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원초적 비밀, 손 안에 있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1999.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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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만이 지닌 엄지, 도구 사용 등 ‘진화의 신비’ 창조… 손 발달 따라 지능 향상
수수께끼 하나. ‘이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사람 몸에서 가장 정교한 부위이다. 몸에 있는 뼈 가운데 4분의 1 이상이 이것에 몰려 있다. 화성을 탐사하는 시대라지만, 이것과 똑같은 인공 기계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인체의 축소판’이라고 부른다.

정답은? 바로 손이다. 우리에게 늘 가까이 있는 손. 너무 친숙해서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잘 의식되지 않는 손. 그 손에 얽힌 비밀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조금만 파고들면 손은 무궁무진한 신비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 안에는 개인의 건강, 운명, 나아가 인류의 역사가 녹아 있다.

너무 거창한 얘기라고? 그렇다면 먼저 생각해 보라. 손이 없다면 우리는 물건을 쥘 수도, 그 물건의 감촉을 느낄 수도 없다. 눈으로 물건을 바라볼 수는 있겠지만 그 물건이 딱딱한지 부드러운지, 뜨거운지 차가운지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손이다. 더욱이 손의 정보력은 탁월하다. 눈으로 보지 않고도 손은 호주머니 속에 든 동전이 10원짜리인지 백원짜리인지 감촉만으로 알아맞힌다.

이것은 정교한 신경망 덕분이다. 손에는 1㎠당 천여 개에 이르는 신경종말이 분포해 있는데, 그 대부분은 손가락 끝에 몰려 있다. 이로 인해 손가락은 감촉뿐 아니라 열·고통 따위 감각을 인체 어느 부위보다 가장 예민하게 느낀다.

또 하나, 손에는 인체 어느 부위보다 많은 땀샘이 몰려 있다(1㎠당 1백50∼3백40 개). 이 땀샘들은 보통 손바닥에 무수하게 솟아 있는 융기 무늬를 따라 나란히 놓여 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손가락 끝의 융기 무늬(우리는 보통 이를 지문이라 부른다)를 따라 땀샘이 촘촘히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땀샘 덕분에 손바닥은 항상 촉촉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게 무슨 대수냐고? 땀샘은 엄청나게 중요한 손의 또 한 가지 기능을 돕는다. 물건을 쥐는 기능이 그것이다. 약간 젖은 상태에서 자동차 바퀴의 제동력이 더 강해지듯 손 또한 땀샘이라는 ‘붙박이 윤활 체계’ 덕분에 물건을 쉽게 쥘 수 있다. 땀샘이 없다면 손 안에 든 물건은 미끄러져 나가기 일쑤일 것이다. 땀샘은 촉감 또한 높여준다. 땀이 나면 손바닥 무늬의 융기가 팽창한다. 이렇게 융기 위치가 높아지면 촉각 기능 또한 향상된다.
해부학 구조로도 손은 인체에서 가장 복잡한 부위이다. 한쪽 손을 이루는 뼈는 무려 27개(손목뼈 8개, 손바닥뼈 5개, 손가락뼈 14개). 따라서 두 손을 이루는 뼈는 54개인데, 이는 인체에 있는 뼈의 4분의 1이 넘는다. 좁디좁은 면적에 이처럼 많은 기관이 빽빽히 들어차 있는 곳은 인체의 다른 부위에는 없다(<당신의 몸, 얼마나 아십니까> 두산동아).

이 밖에도 손은 여러 가지 놀랄 만한 기록을 갖고 있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하는 횟수는 대략 2천5백만 번. 그럼에도 조금만 부려 먹으면 피곤하다고 엄살을 떠는 어깨나 다리와 달리 손가락은 꾀를 부리지 않는다.

가냘퍼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손가락은 억센 힘을 자랑하는 장사이기도 하다. 갓난아기는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산부인과 의사의 엄지 손가락에 매달릴 수 있다. 평균 40㎏에 이르는 손아귀 힘(握力) 덕분이다.

