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들, ‘황금알’ 을 낳다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r)
  • 승인 2004.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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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미물’이라고 얕볼 것이 아니다. 곤충 산업이 과열 소리를 들을 만큼 급성장하고 있다. 전국의 애완 곤충 사육 인구가 10 만명을 헤아리고 판매 업체와 사육 농가들도 성업이다. 곤충은 인간에게 무엇을,
아직 여름이 먼데 벌써부터 한낮의 태양은 뜨겁기만 하다. 덕분에 곤충들이 그 어느 해보다 일찍 날개를 퍼덕이고 있다. 그렇지만 ‘한낱 미물인’ 곤충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따금 어린아이들만이 두 팔을 벌린 채 하늘하늘 나는 제비나비의 뒤꽁무니를 쫓을 뿐이다. 그러나 곤충은 인간과 뗄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다.

최근 들어 그 관계가 더욱 밀접해지고 있다. 곤충을 이용하는 분야가 늘고 있는 것이다.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 쇠똥구리, 귀뚜라미, 나비와 반딧불이, 무당벌레와 노린재가 대표 선수들이다. 그들은 인간에게 무엇을, 어떻게 주고 있을까. 곤충산업의 오늘과 내일을 들여다보았다.

장영철씨(31·서울시 화곡동)의 충우(蟲友) 사무실에는 이른바 ‘검은 다이아몬드’가 한둘이 아니다(검은 다이아몬드란 커다란 사슴벌레를 일컫는 말. 일본에서 8cm짜리가 1억원에 팔리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습기 머금은 좁은 창고를 들여다보자. 사슴벌레·장수풍뎅이의 애벌레와 번데기, 그리고 작은 성충이 플라스틱 통 안에 가득하다. 그것들은 장씨가 직접 산이나 들에 나가 채집하거나, 알을 받아서 키워낸 것들이다. 그는 그것들을 인터넷 등을 통해 8천~10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현재 애완 곤충산업은 과열 소리를 들을 만큼 급성장하고 있다. 농업과학기술원 홍성진 박사(유용곤충과)에 따르면, 2003년 말 현재 인터넷의 곤충 동호회는 1백61개나 되고, 회원 수는 5만명이 넘는다. 대학 연구실과 학회 그리고 개인이 운영하는 곤충 관련 홈페이지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 2003년 말 3백16개나 된다. 이는 2002년보다 268%나 증가한 숫자이다.

1996년에 장씨가 문을 연 충우 홈페이지(http: //stagbeetles.com)에도 회원이 몰려, 3월 말 현재 1만명 이상이 가입했다. “각종 곤충전이 열리고, 방송에서 곤충 관련 프로그램을 내보내면서 지난해 말부터 회원이 부쩍 늘었다”라고 장씨는 말했다. 그가 예상하는 전국의 애완 곤충 사육 인구는 10만명. 덕분에 20여 판매업체와 60여 사육 농가가 때아닌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런데 왜 개처럼 살갑지도 않고, 고양이처럼 쥐도 못 잡는 곤충일까. 2백여 마리의 곤충을 키우고 있는 황규하씨(36·인천)는 “변태 때문이다. 자그마한 알이 애벌레가 되고,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가 장갑차 같은 곤충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는 정말 짜릿하다”라고 말했다. 장영철씨는 빠른 성장 속도와 빠른 변태가 곤충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말했다. 실제 사슴벌레의 알이 성충이 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6~9개월. 게다가 사육하기 쉽고(상자 기사 참조), 조용하고, 청결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이점까지 갖고 있다.

10여 년 전에 시작된 한국의 애완 곤충 시장 규모는 2003년 말 기준으로 10억원대로 추산된다. 그에 비해 1980년대 초 시작된 일본의 시장 규모는 2조원이 넘는다. 곤충 전문가들이 한국의 곤충 사육 산업이 엄청난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곤충은 사람의 ‘눈 맛’뿐만이 아니라 입맛까지 돋우고 있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곤충은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가장 널리 이용되는 곤충은 딱정벌레류이다. 특히 남미나 아프리카에서는 통통하게 살진 딱정벌레 애벌레들이 인기가 높다. 파푸아뉴기니 원주민들은 딱정벌레 유충을 수백kg 수확한 뒤 이를 바나나 잎에 길게 싸서 소시지처럼 먹는다. 베트남에서는 야자풍뎅이의 유충을 튀겨 먹고, 동남아시아의 몇몇 지역에서는 풍뎅이나 물방개의 유충과 번데기를 요리해서 먹는다.

