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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호르몬 요법 약인가 독인가

폐경기 여성에게 쓰이는 호르몬 요법의 유해성을 놓고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은 그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전문가 면담과 설문 조사를 함께 실시했다.

오윤현 기자 ㅣ noma@sisapress.com | 승인 2004.06.22(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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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성에게 젊음을 찾아준다는 호르몬 대체요법(HRT·요즘은 호르몬 요법이라고 쓰며, 영문 약자는 HT를 쓴다)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로 인해 수많은 폐경기 여성이 혼란을 겪고 있다. 2년 전 호르몬 요법 치료를 중단했다는 한 50대 여성은 “호르몬 요법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과 찬사가 난무하고 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시사저널>은 논쟁의 중심에 있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관계자와 대한폐경학회 관계자를 만났다. 그리고 호르몬 요법을 처방하는 의사 100명과 이용자(폐경기 여성) 100명을 대상으로 호르몬 요법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설문 조사했다. 그 결과는 자못 흥미롭다. 과연 호르몬 요법은 여성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2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2002년 7월, 미국 국립보건원은 한창 진행 중이던 WIH(Women’s Health Initiative) 연구를 돌연 중단했다. 그리고 호르몬 요법의 효과를 확인하는 실험에서 ‘5년 넘게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성분의 복합 호르몬제를 복용한 여성들이, 가짜약(플라시보)을 복용한 여성들에 비해 관상동맥질환·유방암·뇌줄중·폐색전증의 위험도가 훨씬 높았다’고 발표했다. 1을 기준으로 했을 때 관상동맥질환은 1.29, 유방암은 1.26, 뇌졸중은 1.41, 폐색전증은 2.13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전세계 폐경기 여성들은 혼란에 빠졌다.

미국 국립보건원 발표에는 호르몬 요법이 대퇴부 골절(0.66)과 대장암(0.63)에 도움을 준다는 이로운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혼란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50만명에 달하던 호르몬 요법 이용자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대부분 산부인과 의사들로 구성된 대한폐경학회(폐경학회) 회원들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들어갔고, 뒤늦게 미국 국립보건원이 발표한 내용에 적지 않은 허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폐경학회는 그 연구가 실험자들에게 경구용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복합제를 사용했음을 알아냈다. 호르몬제는 용법·용량에 따라 결과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무시된 것이었다. 1만6천6백8명에 달하는 실험 대상자들의 평균 연령(63.3세·연령 분포는 50~79세)도 문제였다. 63.3세는 일반적으로 호르몬제를 이용하는 여성들의 연령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거기에서 얻은 결과를 신뢰할 수 없었다.

폐경학회는 유방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유방암이 50대 이후 많이 발병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40대에 주로 발생하고, 50대 이후에는 오히려 감소한다. 따라서 평균 연령 63.3세 여성들이 유방암에 잘 걸릴 수 있다는 결과를 한국 여성들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라는 것이 폐경학회의 결론이었다.

이같은 이유를 들어 폐경학회는 지난해 6월 호르몬 요법이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며, 의사와 상담한 후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폐경학회의 그같은 주장은 국내에서조차 비난을 받았다. 일부 내분비내과 전문의들은 ‘지금까지 행해진 가장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뒤엎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산부인과 의사들의 변명’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미국 국립보건원과 폐경학회는 여전히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은 위험성을 여전히 강조하고, 폐경학회는 ‘실보다 득이 많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02년 당시 WIH 연구를 지휘했던 미국 국립보건원 여성건강연구본부 본부장 비비안 W. 핀 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한국에서는 아직도 2년 전 당신들이 발표한 것에 대해 말이 많다.
국제폐경학회에 참석해서 아시아·유럽·남미 의사들이 우리의 연구 결과에 대해 어떤 불만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대한폐경학회는 당신들이 사용한 호르몬제 등을 문제 삼아 실험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한 호르몬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프레마린이다. 이 호르몬은 한국 의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시아에서 그다지 많이 쓰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그런 말이 나오더라도 반박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많이 쓰이는 호르몬과 유사한 호르몬을 이용한 실험에서도 결론은 비슷했다.

피실험자들의 나이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63.3세는 다분히 의도한 숫자다. 좀더 넓은 연령대를 실험 대상으로 삼고 싶어서 50~79세 여성들을 선택했다. 여성은 나이가 듦에 따라 심장질환과 유방암이 늘어난다. 63세는 결코 실험에 부적합한 나이가 아니다.

호르몬 요법에는 부작용만 있는가?
우리가 호르몬 요법의 모든 효과를 부정한다고 공격하는데, 그렇지 않다. 폐경기 때의 안면 홍조 치료에는 분명한 효과가 있다. 그 외 질 위축과 건조, 심각한 골 손실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폐경기 여성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호르몬제를 이용하지 말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의사와 여성이 건강 관련 자료를 놓고 의논해서 호르몬 요법으로 인한 득이 손해보다 크다면 이용하라. 그러나 가능하면 짧게 적은 양만 써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폐경이 질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초경이나 생리처럼 인생의 한 과정일 뿐이다.

