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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개혁 '미드필더' 정책보좌관

노대통령의 ‘개혁 주체’ 발언과 함께 관심을 모은 정부 부처 정책보좌관들은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김은남 기자 ㅣ ken@sisapress.com | 승인 2003.07.03(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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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성향의 장관을 모시는 정책보좌관 ㄱ씨. 그는 이 달에 휴대전화 번호를 바꿀 작정이다. 올 들어서만 세 번째이다. 이유는 하나. 쉴 새 없이 걸려오는 민원성·청탁성 전화로 인해 정상적인 업무가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정책보좌관 ㄴ씨. 세종로 정부 청사에 있는 그의 집무실은 너구리 굴을 방불케 한다. 복도에 있는 흡연 공간을 놓아두고 그가 굳이 좁은 방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유는? 같은 부처 공무원들과 맞부딪치는 일을 되도록 피하기 위해서이다. 본인은 상관없지만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을 껄끄러워하는 상대방에게 굳이 심적인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다고 그는 말한다.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는 본래 장관의 정책 수립을 돕고 민간 전문가의 국정 참여를 활성화한다는 취지로 참여정부가 새로 도입한 제도이다. 이에 따라 6월16일 현재 행정자치부를 비롯한 15개 부처에서 정책보좌관 20명이 일을 하고 있다(국방부·산업자원부·외교통상부·기획예산처 4개 부처는 정책보좌관을 따로 두지 않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1백20일을 맞은 현재, 이들 20명이 새삼 주목되고 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이른바 개혁 주체 논란 때문이다. 물론 정책보좌관이 곧 개혁 주체인 것은 아니다. 개혁을 끌고갈 주체는 어디까지나 일선 공무원이라고 한 정책보좌관은 잘라말했다. 그런데도 정책보좌관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들이 바로 개혁의 홀씨 구실을 할 집단이기 때문이다. 난데없이 주니어 보드를 구성하고, 공식·비공식 개혁팀을 만들라고 닦달한다고 해서 공무원 조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들에게 참여정부의 철학과 구상을 ‘전략적으로’ 퍼뜨려야 한다.

이를 위해 정책보좌관의 대다수는 참여정부와 이른바 코드가 맞는 개혁 성향 인사로 이루어져 있다. 당장 노대통령과 직접 인연을 맺은 사람만 해도 여럿이다. 재정경제부 전재수 정책보좌관은 노대통령의 386 참모 출신으로서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을 거쳤고, 해양수산부 윤후덕 정책보좌관은 노무현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부대변인 출신이다. 김원길 의원(전 보건복지부장관) 보좌관 출신인 윤씨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김의원이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말을 갈아탈 때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에 남아 정치권에 화제를 낳기도 했다.

이밖에 민주당 설 훈 의원 보좌관을 지내다 교육인적자원부 정책보좌관으로 발탁된 김동환씨는 부산대 84학번 운동권 출신으로, 당시 부산 지역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던 노무현 대통령과 어울렸던 인연이 있다. 민주노총 간부 출신인 노동부 정종승 정책보좌관은 지난해 김영대(현 청와대 노동특보) ·박태주(현 노사개혁 태스크포스 팀장) 씨와 함께 노동계의 노무현 후보 지지 모임에서 활동했다.

정책보좌관의 또 다른 한 축은 장관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는 장관들의 경우 자신들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참모를 대거 발탁한 점이 특징적이다. 행자부 정책보좌관인 박동완씨는 김두관 장관이 군수에 출마할 때부터 고락을 같이해 온 1급 책사 겸 정치적 동지로서 ‘남해의 제갈량’으로 불린 인물이다. 문화관광부 이영진씨(시인·전직 언론인)는 이창동 장관의 24년 된 문우(文友)이면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정책연구소장과 민족문학작가회의 정책위원장을 지낸 정책통임을 인정받아 정책보좌관에 천거되었다. 법무부 이병래 정책보좌관은 강금실 장관이 대표로 있었던 법무법인 지평에서 함께 근무한 증권·금융 분야 전문 변호사로, 민변에 속해 있다.
이밖에 민주당 전문위원 출신으로 노무현 후보의 대선 관련 공약을 만드는 데 일조했던 최수만씨(정보통신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연구회 회장을 지낸 권재철씨(과학기술부), 한국여성개발원 연구위원 출신인 김영옥씨(여성부) 등은 이들의 전문성을 눈여겨본 해당 부처 장관들이 발탁한 경우이다.

이들은 평균 39.8세. 나이로나 정치적 성향으로나 386세대로 대부분 뭉뚱그릴 수 있는 이들 정책보좌관을 전면에 배치한 것은 부처 안팎으로부터 역공을 부르는 빌미가 되기도 했다. 지난 4월 말 교육부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실·국장 회의에 정책보좌관이 배석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교육부 일부 관료는 아직 정식 임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좌관이 회의에 배석한 것을 문제 삼았지만, 그들의 속내는 딴 데 있었다. 이들은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 사사건건 자신들을 물고늘어졌던 ‘공적(公敵)’이 자신들의 상급자로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기에 야당과 보수 언론까지 합세했다. 이들이 의심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책보좌관이 행정 부처를 ‘접수’하러 온 점령군 내지는 ‘조선총독부’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같은 의심은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초기 “장관이 부처에 인수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라고 정책보좌관 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증폭되었다.


