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특명 “DJ를 모셔오라”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4.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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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극비리에 추진한 ‘도라산 프로젝트’를 <시사저널>이 최초로 확인했다. 북한은 DJ가 이 프로젝트를 재추진해 달라며 ‘장군님이 직접 서명한 초청장’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남한 사정으로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강력히 원한다.’ 열린우리당 고위 관계자들이 잇달아 ‘DJ특사론’을 주장하는 가운데 북한 당국도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 모시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시사저널>은 올 들어 북한 고위 관계자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 일행의 평양 방문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각종 문서와 사진을 단독 입수했다. 북한의 ‘DJ 모시기’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조직부장과 북한 권력 서열 2위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전면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난 6월12일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서명한 김대중 전 대통령 일행의 방북 초청장을 들고 북한측 고위급 대표단이 중국 옌지에서 남측 인사들과 면담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이때 남한측 인사로는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대리인으로 보낸 이정일 사무총장과 이용부 전 서울시의회 의장, 그리고 한대표의 안보특보로 활동해온 배남수씨(54)가 참석했다. 이들은 김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나온 김국경 내각 부총리와 장성택 노동당 조직부장의 셋째 동생인 장성길 인민군 중장 등 북측 대표단과 만나 DJ 방북 초청 문제를 협의했다.

그러나 당시 DJ 방북 추진은 오래가지 못했다. 비밀 면담 직후 일부 언론을 통해 민주당의 DJ 방북 추진 의혹이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사건이 불거지자 DJ는 자신과 사전 상의도 없이 추진되는 일이라면서 민주당 지도부에 강력히 유감을 표명했고, 당황한 북한측도 협상대표단을 중국에서 철수시켰다.

이에 대해 한대표측의 장전형 대변인은 “집권 민주당 시절부터 당대표 자격으로 한대표의 방북을 추진해왔는데, 올 들어 북에서 한대표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연관이 있는 정치인이라고 보고 함께 초청하려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정일 사무총장을 대리로 보내 북측 대표단을 만난 뒤 한대표가 자기의 방북을 보류시킨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적극성을 띠기 시작한 북한 당국의 ‘DJ 모시기’는 단순한 촌극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2000년 정상회담 이후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둘러싸고 성과를 올리려는 남과 북 비선 조직의 숨가쁜 막후 협상이라는 비화가 숨어 있다. 일명 ‘도라산 프로젝트’다. 이것은 2002년 7월30일 정형근 의원이 국회 정보위 비공개 회의에서 폭로하는 바람에 세상에 처음 알려진 이른바 김정일 위원장 답방 프로젝트이다.

당시 정의원은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0월 답방을 성사시키기 위해 8월15일 방북하고, 식량 30만t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했다”라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한대표는 즉각 어불성설이라고 부인했고, 민주당은 정의원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당시의 도라산 프로젝트에 대해 한화갑 대표와 민주당은 올 들어 공식적으로 사실이었다고 인정했다. 민주당 장전형 대변인은 “한대표는 오래 전부터 남북 관계를 한 단계 진전시키기 위해 독자적인 방북과 도라산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정형근 의원이 국회에서 재를 뿌리는 바람에 미뤄 두었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추진했다”라고 밝혔다.
김위원장, 전주 선영 방문 형식으로 ‘답방’

<시사저널>은 지난 4년 동안 도라산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북한측과 막후 협상을 벌여온 핵심 관계자로부터 각종 공문과 협상 진행 일지, 면담록, 사진 등 자료 일체를 넘겨받고 관련 당사자들을 인터뷰해 사건을 재구성했다.

도라산 프로젝트의 골자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복원하기로 합의한 경의선 철도 도라산역사가 위치하는 비무장지대에 대규모 평화공원과 이산가족 묘지 및 민간 차원의 면회소를 설치한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김정일 위원장의 전주 김씨(시조 김태서) 선산이 있는 전주 모악산의 조상 묘소를 도라산 지역으로 이장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에 앞서 김정일 위원장이 조상 묘소 성묘를 위해 전주 선영을 방문하는 형식으로 내려와 자연스럽게 답방 약속을 이행한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도라산 프로젝트는 김대중 정부 시절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협상이 지지부진할 때 민주당 한화갑 대표 측근이 내놓은 방안이다. 그 전에는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무대로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이 별도로 특사를 보내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협상을 추진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무산되었다.

