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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중, DJ 정권에서도 대북 창구로 활약”

남북 차관급 비료 회담·‘옥수수 박사’ 방북 주선…권영해, DJ·이인제 후보 진영에 흑금성·윤홍준 침투시켜 ‘협박 카드’ 마련

吳民秀·李敎觀 기자 ㅣ 승인 1998.10.22(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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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판문점 총격 요청 의혹 사건으로 구속된 이른바 ‘총풍 3인’의 핵심 인물 장석중이 김대중 정부에서도 막후 대북 채널로 활약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북한 정보에 밝은 한 소식통은 지난 4월 베이징에서 열린 남북한 차관급 비료 회담을 주선하는 과정에서 장석중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비료 회담을 위해 막후에서 움직인 인물은 북한에서는 아태평화위원회의 대남 공작 총책 강덕순이었고 한국에서는 안기부의 대북 에이전트 장석중이었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증언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이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다. 대선 때 DJ를 낙선시키려고 북한에 총격을 요청한 혐의를 받는 인물이, 엉뚱하게 DJ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줄곧 대북 막후 채널로 활약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김대중 정부의 첫 남북 고위급 회담을 주선하는 막중한 대북 사업에서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베이징 비료 회담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북측과 가진 첫 남북 고위급 회담이다. 이때 한국측에서는 정세현 통일부 차관이, 북한측에서는 전금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단장으로 참여했다. 이 회담은 한국 정부가 비료 지원 조건으로 내건 이산 가족 상봉 문제를 북측이 거부함으로써 결렬되었다.

장석중의 북한 접촉 창구는 강덕순·리철운

지금까지 베이징 비료 회담 개최는 ‘옥수수 박사’ 김순권 교수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도 북한이 지난 1월 말∼2월 초에 방북했던 김박사를 통해 비료 20만t을 지원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이런 설명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김박사를 북의 실력자(강덕순)에게 소개해 그의 방북을 성사시킨 인물이 바로 장석중이었고(장은 올해 1월과 5월 김박사 방북 때 동행했다), 김박사의 슈퍼 옥수수 북한 재배 문제를 남북 당국의 막후에서 ‘조율’한 인물 또한 장석중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장씨의 막후 활약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의 대북 접촉 채널이 바로 베이징의 아태평화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강덕순­리철운이라는 북한의 ‘막강한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장석중은 안기부의 지휘를 받는 대북 공작원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정체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앞의 소식통에 따르면, 비료 회담을 주선하는 과정에서 장석중과 강덕순이, 각각 임동원 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전금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사이에서 메신저 구실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장석중으로부터 비료가 필요하다는 북측 메시지를 전해 들은 임수석은, 조건을 명시하지 않은 채 ‘비료를 지원할 수 있다’는 뜻을 팩스로 강덕순에게 보냈고, 이는 즉각 전금철에게 전해졌다. 4월 비료 회담은 이렇게 성사되었다.

그러나 막상 회담이 열리자 남북 양측은 평행선을 그었다. 즉 통일부가 당초 임수석의 팩스 내용에 들어 있지 않은 이산 가족 상봉 문제를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북측이 팩스 내용을 근거로 청와대가 비료를 보내 주겠다고 해놓고 이산 가족 상봉이라는 조건을 들고나온 이유가 뭐냐고 통일부를 향해 격렬한 비난을 퍼부은 데에는 이런 전후 사정이 깔려 있다. 즉 왜 청와대와 통일부의 얘기가 다르냐는 것이 당시 회담을 결렬시킨 북측의 논리였다. 이밖에도 장석중은 현정부에서 강덕순 채널을 통해 남북 교류 협력과 관련한 또 다른 중대 사업을 벌였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번 ‘총풍 사건’의 핵심은 지난해 12월10일 김박사 방북 건을 계기로 베이징을 방문한 장석중과 한성기가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 리철운 참사에게 판문점 총격을 요청했느냐는 점이다. 만약 수사 당국의 주장이 옳다면, 지난해 대선 직전 김박사와 그의 방북 중개인 장석중 사이에는 매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김박사는 지난해 12월 15일 국민회의에 입당하면서 ‘DJ 지지’ 입장을 밝혔다. 또한 그는 “만약 북한이 한국 선거에 영향을 주는 일을 벌인다면 나의 방북 계획(12월20일)도 취소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 날 김박사의 기자회견에는 이례적으로 김대중 후보도 참석했다. 즉 수사 당국이 주장하는 대로 장석중 등 3인이 북한에 총격을 요청했다면, 장씨가 북측에 총격을 요청한 직후 김박사는 북풍을 저지하려는 기자회견을 가졌던 셈이다.

