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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기업·기업주의 재기 비법

丁喜相 기자 ㅣ 승인 1998.06.18(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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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3일 오전 8시, 경북 경주에서 울산 쪽으로 뚫린 국도 변에 자리한 공장 지대에서는 비가 내리는데도 쩌렁쩌렁한 구호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공장 앞마당에 늘어선 50여 노동자와 이 공장 사장의 아침 체조 현장에서였다.

굴삭기 부품을 생산해 현대·한라 등 대규모 중공업 업체에 납품하는 (주)원우금속(대표 문봉만) 노동자들의 요즘 아침 체조는 여느 때와 성격이 매우 다르다. 한 달여 전인 4월29일 이 회사가 부도났기 때문이다. IMF 한파로 전국에서 추풍 낙엽처럼 제조업체가 쓰러지는 현상을 반영하듯 (주)원우금속이 자리한 경주 공단 지역도 속사정은 암담하기 그지없다. 12개 입주 공장 가운데 4개가 부도 난 것이다. 부도 회사 중 (주)원우금속과 나머지 세 업체의 차이라면, 활기 있는 아침 체조 소리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느냐, 채권자들이 기계와 집기를 모두 가져가 을씨년스런 페허 상태로 공장이 방치되어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부도 이겨낸 ‘불굴의 오뚝이’들

아침 체조를 마친 종업원들은 문봉만 사장의 선창에 따라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구호를 외친 뒤 제각기 작업장에 들어가 구슬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도 회사를 못 살려 낸다면 저는 이 땅에 발 디딜 자격이 없는 죄인이지요.” 사무실로 취재진을 안내한 문사장은 투지에 가까운 자신감을 내비치더니 이내 부도가 난 사연을 털어놓았다.

부도 전 종업원 1백20여 명에 연간 백억원대 매출을 기록한 (주)원우금속은 울산·경주 인근에서 소문난 알짜 기업이었다. 기술신용보증기금 지정 기술 우수 업체, 포철 산하 포스텔이 선정한 유망 중소기업, 주요 거래처인 현대중공업에서 지정한 A등급 신용 보유 업체라는 간판이 보여주듯이 이 회사는 지난해까지 탄탄대로를 달렸다. 이런 평판에 힘입어 매출 신장을 계속하던 (주)원우금속은 수주 물량을 다 댈 수 없어 지난해에 26억여 원을 들여 제2공장까지 지었다.

그러나 IMF 한파 직후 한라중공업이 부도나면서 위기가 닥쳤다. 주요 납품업체인 한라중공업이 휘청거리자 이 회사 한달 매출이 8억원대에서 3억원대로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제2공장 투자금 중 차입한 원화 표시 외화 자금으로 인해 6억여 원의 환차손을 냈다.
올해 들어 시시 각각 조여드는 부도의 그림자 앞에서도 문봉만 사장과 백여 종업원은 똘똘 뭉쳐 위기에 대응했다. 수출로 살 길을 찾으려는 영업 전략을 편 결과 미국 회사 시니코퍼레이션으로부터 백만달러어치 계약을 성사 단계까지 끌어냈다. 또 서울 당산철교 강북 구간 철교 부품 납품도 수주했다. 종업원들은 3천1백만원을 모아 부도를 막으라고 내놓았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끝내 (주)원우금속을 비켜 갔다. 당산철교 공사가 민원으로 지연된 데다, 수출 계약을 체결하려던 미국 회사 관계자가 이 회사가 부도 처리되어 채권자들이 공장과 사무실을 점거한 날 김포공항에 도착했다가 그냥 돌아간 것이다.