남북 비선 조직을 통한 최초의 김정일 위원장 답방 협상에는 류 아무개씨가 개입했다. 국내 한 정보기관 에이전트로서 북한을 드나들던 류씨는 1998년 정주영 명예회장 방북 당시 평양교예단 공연 계약을 50만 달러에 따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아산측이 대북 사업의 일관성을 명분으로 북한에 3백만 달러를 제시하고 그 공연 계약을 가로채자 류씨는 남북 양측에 위약 책임을 묻겠다며 반발했다. 말썽을 우려한 정부는 남북교류협력기금을 털어 류씨에게 위약금을 지불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측은 해법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을 주선한 조선족 이 아무개씨(공작명 김광수)의 중재에 따라 류씨에게 평양예술음악무용대학 교예악단의 남측 공연 계약을 맡기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한국 답방에 앞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북한 교예단을 서울에 보내 공연한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교예단을 이끄는 공동 대표단장으로 김위원장 여동생인 김경희 경공업부장과 남편 장성택 조직부장을 보내되 그 개런티를 3백만 달러로 한다는 계약이었다. 류씨는 2001년 5월 이같은 내용의 계약서를 통일부에 제출했다.

그런데 통일부에서 계약의 진위에 대한 논란이 빚어졌다. 이때 천용택 당시 국회 국방위원장의 특보로 있던 배남수씨가 중국을 방문해 정명예회장의 방북을 주선한 이 아무개씨를 만났다. 배씨는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이씨를 통해 류씨와 맺은 계약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대로 천위원장에게 보고했다. 이에 대해 천용택 전 의원은 “당시 배남수씨가 북측에서 얻어온 답방 프로그램 관련 정보를 국정원에 줬더니 가능성이 반반이라고 알려왔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성택·김경희 부부가 김정일 위원장에 앞서 교예단을 이끌고 서울을 방문한다는 류씨의 답방 사전 준비 프로그램은 그 뒤 어찌된 일인지 통일부 책상 서랍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대신 똑같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박지원 비서실장의 심복으로 알려진 청와대 고 아무개 국장이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으로 파견되었다. 북한대사관에서 김용순 라인과 답방 준비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박지원 실장측은 류씨에게 제시한 3백만 달러보다 많은 6백만 달러를 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업은 끝내 무산되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베이징 대사관에서 이 협상을 진행하던 김용순 아태위원장을 즉각 소환한 뒤 답방은 없다고 공식 선언해 버렸다. 김용순 위원장은 이때 사건의 책임을 지고 1년 동안 실각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답방 정지 작업 하던 김용순이 실각한 까닭

당시 북한측을 상대로 그 내막을 파악했던 배남수씨는 “돈 몇푼으로 답방을 흥정하려는 남측의 태도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 화근이었다”라고 전했다. 속을 더 들여다보면 김영남 상임위원장 선에서 이미 결재가 난 사안을 아랫사람인 김용순 아태위원장이 상부에 보고도 하지 않고 박지원 실장측과 별도로 협상을 추진했다는 점이 괘씸죄로 작용한 면이 컸다고 한다. 이후 답방 추진은 민주당 한화갑 대표 주변 인물들 손으로 넘어갔다.
남쪽에서는 2001년부터 천용택 전 국회 국방위원장의 특보를 지낸 배남수씨가 한화갑 대표의 안보담당 특보를 맡아 비선으로 대북 창구를 담당했다. 북쪽은 처음 한동안은 김용순 아태위원장이 추진하다가 지난해부터는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장성택 조직부장의 뜻을 받아 김국경 내각 부총리가 직접 나섰다. 남북 양측을 매개해준 인물은 중국 및 북한 정부 고위층과 친분이 깊은 조선족 사업가 김광수씨(공작명)였다(48쪽 상자 기사 참조).