안기부가 총격 요청 의혹 사건을 처음 인지한 것은 지난해 12월 대선 직전이었다. 그것은 지난 10월10일 안기부가 국회 법사위에 제출한 자료에 나오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로부터 날아온 첩보에 근거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이 ‘신뢰할 수 있는 출처’는 두 곳이었다. 하나는 미국 중앙정보국 서울지부였고, 다른 하나는 안기부의 에이전트인 장석중(암호명 장백산)·박채서(암호명 흑금성) 등이었다.

당시 첩보 내용은 한성기가 베이징 캠핀스키 호텔에서 자신을 이회창 후보의 특보라고 소개하며 리철운에게 판문점에서 총격 사건을 일으켜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었다. 한편 정권이 교체되면서 권영해 안기부장은 자기에게 보고된 총격 요청설 관련 서류를 폐기했거나, 적어도 새 안기부 수뇌부에 넘기지 않았다. 그러나 권씨 처지에서 보면 총격 요청설 관련 서류는 적절히 ‘통제되지’ 못했다.

이는 안기부 내부의 독특한 보고 체계 때문이었다. 안기부는 정보 보고 체계가 3단계로 이루어지는 ‘회사’이다. 즉 일선 IO(inteligence Officer·정보 요원)가 자신의 담당인 단장(상무)에게, 단장은 국장(사장)에게, 그리고 국장은 부장(회장)에게 보고하는 식이다.‘부회장급’인 차장은 건너뛴다. 모든 첩보가 회장에게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일선 IO들에 따르면, 그들이 올린 첩보가 부장에게 보고되면 ‘안타’이고, 청와대까지 올라가면 ‘홈런’이다. 총격 요청 첩보는 ‘안타’였다. 문제는 국장(사장)에게 보고되는 첩보를 다른 국장(사장단)들도 공유한다는 점이다. 권씨가 총격 요청 첩보를 통제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난 3월6일 ‘뒤늦게’ 취임한 이종찬 체제의 새 안기부가 곧바로 총격 요청 첩보를 확보한 것은 아니다. 새 안기부가 총격 요청 첩보를 담은 서류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이대성 파일 파문으로 상징되는 ‘1차 북풍’사건 이후였다. 이 대목에서 되짚어 보아야 할 문제는 1차 북풍 사건이다. 1차 북풍 사건이 ‘총풍 사건’으로 통칭되는 지금의 2차 북풍 사건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1차 북풍 사건과 2차 북풍 사건은 여러 면에서 ‘충격적인’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째는 1,2차 북풍 사건에서 차례로 등장하는 안기부의 대북 에이전트 세 사람, 요컨대 윤홍준(암호명 고인돌)·박채서(암호명 흑금성)·장석중(암호명 장백산)의 북한쪽 접촉 선이 한결같이 아태평화위원회 소속 강덕순­리철운 라인이었다는 점이다. 박채서와 장석중의 대북 접촉선이 강덕순­리철운 라인이었다는 점은 본인들의 증언이나 수사 당국의 주장에서도 일치한다. 또한 윤홍준의 대북 접촉선도 똑같았다는 사실은, 지난 1차 북풍 사건 때 간첩 논란이 일었던 조선족 사업가 허동웅의 성명서에 나타난다. 허동웅은 국민회의 인천 부평 을 지구당 조만진 위원장의 초청을 받고 입국해 96년 8월 DJ와 일산 자택에서 식사를 함께 했던 인물이다. 현재 복역 중인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지금도 “허동웅은 간첩이다”라고 주장한다.
이회창은 북풍, DJ는 북풍 저지 북에 부탁?

