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안맞는 DJ '지식인 경영
  • 이숙이 기자 (sookyi@sisapress.com)
  • 승인 200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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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건국위 실패 등으로 이데올로그 수혈 차질…포용력 부족이 원인
지식인은 DJ를 싫어한다? 요즘 신문 칼럼을 꼼꼼히 읽어 본 사람이라면 대개 이런 의문을 가질 법도 하다. 신문사 내부 칼럼은 물론이고 외부 필자가 쓴 글도 DJ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신문 칼럼의 70~80% 정도가 DJ 정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지식인 집단의 반 DJ 여론몰이 때문에 가뜩이나 취약한 DJ 정권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라고 걱정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정권 재창출은커녕 임기 후반의 정권 유지조차 힘들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DJ는 왜 지식인 집단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한 것일까? DJ의 이데올로그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일각에서는 지식인도 결국 지역주의로 나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언론이 반DJ론자에게만 지면을 내주기 때문에 편향성이 커진다는 목소리도 높다. DJ 측근들은 ‘말없는 다수가 DJ편’이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청와대 출신 한 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DJ 정권의 총체적인 지식인 관리 실패론’이다. 그는 우선 제2건국위원회의 무력화가 DJ 정권이 지식인 그룹을 제대로 포용하지 못한 핵심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YS 정권이 세계화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정권에 우호적인 지식인을 많이 확보했던 것처럼, ‘제2 건국’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DJ 정권은 제2건국위원회를 통해 친 DJ 인사의 외연을 넓히려고 했다. 하지만 DJ가 이 위원회를 전국 단위의 시민운동 조직으로 확대하자고 제안하면서 성격이 애매해졌고,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한 야당과 시민단체가 집중 공격하는 바람에 본래 의도가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이다.

DJ의 지나치게 경직된 자문 그룹 관리 방식도 지식인을 포용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꼽힌다. 사실 제2건국위말고도 청와대 직속 자문기구는 8개나 된다. 자문위원만 2백 명이 넘는다. 특히 ‘대통령과 지식인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하는 것’이 주요 기능으로 명시되어 있는 정책기획위원회 위원만 41명이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내놓고 DJ 정권을 대변하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민주당 강연에서 ‘차기 주자 조기 가시화론’을 펼친 임혁백 고려대 교수 정도가 그나마 DJ 정권에 우호적인 편이다.

이런 DJ 자문그룹의 소극성에 대해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친밀성이 부족한 탓이라고 말했다. 사조직에 의존했던 YS를 반면교사로 보는 탓인지 DJ는 위원들과의 개별 만남을 상당히 꺼리는 편이며, 보고도 공식 절차를 통해서만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수들의 참여도 형식적일 수밖에 없고, DJ 정권을 적극 방어해야 할 상황이 생겼을 때 외면해 버린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지적이다. 그의 말마따나 올해 청와대 국정 감사 자료에 따르면, 정책기획위원회의 대통령 보고 건수는 YS 정권에 비해 현저히 줄었고, 특히 직접 보고 건수는 1998년과 1999년 각각 두 번밖에 안 된다.


연구소 설립은 최고위원들 외면해 지지부진

정권 교체 전부터 DJ를 도운 자문교수단, 이른바 DJ 이데올로그들은 집권 이후 이래저래 활동에 제약이 생겼다. 청와대나 국회같이 공직에 나선 교수들은 객관적 이론가로서의 빛깔이 바랬다. 김태동 전 정책기획수석·김유배 복지노동수석·김성재 정책기획수석·김효석 민주당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 정부의 대표 이론가로 꼽히는 한상진 정신문화연구원장 역시 직책 때문에 목소리를 낼 형편이 못된다. 정신문화연구원을 정권 홍보에 사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여론의 눈총에 “통치 이데올로기 제공이나 정권 홍보는 1%도 할 생각이 없다”라고 공개 선언했기 때문이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나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적극적인 DJ 옹호론자였다가 태도를 바꾼 경우. 초대 정책기획위원장을 하다 <조선일보>와의 사상 논쟁으로 불명예 하차한 최교수는 얼마 전 DJ가 남북 관계 개선 속도를 늦추고 내치에 치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강교수 역시 틈 날 때마다 DJ 정권의 실정을 꼬집고 있다.

이런저런 연유로 요즘 가장 바쁜 DJ의 이데올로그는 황태연 동국대 교수다. 그는 지난 8월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가 민주당 전당대회를 비판했을 때 곧바로 반론을 제기했고, YS의 정치 재개 움직임을 계기로 몇몇 언론이 3김 청산론을 펴자 “이회창 총재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려는 수작이다”라고 통박하기도 했다.

친DJ 그룹을 넓히는 데는 실패하고 기존 DJ 이데올로그는 발이 묶인 안팎 곱사등이 신세. 바로 이것이 여권 핵심부가 진단한 ‘DJ 정권에 우호적인 지식인 그룹이 미약한 이유’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권 핵심부는 당 부설 연구소 설립을 서두르고 있다. 지식인 세를 넓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모으고, 반DJ 논객들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방어할 두뇌 집단을 하루빨리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연구소 설립안을 짠 민주당의 한 고위 간부는, 최고위원 한 사람이 연구소를 전담해 추진하도록 한다는 것이 당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구소 설립도 그리 쉽게 추진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당장 연구소를 맡겠다는 최고위원이 없다. 연구소장으로 나설 경우 차기 주자 대열에서 자연스레 낙오하는 것 아니냐는 심리가 최고위원들을 망설이게 만들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구소가 생긴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연구소의 의견을 받아들이겠다는 DJ의 열린 마음이 없이는 말짱 헛것이라는 얘기다.

“DJ는 위기라고 느낄 때 비로소 겸손해지고 마음을 연다. 지금이 바로 위기라는 것을 DJ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한 DJ 핵심 참모의 얘기는 그래서 더욱 큰 울림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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