 국방부는 이도 못미더워 99년 상반기 안에 ‘미션 크리티컬’(중대 임무)을 가진 컴퓨터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밀레니엄 버그 때문에 생기는 오작동 여부를 추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000년 1월1일부터 연방 정부나 주 정부로부터 연금·의료보험·사회보험 같은 각종 복지 혜택을 받는 일반 국민 수백만명의 피해도 예상된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의 50개 주 대부분이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컴퓨터 망을 정비하지 못하는 바람에 2000년 1월1일부터 복지 혜택을 받는 노인들이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 컴퓨터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많은 주의 관리들이 지진 직후처럼 일일이 해당 수혜자에게 수표를 끊어 주는 번거로운 일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연방 정부 산하 회계감사국(GAO)이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연방 정부의 의료보험 컴퓨터 시스템 4백21개 가운데 제대로 돌아간 것은 3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이 문제가 환자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미국 병원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를테면 심장부정맥 치료 장치나 심장 박동기, 초전도 장치 같은 의료 기기가 시간을 측정하지 못할 경우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때문에 코넬 대학 의과대학 산하 뉴욕 병원은 최근 의료 기기 1만6천개를 낱낱이 점검했다.

민간 기업들도 안절부절이다. 흥미로운 실례가 있다. 98년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인 크라이슬러 사는 한 조립 공장에서 승용차 내부 전자 장비에 붙은 시계 작동 장치를 조정해 Y2K 문제를 해결하려다 낭패를 보았다고 한다. 컴퓨터가 2000년을 인식하지 못해 엉뚱하게도 문 잠금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바람에 졸지에 자동차 수천 대의 문이 잠겨 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민간 기업들은 이미 이 문제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가트너 그룹 추산에 따르면 Y2K 문제를 해결하려고 미국이 들이는 돈이 적게는 4백억 달러에서 많게는 2천억 달러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전세계적으로는 최고 6천억 달러가 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Y2K 문제가 심각한 국가 사안으로 등장하자, 미국 연방 하원은 98년 10월 대통령 직속으로 전담 기구를 만드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00년 정보 공개 준비법’이라는 이름의 이 법 조항 중 눈길을 끄는 것은 Y2K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이 정보를 서로 잘못 제공해 피해가 생기더라도 상대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미국 법무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쟁 기업들이 협력하는 것은 반독점금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유권 해석을 내려서, 기업들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협력하기를 권하고 있다.

대책기구 책임자가 비상 식량 구입 권유해 ‘물의’

영국도 Y2K 문제로 떠들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98년 말 영국 언론에는 시민들에게 보내는 다음과 같은 권고가 실렸다. ‘새 천년이 시작된 직후 식료품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통조림에 든 비스킷, 장기 보관용 우유 등 비상 식량을 최소 2주일 분량을 비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영국 국민에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식량을 비축하라고 자상하게 권고한 이 사람은 누구일까? 그 주인공은 지구 종말을 떠드는 광신자 단체 대표가 아니라 영국 정부 차원의 Y2K 대책 기구인 ‘액션 2000(Action 2000)’ 실무 책임자 귀네스 플라워 국장이었다. 노동당 정부는 이같은 보도가 터져 나오자 시민들이 불안해 할까 봐 즉각 총리실 대변인 성명을 내 해명했다. 플라워 국장의 발언은 2000년 1월1일을 전후한 연휴 10일 동안 대부분의 상점과 음식점이 문을 닫으므로 생활 지혜 차원에서 사전에 식료품을 구입하라는 권고였다는 변명이다.

노동당 정부가 서둘러 플라워 국장의 발언을 둘러싼 소동을 진화하기는 했지만 이미 영국에서는 밀레니엄 버그 관련 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액션 2000’은 이미 금융기관과 산업 시설 등 컴퓨터 기술이 이용되는 영국 기업체 가운데 3분의 1에서 밀레니엄 버그 관련 사고가 발생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액션 2000이 발표한 실례를 보면 △주택 자금을 대출하는 금융기관이 고객에게 대출 계약 갱신 기간을 1999년에서 1900(원래는 2000년이 되어야 함)년으로 작성한 계약서를 보내고 △부두에서 정유 회사가 석유를 하역하던 중 컴퓨터가 안전 기술 검사 기간을 잘못 인식해서 작업이 중단되고 △국가 의료 보험 서비스 당국 컴퓨터가 99년 12월 이후 환자에 대한 예약을 받지 못하는 등 사고 유형이 다양하다.
피난처 구하기 소동도

