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제조''한 과거부터 반성하라
  • 이효성 (성균관대 교수·언론학) ()
  • 승인 1997.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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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들 “감시견 구실 못했다” 고백문 게재…근본 잘못 외면한 ‘변명문’에 그쳐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가장 큰 책임은 김영삼 정권의 무능과 비리에 있다. 물론, 국가가 위기에 빠진 데 대한 모든 책임을 정권에만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국난의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은 그동안 국정을 4년간 이끌어온 대통령과 그 정권에 1차적인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통령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리고 국정을 거의 마비시켜 버린 직접적인 계기가 된 노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 한보 비리, 김현철 국정 농단 등은 모두 대통령과 그 정권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과 그 정권 못지 않게 책임을 져야 할 존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언론이다. 특히 김영삼씨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나섰던 몇몇 언론과 언론인에게는 큰 책임이 있다. 어쩌면 도덕적으로는 김대통령과 그 정권보다 언론사와 언론인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언론의 사회적 책무는 특정한 대통령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자들의 자격을 검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대통령 후보자들의 자격을 검증하는 본연의 임무는 방기하고, 특정 후보, 그나마도 자격이 의심스러운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주제넘는 일에는 적극 나섰다.

대통령은 국가를 이끌어 가야 하는 만큼 상당한 식견과 비전이 필요하다. 그런데 몇몇 언론과 언론인은, 식견이나 비전이 있어야 답할 수 있는 질문에 핵심이 없는 답변을 하거나 동문서답을 하고, 텔레비전 토론에는 감히 나오지 못하고, 머리는 빌리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열을 올렸다.

그런 그들이 스스로 만든 대통령과 그 정권을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우리 언론은 과거와 달리 상당한 언론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김영삼 정권을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하지 못했다. 우리 언론의 대부분은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아들마저도 성역시하였다. 대통령이 독선의 칼을 휘두르고, 대통령의 아들이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형 대형 비리가 생기게 된 데는 정권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이 없었거나 부족했던 탓이 크다.

국정을 제대로 이끌 만한 자질이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고도 그 정권을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하지 않았던 언론과 언론인이 있다면, 그들은 그 대통령과 정권의 잘못에 대하여 마땅히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런 책임에 대한 압력을 느꼈음인지, 최근 몇몇 신문의 논설위원들이 칼럼을 통해 언론이 정권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감시견 구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거나, 정권이 위기에 몰리자 그때서야 정권이나 김현철을 비판하고 나선 하이에나 같은 언론의 추한 모습을 나무라거나 하였다. 이런 모습은 자기 비판에 인색한 우리 언론으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다. 더구나 어떤 칼럼 내용은 책임을 지려는 자세라기보다는 변명에 가까웠다. 그 반성의 깊이와 철저함도 부족했다.

언론의 임무에 충실하겠다는 다짐 없어

이들 논설위원의 어느 글에도 언론이 김영삼씨를 대통령으로 만든 주제넘는 일에 나섰던 근본적인 잘못을 반성한 대목은 없다. 우리 언론과 언론인은, 특히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언론과 언론인은, 정권을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기에 앞서 대통령을 만드는 일과 같은 비언론적인 일에 나섰던 점을 먼저 반성해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는 대신 대통령 후보자들의 자격을 검증하는 본연의 임무를 철저히 수행하겠다는 다짐을 밝혔어야 했다. 그들은 아직도 자기들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알아도 반성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그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러나 변명에 가까운 것을 빼고는 그나마 없는 것보다야 나은 반성은, 논설위원 개인 차원의 것이지 언론사 차원의 것은 아니었다. 언론이 진정으로 책임을 느낀다면 정권을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하지 못했던 점뿐만 아니라, 언론 본연의 정도를 벗어나 후보자 검증 대신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일을 언론사 차원에서 자책하고 국민에게 사과하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것을 다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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