곤충은 특별한 병에 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옛 유럽에서는 사슴벌레로 만든 조제약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열을 내서 정신질환이나 경련과 통풍을 치료했다. 한때 풍뎅이·잎벌레·바구미·무당벌레 가루를 치통을 완화하는 데 쓰기도 했다. 일본 민간요법에서는 딱정벌레로 암이나 경련·광견병·치질을 치료하기도 했다(<딱정벌레의 세계> 까치).
얼마 전까지는 한국인들도 비슷했다. 메뚜기와 누에 번데기, 귀뚜라미와 물방개를 튀겨 먹거나 끓여 먹었다. <본초강목> 등을 보면 수백 종의 곤충을 약재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 거의 모든 곤충이 혐오 식품 소리를 듣는다. 그렇다고 해서 인기가 완전히 수그러든 것 같지는 않다. 아직도 메뚜기와 번데기 마니아가 적지 않다.

어쩌면 앞으로는 곤충계의 ‘신사’로 불리는 귀뚜라미가 더 인기를 끌지 모른다.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과학기술원 김남정 연구사(35·곤충자원개발연구실)가 인기를 부풀리는 일을 맡고 있다. 귀뚜라미를 이유자돈(젖을 뗀 새끼 돼지)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제공하기 위해 3년 전부터 대량 생산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귀뚜라미는 체중의 53%가 단백질이고 22%가 지방산일 정도로 영양소가 풍부한 식품이다. 때문에 귀뚜라미 맛을 한번 본 파충류는 절대 그 맛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귀뚜라미 사육 업체 30여개가 성업이고, 매출액은 한 해에 1천5백억원이 넘는다. 반면 한국은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상태이다.

김씨를 따라 귀뚜라미 사육장 안으로 들어가자 귀뚜라미들이 불투명한 통 안에서 출생 날짜 별로 40여 마리씩 나누어 사육되고 있었다. “귀뚜라미는 1년에 1세대를 산다. 그런데 연구를 통해 1년에 2세대까지 키울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대량 생산이 쉬워졌다”라고 김씨는 말했다. 귀뚜라미의 마리당 가격은 50~100원. 김씨는 사료용으로만 1천8백억원대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귀뚜라미는 애완용으로도 보급될 전망이다. 귀뚜라미를 집에서 키울 경우 장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매일 맑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곤충의 행성>을 쓴 하워드 E. 에번스는 귀뚜라미 소리를 ‘비록 날카롭기는 하지만, 그 소리를 듣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그들로 하여금 전원 생활과 신록, 여름날에 대한 유쾌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준다’고 하지 않던가. 귀뚜라미는 또 값이 싼 데다 먹성이 좋아 키우기가 쉽다.

곤충을 이용해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한 나라로는 오스트레일리아가 꼽힌다. 18세기 말, 영국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하며 소를 대량으로 끌고 갔다. 그 결과 오스트레일리아 목초에는 크고 물기 많은 소똥이 곳곳에 넘쳐나게 되었다. 문제는 토착 풍뎅이들이 소똥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미 유대류(캥거루·두더지 등)의 건조하고 섬유질이 풍부한 똥에 적응한 뒤라 걸쭉한 소똥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소가 늘어가자 소똥이 30분 동안 6백만개꼴로 지면에 떨어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소똥은 빠르게 목초지를 뒤덮어 갔고, 덕분에 가축의 피를 빨아먹는 뿔파리의 산란지가 늘어나면서 피해가 커져갔다. 1963년,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곤충 학자들을 아프리카로 파견해 소똥을 좋아하는 풍뎅이를 찾아오게 했다. 1967년부터 그들이 찾아온 풍뎅이 40여 종 가운데 4종이 맹활약하면서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목초지는 제 모습을 찾았고, 뿔파리 수는 보기 드물게 줄어들었다.
40여년 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일어났던 ‘기적’이 지금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농업과학기술원 방혜선 연구사(33)는 지난 5년간 쇠똥구리와 함께 살았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멸종해 가는 쇠똥구리를 대량 생산하는 일. 방혜선씨에 따르면, 소나 양은 완전한 소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아 배설물이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 때문에 식물들은 초식 동물의 배설물을 영양원으로 직접 이용할 수 없다. 이때 쇠똥구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식 동물의 배설물을 분해해 거름으로 만드는 것이다. 게다가 소똥 안에 있는 파리의 알까지 먹어치워 해충 발생을 억제하는 일까지 한다.

