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세계패권 가를 `인구 전쟁`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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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고비용을 유발하는 고령화·저출산 사회가 도래했다. 바야흐로 인구가 국력인 시대다. 인구 위기 극복을 위해 세계 각국은 어떤 정책을 펴는가.
앞으로 50년 뒤, 한국과 일본, 유럽 각국과 심지어 중국까지 새로운 ‘인구 위기’를 맞는다. 위기의 양상은 19세기 맬서스가 주장한 ‘인구 폭발론’과는 판이하다. 인구가 늘어서 문제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고령화에 따른 사회 노쇠 현상과, 저출산 풍조에 의한 인구 감소가 위기의 실체로 지목되고 있다.

지금까지 고령화·저출산 현상이 초래할 위기는 산업 생산력·고용·일자리·복지 등 경제 측면에서만 논의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 세계 각국은 또 다른 차원에서 인구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사회의 젊음’은 생산력의 원천이요 성장의 동력일 뿐만 아니라, 외교력과 국방력까지 결정하는, 한마디로 ‘종합 국력’의 토대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구 문제는 세계 패권을 다투는 선진국 뿐 아니라 아시아·아프리카의 저개발 국가들에게도 화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시사저널>은 이같은 조류를 수용해 인구 위기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했다. 아울러 ‘균형 잡힌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가도 살펴보았다.
2004년 현재 미국인의 평균 나이는 35.5세, 유럽인은 37.7세다. 앞으로 50년 후면 미국인의 평균 연령은 36.2세에 도달하는 데 비해 유럽인은 52.7세가 된다. 미국은 50년 후에도 창창한 젊음을 유지하지만 유럽은 그야말로 폭삭 늙어버린다.

사회의 전반적인 고령화를 불러오는 계층은 ‘65세 이상 인구’이다. 유엔이 정한 바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가 7% 이상이 되면 고령화 사회이고,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이며, 20%가 넘으면 초고령 사회이다. 한국은 현재 65세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7%를 넘어 고령화 사회의 문턱에 들어섰다. 고령화 현상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현실의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시사저널> 제 748호 참조).

가까운 일본이나 멀리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의 경우는 좀더 심각하다.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는 현재 전체 인구의 19%에 육박하지만, 오는 2050년에는 31.8%에 도달할 것으로 유엔은 예측하고 있다. 국민 10명 중 7명이 노인이 되는 셈이다. 이탈리아는 이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이탈리아는 65세 이상 인구가 2050년 35%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도표 참조).

인구 고령화 반대편에는 저출산이라는 또 다른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 한국의 여성 1명당 평균 출생아 수는 2002년 1.17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는 선진국 대부분도 저출산 문제에 직면해 있다. 프랑스는 여성 1인당 평균 출생아가 1.9명, 일본은 1.4명, 이탈리아 1.25명이다.

고령화와 저출산이 야기하는 문제는 적지 않다. 우선 저성장을 유발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노동력 감소와 소비 계층 감소를 지적한다. 산업 생산에 쓰일 비용이 퇴직 연금 등 고령층을 부양하는 비용으로 들어가 성장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경제 측면의 부작용이다.
인구 변동 추이를 사뭇 다른 각도에서 주시하는 눈길이 있다. 바로 국방·안보 관련 전문가들이다. 선진국들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고령화·저출산 현상은 각국의 정치 정세, 나아가 세계 정치 지도까지 바꿀 수 있다.

지난해 4월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열린 인구 관련 회의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민간 두뇌 집단인 안보 및 국제전략 연구소(CSIS) 존 헴러 회장은 인구층의 불균형이 장래에 초래할 결과에 대해 충격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한때 국방부 부장관을 지낸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 사회의 평균 연령은 너무 젊어도 탈이고, 너무 늙어도 탈이다.