배씨는 2001년 8월부터 김광수씨를 매개로 북한 김영남 상임위원장에게 한화갑 대표·조성준 의원·설 훈 의원 등 집권당 대표단을 평양으로 초청해 달라는 협상을 벌이면서 도라산 프로젝트를 제출했다. 방북 초청은 주중 북한대사관을 통해 승인한다는 답변이 왔지만 도라산 프로젝트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결심이 문제였다.

북측은 그 해 11월6일에야 ‘장군님의 <큰뜻>’으로 전주 모악산에 있는 조상 선영에 성묘하러 가는 방식으로 남한을 방문할 뜻이 있다는 답변서를 보내왔다. 2002년 3월1일을 기해 한화갑 대표 등 집권당 방북단이 평양에 들어가고, 한달여 뒤인 4월5일 한식을 맞아 김정일 위원장이 한국 정부의 협조로 전주 모악산에 성묘를 하러 다녀간다는 내용이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답방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답방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는 표현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이런 방침과 함께 북한 당국은 한대표 등 4명에게 초청장을 보내왔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남한 내부 사정으로 삐걱이기 시작한다. 대선 정국에 돌입하면서 한화갑 대표가 방북하기로 예정된 무렵에 민주당 대권 경선 주자로 나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대표는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배남수씨를 통해 3월 초순 방북이 성사되기를 적극 희망했다. 그러나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한대표측에 경선 이후로 방북을 연기해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민주당 경선이 끝난 이후 북한측은 미루어둔 한화갑 대표 일행의 방북을 그 해 8월15일로 확정했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정보를 입수해 다시 무산되고 말았다. 배남수 특보가 베이징의 북한대사관으로부터 한대표 일행의 초청장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베이징으로 떠난 7월30일 정형근 의원이 국회 정보위 회의장에서 도라산 프로젝트를 폭로한 것이다. 북측은 정의원에게 정보가 새어나간 책임을 물어 베이징 대사관 관계자들을 줄줄이 소환했고, 한대표 일행의 방북에 대해서도 무기한 연기한다고 통보했다.

이후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갈라서는 등 남측 정세가 급변하면서 한대표를 중심으로 추진되던 도라산 프로젝트는 무산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부터 북한측은 이 프로젝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을 연계시켜 다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장성택 조직부장이 적극 나섰다. 장성택 부장은 정주영 명예회장 방북을 주선한 김광수씨와 지난해 11월 신의주에서 만나 남측과 도라산 프로젝트를 재추진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어 김국경 내각 부총리를 중국으로 보내 배남수씨와 이용부 전 서울시의회 의장 등 도라산 프로젝트 남측 추진 인사들을 다시 만나도록 했다. 이때부터 북한측은 과거 한화갑 대표가 추진하던 도라산 프로젝트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특사로 나서서 추진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북한 고위층의 적극적인 DJ 초청 의지를 확인한 남측 협상단은 지난 1월 초순 이 사실을 허경만 전남도지사와 유인태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정부에도 알렸다. 일부 여당 정치인들은 이 내용을 접하고 방북 대표단에 자신을 끼워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2월2일에는 장성택 부장 명의로 ‘김대중 한화갑 이용부 배남수 등을 포함한 남측 대표단 35명의 방북을 초청한다’는 요지의 통지문이 왔다.

그러나 이 무렵을 전후해 정부는 4·13 총선을 이유로 들어 북한측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 2월19일 신의주에서 도라산 프로젝트를 중개하는 조선족 김광수씨를 만난 장성택 조직부장은 “남측의 총선거가 끝난 다음으로 연기하자”라고 요청했다. 김씨에 따르면, 당시 장성택 부장은 한국 정부가 DJ 초청을 연기해 달라고 북한에 직접 요청했다고 확인해 주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당시 김 전 대통령측이 대북 특사 추진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는 1월8일자 연합뉴스 보도를 평양에 팩스로 보낸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북측은 당시 이 보도 내용을 조사해서 일부 내용이 조작되었다는 요지로 도라산 프로젝트 추진팀에 통보했다고 한다.
DJ 인터뷰 내용 조작해서 북한에 전달

이에 관해 <시사저널>이 입수한 북측의 서류에 따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금은 6자회담에 집중할 때이며 여러 차례에 걸쳐 남북문제는 현직에 있는 분들이 책임지고 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라는 당초 보도 내용이 북한측에 전달될 때는 ‘…남북문제는 현직에 있는 분들이 책임지고 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북에서 초청해도 가지 않겠다는 의중을 전했다’라고 둔갑해 있었다.

