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친위대 ‘정치 쿠데타’ 일으킨다
  • 부산·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3.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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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래 변호사 등 ‘부산 별동대’, 신당 창당 박차… ‘인적 청산→정계 개편→노무현이즘 실천’이 목표
"부산은 내가 지킬끼다. 그러니 문변(문재인 변호사)은 서울 올라가 대통령의 진정한 참모가 돼 주소.” 조성래 변호사의 이 한마디로 두 사람의 역할 분담은 완성되었다. 대선이 끝난 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다. 조성래와 문재인. 널리 알려진 대로 두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 인맥을 대표하는 핵심 인물이다. 지난 대선 기간에 두 사람은 각각 부산선거대책본부 공동위원장(조성래)과 상임본부장(문재인)을 맡아 몸이 부서져라 부산 바닥을 훑고 다녔다. 선거 특등공신. 그러나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화려하게 중앙 요직에 진출한 문재인 변호사와 달리 조성래 변호사는 변방에 남기를 자원했다. 그 뒤 기회 있을 때마다 그는 말했다. “부산에서 할 일이 따로 있다”라고. 그로부터 4개월. 급기야 그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는 부산에 함께 남은 이른바 386 삼총사(정윤재·최인호·송인배) 등 ‘노무현 핵심 친위대’와 함께 지난 5월9일 부산정치개혁추진위원회(부산정개추)라는 기구를 발족했다. 이 기구를 통해 부산 지역의 개혁 세력을 결집하고 궁극적으로는 신당 창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 그의 다짐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부산정개추가 민주당과의 결별을 공식 선언했다는 사실이다. 따지자면 이 기구에 참여한 인사 중 상당수는 민주당과 깊숙한 관계를 맺고 있다. 조성래 위원장부터가 민주당 개혁특위 및 조직강화특위 위원이고, 최인호 대변인은 민주당 해운대·기장갑 지구당위원장이다. 정당개혁위원회·정책위원회·2030청년위원회를 각각 책임진 노재철(동래구 지구당위원장)·정윤재(사상구 지구당위원장)·조경태(사하 을 지구당위원장)씨 또한 부산 민주당의 핵심 간부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발족 선언문에서 ‘민주당에 대한 마지막 애정을 여기서 끝내려 한다’는 말로, 자신들이 이제부터 독자 행보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했다. 단 이들은 민주당을 탈당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곧장 관계를 청산하는 절차를 밟지는 않았다. 대신 명분을 내걸고 냉각기에 들어갔다. 이들이 내건 핵심 명분은 민주당 해체와 인적 청산.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정식으로 갈라서는 순서를 밟겠다는 것이다. 조성래 위원장은 5월 말을 그 구체적인 기한으로 못박았다(20쪽 인터뷰 기사 참조).

문제는 인적 청산이다. 민주당을 발전적으로 해체하자는 데는 이른바 신주류건 구주류건, 중앙이건 지방이건 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인적 청산 문제에 이르면 다르다. 한화갑 전 대표는 이미 ‘쿠데타적 발상’이라는 말로 인적청산론에 쐐기를 박았고, 여기에 상당수 의원들이 동조하면서 신기남·정동영·천정배 등 당내 강경 개혁파 의원들은 전략상 일보 후퇴를 감수해야 했다. 이른바 외연 확대를 위해서였다.

이에 비해 부산정개추는 타협 없는 인적 청산을 내세우고 있다. 9일 발족식 직후 열린 ‘개혁신당 창당을 위한 워크숍’에 토론자로 참석한 최인호 대변인은 인적 청산을 통한 세대 교체야말로 신당 논의의 핵심 중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민주당이 반드시 청산하고 가야 할 인물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대표 경선 때 돈 선거를 주도하고, 수구냉전 논리를 가진 박 아무개 중진’과 ‘대선 당시 후단협을 배후 조종하고 자신의 손으로 뽑은 국민 후보를 부정한 정 아무개 중진’이 그가 꼽은 청산 대상이었다. 머리 글자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누가 보아도 박상천 최고위원과 정균환 총무를 겨냥한 발언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단 신·구 주류를 어떻게든 한 그릇에 비벼 보려 애쓰는 중앙당과 달리 부산에서는 이미 양자가 갈라서는 절차를 밟았기 때문이다. 신당 추진 기구를 당내에 두느냐 당 밖에 두느냐 하는 논란도 부산에서는 종식되었다. 대선 이후 윤원호 민주당 부산시지부장 사퇴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구주류와 심각하게 갈등해온 신주류측은 당 밖에 민주당 꼬리표를 뗀 신당 추진 기구(부산정개추)를 만드는 것으로, 결국 딴살림을 공식화했다.