회사는 임금 보장, 종업원은 급여 반납

회사가 부도 처리되자 문사장은 집이 경매에 부쳐져 쫓겨났고, 교사인 부인의 월급까지 압류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아들은 친구집에서 학업을 겨우 잇고 있다. 그러나 문사장 가족은 재기의 희망을 잃지 않고 가장이 다시 일어서도록 격려하고 있다. 공장에 닥친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깡패를 동원한 채권단의 난입, 공장과 설비 압류, 물건 빼돌리기 등 무법 천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노사는 이 과정에서 다시 한번 뭉쳤다. 문사장은 채권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뺨을 맞아가면서까지 곧바로 재기해 빚을 갚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비록 제2공장은 속수 무책으로 털리고 말았지만 제1공장 근로자들은 주야로 비상대기조를 결성해 공장을 지키면서 철야 작업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마침내 채권자들도 문사장과 종업원들의 재기하려는 투지에 감복했다. 지난 5월7일 문사장과 근로자 대표, 채권단 대표는 회사의 재기 및 채무 변제 방법에 합의했다. 아울러 경영진은 근로자들에게 회사 자금 사정을 모두 공개하고 향후 자금 운용을 공동으로 관리해 경영 투명성을 지켜 가기로 했다.

이처럼 노사가 부도 전후 과정을 투명하게 공동 대응한 결과 채권단의 신용을 회복시킬 수 있었고, 매출액도 차츰 올라가기 시작했다. 부도 직후인 5월에 2억여 원대 매출을 올린 이 회사는 수출에도 눈을 돌려 일본 크레인 회사인 코베코 사와 접촉해 수출 가격 산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래도 회사가 살아 남지 못한다면 우리는 두 번 죄짓는 것이다. 이제부터 회사 자존심마저 내팽개칠 만큼 처절하게 물건을 만들고 치열하게 영업 활동을 할 것이다.” 결의에 찬 문사장은 눈가에 이슬을 맺은 채 이렇게 말했다.

부도난 기업은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과 같다. IMF 한파로 하루 평균 백여 개 기업이 도산하고, 부도낸 기업주의 자살 소식이 꼬리를 물고 있지만 (주)원우금속처럼 사형 선고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지난 1월12일 국내 최고를 자랑하던 문구류 업체 (주)모닝글로리가 부도 처리되자 이 회사 임직원은 물론 채권자들까지 자기 귀를 의심했다. 문구업계 선두 주자로서 종업원 3백50여 명에 연간 매출 7백억원대를 기록한 이 회사는 탄탄한 업체로 소문이 나 있던 터였다. 부도 직후 노사가 모여 원인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5천여 아이템 중 이익을 내는 품목이 10여 개라니 말도 안된다.” “업계 선두라는 사실만 믿고 우리가 너무 안일하고 방만하게 지내 온 것이 아닌가.” 직원과 경영진 사이에 뼈아픈 자기 반성이 있고 나서 이 회사 임직원은 다시 일어서자고 뭉쳤다. 우선 경영진은 ‘아무리 힘들어도 재기의 기반이 종업원인만큼 임금은 깎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처지는 달랐다. 회사 재기를 위해 급여 일부를 반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결국 노사가 모여 10% 선 봉급 삭감을 합의한 뒤 맡은 업무 영역에서 비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재기 위해 듣는 소리 “당신에게 질렸다”

우선 수출 시장 개척을 목표로 뛴 결과 5개월 만에 20개국에 현지 매장을 1백3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매출액도 부도 직후 전년 대비 30% 선으로 떨어졌던 것이 5개월 만에 70% 선으로 회복되었다. 특히 동남아에 치중해 온 수출을 미주 쪽으로 돌려 지난해 6 대 4이던 동남아 대 미주 수출 비중이 올해는 4 대 6으로 역전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표이사가 채권단의 처지를 철저히 이해하고 그들에게 사죄와 함께 재기에 대한 믿음을 심어 주었다. 현재 화의 개시 상태에서 (주)모닝글로리 재기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황귀선 대표이사는 “국내 유일의 종합 문구업체로서 저절로 잘 되리라 생각하다 부도를 내고 나니까 그동안 우리를 믿고 지켜본 채권자·종업원·소비자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를 실감했다. 지금은 노사가 합심해 국민과 사회에 진 빚을 갚겠다는 채무감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고, 반드시 재기할 자신이 있다”라고 말한다.