어쨌든 안기부의 에이전트인 윤·박·장 세 사람의 대북 접촉선이 동일했다는 사실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즉 1차 북풍 사건에서 ‘북풍을 막은 양심적 제보자’로 처리된 흑금성(흑금성은 정동영 의원이 건넨 김대중 후보의 통일관 및 대북관이 담긴 텔레비전 토론 비디오 테이프를 리철운에게 전달했다)과, 2차 북풍 사건에서 북측에 판문점 총격 요청을 한 것으로 되어 있는 장백산의 대북 채널이 똑같았다는 사실은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요컨대 수사 당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북한의 대남 공작원 리철운에게 이회창 후보 쪽에서는 북풍을 일으켜 달라고 주문했고, 김대중 후보 쪽에서는 북풍을 막아 달라고 주문한 셈이다.

둘째는, 3인의 대북 에이전트를 권영해 부장의 옛 안기부가 대통령 후보 세 사람에게 ‘침투’시킨 후,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으며 ‘관리’했다는 사실이다. 이들 3인의 배후에는 안기부 부이사관급 후견인 이○○를 붙여놓았다. 옛 안기부는 간첩 혐의를 받아온 허동웅에게는 고인돌 윤홍준을 딸려 허동웅의 움직임을 파악했고, 김대중 후보와 이인제 후보에게는 흑금성 박채서를 침투시켰다. 흑금성은 이 과정에서 국민회의쪽 인사들로 하여금 자신의 대북 접촉 라인인 강덕순이나 리철운과 접선하도록 시도하기도 했다. 또한 흑금성은 이인제 후보의 동서인 <동양일보> 조철호 사장과 함께 베이징에 가서 안병수 북한 조평통 부위원장을 만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장백산의 경우 현재 수사 중이어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안기부로부터 공작비를 받는 에이전트였다는 점에 비추어, 안기부가 그로부터 이회창 후보 쪽의 대북 접촉 동향을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3인의 에이전트를 여·야 후보에게 침투시킨 권영해씨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정보기관 책임자로서 고유 업무를 수행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자신을 보호할 ‘협박 카드’를 확보하려는 계산이었다고 분석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러한 분석은 1차 북풍 사건 때 권씨가 이른바 ‘이대성 파일’을 만들어, 이종찬 안기부장과 김중권 비서실장 등 현 여권 핵심부에게 “북풍 수사를 확대하면 당신들도 다친다”라며 실제로 협박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권씨를 중심으로 한 옛 안기부 수뇌부가 장백산의 보고를 통해 총풍 요청설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도 이를 이대성 파일에 담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대성 파일은 어디까지나 DJ 정권에 대한 협박용 카드였던 것이다.

한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종찬 부장의 새 안기부가 총풍 요청설 첩보 서류를 확보한 것은 1차 북풍 사건 수사가 마무리된 뒤였다. 1차 북풍 사건은 새 안기부의 실패작이었다. 이는 권씨가 여권을 협박할 목적으로 작성한 이대성 파일을 제대로 ‘독해’하지 못한 채, 새 안기부가 바로 그 이대성 파일에 기대어 수사를 확대했다가 파문이 확산되자 서둘러 덮어 버렸던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새 안기부 수뇌부가 총풍 요청설 관련 서류의 존재를 인식하고, 사장단(국장급)이 공유하던 이 서류를 입수한 시점은 1차 북풍이 끝난 이후이며, 지금까지 이를 활용할 방법을 모색해 왔다. 안기부가 지난 4월께부터 감청 등의 방법으로 이회창 총재 동생인 이회성씨 주변과 ‘총풍 3인’ 주변을 은밀하게 뒤지기 시작한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또한 장석중이 비료 회담을 주선하는 등 현정부에서 비중 있는 대북 채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도 지난 4월 안기부가 장씨를 연행해 수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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