이같은 익충이지만 무분별한 개발과 농약 사용 등으로 약 60종에 달하던 쇠똥구리는 거의 자취를 감춘 실정이다. 방씨는 그 가운데 애기뿔쇠똥구리와 뿔쇠똥구리를 대량 사육하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쇠똥구리 복원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똥방울 안의 알을 부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실험실에서 똥방울 속의 번데기가 우화(羽化)하기를 기다렸지만, 이상하게도 반응이 없었다. 자연 상태에서는 자연스레 우화하는 것들이 왜 더 좋은 환경에서는 우화하지 않는 것일까. 1년 넘게 연구한 끝에 가까스로 해답을 찾아냈다. 똥방울 주변을 저온(5℃) 상태로 한 달 이상 유지해 주어야 우화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현재 인공으로 배양한 쇠똥구리들은 강원도 횡성 농업기술센터 목초지에서 적극 활용되고 있다. 몇몇 연구자가 회생시킨 쇠똥구리 덕에 비료와 농약 사용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캐나다의 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1~3cm에 불과한 쇠똥구리들이 한 해 캐나다에서 생산하는 경제적 가치가 2조원이 넘는다.

천적으로 해로운 곤충을 퇴치하는 방법도 확산되고 있다. 충남 논산에 있는 (주)세실은 뒤영벌의 일종인 굴파리좀벌·진디혹파리·꼬마무당벌레같이 해충을 잡아먹는 곤충 14종을 판매하고 있다. 이들 천적 곤충들이 올리는 전과(戰果)는 눈부시다. 굴파리좀벌레의 경우 채소 이파리에 알을 낳는 잎굴파리 유충에 자신의 알을 산란해 잎굴파리를 초기에 박멸한다. 꼬마무당벌레는 응애라는 해충을 잡아먹는데, 먹성이 좋은 놈은 하루에 20~40마리까지 잡아먹어 응애의 확산을 막는다.
이원규 대표는 “작년부터 비닐하우스 재배 농가에 공급하고 있는데, 한 번 이상 구입해간 농가가 이미 9백 가구를 넘었다”라고 말했다. 또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토마토·가지 등의 꽃가루받이를 돕는 수정 벌도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곤충 산업은 한계도 갖고 있다. 가격이 비싼 데다(꼬마무당벌레는 200평당 3만5천원어치 소요, 수정 벌은 여왕벌 1마리, 일벌 50~80마리에 8만5천원), 해충이 번진 상태에서는 사용하기가 곤란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천적 곤충 산업은 날로 번창할 전망이다. 농약과 비료를 치지 않은 친환경 채소가 비싼 값에 팔리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세실은 올해 매출액을 20억원 이상으로 예상했다.

CLP(www.clpclp.com·서울 논현동)의 윤규상(40)·김철중(31)·정연찬(28)·장석원(26) 씨는 ‘가짜 곤충’으로 돈을 번다. 곤충 모양의 조명 작품을 만들어 판매하거나, 대여하고 있는 것이다. 윤씨 등 네 사람은 모두 홍익대 미대 선후배 사이. 이들의 곤충 프로젝트는 우연히 이루어졌다. “새로운 작업을 구상하던 어느 날, 우연히 사무실에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나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 모두들 ‘바로 저 거다’라고 생각했다”라고 정씨는 말했다.

그러나 쇠를 오리고, 붙이고, 두드리고, 깎고, 비틀어서 곤충을 재현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특히 경이로운 날개와 다리는 수시로 힘을 빼놓았다. 그 바람에 곤충 한 마리를 만드는 데 평균 한 달 이상이 걸렸다. 그 과정을 거쳐 맨 먼저 세상에 나온 작품이 잠자리와 반딧불이 조명 기기.
이제껏 그들이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낸 곤충은 20여 종에 7백여 마리. 그 가운데에는 재현하기 어려운 소금쟁이·사마귀·장수풍뎅이도 있다. 지난해 그들은 이 곤충을 모아 전시회까지 열었다. 윤씨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는 작업이어서인지, 기대 이상으로 평단의 반응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이제 곤충 모양 조명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곤충을 이용해 인간을 풍자하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예를 들면 사람을 향해 소리치는 메뚜기 같은 작품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곤충 작품을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윤씨는 “공생이다. 지구는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다. 세상에 곤충의 아름다움을 알려, 보호하고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5월1~9일 함평에서 열리는 나비축제에서 보듯이 수많은 곤충이 문화 산업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다. 인간은 아직 곤충에 대해 많은 부분을 모른다. 그러나 곤충들이 우리의 눈과 예술, 농업은 물론 우리의 식탁까지 풍요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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