압류 딱지, 채권자들의 성난 표정, 온갖 욕설과 구타, 풍비박산된 가정과 자살 충동, 범법자로 전락…. IMF 체제 여파로 부도를 낸 대다수 기업인들은 아직 이런 조건에 처한 상태에서 재기를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다. 재기에 나선 이들 기업과 기업인 앞에는 아직 멀고도 험난한 길이 가로놓여 있다.
좀더 일찍 부도를 맞았다가 악전 고투 끝에 어느 정도 일어선 기업들이 겪은 사연은 재기의 힘든 여정을 잘 보여준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조립식 건축자재 생산업체 영동조립개발(대표 이상진)은 지난해 강원도내 도급 순위 1위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IMF 체제에 들어간 이후 이 회사는 ‘훈장’도 3개나 받았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선정 유망 중소기업, 한국생산성본부 선정 품질 보증 체제 인증 기업, 중소기업청이 인증한 GQ마크(우수제품) 획득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유망 업체도 두 번씩이나 부도가 났었다. 91년과 93년에 두 차례 부도를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재기에 성공한 이상진 대표는 부도 기업인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살하지 말고, 그 기운으로 채권자들에게 찾아가 차라리 실컷 두들겨 맞아야 한다. 채권자들이 ‘당신에게 질렸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가 되어야 재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상진 대표가 회사를 설립한 것은 89년 강원도 삼척에서였다. 그 뒤 공장을 원주로 옮긴 그는 공장 건물이 완공되기도 전인 92년에 첫 부도를 맞고 말았다. 자금을 끌어다 쓴 곳이 부도가 나 덮친 부도였다.

이후 6개월 동안 부도 대금을 회수하러 뛰어다닌 이대표는, 아내 명의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당좌를 개설해 간신히 재기의 기틀을 잡았다. 그러나 93년 기계 설비비 대출을 100% 약속한 은행이 갑자기 융자를 거절했다. ㄱ은행 대주주였던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괘씸죄’에 걸리는 바람에 대출이 묶인 것이었다.
채권자, 무릎 꿇은 이대표에게 오줌 세례

당시 사정에 대해 이대표는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 부도를 내니 채권자들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고, 나를 ‘죽이려’ 들었다. 결국 만취 상태에서 넥타이로 자살을 시도했는데 넥타이를 묶은 벽의 못이 빠지는 바람에 아침에 깨 보니 살아 있었다”라고 말한다.

결국 울며 설득하는 아내의 만류로 자살을 포기하고 일일이 채권자를 찾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심하게 매를 맞았다. 어떤 채권자는 무릎을 꿇은 이사장의 몸에 소변을 보기도 했다. “가서 욕 먹고 매 맞는 지옥의 시간이 지나면 한 달을 벌 수 있었다. 분풀이 후 ‘한 달 내로 안 갚으면 죽을 줄 알아’ 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짓을 10개월 가까이 당하면서 차츰 공장을 살리고, 매출을 늘려 일어설 수 있었다.” 이대표는 신용을 차츰 회복했고, 이같은 그의 의지에 감동한 근로자들이 끝까지 그를 떠나지 않아 재기할 수 있었다.

공장 앞마당에 가득 쌓인 생산품들을 둘러보며 재기의 아픈 사연을 들려준 이대표는, 재기하려는 부도 기업인의 가족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단다. “부도를 낸 가장이 있을 때 그 가족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과 심한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부도가 난 것이 가장의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겠는가를 한번 생각해 본 뒤 부도 가장을 대하라고 권하고 싶다.”
삼익악기, 부도 수렁에서 탈출해 ‘승승 장구’

중견 기업들이 수 없이 쓰러지는 요즘 두 차례나 부도 상태를 이겨낸 이상진 대표는 조업 단축도 감원·감봉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직원을 신규 채용할 수 있을 만큼 정상을 회복하고 있다.

