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부른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9.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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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복 전 사장 1인극’으로 결론… 논란 휩싸여
강원일 특별검사팀이 지난 12월11일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에 대한 구속 영장을 청구하면서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한 특검팀 수사는 끝내기 순서를 밟고 있다. 강특검은 서울지방법원 영장전담 김동국 판사에게 강씨에 대한 사전 구속 영장을 신청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강씨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 자체가 하나의 결론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결론은 내려진 상태이다. (피의자를) 다시 소환하더라도 사소한 부분을 정리하거나 확인하는 차원이다”라고 말했다.

내분이 일어나 수사관 5명이 교체되는 홍역을 치른 사건치고 수사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강희복 전 사장이 재임 기간 ‘한 건’올리기 위해 지난해 9월1일 조폐공사 노동조합의 시한부 파업 돌입 직후 직장 폐쇄 조처를 20일 동안 지속하고, 2001년으로 예정되었던 조폐창 통폐합을 2년이나 앞당겨 추진해 노조의 파업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강 전사장은 노조가 파업을 벌일 것에 대비해 고등학교 선배인 진형구 공안부장을 끌어들여 강경 노조로 알려진 조폐공사 노조를 공권력으로 제압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결론에 따르면, 강씨는 고의로 파업을 유도해 공공기관의 업무를 방해한 셈이다. 서울지법 김동국 판사가 구속 영장을 발부한 것도 업무 방해 혐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강특검팀의 수사 결과가 흘러나오자 검찰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강씨 1인극으로 정리되면서 검찰은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다만 검찰 수사의 신뢰성이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특검팀의 수사 결과가 서울지검의 그것과 배치하기 때문이다. 서울지검은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을 진형구씨가 주도하고 강희복씨는 동조한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특검팀 결론대로라면 검찰 수사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 처지에서는 공공기관 파업을 조직적으로 유도했다는 씻을 수 없는 흙탕물을 뒤집어 쓸 위기에 비하면 옷깃에 묻은 검불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수사 결과는 논란에 휩싸여 있지만, 그동안 수사 과정에서 보여준 강특검팀의 행보는 노동계로 하여금 공공기관 파업 유도에 정부와 검찰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을 밝혀낼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강특검팀은 진 념 기획예산처장관을 소환 조사하고, 강봉균 재정경제부장관을 서면 조사했다. 옷로비 수사를 맡은 최병모 특검팀의 활약에 가려 눈에 띄지 않다가 최특검팀의 기세가 한풀 꺾이자 강특검팀은 수사 과정에서 조폐공사 파업 대처 방안을 담은 대전지검 내부 자료 8건도 공개했다. 언론의 초점은 최특검팀에서 강특검팀으로 옮겨가는 듯했다. 대전지검 문건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문건에 나온 문구가 검찰이 파업 유도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였다. 파업 유도에 관여한 검찰 공안부 관계자들이 줄지어 특검팀에 소환될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도 나왔다.
“주범·종범 뒤바꾼 편파 수사”

그러나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강특검팀이 대전지검 자료로는 검찰의 조직적 개입을 입증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자 노동계가 들끓고 있다. 특검팀에서 도중 하차한 김형태 변호사와 김형완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도 수사 결과가 발표된 뒤 특검팀이 축소·은폐 수사한 물증을 공개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형완 처장은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세 가지 점을 제기한다. 우선 검찰이 조폐공사 파업 유도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다. 특검팀에 있는 동안 살펴본 수사 자료 가운데 검찰 공안부가 조폐공사 파업 유도에 적극 개입한 증거가 수두룩했다. 그리고 서울지검이 축소·은폐 수사했다는 책임도 묻겠다. 마지막으로 강원일 특검팀이 축소·은폐 수사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강특검팀 수사 결과가 나온 뒤 김형태 변호사측은 기자회견을 열고 강특검팀의 수사 결론을 정면으로 반박할 계획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일개 공기업 사장이 검찰과 경제 부처 장관을 동원해 파업을 유도했다는 것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김형완 처장은 검찰 출신인 강특검의 팔이 안으로 굽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강특검은 대검 중수부장 출신이다. 김대중 정부의 안위보다도 검찰 조직에 대한 애정이 앞서는 인물이다. 따라서 검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편파적으로 수사를 진행했다는 의심을 풀 수 없다.”

김형태 변호사측은 주범과 종범이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파업 유도의 주범은 검찰 공안부이고 종범이 강희복씨라는 것이다. 서울지검 조사 결과와 비슷한 듯하다. 하지만 검찰 공안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고 검찰 조직 자체가 이를 방관·비호했다는 것이 서울지검 결론과 다르다.

양삼조 전 조폐공사 기획관리본부장의 진술도 김변호사측 주장을 뒷받침한다. 양씨는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9월30일까지 강 전사장은 임금을 삭감해 조폐공사 구조조정 작업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임금 삭감이 강씨의 일관된 입장이었는데 조폐공사 임직원이라면 당연히 반대할 조폐창 조기 통폐합이라는 대안을 제기했을 때 의아했다”라고 말했다. 임금 삭감안도 노조 반대에 부딪혀 관철하기 힘들었는데 더 강경한 조처를 갑자기 내놓은 것은 노조와 협상하는 것 자체를 포기한 것임에 틀림없다. 김형완 처장은 양씨가 검찰 조사에서 같은 내용을 진술했지만 서울지검이 이를 무시했다고 주장한다.

강특검팀의 주장은 다르다. 조폐창 통폐합은 강 전사장의 고유 권한인 만큼, 그가 파업을 유도하려고 독자적으로 판단해 실행했다는 것이다. 강특검팀은 대전지검 문건도 대전지방노동청이 정리한 자료를 재작성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송인준 당시 대전지검장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검사 몇명이 자체 작성한 것처럼 꾸며 대검찰청에 보고한 것이 검찰이 파업 유도에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강특검팀은 처음에는 문건 작성에 관여한 검사 몇명을 징계하라고 검찰에 요구하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이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여론이 나빠지자 희생양으로 검사 몇명을 사법 처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법원 최초 ‘결론 다른 기소’ 심판 앞둬

강원일 특별검사는 수사 결과에 대해 노동계와 김형태 변호사측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을 의식해 “수사 결과가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강특검은 오히려 “내가 왜 역사의 죄인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반발한다. 하지만 강특검은 취임 초기에 자기가 공언한 말을 잊은 듯하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사회 통합을 위해 중간자 입장에서 공정히 수사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라고 말했다.

강특검팀은 A4 용지 70장 분량으로 된 수사 결과 보고서를 12월14∼15일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17일 언론에 공개할 계획이다. 강원일 특검은 이와 함께 김형태 변호사가 도중 하차하는 바람에 공석이 된 특검보 자리에 함승희 변호사를 대통령에게 임명·제청했다. 함변호사가 특검보에 취임하면 공소 유지를 담당한다. 파업 유도 의혹에 대한 심판은 이제 법원으로 넘어갔다. 서울지검이 자체 수사 결과에 따라 진형구씨를 기소하면 한 사건에 대해 다른 결론을 내린 두 검찰 기관이 기소한 사건을 법원이 심판해야 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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