또 영국에서는 Y2K 문제와 종말론을 결합해 지구 최후의 날이 다가왔다고 주장하는 광신적 종교 단체까지 들끓고 있다. 이들은 밀레니엄 버그가 인류가 저지른 죄악의 대가라고 본다. 영국 사회 일각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한 지구 종말 대비 단체가 만들어지고, 비상 식량과 피난처를 공동으로 구입하거나 자전거와 자가 발전기 같은 자력 생존 기구 매출이 늘어나는 등 서서히 동요가 일고 있다. 더구나 영국 언론의 폭로는 시민들을 더욱 술렁이게 하고 있다. 1월6일 <인디펜던트>는 오는 8월22일 여객기 운항 위치를 확인하는 데 쓰이는 인공위성 자동 위치 측정 시스템(GPS) 장애로 항공기가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은 메이저 전 보수당 정권 시절부터 밀레니엄 버그 문제에 관심을 갖고 ‘태스크포스 2000’이라는 전담 기구를 만든 바 있다. 영국 정부는 이 기구를 중심으로 민간 전문가와 힘을 합쳐 대응 방안을 찾아 왔다. 블레어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 기구는 ‘액션 2000’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Y2K 문제 대처 수준에서 선두 그룹인 영국조차도 대응 진척도가 겨우 47% 선에서 그치고 있다. 영국 전문가들은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며 오로지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메이저 정부 시절의‘태스크포스 2000’책임자 로빈 게니러씨는 전염병과 내란이 발생했을 때 취하는 범국가적 차원의 ‘임시 작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태에 대한 블레어 정부의 판단이 너무 안이하다고 진단했다.

현재 노동당 정부는 버그 퇴치 예산 규모를 될 수 있는 한 줄이려고 한다. 그러나 게니러씨는 5백억 파운드(1월16일 현재 환율로 한국 돈 약 백조원) 정도가 투입해야 전반적인 해결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영국 사회 각 분야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이는 비용은 예상치를 훨씬 초과하고 있다.

정부내 각 부처도 예외가 아니다. 보건부의 국가 의료 서비스 체계인 NHS의 컴퓨터 시스템도 5억 파운드가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성 바톨로뮤 병원의 컴퓨터 책임자인 마이크 스미스 박사는 NHS 컴퓨터 가운데 10%만 고장 날 경우, 즉시 전국적으로 환자 1천5백명 이상이 숨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블레어 정부는 현재 시민들의 심리적 공황을 사전에 막고 경제와 산업 전반에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낙관적 입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 기관이나 민간 단체, 언론들은 이러한 정부의 자신감이 자만이라며 비판을 계속하고 있다.

금융 시장 경색 등은 불가피

일본에서는 96년 초 ‘2000년 문제’라는 이름으로 Y2K 문제가 처음으로 떠올랐다. 일본 정부는 현재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총리 직속으로 ‘컴퓨터 2000년 문제 관계 성·청 연락회의’를 두고 있다. 또 98년 예산에 약 5천억엔을 ‘2000년 문제’ 대책비로 올려 놓았다. 98년 말에는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소프트 하우스’를 만들고 기업들이 의뢰할 경우 비용을 정부가 대주겠다고 발표했다.

또 후생성은 98년 11월 ‘국립 병원·요양소 등의 서기 2000년 문제 실시 요강’과 대책 매뉴얼을 만들었다. 국립병원은 98년 12월까지 환자 생명에 관한 인공 호흡기와 심장 페이스 메이커 등을 ‘우선 의료 기구’로 지정해서 의무적으로 점검하고 보고하도록 했다.

일본의 Y2K 대응 태세를 보면 중소기업이 가장 큰 문제이다. 현재 일본 대기업들은 자사 컴퓨터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하청 기업들에 자비로 시스템을 수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불황에 따른 자금난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이를 수정할 여력이 없다. 실제로 98년 9월 일본 중소기업청이 전국의 중소기업 만개를 조사한 결과 구체적 대응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대답한 기업이 30%를 넘었다(대응 완료 46.2%, 대응 중 20.6%, 검토 중 18.6%, 미검토 14.6%). 일본 정부가 Y2K 문제를 풀기 위해 만든 ‘소프트 하우스’도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프트 하우스 관계자들은 “정부가 출자하는 것은 시스템을 조사하는 조사비뿐이다. 결국 수정 경비는 기업이 부담해야 한다”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본의 컴퓨터 전문가들은 2000년까지 완벽하게 Y2K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일본 기업은 극소수일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이들은 대책을 서두르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나 2000년까지 시간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위기 관리 계획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시스템이 정지했을 경우라도 수작업으로 일을 하고, 고객 정보를 따로 저장해놓고, 자금과 전력을 확보해 놓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일본의 컴퓨터 전문가들은 Y2K 문제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2000년 이후 손해 배상 소송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그 액수는 60조엔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같은 소송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신용카드 유효 기간 2000년을 인식하지 못하는 금전 등록기를 제조한 일본 회사가 미국에서 제소된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전세계는 그야말로 Y2K와 힘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드는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97년 9월 미국의 기드니 그룹은 이 비용을 6천억 달러로 추산했다(2차 세계대전 4조2천억 달러, 베트남전 5천억 달러). 이 전투에서 어렵사리 이겨서 대형 재난은 면하더라도 내년 초반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후유증은 어쩔 수없다. 항공기 운항 감소, 주가 급락, 금융 시장 경색, 세계 경기 하락 가능성이 바로 그것이다.


워싱턴·卞昌燮 편집위원,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런던·韓准燁 편집위원, 崔寧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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