비록 점령군이라는 표현은 과도하지만 청와대가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관료들의 ‘장관 흔들기’에 맞설 대항마로 정책보좌관 제도를 고집한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관료들의 파워가 세기로 소문난 한 부처의 정책보좌관은 “각오는 하고 왔지만 예상보다 저항이 만만치 않다”라고 말했다. 한 예로 떠들썩한 사회 갈등이 터질 경우 담당 실·국장 선에서 잘못 처리한 문제까지도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장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만다는 것이다. 조만간 철저한 정책 감사를 벌여 실·국장의 잘잘못을 따지겠다는 이 보좌관은 “장관이 설사 낙마한다 해도 끝까지 부처에 남아 싸워야겠다는 오기가 갈수록 생긴다”라고도 했다. 예규에 명시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원칙대로라면 정책보좌관은 장관과 진퇴를 같이하게끔 되어 있다. 또 하나의 의심은, 정책보좌관 제도가 위인설관 내지는 옥상옥(屋上屋) 제도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한나라당은 ‘장관들이 전문성을 무시한 채 측근이나 정치권 인사를 정책보좌관으로 데려다 친위대로 만들고 있다’‘이들이 내년 총선에서 사조직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며 아예 정책보좌관 제도를 폐지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책보좌관에 정치권 인사들이 대거 중용된 데 대해서는 전혀 다른 시각도 있다. 특히 개혁성보다 전문성을 중시해 등용된 장관들이 예상 외로 정치권 출신 정책보좌관을 쓰는 데 대해서는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정책보좌관 집단을 단순하게 두 갈래로 나누어 보기도 한다. 이른바 관료 견제용과 장관 견제용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자면, 개혁 성향 장관의 경우 장관을 보좌하면서 보수적인 관료들을 견제하는 역할이 정책보좌관의 몫이라면 전문성을 우선시해 발탁한 장관의 경우에는 장관이 청와대 코드를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보완 내지 견제하는 것이 이들의 몫이다.

어쨌거나 자신들에 대한 공격이 거듭되자 정책보좌관들은 납작 엎드려 지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나 권력 실세이지, 알고 보면 ‘빛 좋은 개살구’ 신세였다는 것이 이들의 푸념이다. 정책보좌관 ㄱ씨는, 지난 두 달간 한 일이라고는 밤마다 공무원들과 술 마시고 다닌 일밖에 없는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일단은 이들의 경계심을 푸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보좌관은 그간 회의에서 마음놓고 발언한 일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어쩌다 회의 막바지에 조심스럽게 입을 떼면 ‘자기가 무슨 품평관이냐’는 불평이 곧바로 돌아왔다.

물론 처음부터 큰 저항 없이 직원들 사이에 스며든 운 좋은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문화관광부는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문화행정혁신위원회라는 일종의 개혁 주체 기구를 구성했다. 정책보좌관 2명(이영진·조한기)은 일반 직원 4명과 함께 이 기구의 상근 간사를 맡았다. 이 기구는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으로 개혁 조처를 단행했다. 여론조사를 통해 선호 부서와 기피 부서를 가려낸 뒤 개선 방향을 세운다든가, 인사에 다면 평가를 도입하는 방식이 대표적이었다.

다면평가 결과 대기 발령 상태가 된 과장급이 10명에 달했지만 이들의 저항은 곧 무력해졌다. 아래 직원들의 반론이 직장협의회 인터넷 게시판을 뒤덮었기 때문이었다(문화관광부 직원 게시판은 웬만한 민간 사이트 못지않게 활발한 댓글들이 오간다).

이렇게 상하 의사 소통이 비교적 활발한 부처에서는 이른바 개혁 주체 논란을 놓고서도 별 잡음이 없다. “장관이나 우리는 계기만 제공했을 뿐, 일단 물꼬가 터지니까 아이디어·해결책 모두가 아래로부터 나왔다. 이것이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개혁 주체 아니겠나”라고 이영진 정책보좌관은 말했다.

그러나 공무원들과의 직·간접 마찰로 가뜩이나 고전하던 부처의 정책보좌관들은 청와대식 밀어붙이기에 불만이 많다. 개중에는 청와대가 장관들의 조직 장악력을 불신해 성급하게 직접 나선 것이 아니냐며 불쾌함을 표시하는 이도 있다. 지난 5월부터 실무급 과장들과 비공식 스터디 모임을 운영해 왔다는 한 정책보좌관은 이번 파문 때문에 이들이 모임에 소극적이 될 것을 우려했다. “기본적으로 조직에서 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공무원들의 속성이다. 그런데 주니어 보드니 뭐니 하면서 뭔가 좀 해보려는 공무원들에게 ‘너는 우리편’이라는 딱지를 붙여 버리면 앞으로 누가 나서려 하겠느냐”라고 그는 반문했다.

과거 행정 부처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한 정책보좌관은 “신이 나면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 빼고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게 한국의 공무원이다. 그렇지만 일단 뒷짐을 져 버리면 이런저런 사업이 불가능한 이유 100가지를 달아서라도 복지부동하는 것 또한 공무원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자면, 부처 별로 개혁 주체를 세워 달라는 청와대의 주문은 공무원들의 조직 보호 본능을 자극해 뒷짐을 지게 만든 탁상공론식 발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이 “개혁 그 자체가 공무원들의 직무가 돼야 한다”(중앙 부처 실·국장급 공직자 초청 간담회)라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나선 이상 이들도 숨 고르기만 하고 있지는 않을 태세이다. 15개 부처 정책보좌관들은 지난 6월14일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첫 상견례를 갖고 조만간 공식 모임을 결성하기로 합의했다. 공직 사회에 또 한 차례 돌풍이 불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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