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보선에 30명이 출사표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7.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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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 보선 ‘국민회의 후보’ 놓고 30여 명 출사표… 전 의원·당료·교수·변호사 등 다양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요즘 ‘작은’ 고민에 빠져 있다. 대선도 대선이지만, 대선과 같은 날 치르는 광주 동구 보궐 선거에 공천자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호남 정치 1번지인 광주 동구는 ‘공천=당선’이라는 이 지역 특성상 많은 사람이 탐내는 곳이다. 특히 당 중진들이 저마다 다른 후보를 밀고, DJ와 가장 가까운 측근도 공천을 받기 위해 직접 뛰고 있어, 자칫 공천 잡음이 생기면 당내 분란으로 확대될 우려도 있다.

이런 걱정 때문에 국민회의 일각에서는 한때 공천하지 말자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DJ는 공천해야 하는 세 가지 이유로 △자유 경쟁에 맡길 경우 주요 당직자들이 대선보다는 자기 선거에 온 정신을 쏟는다 △국민회의측 후보가 난립할 경우 다른 당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수 있다 △공당이 공천을 하지 않으면 무책임하다는 것을 들어 공천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국민회의의 공천 일정이 잡히자 그동안 조심스레 움직이던 공천 희망자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당내파 중에서는 이영일·황주홍이 선두

현재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는 인사만 해도 자그마치 30명 선. 이들은 크게 당내파와 외부 정치인, 그리고 전문가 그룹으로 나뉜다. 당내에서 출사표를 던진 인사로는 이영일·박지원·박태영·유인학 전 의원과 황주홍 기획실장, 나상기 농어민특위 부위원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당에 대한 공헌도나 DJ에 대한 충성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이들 중에서 지역 연고로 볼 때 유리한 고지에 올라 있는 인사는 이영일 전 의원과 황주홍 실장이다. 전남 함평 출신인 이씨는 11대에는 민정당 전국구, 12대 때는 광주 서구에서 국회의원을 지냈고, 95년 6·27 선거를 앞두고는 민주당 광주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해 2위에 올랐었다. 국회 문공위원장과 민자당 광주시지부장을 지낸 경력으로 따져도 4선인 신기하 전 의원의 대를 이을 만하다. 게다가 이씨는 이종찬 부총재가 확실하게 밀고 있다. 박태준 의원이 DJT 연합에 가세한 것도 이씨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다는 전력이 이 지역 정서에 정면으로 배치한다는 점이 최대 걸림돌이다. 이씨측은 이미 광주시장 선거를 치를 때 검증이 되었다고 하지만, 공천 경쟁자들은 ‘광주 심장부에 5공 인사를 데려다 놓는다면 5·18 관련 단체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광주에서 초·중·고를 나온 황실장은 전문성과 참신성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미국 미주리 대학 정치학 박사로 아태재단에서 정치 실습을 시작한 그는, 광주 발전을 위해서는 자기처럼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준비된 후보’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DJ의 자문교수단인 ‘새시대 포럼’의 총무이기도 한 그는 동교동 일부 가신의 지원을 받고 있다. 당내 연세대 동문들도 후원 그룹이다.

당 외부의 정치인 가운데 공천 대상자로 오르내리는 인사는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소속 박석무·홍기훈 전 의원과 자민련 지대섭 의원이다. 박·홍 전 의원은 통추 인사들이 대거 국민회의에 합류하게 될 경우 가장 유력한 공천 대상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통추측은 10월 말께 DJ측에 합류하는 조건 가운데 하나로 광주 동구 공천을 요구했고, DJ는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자칫 정치 흥정으로 비칠 수 있으나, 개혁 성향을 지닌 인사를 시급하게 보충해야 하는 DJ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양보할 가능성도 있다. 광주 출신으로 자민련 전국구인 지의원은 본인이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지만, 이미 DJP 단일화가 타결된데다 현직 의원이라는 점 때문에 공천되기 힘들리라는 것이 주변의 관측이다.

광주 지역의 학계·법조계·시민단체에서는 ‘낙하산 공천 반대’를 외치며 10여 명이 각개 약진하고 있다. 교수 그룹에서는 조선대 김기삼 총장과 김홍명 교수, 전남대 명노근 교수, 서강전문대 김정수 교수가 정치 입문을 꿈꾸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열성 주자는 김정수 교수. 신기하 전 의원의 처남이기도 한 그는 유가족 대표라는 특수 신분과 동구 지구당 당원들과의 두터운 교분을 내세워 중앙당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광주지구 청년회의소(JC)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특히 그동안 밀접하게 교류해온 부산·경남 JC 회원들로부터 DJ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PK 공략에 공들여 그 성과를 공천까지 연결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런 김교수의 행보에 대해 ‘세습 정치를 하겠다는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김교수측은 김교수야말로 오히려 잡음 없이 선거를 치를 수 있는 가장 무난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DJ, 광주 지역 의원들에게 공천권 넘길 수도

법조계에서는 광주 고검장을 지낸 김정길 변호사와 광주지검 차장검사 출신인 이근우 변호사, 고승덕·노인수 변호사 등이 꼽힌다. 법조계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그동안 DJ나 가신 그룹이 법조인을 꽤 선호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김홍일 의원이 각별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변호사가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박태준 의원 사위인 고변호사는 본인은 적극적이지만 박의원이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시민단체에서는 15대 총선 때 공천 신청을 했던 김경천 YWCA 총무와 정동년 전 5·18 민주화운동단체연합 의장 등이 거론된다. 김총무의 경우 대선에서 여성표를 얻기 위해 DJ가 전략적으로 공천할 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특히 DJ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아라 전 YWCA 총무와 이희호 여사가 합작한다면 전세는 한층 유리해진다. 지난 10월 말 DJ가 광주를 방문했을 때 조씨 등 여성계 인사들이 김총무의 홍보물까지 내보이며 DJ에게 은근히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밖에도 공천 명단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사는 많다. 하지만 아직 DJ는 어떤 원칙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이 지역 여론을 감안하겠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던져놓았을 뿐이다. DJ 측근들은 DJ가 전주시장 공천 때처럼 광주 지역 의원들에게 공천권을 일임할 가능성이 많다고 귀띔했다. 그것은 잡음을 피하면서 자신이 점찍어 둔 인사를 공천할 수 있는 우회 전략일 수도 있다. 정치 9단인 DJ가 어떤 묘수를 둘지 초미의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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