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메뉴열기

시사저널

북한 '되치기'에 당한 안기부

“북측, 의도적으로 방치…‘북풍 정국’으로 안기부 타격 입을 것까지 계산”

李敎觀 기자 ㅣ 승인 1998.04.02(Thu) 00:00:00

0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밴드 link

북풍 정국을 초래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대북 소식통들은 안기부가 북한에 철저하게 농락당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들은 안기부가 지난 대선 때 북한이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북풍 공작을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다가 안기부는 투표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야 북한이 김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북풍 공작을 도와주지 않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이 이 소식통들의 분석이다.

이들의 분석은 한마디로 안기부가 북한의 속셈을 정확하게 간파하지 못한 채 북풍 공작을 추진했다가 북한에 철저하게 당한 것이 북풍 정국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는 지난 2월15일, ‘오익제 편지’사건과 ‘재미 교포 윤홍준씨의 김대중 후보 비방 기자 회견’ 등 안기부의 북풍 공작에 대한 검찰 수사로 촉발된 북풍 정국이, 이대성 전 안기부 해외조사실장의 북풍 공작 관련 기밀 문건이 공개되면서 권영해 전 안기부장 등 대선 당시 안기부 수뇌부에 대한 전면적인 사법 처리로 확산되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안기부는 왜 북한이 김후보 당선을 원하지 않는다고 믿었을까. 앞서의 소식통들은, 안기부가 그렇게 믿은 까닭은 무엇보다도 북한 당국자들이 ‘남북 관계를 잘 아는 김대중씨가 당선되면 우리로서는 부담스럽다’는 메시지를 ‘흑금성’같은 안기부 대북 공작원들과 대북 사업가들을 통해 전달해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 대북 사업가는, 베이징에서 사업 관계로 북한 당국자들을 만났더니 자기들은 김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에 이를 안기부에 전했다고 밝혔다.

“안기부 대북 채널은 훼손하지 말아야”

사실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공작원이나 대북 사업가 들의 이같은 정보가 아니더라도 북한 당국이 김후보를 싫어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수십년간 남한에 군사적 긴장을 유발함으로써 내부 통합을 유지해 온 북한 당국으로서는 김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그렇게 하기가 어려우리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그 근거로, 북한 당국이 김후보를 오랫동안 주민들에게 민주화 투사로 치켜세워 왔다는 점을 들었다.

그럼에도 이것만으로는 안기부가 농락당한 배경이 명확해지지 않는다. 앞서의 소식통은, 무엇보다도 북한 당국이 지난해 9월부터 김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파악했으면서도 이를 대북 사업가들을 통해 안기부에 전하지 않고 안기부가 무작정 북풍 공작을 시도하게끔 내버려 둔 것이 가장 결정적인 배경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는 북한 당국으로서는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어 북풍 공작이 밝혀지면 북한 당국의 경계 대상인 안기부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바로 이 점에서 북풍 정국의 승자는 북한 당국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북한의 처지에서 남파 간첩들을 때려잡는 안기부가 북풍 정국으로 난도질당하는 것에 고소해 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 있다. 사실 많은 대북 사업가들은 자기들이 만났던 북한 당국자 대부분이 안기부라는 말만 나와도 무서워했다고 증언한다. 그 이유는 북한 당국자들이 안기부를 북한을 전복시킬 음모를 꾸미는 기관이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최후의 승자는 미국이나 일본인 것 같다. 이는 남북간 대화에 기여해 온 정치 공작과 관련이 없는 안기부의 여러 대북 채널들이 북풍 정국으로 인해 궤멸되고 있는 현실이 남북 관계가 개선되기보다는 한반도를 자국의 이해에 따라 주무르려는 미국과 일본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기부의 정치 개입은 단죄해야 마땅하지만,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도 북풍 정국이 더 이상 안기부의 대북 채널들을 와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체댓글0

0 /150
  • 최신글
  • 공감 순
  • 비공감 순
더보기

TOP STORIES

경제 2018.11.21 Wed
르노삼성, 지지자 곤 회장 체포로 닛산과 무한경쟁 내몰려
국제 2018.11.21 Wed
영국, EU 탈퇴로 가는 길 ‘산 넘어 산’
Culture > 연재 > LIFE > 박승준의 진짜 중국 이야기 2018.11.21 Wed
마오쩌둥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공식 평가
정치 2018.11.21 Wed
[르포] 박정희 탄신제·새마을운동테마공원에 엇갈린 구미 여론
정치 2018.11.21 Wed
서울 박정희 기념·도서관 “지금도 공사 중!”
사회 > 지역 > 충청 2018.11.21 Wed
또 화재…시한폭탄 같은 원자력연구원 사건 사고들
한반도 > 연재 > 이영종의 평양인사이트 2018.11.21 Wed
비행기로 평양과 백두산 가는 날 오나
OPINION 2018.11.21 Wed
[시론] 예술의 자율성은 요원한 것인가?
사회 2018.11.21 수
이재현 인천 서구청장 “주민참여예산 200억원 추진“
경제 > LIFE > Culture 2018.11.21 수
몸집 키우는 넷플릭스, 국내 콘텐츠 시장에 독 될까
사회 > 사회 > 포토뉴스 > 포토뉴스 > Culture > Culture 2018.11.20 화
[동영상뉴스] 새 수목드라마 대전 '붉은달 푸른해 VS 황후의 품격'
경제 2018.11.20 화
카카오가 'P2P' 선보인 날, 정부는 '주의보' 발령
연재 > 김남규의 직장종합영어 2018.11.20 화
[김남규의 직장종합영어] 영국서 CEO와 매니징 디렉터는 같은 뜻
정치 2018.11.20 화
美 정치의 금기 넘보는 한인들의 도전(上)
정치 2018.11.20 화
美 정치의 금기 넘보는 한인들의 도전(下)
정치 2018.11.20 화
“당선 아니었어?” 한국과 다른 미국 선거 제도
연재 >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2018.11.20 화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문학은 여혐해도 되나?
사회 2018.11.20 화
“한 공장에 관할지자체가 3곳?”…율촌1산단 경계조정 20년째 제자리
LIFE > Sports 2018.11.20 화
‘새 야구장 명칭’ 놓고 또 갈라진 창원과 마산
사회 2018.11.20 화
[대입제도 불신①] “학종은 괴물”…숙명여고 사태 후 확산되는 수능 확대 요구(上)
리스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