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덕 창당 선언‘작심 1주일’
  • 金鍾民 기자 ()
  • 승인 2000.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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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연합’ 창당 선언하고 한나라당 입당…“정치 불신 부채질”
지난 1월27일 오전 한나라당 당사 3층 기자실. 홍사덕 의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긴 말이 필요 없다. 힘이 부족했다. 야당이 분열되면 집권 여당에 유리한 결과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기자들의 질문은 반쯤 항의조였다. “1주일 전에 새 정당 당사를 개방해 기자회견을 한 것은 몸값을 올리기 위한 것 아니냐.” 질문이 아니라 아예 훈계를 하는 기자도 있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에 가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 도대체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던 사람이 이래서야 되겠느냐.”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며 그래서야”

홍의원은 나름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여론의 눈길은 무척 따갑다. 홍의원이 한나라당에 입당한 직후 ‘무지개 연합’의 인터넷 사이트에 네티즌들의 비판 공세가 쏟아지자 결국 이 사이트는 폐쇄되고 말았다. 네티즌들은 이번에는 홍의원의 개인 사이트로 몰려가 사흘 만에 4백여 건의 글을 올리며 항의를 계속했다.

홍사덕·장기표 두 사람이 지역주의와 1인 보스 체제 타파를 내걸고 새 정당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해 8월.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처음부터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었다. 장기표씨는 젊은 신진 인사를 중심으로 당을 만들자는 입장이었던 반면 홍의원은 현역 의원을 비롯해 지명도가 있는 인사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초기에 논의를 주도한 것은 홍의원이었다. 홍의원은 수도권의 김덕룡 의원(한나라당), 충청권의 강창희 의원(자민련), 영남권의 박근혜 의원(한나라당), 호남권의 강현욱 의원(무소속) 등 지역 대표성이 있는 여야 의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정치권 밖의 인물로는 시사 평론가 정범구씨와 오세훈·이정우 변호사에게 공을 들였다. 오래 전부터 가까운 사이였던 이수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에게는 개혁 신당의 총재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홍의원의 노력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홍의원이 군소 정당 수준을 뛰어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에 대해 접촉 대상자 대부분이 확신하지 못한 것이 주요인이었다. 해를 넘기면서도 창당 작업이 여의치 않았고,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장씨의 주장에 따라 일단 여의도에 당사를 마련해 1월19일 무지개 연합이라는 당명을 발표하고 창당을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이미 내부적으로는 창당이 어렵겠다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었다. 홍의원은 독자 신당을 추진하는 다른 움직임들과 합세하지 않고는 현실적으로 창당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창당 선언 이후 마지막 시도를 했다. 이수성 부의장을 총재로 홍·장 신당과 김용환·허화평 씨가 주도하는 한국신당 등을 하나로 묶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하여 신당 작업을 하고 있는 정호용씨와의 연대 문제가 제기되자 이 작업 역시 며칠 후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홍의원은 신당을 창당하려던 뜻을 접고 한나라당에 입당하기로 결심했고, 김덕룡 한나라당 부총재 등과 함께 1월26일 밤늦게까지 장씨를 설득했다. 그러나 장씨는 응하지 않았고, 홍의원만 다음날인 27일 오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홍의원이 한나라당으로부터 입당 교섭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부터였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핵심 측근인 윤여준 여의도연구소장이 홍의원을 찾아가 입당을 제의했다. 당시만 해도 홍의원은 한나라당이 지역 정당으로 가고 있어 들어가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윤소장은 그 후에도 홍의원을 입당시키려고 꾸준히 공을 들여 왔고, 최근에는 김덕룡 부총재 등 홍의원과 가까운 인사들이 홍의원 끌어들이기에 총동원되었다. 이번 총선에서 홍의원은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을 예정이며, 총선 결과에 따라 2002년에 있을 서울시장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큰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실리라는 면에서 보면 홍의원에게는 ‘기회의 땅’이 펼쳐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정치권 밖에서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

그러나 홍의원이 치러야 할 대가도 만만치 않다. 우선 홍의원은 스스로 지역 정당이라고 규정했던 여야 3당 가운데 하나인 한나라당에 입당함으로써 ‘12년째 지역주의에 타협하지 않은 정치인’이라는 상표를 더 내세우기가 어렵게 되었다. 홍의원은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김대중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를 위해 제1 야당에 입당했다”라고 밝혔다. 지역주의 타파라는 12년째 소신은 슬그머니 없어지고 집권당 중간 평가라는 새로운 상품을 들고 나온 것이다. 입당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이 홍의원의 지역주의 타파라는 주장에 부합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홍의원은 분명하게 답변하지 못했다.

홍의원의 무책임한 행보도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홍의원은 지난 1월19일 개혁 신당을 창당한다고 공식 선언한 지 1주일 만에 느닷없이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국민에게 창당을 약속한 정치인이 창당 문제에 대한 아무런 공식 해명이나 매듭 없이 거대 정당의 구심력에 빨려드는 모습을 보인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행동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홍의원으로부터 개혁 신당을 함께 하자는 제의를 받았던 한 인사는 “그렇게 무책임한 자세로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자고 했는지 모르겠다”라고 비판했다. 결국 홍의원의 이번 행보는 왜 정치권 밖에서 정치 개혁을 위해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는가를 증명한 셈이다. 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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