그러나 무어니 무어니 해도 손이 매력적인 것은, 인류 진화의 거대한 역사가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도 이같은 관점에서 손을 조망한 번역서가 최초로 나왔다. ‘의과 대학생 시절 동전을 낚아채는 손의 움직임에 매료되어 손을 연구하기 시작한 이래 평생을 손에 몰두한’ 손 전문의이면서, 미국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영장류 생물학 프로그램을 수 년 동안 지휘한 진화학자 존 네이피어 박사의 명저 <손>이 그것이다(지호출판사가 펴낸 한국어판 제목은 <손의 신비>).

‘진화의 비밀을 움켜쥔 손의 역사’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이 책은 손의 구조와 기능을 통해 인류 진화의 비밀을 하나씩 더듬어 간다. 우선 자기 손바닥을 펴고 살펴보자. 엄지와 집게 손가락 사이만 빼고, 나머지 손가락 사이 틈새마다 살짝 부풀어오른 부분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는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살덩어리 같다. 그렇지만 네이피어에 따르면, 이것은 우리 조상이 네 발로 걸어다니던 시절의 자취이다.

구대륙 원숭이 손바닥과 비교해 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58쪽 위 사진 참조). 원숭이 손바닥에는 풍부한 지방질로 덮여 있는 융기 조직(이른바 ‘패드’) 11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앞에서 설명한 손가락 사이 패드 4개, 손가락 끝마다 1개씩 패드 5개, 엄지 두덩(엄지를 감싸고 불룩 솟은 부위) 패드 1개, 새끼 두덩 패드 1개가 그것이다. 직립 보행을 하기 전까지는 인간에게도 비슷한 패드가 있었을 것이다.
엄지는 인류의 진화 비밀을 푸는 열쇠

그러나 6천만 년 전 인류가 진화의 첫걸음을 내디딘 이래 손에 나타난 한 가지 뚜렷한 특성은 원숭이와 인간을 갈라놓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엄지 손가락의 진화였다. 네이피어는 엄지야말로 인류 진화의 비밀을 풀 열쇠라고 거듭 강조한다.

엄지가 뭐 그렇게 대단하냐고 되묻고 싶은 사람은 당장 엄지 없이 글을 쓰거나 컵을 들어올리는 실험을 해 보라. 엄지 없는 손은 ‘한쪽 집게가 떨어져 나간 펜치와 다름없다’는 비유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다른 손가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벌리고 모으고, 굽히고 펴고, 안쪽 또는 바깥쪽으로 회전하는 모든 일을 자유자재로 해 내는 엄지는 손이 하는 일 가운데 45% 가량을 혼자 해낸다. 아이작 뉴턴은 ‘엄지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있다’고 감탄했다.

인류의 진화와 관련해 엄지가 중요한 것은, 이로 인해 도구를 사용하고 개발하는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침팬지·오랑우탄·고릴라도 엄지를 갖고 있기는 하다(원래 다섯 손가락은 영장류에만 나타나는 특성이다). 그러나 검지에 비해 매우 짧은 이들의 엄지는 대부분 장식용 내지는 거추장스럽게 딸린 ‘덤’에 지나지 않는다(58쪽 그림 참조). 인간의 엄지 또한 진화 초기에는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결정적인 분화(分化)가 나타났다. 인간의 엄지는 다른 손가락들로부터 독립해 이들을 마주보면서, 이들 가운데 어느 손가락과도 자기를 맞붙일 수 있는 능력을 획득했다. 처음에는 어설픈 ‘모조 맞붙임’이었다(일부 신대륙 원숭이도 엄지와 집게 손가락을 맞붙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엄지를 회전시키지 못한다. 이를 ‘모조 맞붙임’이라 한다).

점차 맞붙임 기능이 향상된 엄지는 인류가 직립 보행을 굳히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다른 손가락과 맞붙일 수 있는 엄지는 먹이를 나르는 데 유용했다. 다시 말해 이때부터 인류는 네 발로 걷기보다 두 발로 걷고 남은 두 손을 자유롭게 쓰는 편이 경쟁력이 있었다.
인류 진화에 중대한 사건이 나타난 것은 1백75만 년 전이었다. 1960년 탄자니아 올두바이 골짜기에서 발견된 화석은 당시 인간들이 단순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바로 ‘호모 하빌리스’(‘도구를 쓴 사람’이라는 뜻)의 등장이었다.