헴러 회장은 먼저 초저연령 사회가 예외 없이 극심한 혼란을 겪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중국에서 문화대혁명 광풍이 휘몰아칠 때 중국인의 평균 나이는 19세였다. 이란에서 1978년 회교혁명이 일어났을 때, 이란인의 평균 나이는 17세였다.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 상위 25개국(대부분은 중앙아프리카에 몰려 있다) 가운데 16개국은 1995년 이래 심각한 내전을 치렀거나, 현재 치르고 있다.

사회가 지나치게 나이 들어도 골치다. 고령화가 사회 불안정을 부추기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한다. 헴러 회장은 독일·이탈리아·그리스를 예로 든다. 독일에서는 경제 전문가들이 성장력을 회복하기 위해 필수라고 생각하는 노동 개혁이 노조의 저항으로 번번이 장벽에 부딪혀 왔다. 2002년 가을, 이탈리아에서는 약 3백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정부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마련한 노동개혁안에 반대했다. 그리스 정부는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최악의 연금 위기를 겪고 있는데, 역시 광범위한 시위에 부딪혀 연금개혁안을 철회했다.
고령화가 가져올 사태에 대해 가장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는 나라는 일본이다. 1942년만 해도 젊은 나라(평균 나이 22세)였던 일본은 현재 고령 인구 비율이나 평균 수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엔의 추산에 따르면, 일본은 해마다 전체 인구의 0.6%씩 노동 인구가 감소해 오는 2050년에는 실제 필요로 하는 인력의 36%가 모자란다.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최근 게이단렌을 중심으로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고령화 추세가 현재 일본이 겪고 있는 장기 침체의 주범임은 물론 장차 정치 위기를 가져올 중대 요인이 될 수도 있다며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일본의 나이 든 세대는 리스크를 두려워하며, 모험을 회피할 것이다. 이들은 또 연금이나 사회 혜택을 약속하는 정치인들에게 표를 찍을 것이다. 또 이들은 이민이나 여성, 젊은이에 대해 편견을 갖기 쉽다.’ 이 모든 것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수화를 불러, 개혁 추구 세력과 갈등하는 등 정치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구 규모와 인구의 질은 국방 전략이나 국가 발전 전략, 국제 역학 관계와 직결된다.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의 로버트 케이건 선임연구원은 2003년 미국과 유럽의 결별을 선언한 책 <낙원과 권력에 대하여>(한국판 제목은 <미국과 유럽의 갈등에 관한 보고서>)에서, 미국과 유럽이 동맹 관계를 지속할 수 없는 유력한 근거 가운데 하나로 각기 다른 ‘인구 변화’ 추이를 들었다.

케이건에 따르면, 유럽은 고령화로 인해 국방비 지출이 날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노인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연금·고용보험·의료보험에 사회 자원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은 군사력을 필요로 할 때 유럽 동맹으로부터 제때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생각’이 다른 유럽이 미국의 발목까지 잡는다면? 이같은 물음에 대한 케이건의 답은 명쾌하다. 미국은 더 이상 늙은 유럽 동맹으로부터 얻을 것이 없으므로 독자적으로 움직여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인구 예측은 장기적인 국방 전략이나 안보 전략을 짜는 데에도 필요 충분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전문가들은 역사적 사례에서 근거를 찾는다. 예컨대 미국의 인구학자 폴 휴이트는 제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이 독일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따른 일자리 부족으로 촉발되었다고 지적한다. 일본이 만주를 점령한 것 역시 부분적으로는 당시 급속하게 불어난 인구 압력 탓이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인구 증가가 일자리난과 겹칠 경우, 혁명이나 소요·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휴이트는 설명한다.