WIH 연구 책임자였던 로레타 P. 휘네건 여성건강연구본부 고문은 아직도 심장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호르몬 요법을 쓰는 의사와 환자가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자신들의 실험에서는 심장질환의 예방·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어떤 증거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폐경학회의 입장은 총무를 맡고 있는 박형무 교수(중앙대 의대·산부인과)에게 들었다. 그는 지난해 폐경학회가 내놓은 입장을 고수했다. 그리고 최근 각 개인에 맞는 맞춤 처방을 하고, 저용량으로 큰 효과를 얻는 호르몬제가 나와 거의 위험이 없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 진행된 단편적인 연구에서 호르몬 요법이 유방암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대장암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도 강조했다. “대장암은 50세 이후 한국 여성이 가장 많이 걸리는 암이다. 따라서 호르몬 요법이 대장암에 효과가 있다면, 오히려 한국 여성들에게 득이 될 수도 있다.” 그의 결론은 명료하다. 1942년부터 호르몬제를 써왔는데 커다란 문제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해석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폐경학회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폐경기 여성과 의사들은 여전히 호르몬 요법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이같은 사실은 <시사저널>이 마케팅 리서치 기관인 에이콘과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밝혀졌다. ‘호르몬 요법의 부작용을 걱정하나?’라는 질문에 응답한 의사의 22%가 ‘매우 걱정스럽다’고 응답했다. 또 42%는 ‘어느 정도 걱정스럽다’고 응답해, 64%가 차이는 있지만 호르몬 요법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제일 적게 한다는 사실이다. 내분비내과 의사와 가정의학과 의사들은 각각 24%와 38%만이 ‘별로 걱정스럽지 않다’고 응답한 반면, 산부인과 의사들은 45%가 같은 대답을 했다.

폐경기 여성들도 대부분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매우 불안하다’고 응답한 여성이 13%, ‘어느 정도 불안하다’고 응답한 여성이 72%에 달했다. 이들이 가장 불안해한 부작용은 유방암이었다. ‘가장 불안을 느끼는 부작용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85%가 유방암이라고 응답했다(뇌졸중과 자궁내막암이 그 뒤를 이었다).

‘호르몬 요법을 5년 이상 이용하면 특히 위험하다’는 미국 국립보건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호르몬 요법을 장기 처방하는 의사도 적지 않았다. 호르몬 요법을 중단한 환자의 투여 기간을 묻는 질문에 의사 19%가 5년 이상~10년 이상이라고 답했다. 그만큼 의사들이 오랜 기간 호르몬 요법을 쓰고 있음을 뜻한다. 반면 폐경기 여성들은 이용 기간을 묻는 질문에 76%가 3년 미만이라고 응답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한국 여성들이 비교적 일찍 호르몬 요법을 이용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한국 여성들은 폐경기가 평균 49.7세에서 시작되는데, 호르몬 처방을 받고 있는 여성의 17%가 44세 이하였던 것이다. 45~49세도 28%나 되었다. 호르몬 요법을 이용하는 이유에 대해 여성들은 주로 ‘갱년기 장애 때문’(57%)과 골다공증 치료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호르몬 요법을 중단한 뒤 어떤 대체 처방을 하느냐는 질문에 의사들은 대체로 ‘다른 골다공증 치료제’(48%)라고 대답했다. ‘아무것도 처방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의사도 40%나 되었다. 대체 처방하는 골다공증 치료제는 비스포스네이트(69%)가 가장 많았고 에비스타(17%) 칼시토닌(8%)이 그 뒤를 이었다.
호르몬 요법에 대한 미국 국립보건원과 폐경학회의 입장은 하나로 요약된다. ‘의사와 폐경기 여성이 충분히 상담한 뒤, 실보다 득이 많을 때 사용하라. 그리고 가급적 짧은 시간 동안 적게 사용하라.’ 하지만 호르몬 요법의 위험을 알리는 보고서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폐경기 여성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호르몬 요법을 대체할 만한 폐경기 증후군 치료법은 없을까. 아직은 요원한 듯하다. 콩이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 노화 예방 전문 클리닉 라 끄리닉 드 파리의 김명신 원장은 “콩·석류·신선한 야채·생선 등을 먹으면서 운동을 적절히 하면 몸속에서 여성 호르몬이 생성된다”라고 말했다.

설문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일부 의사들은 단지 골다공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라면 호르몬 요법 대신 골다공증 치료제를 이용하라고 말한다. 최웅환 교수(한양대 의대·내과)는 “뼈만 치료하고 유방에는 작용하지 않는 약까지 등장했다”라며 이제는 그런 약에 눈을 돌릴 때라고 말했다.

그러나 거기에도 문제가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골다공증 치료제를 사용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여성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이규덕 상근심사위원은 “현재 호르몬 요법을 일정 기간 이용한 환자에 한해서, 1년간 골다공증 치료제의 보험을 인정하는 문제를 놓고 토론 중이다”라고 말했다.

여성의 폐경기 증후군은 어쩌면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근심’일지 모른다. 초경이나 생리처럼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 덫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쉬워 보인다. 미국 국립보건원 비비안 W. 핀 박사의 말처럼 폐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몸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면 된다. 그래도 몸이 덜그럭거리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온다면 그때 치료약을 찾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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