이 기구가 발족하던 날 부산 구주류를 대표하는 정오규 민주당 부산시지부 수석부지부장은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기자실에 나타나 부산정개추를 격렬하게 비난했다. “지난 4개월간 민주당 이름으로 후원회를 열고 지역 행사를 벌이는 등 온갖 단물을 다 빼먹은 지구당위원장들이 지금 와서 당내 논의 절차를 무시하고 밖에서 신당 창당을 말하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다”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신주류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다는 태도이다. 이들이 ‘막 나가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사실 부산 민심 때문이다. 민주당 간판을 갖고는 내년 총선에서 단 한 석도 건지기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현실적인 판단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뒤 상황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청와대 및 정부 요직에 부산 출신 인사가 대거 중용되고 선물거래소 이관·항만공사 설립·고속철 조기 완성 등 지역 현안에 대한 기대 심리가 높아지면서 이 지역의 민주당 지지율은 크게 올랐다. 지난 5월7∼8일 <중앙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금 총선을 치를 경우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는 부산·경남 지역 응답자는 41.8%로 한나라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자(32.1%)보다 무려 10% 포인트 가까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같은 지지율이 내년 총선에서 득표로 이어질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큰코다친다는 것이 지역 중론이다. 이에 대해서는 구주류도 해석을 같이한다. 정오규 수석부지부장에 따르면, 부산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곧 노무현 지지율이다. 우리 지역 출신 대통령이 잘해 주었으면 하는 기대감과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는 모종의 사명감이 지지율의 근간을 이룬다.

이것이 내년 총선에서 표로 이어지려면, 민주당이 갖고 있는 호남당 이미지를 벗는 것이 필수이다. 부산 정치권에 밝은 청와대의 한 인사는 ‘부산 정서의 핵심은 반 DJ’라는 말로 상황을 요약했다. 사실이 그렇다. 기껏 민주당 지지율이 올라가다가도 노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청와대 만찬에 초청한다거나, 민주당 신당 논의에 DJ 측근 인사들이 끼어드는 기미가 보이면 지지율이 곧바로 꺾이는 것이 지역 현실이라고 부산정개추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실제로 부산정개추가 출범한 뒤 보수적인 지역민들로부터는 벌써부터 “DJ 좋은 일 시켜줄라꼬 신당 만드나”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의 ‘이인제 학습 효과’를 감안하면 이런 반응은 신당 창당에 성가신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1987년 대선 당시 부산 지역이 이회창 후보 지지와 이인제 후보 지지로 갈렸다가 결국에는 DJ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주고 말았다는 것이 이른바 이인제 학습 효과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당이 이른바 통합신당 쪽으로 방향을 정리하게 되면 부산 신주류에게는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어진다. 이들에게 통합신당은 ‘도로 민주당’일 뿐이며, 이는 곧 정치적 무덤이다. 그 무덤 속으로 함께 걸어들어가지는 않겠다고 배수진을 친 이들은, 부산 지역 개혁 세력을 결집한 개혁신당을 띄워 내년 총선에서 적어도 10석 이상을 확보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내걸었다.

내년 총선에서 이들이 과연 얼마만한 파괴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이다(위 상자 기사 참조). 지역 신문의 한 기자는, 문재인 수석 정도의 거물급이 (총선 과정에) 합류한다면 모를까, 보수적인 지역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고 부산정개추의 현실적인 정치 역량을 평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자의든 타의든 이들로 인해 부산 지역이 정계 개편의 중심추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부산에서 독자적인 신당 창당 기구가 맨 먼저 출범한 배경에 노심(盧心)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가세하면서 논란은 더 증폭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일화 하나. 지난 5월4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석가탄신일 봉축 대법회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조성래 변호사가 대통령의 축하 메시지를 대독하겠다고 연단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파격’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뒤집어졌다’. 일개 정치 단체 대표가 현역 의원들을 제치고 연단에 먼저 선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거니와, 청와대 정무수석이나 관할 단체장이 대통령 축사를 대독하는 것이 관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조변호사에게 대독을 맡겼고, 이는 곧 부산정개추에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것으로 비치기에 충분했다.

물론 ‘특정 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공식 반응이지만,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최악의 경우 다당 체제(개혁신당·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로 내년 총선을 치를 구상을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포석으로 부산정개추를 직·간접 지원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자신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노무현이즘’을 실천할 전국 정당 건설임을 부산정개추는 굳이 숨기려 들지 않고 있다. 대구·경남·광주·대전·전북에서 최근 정치 개혁 결사체 형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진용을 갖추어 가고 있는 ‘친노 연합군’의 전위대로서, 이들이 과연 신당의 진로를 어떻게 뚫어 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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