인구 변화 추이에 관한 통계나 자료를 국가 안보나 국방 분야에 가장 발 빠르게 적용해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새뮤얼 헌팅턴이 1990년대 초·중반 미국 및 서유럽의 중동 지배를 합리화한 ‘문명충돌론’을 제기할 때 유용하게 사용한 설명 도구도 이슬람 세계의 인구 전망치였다. 아시아는 경제 성장의 결과 자기 주장이 강해져 서양 문명과 충돌을 빚는 반면, 중동에서는 급격히 불어난 젊은 세대가 일자리에 대한 불만을 ‘반서양’이라는 형태로 표출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국방이나 안보 문제를 다루면서 상대 나라의 인구 증감이나 질적 변화를 따지는 일은 헌팅턴 이래 미국의 두뇌 집단 사이에서는 자연스런 관행이 되었다. 2003년 9월 작성되고 지난 3월 초 공개된 미국 랜드 연구소의 한·미 관계 보고서도 그 중 하나다. 노먼 레빈이 만든 이 보고서는 동북아 지정학에서 한반도가 갖는 비중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부분적인 이유로 인구 예측치를 들었다. 즉 ‘앞으로 50년 안에 한국의 인구는 남북한 합쳐 8천만명(최근 예측치는 7천3백만명)이 되어 일본의 1억1천만명(현재 1억2천7백만명)과 적어도 인구 면에서는 대등한 위치에 올라선다’면서, 한·미 동맹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먼 레빈의 이 보고서에서 ‘인구의 질’에 대한 양국 비교는 빠져 있다. 2000년 일본인의 평균 나이는 41세였다. 반면 한국은 32세로 거의 열 살이 적었다. 2050년에 가면 평균 연령은 일본인과 한국인이 각각 53세·50세로 비슷해지지만, 앞으로 몇십 년간 한국은 생산력이나 국방력에서 상대적으로 젊음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미국이 국익을 도모해야 할 지역으로 아시아 다음으로 아프리카를 꼽는 것도 인구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앞으로 20년 안에 인구가 두 배로 불어나게 될 중동이나 아프리카 사하라 지역이 미국의 요주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석유 때문만이 아니다. 최근 유엔 통계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에서 인구가 많은 10개국 가운데 아프리카 국가는 나이지리아 단 한 나라다. 그러나 50년 뒤에는 에티오피아·콩고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에서 세 나라가 ‘인구 대국 클럽’에 가입하게 된다.

크든 작든, 잘살든 못살든 세계 각국은 인구학적으로 ‘균형 잡힌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앞으로 50년 뒤에도 꾸준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세계 각국에서 해마다 1백50만명씩 기회의 땅을 찾아 몰려들고 있는 이민 행렬이다. 질 관리에 성공하면, 양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미국 인구는 현재의 2억8천5백만 명에서, 오는 2050년 5억 명에 육박해 유럽 전체 인구를 추월한다.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인 중국도 인구의 질 관리에 나섰다. 그동안 강력한 산아 제한 정책이 효험을 거두어 인구 증가율을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한 중국 정부는, 장차 도래할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기존 정책을 바꾸어 오히려 출산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구의 질 관리는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는 대국에게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다. 고학력 여성의 출산을 권장하고, 질 높은 노동력을 보유한 외국인과의 결혼을 장려하기 위해 출산보조금 지급 등 각종 시책을 펴고 있는 싱가포르 사례가 이를 잘 입증한다. 인구가 4백만명에 불과한 싱가포르는 최근 출산율이 떨어지자, 에로틱한 분위기로 임신을 권장하는 심야 TV 프로그램까지 제작하며 출산율 끌어올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바쁜 업무에 쫓겨 혼기를 놓치는 직장인들에게 짝을 맺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인구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은 한국의 전문가들도 강조하는 바다. 하지만 이에 대한 준비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지난 2월 서울시는 만 두 살 이하의 셋째 자녀를 둔 가정에 매달 평균 보육비 28만원을 지급키로 결정했다. 청와대도 인구 문제 연구를 전담하는 테스크 포스를 꾸려 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화·저출산 현상을 근원적으로 해결해줄 양육 환경 개선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 겨우 필요성이 제기되는 수준이며, 접근법 또한 경제적 파급 효과나 복지 차원에만 머물러 있다.

그 사이 미국은 50년 뒤의 한반도 인구 변화까지 내다보며 한반도를 ‘요리’할 궁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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