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주부, 일을 따르자니 아이가 울고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6.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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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취업 ‘최대의 적’은 육아 문제…보육 시설 태부족, 비용 부담도 커
‘누구에게 아이를 맡기느냐’가 어디서 사느냐를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가 되고 있다. 이것은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생긴 새 풍속도다. 잡지사 편집장인 조 아무개씨(37)는 지난해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서울 대림동에 전세집을 얻었다. 성산동에 아파트가 있지만 이른바 ‘탁아 이사’를 한 것이다. 갓난아이는 이모에게 맡길 요량이었고, 첫 아이는 이미 대구 시댁에 보낸 터였다.

요즈음 맞벌이 부부들은 겉보기는 부부 중심의 핵가족이지만 생활은 확대 가족으로 살고 있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시가나 처가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그 주위에 전세집을 얻는 것이다. 남편은 건축설계사이고 아내는 의류회사 디자이너인 한 32세 동갑내기 부부도 시댁과 5분 거리에 이사가 아이를 맡긴다. 부모들은 원치 않는데 억지로 ‘낑겨’사는 30대 맞벌이 부부들도 늘고 있다.

30대 부부들의 육아 문제는 전쟁을 방불케 한다. 일하는 엄마를 가진 아이들은 불행하다거나, 아이 엄마의 취업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공격이 남성이나 전업 주부로부터 날아들기도 한다.

X세대 할머니들, 아기 보기 거부

대가족 제도는 육아와 노인 문제를 가정 안에서 감싸안았다. 80년대 들어 해체된 대가족의 자리에 핵가족이 성큼 들어섰지만 이 제도가 일으키는 문제는 거의 대부분 미해결로 남아 있다. 게다가 따로 사는 아이들의 할머니들도 이제는 손자손녀 보기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심리적 거리감은 두 세대의 물리적 거리보다 더 멀어 보인다. 이 ‘X세대 할머니’들은 여생을 즐겁게 보내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아이들을 독립시키고 생활의 축을 부부 중심으로 이동시키고 있는 뉴 그레이 세대를 이른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자녀를 두지 않고 부부만의 삶을 추구하는 맞벌이 부부층)’에 빗대어 부르는‘통크(Two Only No Kids)족’도 곳곳에서 출현하고 있다.

다양한 탁아 방법이 나타난 것은 맞벌이 부부 증가가 가져온 제2의 풍속도다. 시간제 취업 주부와 재택 근무자 사이에 인기가 있는 ‘품앗이 탁아’나 ‘공동 탁아’, ‘24시간 탁아’가 그것인데, 특히 공동 탁아가 눈길을 끈다. 서울 연남동의 ‘우리 어린이집’은 공동육아협동조합 방식으로 94년 8월 처음 세워진 보육 시설이다. 현재 전국에 5개가 있다. 조합 설립과 운영을 당사자인 부모가 직접 함으로써 육아의 질과 내용을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맞벌이 부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95년 말 현재 맞벌이 부모가 키우는 다섯 살 이하 어린이는 1백81만명이다. 열두 살 이하 초등학생까지 합치면 그 수가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국가 보육 시설이나 놀이방 등 전국의 보육 시설은 9천85개소밖에 안된다. 따라서 전체의 16%인 29만여 명만이 혜택을 누리고 있다. 보육 비용도 여성 근로자 평균 임금의 30%를 넘는다. 생계형 맞벌이 가정은 부담이 커 헉헉댈 수밖에 없다. 또 보육 시설의 일과가 빨리 끝나는 데다 수도권에 몰려 있는 등 제약이 많아 이용하기 불편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정부는 94년 10월에 만든 ‘영유아 보육시설 확충계획’에 따라 97년까지 보육 시설을 7천5백90개 늘려 1만3천6백78개소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1조3천억원을 이 사업에 쓰는 대가로 보육률은 60%로 높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보육률 60%는 이미 일하고 있는 엄마들의 수요 충족률을 나타내는 것뿐이다. 보육 시설이 구비된다면 일을 가지겠다는 잠재 수요가 꽤 넓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보육률을 80%로 높이려면 시설을 1만6백개 더 세워야 하며, 1조8천억원을 더 들여야 한다. 이에 비해 공동육아협동조합은 부모들의 자발성에 기초하므로 정부의 적은 지원만으로도 가능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시설 확대책이 될 수 있다.

보육 시설 설치한 사업장은 40여 개뿐

개인탁아·놀이방·유치원을 거친 취학 어린이는 또 어찌할 것인가. 초등학생 가운데 약 70만∼80만 명이 3∼7시간을 보호자 없이 방치된 채 각종 안전 사고에 노출되어 있다. 아이들을 무리하게 피아노·미술 학원 등으로 돌리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초등학생의 문제는 방과후 어린이 지도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82%가 넘는 맞벌이 부부도 방과후 어린이 지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방과후 어린이 지도는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 동안 서울 상암, 안산 초등학교에서 시범적으로 실시되었고 최근 서울 돈암초등학교에서 첫 교실이 열렸다. 이 프로그램을 연구한 한국여성개발원 김인순 연구원은 “방과후 어린이 지도는 학교 교육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면서 가정 교육에 대안적 기능을 하므로 안전해야 할 뿐더러 교육적이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24시간 종일 보육 시설을 더 만들 필요도 커지고 있다. 이혼이나 별거, 부모 중 한쪽의 사망 등 가정 해체로 편부모 가정이 크게 늘고 있으며, 3교대제 근로자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민간 종일 보육 시설 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여성 근로자를 3백명 이상 고용하는 사업장은 직장 보육 시설을 설치하게 되어 있지만 이를 지키고 있는 곳은 국회·한국여성개발원·아시아나항공 등 40여 곳뿐이다.

보육 시설은 주부라는 노동력을 사회로 끌어내기 위해, 또 다음 세대의 주역을 키우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사회 간접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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