결국 북한측은 총선 이후로 방북 초청을 미루어 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총선이 끝난 뒤인 5월 하순 장성택 부장 비서진을 포함한 대표단 7명을 중국 옌지로 보냈다. 당시 북한측은 남측 대표로 간 이용부 전 서울시의회 의장과 배남수씨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북하겠다는 의사를 서면으로 보내오면 바로 김정일 장군의 사인이 든 초청장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의 확실한 의사 표시를 요구한 셈이다.

이에 대해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6월9일 이정일 사무총장과 배남수씨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보내니 북측 대표단이 믿고 협의해 달라는 친서를 써주었다. 6월12일 이들은 옌지 성보호텔에서 북측 김국경 부총리와 장성택 부장 동생 장성길 중장을 만났다. 북측 대표단의 서류 가방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사인한 김대중 전 대통령 초청장이 들어 있었다. 이를 지키기 위해 경호원 13명이 특별히 파견되었다.

이 자리에서 북한측 설명을 들은 이정일 사무총장은 귀국해 사흘 안으로 김 전 대통령의 방북 의사를 받아 다시 나오겠다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동안 북측 대표단은 옌지에서 DJ로부터 답변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이들이 귀국한 직후 어떻게 정보가 샜는지 6월15일자 세계일보 1면에 김 전 대통령 대북 특사 추진 소식이 보도되었다. 이렇게 되자 이정일 의원과 한화갑 대표는 언론을 통해 방북 추진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자 김대중 전 대통령측은 발끈했다. 아무런 사전 상의 없이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측 김한정 비서는 “민주당 지도부가 현정부 들어 대북 특검 등에 울분을 느끼고 이런 방식으로라도 접근하는 것이 김 전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것으로 알았겠지만, 공당의 체면과 신뢰가 걸린 문제를 당사자와 아무런 상의도 없이 무례하게 처리해 마치 DJ가 북측과 비밀리에 접촉하는 것처럼 곤란하게 만들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DJ는 김위원장이 답방하지 못할 경우 2차 정상회담이라도 열어야 한다고 보지만 그럴 경우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추진해야 하고, DJ는 어디까지나 뒤에서 돕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정치인들 손발 안 맞아 DJ 방북 어려워져결국 장성택·김영남 라인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온 DJ 및 한화갑 대표 방북 건은 남쪽에서조차 손발이 맞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또다시 무산되기에 이르렀다. 북측은 이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옌지에서 DJ의 친서를 기다리던 북측 대표단은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되어 북으로 소환당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장성택 조직부장은 부하 직원의 호화 결혼식 사건에 연루되어 가택 연금된 것으로 외신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이 사건의 흐름을 잘 아는 한 대북 소식통은 “몇달 전에 있었다는 부하의 호화 결혼식 참석에 책임을 물은 것처럼 대외에 연막을 피웠을 뿐 실제로는 김위원장의 오른팔로서 여전히 건재하며 대남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도라산 프로젝트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애착 역시 여전하다고 한다. 이미 2001년 11월 본인이 사인한 사업인 만큼 북한 체제 특성상 어느 누구도 중간에서 그 사업 추진을 중지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회담까지 거친 이 마당에도 비선과 비공식 루트에 의존해 중대한 사업을 추진하는 행태는 남북 관계의 허술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정부간 채널이 있는데도 여야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특사론이 제기되는 것은 그만큼 공식 라인으로는 성사되는 일이 없다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치권 일각에서 정략과 당리당략에 따라 대북 관계에 임의로 대처하는 모습은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비선과 비공식 루트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 개입했다가 현대그룹 대북 송금 특검 결과 거액의 부정 부패 혐의로 구속된 박지원 전 장관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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