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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대학 강의실 달구는 CEO 명강사들

유명 최고경영자들, 대학에서 현장 경험·경영 노하우 전수 ‘구슬땀’…젊은이에게 꿈과 비전 제시

장영희기자 ㅣ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04.20(Tue)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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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는 왕관을 쓰고 있는 스타다. 하지만 그 때문에 늘 불안하고 고독하며 고단하다. CEO는 변화의 격랑을 헤쳐 가는 한국 경제의 일등 항해사다. 그들이 있어 한국 경제가 발전한다. 그들이 경제적 부가 가치만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강의 등을 통해 사회적 부가 가치도 만들어내라는 요구를 받는다. 진정한 경영자는 이 역할을 받아들여 젊은이들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한다.

뚜렷한 성취를 보이고 있는 유명 CEO의 강의는 현장 경험에 목말라하는 대학생에게만 유용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경영 철학과 현장 지식은 CEO 되기가 삶의 목표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값진 선물이 될 수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변화의 시대를 온몸으로 헤쳐가는 CEO들의 메시지는 일반인에게도 울림이 클 것이다. <시사저널>은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을 시작으로 6월 말까지 매주 한두 CEO를 초대해 그들의 강의 노트를 싣는다.
분초를 쪼개 쓴다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대학 강단으로 몰려가고 있다. 대학은 또 그들을 데려가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요즘 최고경영자를 만나려면 대학으로 가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대학에서 ‘CEO 모시기’ 열풍이 불고 있다. CEO 강단 세우기는 요즘 대학가의 새로운 트렌드다.

최고경영자들이 대거 강단에 서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2002년 산업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재단이 마련한 최고경영자 공학지원 사업이었다. 기업 경영자가 직접 나서 미래 엔지니어인 이공계 학생들에게 최신 기술 동향을 습득케 하고 현장 경험을 전수함으로써 취업 전 선행 학습을 꾀하는 동시에 기업인 정신을 고취한다는 것이 이 사업의 취지이다. 한국산업기술재단이 가교 역할을 자임하게 된 발단은 2002년 초부터 거세게 몰아친 ‘이공계 살리기’ 캠페인이었다.
지난해부터 본격 발진한 최고경영자 공학교육사업은 수많은 ‘CEO 교수’를 배출했다. 지난해 최고경영자 1백89명이 64개 대학에서 학생 1만5백39명에게 실무 공학 지식과 현장 경험을 가르쳤다. 올 1학기에는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 LG전자 백우현 사장, 씨엔티테크 이충구 회장(전 현대자동차 연구개발총괄 사장), 대한항공 심이택 부회장, 동부제강 김정일 부회장, STX조선 김성기 사장, 효성중공업 정완수 사장, 네띠앙 전하진 사장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 기업 최고경영자 88명이 전국 39개 대학에서 모두 61개 강좌를 맡고 있다.

최고경영자와 대학 사이에 이공계 살리기 코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영대뿐만 아니라 인문·사회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최고경영자 특강 프로그램이 다투어 마련되고 있다. 아주대가 올 3월부터 연말까지 최고경영자 15명을 초빙한 글로벌 아시아 기업경영 특강 ‘21세기가 요구하는 경영학도’가 좋은 예다. 삼성전자 기술담당 최고경영자(CTO)인 임형규 사장이 3월12일 첫 테이프를 끊은 이후 격주로 한글과컴퓨터 백종진 사장과 KTF 남중수 사장이 뒤를 이었고, 미래에셋증권 박현주 회장, 하림 김홍국 사장,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이 바통을 잇는다. 중앙대는 전공이나 학년을 불문하고 모든 학생이 들을 수 있는 CEO 교양 특강을 마련했다. 현대모비스 박정인 회장과 코리아나화장품 유상옥 회장, 문국현 사장 등이 올 1학기 릴레이 강의를 펼치고 있다.

아예 최고경영자 강의를 위주로 하는 교육기관도 생겼다. 국내 최초의 경영 전문 대학원을 표방하며 지난해 설립된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은 강의에 나서는 최고경영자의 저변을 크게 넓혀 놓았다. 비즈니스 프로젝트 수행, 인턴십 교육, 사회봉사 활동 등 교과 과정이 일반 강의보다 현장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교수진 대부분이 최고경영자들이다. 학생은 고작 18명이지만, 전·현직 CEO 등 교수만 40명이 넘는다.

한국CEO컨설팅 강석진 회장(전 GE코리아 사장), GE코리아 이채욱 사장, 문국현 사장, 남중수 사장, 코오롱그룹 조왕하 부회장, 이건산업 박영주 회장, 이레전자 정문식 사장, 이스텔시스템즈 서두칠 사장, 자의누리 서진영 사장, 야후코리아 이승일 사장이 이 대학원에서 실전 경영학을 가르친다.

