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엔 중수부, 국세청엔 조사국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8.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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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세무 사찰로 개혁 전위대 노릇…기밀 보호 철저
국세청 조사국은 대검의 중수부, 7개 지방 국세청 조사국은 각 지검의 특수부에 견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갖고 있는 기능은 검찰 이상이다. 검찰은 인신을 속박하는 방법으로 권력을 행사하지만, 국세청은 ‘먹고 살아야 할 양식’을 고갈시키는 방법으로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에, 잘못 걸려들었다 하면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된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직후의 일이다. 5년 임기를 채우기도 전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로 들어감으로써 너무 빨리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그때만 해도 문민 정부의 개혁 기치는 힘차게 펄럭였다. 정부는 개혁의 일환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성역’으로 남아 있던 유력 언론사들에 대한 세무 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중앙 언론사들은 박양실·박희태 씨를 비롯한 문민 정부 초대 장관급 인사들의 약점을 잡아 이들을 퇴진시키는 등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취재를 통한 고발과 여론 동원이라는 방법으로 생살 여탈권을 휘두르는 중앙 언론사를 상대해, 정부가 국세청을 동원해 맞싸움을 벌인 것이다.

상대를 이기더라도 자신 역시 중상을 입을 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맹수’들의 싸움은 싱겁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국세청과 언론사들 간의 싸움이 그러했다. 그러나 언론사들도 민간 기업인지라 세무 조사의 칼날을 피할 법적인 권리는 없었다. 당시 한 유력 언론사는 전 부서원에게 ‘오늘부터 우리 회사가 세무 조사를 받는다. 회사가 장부를 조작한 일이 없으니 혹시 조사를 받는 직원이 있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아는 대로 대답하라’고 특별 지시까지 내렸다. 세무 조사의 칼날이 내려올 때까지는 긴장한 채로 아주 조용히 대처했던 것이다.

민간 최고의 권력 기관임을 자부하는 언론사마저도 긴장시키는 국세청 조사국은 어떤 곳인가. 66년 국세청이 개청할 때 박정희 대통령은 검찰·경찰 등이 행사해 오던 세무 사찰 기능을 앞으로는 국세청만 행사하도록 ‘교통 정리’를 했다. 이 지시는 국세청의 위상을 올린 결정적인 계기로 꼽힌다.

제련소 굴뚝 올라가 세원 찾아낸 일화도

국세청 개청과 더불어 생겨난 조사국은 요원 선발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공인회계사나 세무사 등 자격증을 가진 직원만을 선발함으로써 엘리트 부서로 자리잡았다. 초대 국세청장 이낙선씨는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가 내건 3대 국세 행정 지표 중의 하나는 ‘오명 불식’이었다.

박대통령으로부터 ‘견금여석(見金如石·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이라는 휘호를 받은 이청장은 이 글귀를 새긴 넥타이를 사찰 요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세무 조사를 받는 업체로부터는 볼펜 하나도 얻어 쓰지 말라는 뜻으로 볼펜·자·철끈·주판 등 52개 비품이 들어가는 사찰용 가방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이청장은 국세청 개청 첫해에 전년 대비 66.5% 늘어난 7백억원을 거두어들이겠다고, 당시로서는 아주 황당한 목표를 내세웠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는 국세청장 전용차에 ‘관 700’이라는 번호판을 붙이고 다녔다. 이러한 극성 끝에 국세청은 개청 첫해에 세수(稅收) 7백억원 달성이라는 기적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박정희와 이낙선에 의해 ‘제대로’ 자리잡은 국세청 조사국은 이후에도 그 명성을 유지해 왔다.

훗날 중부지방 국세청장까지 지낸 조사국원 장병순씨의 일화는 조사국원들의 세원 발굴 노력이 얼마나 처절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된다. ○○제련소를 담당한 장씨는 어느날 그 제련소가 ‘굴뚝에 그을음으로 붙어 있는 금과 구리를 수거해 짭짤한 수익을 올린다’는 소문을 들었다. 얼마 후 이 제련소에 간 장씨는 백m나 되는 굴뚝 꼭대기에 기어올라가 그을음의 두께를 측정한 후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세금을 부과했다는 전설이 있다.

조사국을 필두로 한 국세청은 기밀이 새나오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5공 시절 국세청장을 지내고 안기부장이 된 안무혁씨가 안기부 직원들에게 “국세청 직원들만큼 기밀을 철저히 지키라”고 당부할 정도로 국세청의 기밀 보호는 철저하다. 이러한 업무 특성 때문에 조사국 책임자에는 권력층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임명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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