영동조립개발처럼 부도 후유증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노사가 합심해 재기의 본궤도에 진입하는 기업도 있다. 96년 부도가 난 경북 문경 우진전자(대표 임태근)가 그런 경우이다.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콘덴서 제작업체인 우진전자는, 부도 전까지 매출액과 기술 면에서 업계 최고를 자랑하는 업체였다. 그러나 96년 시설 확장을 하다가 부도를 낸 이 업체는 97년 초 종업원들과 사장이 함께 회사 경매에 참가해 재인수한 뒤 부활의 길에 진입하고 있다.
부도 직후 임사장이 당좌 문제 등을 해결하느라 회사를 비운 사이 백여 종업원은 한데 뭉쳐 회사를 지키고 조업을 계속했다. 평소 중소기업이지만 종업원 자녀의 학자금까지 대가며 노동자를 존중해 온 임사장에 대한 믿음에서였다. 결국 압류하러 온 채권자와 은행이 이런 모습을 보고는 믿고 기다리기로 하고 재기할 기회를 주었다. 현재 부도 직전 수준의 매출액을 회복했다는 임사장은, 회사를 살리는 데 헌신한 직원들이 고마워서 IMF 시대에도 임금과 보너스를 줄이지 않기로 했다고 말한다.

노사가 합심해 오랜 고통을 딛고 재기의 꽃을 피워 가는 곳은 규모가 큰 기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악기 전문 제조업체인 (주)삼익악기(대표 안기봉)가 그곳이다. 한때 세계 3대 악기 제조업체로 이름을 떨치던 삼익악기가 부도를 낸 때는 96년 10월이었다. 그러나 요즘 이 회사 부평공장에는 법정 관리 중인 회사에 드리우기 마련인 어둡고 우울한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다.

종업원 2천여 명에 연간 수천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던 이 회사가 부도 나자 노사는 극심한 고통의 나락에 빠졌다. 부도 초기에는 종업원 월급은 고사하고 식사마저 해결할 수 없었다. 2천여 종업원의 점심 식사를 책임지던 직원 식당의 집기·쌀·부식까지 채권자가 차압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직원들은 도시락을 싸와 나누어 먹으며 하루하루의 불안을 떨치고 회사를 정상화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러자 쓰러질 것만 같았던 회사가 차츰 회생하기 시작했다. 부도가 난 뒤 임직원이 한마음으로 뭉쳐 품질 향상과 수출 시장 개척에 발벗고 나선 결과였다. 지난 1월과 3월에는 각각 미국과 독일에서 열린 세계적 악기 전람회에 참석해 미국 등 30여 나라로부터 1억4천5백만달러어치를 수주하는 개가를 올렸다. 올해 수출 목표액 1억5천만달러를 단숨에 채운 것이다. 또한 품질이 향상된 악기들에 대한 주문이 폭주해 3∼4시간씩 야근하는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생산직 사원 2백명을 신규 채용하기에 이르렀다.
사회적 격려와 정책적 배려 뒤따라야

급속히 재기할 발판을 마련해 가고 있는 이 회사 안기봉 대표는 “아직도 채권단과 사회에 진 빚을 다 갚지 못한 죄인이지만 2천여 임직원이 하나로 뭉쳐 일함으로써 품질 경쟁력에 자신감을 갖게 된 이상 삼익의 옛 명성을 되찾을 날도 그리 멀지 않다”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처럼 오래 전에 부도를 겪었다가 재기할 발판을 마련한 기업이나, IMF 한파로 최근 부도가 난 기업 가운데 다시 일어서기 위해 분발하는 곳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경영진의 봉사 정신 및 자기 희생적 자세, 노사 화합에 의한 자발적 고통 분담, 그리고 피해를 본 채권자들에게 어떻게든 믿음을 심어 주는 일 등이다. 여기에 남다른 고통 속에서도 종업원 존중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피와 땀과 눈물이 함께 스며 있다.

부도가 기업의 종말이라고 인식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재기를 위해 악전 고투하는 부도 기업주와 종업원의 모습은 분명 사회·경제적으로 고무적인 일이다. 따라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노력이 한국 경제 회생의 한자락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격려와 정책적 배려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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