뿐만 아니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 한두 개의 CEO 강의 사례를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경희대는 호텔이나 관광산업·외식산업 관련 학부 등에서 해당 분야 최고경영자를 겸임교수로 영입했다. 한 학기 동안 외식산업학과 강의를 맡고 있는 아워홈 김재선 사장이 좋은 예다. 조왕하 부회장, 한미은행 하영구 행장, (주)두산 박용만 전략총괄사장, 남중수 사장 등이 출강하는 이화여대는 CEO 겸임교수를 지난해 40여 명에서 올해 60여 명으로 늘렸다. 올 2학기에는 ‘경영 정책’ 과목을 신설해 아예 CEO 12~13명에게 한 학기를 맡길 계획이다.

숙명여대는 단순한 CEO 특강에 그치지 않고 최고경영자를 멘토 프로그램에 끌어들였다. 한 명의 최고경영자 멘토에 멘티(학생)를 10여 명 배치해 장기적이고 전략적으로 경력 계획을 세우게 하는 프로그램인데, 국내 대학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삼성전자 이현봉 사장, SK텔레콤 김신배 사장, 남중수 사장, (주)보광 홍석규 사장, HP코리아 임광동 부사장, 남영L&F 김진형 사장, 신화전자 김영경 사장 등 최고경영자 20여 명이 이 대학 멘토로 활약하고 있다.
대학들이 다투어 최고경영자를 강단에 세우는 이유를 이화여대 서윤석 경영대학장은 역할분담론으로 설명한다. 기업들은 대학이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고 불만이지만, 어차피 학자인 교수들은 한계가 있으므로 기업 현장에 있는 최고경영자들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수봉 교수(인하대·환경토목공학부)도 “20~30 년간 현장 체험이 있는 최고경영자들이 학생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함으로써 실질적인 산학협동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취업에 도움이 되리라는 실질적인 기대도 빼놓을 수 없다. 아주대와 이화여대가 CEO 특강을 하면서 맥주 파티나 다과회 같은 뒤풀이 행사를 곁들이는 것은 자연스럽게 최고경영자와 접촉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한양대는 올 1학기 ‘미래 CEO를 위한 CEO 시리즈 강좌’를 마련해 한진중공업 박재영 사장, 삼성테스코 이승한 사장, 벽산엔지니어링 김용태 사장, 현대자동차 서병기 부사장을 초빙했다.

CEO 강좌에 학생이 몰리는 이유는 산업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데다 이들의 실전형 강의가 취업이나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 MIS 석사과정 1년차인 문정수씨는 “현장 경험이 많은 유명 CEO 강의를 들음으로써 기업 경영에 대한 통찰력을 얻으려 한다”라고 말한다. 한국산업기술재단이 지난 3월 발표한 지난해 공학교육 지원사업 설문조사 결과는 CEO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음을 잘 보여준다. CEO 교수 강의가 현장 실무 지식을 습득하게 했으며 진로 선택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응답이 80%가 넘었다(도표 참조).

이 조사에 따르면, CEO 교수 93%가 다시 강의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최고경영자들이 이처럼 강의에 열성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평균 1주일에 한 번꼴로 대학 강단에 서는, 열성 CEO 교수로 변신한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은 “강의는 문국현의 꿈과 이상을 미래 사회 지도층이 될 사람들에게 심는 일이다. 이들을 트레이닝하는 작업이 강의다. 강의를 통해 기술을 공유하고 빠른 확산을 유도함으로써 사회 발전도 가져온다”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코리아나화장품 유상옥 회장과 LG칼텍스정유 손영기 부사장(연세대에서 ‘에너지 산업의 이해’ 강의)도 같은 생각이다. 기업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회 공헌 활동이 강의라고 생각한다.

기업인에게 강의가 사회 공헌 활동인 것만은 아니다. 미래 소비자인 학생들에게 자기네 기업을 알리고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강의 시장’에 뛰어든 KTF 남중수 사장은 “CEO에게는 ‘기업 시민’ 역할이 부여되어 있기도 하지만, 대학 강단이 고객이 있는 현장이라는 점에서 강의가 그저 봉사가 아니라 기업에 이익이 되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강의 그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무시할 수 없다. 서울대에서 올 1학기 연구개발전략을 강의하는 삼성인력개발원 손 욱 원장은 “열정적으로 강의에 임하는 학생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교육 콘텐츠와 인프라만 개선되면 일류 공학도가 되리라는 확신도 든다”라고 강의의 즐거움을 토로한다.

셰익스피어의 리더십을 다룬 ‘리더십 3막11장(Power Plays)’에 따르면, 리더십은 연극적 능력이며 관객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수많은 역할을 기꺼이 떠맡아야 한다. 한국 사회는 최고경영자에게 기업 경영 외에 현장 경험과 경영 노하우를 전수해야 하는 CEO 교수라는 또 다른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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