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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개편 혈전…날 선 창이냐, 녹슨 방패냐

DJ, 지방선거 여세 몰아 여소야대 허물기 진두지휘…정계 대격돌 예고

기자 ㅣ 승인 1998.06.18(Thu)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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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에서 돌아오는 6월14일부터 정가에는 정계 개편 태풍이 한바탕 거세게 몰아칠 것 같다. 그 징후들은 벌써부터 속속 나타나고 있다. 김대통령은 6·4 지방 선거 다음날 취임 1백일을 맞는 기자회견에서 ‘가혹한 정치는 호환(虎患)보다 무섭다’는 옛말까지 인용하며 정계 개편 의지를 강하게 밝힌 데 이어, 6월8일 미국 방문 도중에 가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구체적인 방향까지 제시했다.

우선 취임 1백일을 맞는 기자회견 내용을 들여다 보면, 대통령의 정계 개편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다. “나라의 운명을 지키고 효과적인 경제 개혁을 단행하려면 정계 개편에 대해 적극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 미국에서 돌아오면 이런 일들을 신속하고 차질 없이 단행하겠다.” 정계 개편을 나라의 운명과 동일시하고 있는 김대통령의 의중을 읽게 해주는 대목이다.

김대통령, ‘지역 대화합론’ 큰 그림 제시

대통령이 총대를 메고 나섰는데 국민회의가 가만 있을 리 없다. 당의 지상 과제를 여소야대 해소로 설정한 국민회의는 빠르면 6월 중순 대통령이 귀국하기 전까지, 늦어도 6월 말까지는 여소야대 구도를 허물겠다는 각오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들은 문만 열면 곧바로 들어올 수 있는 야당 의원들이 줄잡아 20여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최근 밤 12시가 넘어 여권 실세의 집을 찾아가 입당을 원했다가 ‘조금 기다렸다가 오라’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이 밖에 전화나 대리인을 통해 국민회의의 문을 두드리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많다고 한다.

국민회의는 그동안 말로는 정계 개편론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민심을 실피며 매우 신중한 처신을 해 왔다. 그런 국민회의가 이제는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이 행동에 나서게 만든 힘은 두말할 것 없이 6·4 지방 선거의 승리이다. “한나라당은 여소야대 구도를 건전한 대여 견제가 아니라 국정을 훼방 놓고 방해하는 데만 활용해 왔다. 그런 한나라당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가하고 국민회의에게 걱정 말고 정계 개편을 단행하라고 추인해 준 것이 이번 6·4 지방 선거 결과였다.” 대통령이 나라를 비운 사이에 여소야대 허물기라는 중책을 짊어진 조세형 대행은 6월8일 기자 간담회에서 시종 자신감 있는 어조로 말했다.

조대행이 기자 간담회에서 정계 계편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는 때와 거의 비슷한 시각, 미국에서 김대통령은 한 한국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출국 전보다 구체적으로 정계 개편의 지향점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지역 연합론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여실히 나타난 지역 분할 구도, 즉 여서야동(與西野東) 현상을 바로잡는 지역 대화합 차원의 정계 개편론을 제시한 것이다.

“정계 개편은 단순히 숫자 늘리기 차원이 아니라 지역 기반을 확대하는 방안이어야 한다”거나 “자민련내 TK 의원들이 이번 지방 선거에서 기대만큼 표를 얻지 못했다”라는 김대통령의 지적은 영남 지역 기반 확대에 더욱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대통령이 이처럼 영남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공을 들여 왔던 영남, 특히 대구·경북에서 사실상 완패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요즘 여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나도는 것이 TK와의 지역 연합론과 PK와의 개혁 연합론이다. 여기에는 영남을 끌어안지 못하면 향후 국정 운영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다. 따라서 국민회의는 당장 개별 영입을 추진하되 중·장기적으로는 한나라당내 민주계와 민정계 의원들을 집단 영입하는 지역 대화합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정가에 나돌고 있는 여권 핵심부의 야당 중진 접촉설, 예컨대 허주 김윤환 부총재나 신상우 부총재 접촉설 등은 모두 지역 대화합 구도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그림처럼 민주계나 민정계 의원들이 국민회의에 우르르 몰려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허주만 하더라도 여권 내에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국민회의의 한 고위 당직자는 “TK의 대표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 권력의 중심부에 있을 때처럼 내놓을 수 있는 카드도 없지 않느냐”며 허주를 폄하했다. 박준규·박철언 등 자민련내 TK 인사들의 비판은 훨씬 더 세다. 민주계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뚜렷한 구심력도 없을 뿐더러 사분오열되어 있다. 게다가 민주계를 끌어 오려면 아무래도 김영삼 전 대통령과 교감 절차를 거쳐야 하는 부담도 따른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민정계든 민주계든 한꺼번에 4~5명씩 그룹으로 들어오는 소집단 영입 형태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조세형 대행도 항간에 나도는 민주 대연합이나 대연정같은 거대한 시나리오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인정한다. 결국 김대통령은 일단 여소야대 구도를 타파한 뒤 큰 그림은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 결과, 즉 야권의 움직임을 보아 가면서 구체적으로 잡아 나갈 것으로 보인다.

국민회의가 정계 개편의 서곡이나 다름 없는 여소야대 허물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15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 때문이다. 한나라당 과반수 의석의 벽을 허물어야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 등 국회직 배분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고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그래야 앞으로 2년 동안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저지를 뿌리치고 정치 개혁을 주도할 수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은 과반수 벽이 무너지기 전에 서둘러 후반기 원 구성을 해치우려고 하지만, 국민회의가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이상 후반기 원 구성을 둘러싼 여야 격돌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나라당은 여권의 정계 개편을 총력 저지할 참이다. 1천만 서명 운동에서 국회 농성, 단식 투쟁, 정권 퇴진 운동에 이르기까지 다단계 투쟁 전략을 세워 놓고 있다. 최근 당무 복귀설이 나도는 이회창 명예총재도 인위적인 정계 개편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대항하고 나섰다. 그러나 구심력이 없이 군웅 할거 현상을 보이고 있는 한나라당이 강한 결속력을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요즘 한나라당 사정으로 볼 때 대여 투쟁 과정이 오히려 내부 분열을 재촉할 가능성이 크다.

정계 개편 앞의 ‘높은 산’ 자민련

김대통령이 정계 개편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가장 험한 산은 자민련이다. 공동 정권과 여소야대 극복, 정계 개편은 서로 맞물려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자민련은 침체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당세 확장에 나서는 동시에 국민회의에 대해서도 더욱 공세적인 태도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방 선거의 열기가 채 가라앉기도 전인 6월5일 자민련 지도부가 국민회의에 공동정부운영협의회 구성을 촉구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김종필 총리서리에게 협의회의 실질적인 책임을 맡겨 자연스럽게 정치 전면에 나서게 함으로써 내각제 전선을 형성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지방 선거 이후 자민련 주변에서는 JP의 당내 입김이 커지리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선거 패배에 따른 지도부 인책론마저 나오고 있는 자민련은 전열이 정비되는 대로 당세 확장에 적극 나서면서 국민회의와 또 한 차례 마찰음을 낼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미국에서 돌아오는 즉시 정계 개편을 포함해 정치 전반에 걸쳐 청사진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6월17일께 지방 선거 당선자 대회에서 파격적인 선언을 하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6·4 지방 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정계 개편을 단행하면서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여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한나라당의 충돌로 초여름 정국은 여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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