손을 써서 도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인류의 두뇌는 커졌고, 발달한 두뇌가 다시 손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피드백이 이루어졌다. 네안데르탈인에 이르면 인간은 엄지와 집게 손가락을 완전히 밀착시켜 맞붙일 수 있게 되었다. 넓은 밀착면은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어, 작고 섬세한 물건을 만드는 데 유리하다. 이로써 인간은 더욱 정교한 도구를 만들어 쓰게 되었다.

오른손잡이의 세상이 된 까닭

이쯤 되면 엄지야말로 ‘인류를 향한 신의 축복’이라는 네이피어의 표현이 과장된 것만은 아닌 듯하다. 물론 판다의 엄지가 잠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 적은 있다. 다른 손가락과 완벽하게 마주보는 엄지가 인간에게만 있다는 상식을 비웃듯 판다는 엄지손가락과 나머지 손가락 사이로 대나무 줄기를 통과시켜 이파리를 훑어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판다의 엄지는, 엑스레이로 촬영한 결과 손가락이 아니라 노종자뼈라고 불리는 거대한 손목뼈가 변형된 것으로 드러났다.

도구를 만들게 되면서 손에 대한 사회문화적 상징·금기 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60쪽 상자 기사 참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왼손에 대한 푸대접은 역사가 깊다. 오른손이 ‘옳다, 바르다, 정당하다, 빈틈없다’ 따위 긍정적인 가치를 상징한다면 왼손은 ‘불길하다, 사악하다, 요령없다, 버려지다’ 따위 부정적인 가치를 담고 있다. 태국 같은 나라에서 왼손으로 악수를 청했다가는 뺨을 맞기 십상이다. 왼손은 전통적으로 밑 닦을 때 쓰는 불결한 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왼손은 어쩌다가 찬밥 신세가 되었을까. 포스난스키는 런던 근교에서 발굴한 손도끼 1백18개를 분석하다가 흥미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약 20만 년 전 구석기 시대 사람이 개인적으로 만들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손도끼더미에서 오른손잡이용 손도끼 대 왼손잡이용 손도끼 비율은 대략 2 대 1이었다. 다시 말해 이때까지만 해도 오른손잡이가 압도적인 편향으로 자리를 잡지는 않았다는 뜻이다(오늘날 전세계를 통틀어 왼손잡이는 전체 인구의 5% 가량일 것으로 추정된다).
사정이 달라진 것은 낫처럼 전문적인 도구가 등장하면서부터였을 것이라고 네이피어는 주장한다. 이런 농사 도구는 개인 아닌 집단 소유였다. 여럿이 도구를 돌려 쓰려면 표준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표준은 단연 오른손이었다. 이때부터 인류는 오른손잡이 또는 왼손잡이라는 유전적 성향을 공동체 표준에 맞는 방향으로 진화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 ‘오른손잡이가 되어라, 그렇지 않으면 굶어죽으리라.’

이렇게 위대한 진화를 이루어낸 손이건만, 오늘날 손은 다시 퇴화할 위기에 있다. 사실 인간만이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아는 동물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침팬지는 코웃음을 칠 것이다. 사냥 계절이 돌아오면 침팬지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주워 흰개미 굴 깊숙이 집어넣는다. 짝짓기를 위해 굴 속에 들어가 있던 흰개미들이 이 가지에 수북이 묻어 나오면 침팬지는 흡족해 하며 이를 먹어 치운다.

이 나뭇가지 ‘낚싯대’를 고를 때 침팬지는 길이·지름·탄력성 따위를 신중하게 고려한다. 여분의 낚싯대까지 준비해 둔다. 침팬지 또한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자면 이는 만들어 썼다기보다 자연에 있는 원재료를 ‘고쳐 쓴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시카고 대학 러셀 터틀 교수의 지적이다. 도구를 만드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지닌 특질인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자기가 쓸 물건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규격화한 물건을 소비할 따름이다. 네이피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은 도구 사용자에서 도구 제작자로 진화했다가 지금은 다시 도구 사용자로 돌아갔다. ‘손 덕택에 원숭이나 침팬지와 갈라져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인간이 다시금 새로운 진화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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